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23화 (12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3화

윤태형은 속으로 숫자를 10까지 셌다.

10이라는 숫자가 지나는 동안 제발 전화가 끊어지길 바랐다.

10초 안에 끊어지기만 하면 별로 큰 사안은 아니고 소소한 이야기란 뜻일 테니까.

하지만,

띠리링-

벨소리는 좀처럼 끊어지질 않았다.

끈질기게 울려대며 윤태형을 쪼아댄다.

결국 그는 몇 번의 내적 갈등 끝에 핸드폰에 손을 댔다.

“안녕하세요, 김 대표님! 무슨 일로 전화를……,”

-윤 팀장, 지금 사무실이야?

윤태형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김동현 사장이 말을 자르고 들어온다.

“……네. 사무실 주차장이긴 한데,”

-지금 당장 내 작업실로 튀어와.

“……네?”

-당장 튀어오라고. 말귀를 못 알아들어?

당장 작업실로 튀어오란 말.

지금껏 WD엔터에서 일하며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목소리도 한껏 성이 난 게 느껴지는 목소리고.

무슨 일인가 싶으니,

-윤 팀장 대체 일은 어떤 식으로 해온 거야! 믿고 맡겼더니 회사를 개판을 쳐놔! 내가 이 시간에 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한테 전화 받아서 협박이나 당하고 있어야겠냐고!

‘아……. X발.’

대충 파악이 됐다.

그간 일 안 하고 있던 게 내부고발을 통해 걸린 거다.

어떤 경위로 걸리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가도록 하겠습니다. 가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진상 파악은 일을 수습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지금은 사장을 달래는 게 먼저다.

아마 그가 일을 안 했다는 것에 사장은 빡친 게 아닐 거다.

그가 빡친 이유는 자신을 귀찮게 만들었기 때문.

WD엔터 사장들의 일 잘한다의 기준은 자신들에게 귀찮은 일 안 생기게 한다, 라는 거니까.

윤태형은 다시 드라이브에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목적지를 공연장이 아닌 김동현 사장의 작업실로 바꾸었을 뿐이다.

동시에,

‘끝나면 찾아내서 입 좀 막아둬야겠네.’

또 다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 *

“후우우.”

공연장 구석에 있는 비품창고.

그곳에 앉아 있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귀에서 핸드폰을 떼어냈다.

약 30분가량 이어지던 통화가 방금 끝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미션 성공.]

[박수철이 공연장에 오는 것을 막아냈습니다.]

시스템의 미션 성공 알림을 들으며 허공을 멍하니 올려다봤다.

태연한 척하려고는 하지만 사실 아주 태연할 순 없었다.

일단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보다 나이가 30살은 많은 아저씨에게 협박을 해본 거였다.

그것도 오늘 처음으로 통화를 하게 된 아저씨에게 말이다.

당연히 큰 설전이 있었고, 욕도 들었으며, 나 또한 협박을 들었다.

그럼에도,

‘미션은 성공했네.’

내 예상대로 일은 흘러간 것 같다.

난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오늘 윤태형을 공연장에 오지 못하도록 만드는 내 계획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윤태형이 일을 대충 하고 있단 걸 사장에게 이르는 거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다.

사실,

‘사장들도 어렴풋이는 알았을 테니까.’

사장들이 말만 안 하고 있을 뿐, 아마 윤태형이 일을 대충 하는 건 알았을 거다.

그럼에도 윤태형을 쳐내지 않은 건,

‘귀찮게 안 하니까 안고 있던 거겠지.’

잡음이 안 나오게 하고, 얼추 그럴듯하게 일하는 티는 내니까 가만뒀을 가능성이 크다.

해서 그 부분을 공략했다.

WD엔터 사장들은 윤태형보다 더한 게으름쟁이들일 거다.

게으름쟁이들을 공략하는 건 귀찮은 일을 만들어내는 거다.

