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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22화 (12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2화

미래시가 끝이 났다.

“하, 참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한데 미래시에서 본 장면에 너무 화가 난 걸까.

속으로 해도 될 말을 모르고 입 밖으로 꺼내 버렸다.

“응? 뭐라고 태윤아?”

“뭐라고 했어 태윤이가?”

“응?”

“왜?”

한창 메이크업 받던 형들이 일제히 시선을 거울 쪽으로 돌린다.

거울을 통해 내 상태를 확인하려나 보다.

“아, 아니에요. 파랑새 하다가 어처구니없는 거 봐서요.”

난 멋쩍게 답하며 대충 넘어갔다.

동시에,

‘윤태형 이 새끼가……. 진짜 선을 넘는구나.’

윤태형에 대해 생각했다.

방금 전 미래시는 짧은 순간을 보여주긴 했지만 꽤 많은 정보를 담고는 있었다.

일단 첫째로 방금 본 미래시는 오늘 일어날 일이라는 거다.

윤태형이 박수철 피디와 대화하는 중 오늘 무대에서 우승하면 한솥밥 먹게 될 사이라는 말을 내뱉었으니까.

이건 파이널 무대 우승을 지칭하는 것이다.

둘째로 포함한 정보는,

‘제일 그룹 사람들이 오늘 왔다는 거구나.’

이번 파이널 경연에 합작회사를 만들 제일그룹 쪽 사람들이 왔단 거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순 있다.

여기서 우승한 팀으로 이제 새 회사를 차려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데, 그 사업을 담당할 윗분들이 오는 건 업무의 연장선인 셈이니까.

문제는,

‘이쪽도 크게 반가운 소린 아니네.’

제일그룹 쪽도 사실 문제가 없는 그룹은 아니기에 영 반가운 소리는 아니었다.

회귀하기 전, 온리원이 합작회사로 옮겨지고 난 후에도 사실 크게 좋은 케어는 받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돈은 많긴 했지만 말이다.

일단 이런 건 다 뒤로 미뤄두고.

당장 중요한 건,

‘윤태형을 어떻게 해야 하냐.’

이 자식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냐는 거다.

지금 당장 움직일까 싶었으나,

‘아냐. 생방송이 코앞인데, 괜한 짓 하는 걸 수도 있어.’

그건 리스크가 크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까.

그렇다면,

‘일단 방송만 마치고 움직이자.’

미래시에서 박수철과 나눈 대화도 사실 당장 무언가를 하겠다는 대화는 아니긴 했으니까.

아마 오늘은 얼굴만 트고 오는 날일 거다.

그러니 조급할 건 없다 생각하려 했는데…….

[돌발 미션 발발]

“이런 미친……,”

“이런 미, 뭐?”

“또 뭐 파랑새에서 이상한 거 봤어, 태윤아?”

“무대 전에 괜히 멘탈 흔들릴 만한 거 보지 마~”

……망할 시스템이 이 타이밍에 돌발 미션을 던진다.

형들은 내가 또 파랑새에서 이상한 걸 본 줄 알고 걱정한다.

난 그 걱정들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대신 답했다.

그러곤 시스템이 던져준 돌발 미션이 뭔지 귀 기울였다.

제발 무대 전에 가볍게 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랐으나,

[윤태형과 박수철이 만나지 못하게 막으시오.]

[성공 시, 보상 없음.]

[실패 시, 통찰 회수.]

‘망할…….’

무대 전에 가볍게 할 수 있는 미션도 아니었거니와.

‘성공 보상까지 없어? 실패 패널티는 있는데?’

성공과 실패 사이에 밸런스가 안 맞는다.

지금껏 이런 적은 없었는데.

머리가 복잡하다.

다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성공 보상이야 뭐,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거니까.

내가 주목한 건 그간 안 그러다가 갑자기 이번에만 이런 특이한 상황이 벌어졌단 거다.

성공 시 보상이 없단 것.

이건 아마,

‘그냥 닥치고 성공하란 거잖아.’

시스템이 밸런스를 뭉개고 뻔뻔하게 나올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란 거다.

뭐, 언제는 선택권이 있나 싶었긴 하다만.

아무튼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열심히 발로 뛰란 말이었다.

“하아아.”

생방송 후에 윤태형을 처리하려 했는데.

난 승연 씨와 현아 씨를 바라봤다.

“저, 잠시만 밖에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지금요?”

“타 팀 리허설 중이라 복도 출입 안 될 텐데.”

“좀 급한 사안이라, 어떻게 안 될까요?”

“급한 사안이요?

“전에 전화해서 부탁했던 거. 그게 좀 필요한 상황이라서요.”

“……아.”

“……오.”

“아무튼, 급한 상황입니다.”

“잠깐만요.”

대화를 끊은 윤승연이 먼저 밖으로 나갔다.

이내 금세 다시 돌아오더니,

“지금 타 팀 무대로 올라갔다고 잠깐 나와도 된대요.”

복도를 걸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돌아왔다.

* * *

난 승연 씨 현아 씨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에요, 태윤 씨?”

이내 복도 구석 으슥한 곳에 도착하자 승연 씨가 내게 물었다.

“지금 윤태형이 공연장으로 오고 있는 거 같아서요.”

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말했다.

시간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다.

“윤 팀장님이요?”

“저희한테 그런 말 없었는데.”

“근데 팀장님 오시는 걸 태윤 씨가 어떻게 알아요?”

그렇지.

당연히 이런 의문이 가능하다.

임기응변이야 이젠 뭐 익숙하다.

“박수철 피디님이 오늘 팀장님이랑 약속 있다고 말해줬어요.”

난 박수철 피디를 팔았다.

“아, 그래요?”

“팀장님이 현장에 온다니. 놀랄 일이네…….”

승연 씨와 현아 씨는 큰 의심은 않고 믿어줬다.

“근데 팀장님이 오는 거랑 별개로, 왜 저희한테 전에 부탁했던 것들을 지금 받으려는 거예요?”

그때 승연 씨가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아마 합작회사로 이관될 때 대비해서 의논하려고 만나는 것 같다더라고요.”

“……진짜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거 막아보려고, 지금 그 자료 부탁드린 겁니다.”

“하아. 진짜. 추하다 추해. 어떻게 늘 자기 밥그릇이 우선이지 그 사람은?”

승연 씨는 표정이 어두워진 채 아무 말을 안 했고, 현아 씨는 화가 난 건지 이마를 짚고 욕을 쏟아냈다.

“암튼, 전에 부탁드린 자료들 지금 있으면 주시면 감사할 거 같아요.”

“어차피 다 저희 핸드폰에 있어서. 전달은 어렵진 않아요.”

“근데, 사실 이 자료들이 막 크게 치명적인 자료들은 아니라,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승연 씨와 현아 씨는 그리 말하며 핸드폰을 조작해 내게 자료들을 하나씩 넘겼다.

“자료 보면 알겠지만 막 그렇게 크게 치명적인 것들은 없어요.”

“이 사람 잘리기 싫어서 그런지 선은 안 넘더라고요.”

난 승연 씨와 현아 씨가 건네준 자료들을 확인했다.

내가 전에 미래시에서 윤태형과 승연 씨, 현아 씨가 모여서 회의하는 걸 본 밤.

그때 전화로 부탁했던 자료들이다.

거창한 자료를 부탁한 게 아니다.

애초에 거창한 자료를 받아낼 수도 없다.

윤태형이란 인간은 거창한 무언가를 해낼 만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바란 건 하나.

“이게 출퇴근 시간 기록한 자료고, 실제 근무 중 업무 한 내역 기록한 자료들이에요.”

“이건 영상 증거들이고, 여기 이건 사진 증거예요.”

“녹취 파일도 꽤 있어요. 근데 막 큰 건 아니고, 일하기 싫다, 회삿돈 뜯어내고 싶다, 이런 거 중얼대는 것만 녹취된 내역이에요.”

윤태형이 얼마나 일을 안 하는지에 대한 증거들이다.

사실 이리 모아놓고 보니 유치해 보이긴 한다.

범죄, 라고 부를 만한 건 하나도 없으니까.

비리, 라고 보기에도 턱없이 부족하고.

자기 밥그릇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 그런지 밥그릇 사라질 일은 안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꼴값을 떨긴 하는구나, 회사에서.’

그렇다고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누워서 자고.

회사에서 맥주 마시고.

하루 종일 모바일 게임이나 돌리고.

다시 자고.

출퇴근은 엉망인 데다, 업무 내용도 없다.

동영상과 녹취 등을 통해 파악하자면 일에 대한 의지조차 전혀 없는 인간이다.

남들이 보기엔 이게 뭐 얼마나 가치가 있는 자료냐고 하겠지만,

“이 정도면 충분해요.”

나한텐 가치가 있는 자료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긴 하네요.”

윤승연과 이현아는 정말 이 자료가 가치가 있는지 여전히 의아한 모양이었다.

“근데 그걸로 진짜 뭐 하려는 거예요?”

“맞아요. 저희가 할 거 있으면 더 도와줄게요.”

끝까지 걱정이 되는지 활용처를 물어보기까지 한다.

사실 나라고 크게 거창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누구나 떠올릴 법한 내용일 거다.

“일러야죠. 이 인간이 이렇게 폐급이란 걸요.”

“……네?”

“……일러요?”

현아 씨와 승연 씨가 살짝 당황하며 묻는다.

“이거 사실 남의 허락 없이 동영상 촬영하는 것부터가 불법이라 어디 올리거나 그러면 저희가 곤란해질 수 있긴 하거든요…….”

아마 내가 이걸로 공론화를 시킬 거라 생각했나 보다.

“어디 SNS에 올릴 생각은 아니에요.”

“그럼 누구한테 이르게요?”

“일단은 계획이긴 한데, 들어나 보실래요?”

난 두 사람에게 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여전히 막 거창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 또한 지극히 1차원적인 계획이니까.

하지만,

“진짜 하시게요, 그걸?”

“하아아.”

가끔은 1차원적인 게 먹히는 법이다.

“네. 뒤가 없잖아요, 해야죠.”

특히 얼굴에 가면을 네댓 개는 깔고 다니는 직장인들을 상대할 때는 이런 1차원적인 방법이 더 잘 먹히곤 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1차원적인 ‘지랄’이 잘 먹힌다.

“가서 개지랄 한번 떨어봐야죠.”

거품 한번 물고 소리 한번 질러야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 * *

WD엔터의 윤태형은 오랜만에 정장을 갖춰 입고 출근했다.

“일 더럽게 하기 싫네…….”

물론 옷을 갖춰 입었다 해서 본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외견만 그럴듯해졌을 뿐, 여전히 그는 윤태형이었다.

거울을 통해 매무새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그는 사무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쇼케2 파이널 무대가 열릴 공연장까지의 거리는 약 1시간.

차량 문을 여는 그 순간부터 짜증이 치솟았다.

“그 새끼들은 시키지도 않은 짓을 왜 해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냐. 하아 진짜.”

일 안 하고 편하게 몇 년 잘 버티고 있었는데.

이거 아무리 싫어도 당분간 몇 개월은 일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게 생겼다.

하지만 밤이 있으면 아침도 있는 법이라고.

어떻게든 합작회사로 이직만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새로운 한량 짓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일은 밑에 실무자들이 처리하게 만들고 자신은 그냥 어거지로 출근만 해서 자리만 채워두면 될 테니까.

물론 WD엔터에 있을 때만큼 편하게 있진 못하겠으나,

“연봉은 좀 올릴 수 있겠지.”

돈 조금 더 받는다 생각하면 마냥 손해는 아니었다.

이왕 이리된 거 차라리 우승을 했으면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그도 WD엔터에서 언제까지고 눈먼 돈 받아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분명 사장들의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을 거고, 그때가 되면 뭐든 해야 할 테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덩치는 크고 일머리는 없는 대기업으로 이직해 좀 더 튼튼한 동아줄 움켜쥐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윤승연, 이현아가 의외로 일을 잘해주고 있으니 그 녀석들을 조금 더 굴리면 될 것 같다.

자동차 시동을 켜고.

드라이브로 기어를 넣은 후.

부드럽게 액셀을 밟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띠리링-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울릴 전화가 아닌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동시에 느껴지는 불길한 감각.

이건 분명,

‘……뭐가 터졌다.’

어딘가에서 일이 어그러졌을 때 느껴지는 감각이다.

이 감각 덕에 10년 넘게 한량 짓 하면서도 월급을 받아먹을 수 있었기에 그는 본인의 감각을 꽤 신뢰하는 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호구3(김동현 사장)

WD엔터의 김동현 사장에게서 온 전화였다.

“……X발.”

윤태형은 운전대에 손을 얹은 채로 굳어버렸다.

사장에게 전화가 왔기 때문에 이리 굳은 게 아니었다.

예감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감이 안 좋은 거라면 아마도,

“……X됐네.”

오늘은 꽤 어려운 날이 될 거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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