해서,

-저희 담당하는 윤 팀장의 일을 이따위로 합니다.

-분명 전속계약 계약서에 보면 회사의 책임, 이라는 조항에 이런 게 적혀 있더라고요.

-당사는 아티스트의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게 허울뿐인 조항이긴 해도 어쨌든 명시되어 있는 조항이잖아요.

-지금 보내드린 자료들을 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인적, 물적 지원을 너무 아낀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전화를 해서 쉬지 않고 따다다다 쏟아내듯이 말했다.

이에 대한 김동현 사장의 답은,

-뭐 임마?

-그래서 네가 누군데!

-……그 새끼가 일을 그따위로 하고 있었다고?

-근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어디서 어른한테 따박따박 말대답이야!

아주 꼰대스럽고, 아주 무능해 보이는 대답이었다.

이때 직감했다.

이 회사는 윤태형부터 사장까지 어디 하나 건질 게 없는 곳이란 걸.

해서 그다음 문장들을 뱉는 데에 더 거리낌이 없었다.

-저 계약서 사항 위반으로 WD엔터 고소할 겁니다. 전속계약 해지시킬 거고, 그간 저희가 받았던 불공정한 대우들 전부 공론화할 겁니다.

계약위반을 빌미로 고소를 운운했다.

당연히 김동현 사장 귀엔 얼토당토않은 소리로 들렸을 거다.

-뭐? 고소? 하, 참나. 그깟 걸로 고소가 될 것 같아! 이기지도 못할 싸움 걸어서 뭐 하게?

그러니 이렇게 어처구니없어하는 반응이었을 거고.

다만,

-저도 승소할 생각 없습니다.

내가 그렇게까지 멍청하진 않다.

재판에서 이길 생각 없다.

또 재판이란 게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지는 것도 아닌 걸 알고 있고.

-고소를 했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바라는 건 기사 올리기 좋은 타이틀인 거니까.

-적어도 고소를 하는 동안, 그리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은 귀찮은 일이 산더미 같을 겁니다.

이게 포인트였다.

이 사람들에게 가장 큰 타격은 본인들을 귀찮게 하는 거다.

-윤태형 팀장 해고해 주세요. 저는 그거면 됩니다.

해서 귀찮게 안 할 테니 윤태형만 해고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이후 전화는 일방적으로 뚝 하고 끊겼다.

그 후 약 1분쯤 지나자 미션 성공 알림이 뜬 거였고.

그 말은 사장이 화가 나서 윤태형을 본인이 있는 곳으로 소환했다는 말이다.

내 계획이 예상대로 흘러갔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후 정말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려면,

‘윤태형이 잘려야 할 텐데.’

화가 난 김동현 사장이 진짜로 윤태형 팀장을 자르는 거다.

다만,

‘그럴 리가 없지.’

나도 알고 있다.

윤태형은 잘리지 않을 거란 걸.

그 귀찮은 거 싫어하는 사장들이 윤태형을 자르고 새 팀장을 뽑으려고 발품과 손품을 팔겠는가.

그냥 있는 거 어떻게 잘 수습해서 재사용하려 하겠지.

그러니 잘리는 건 나도 바라지도 않는다.

대신,

‘다음 스텝으로 가야겠네.’

윤태형이 WD에선 안 잘리더라도, 이후 만들어질 제일그룹과의 합작회사에는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난 그다음 스텝을 위해 움직이려 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윤태형에게 한 방 먹인 김에 카운터 펀치까지 때려야 했다.

누구 목줄 달린 이런 일들은 한 발이라도 늦으면 내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니까.

비품창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는데,

끼익.

비품창고 문이 자기 혼자 열렸다.

아니지, 비품창고 문이 자기 혼자 열릴 리가 없지.

“……태윤아 여깄니?”

밖에서 누가 비품창고 문을 열었단 것이리라.

이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형?”

연훈이 형이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태윤아?”

“아, 그. 어…….”

난 섣불리 입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이걸 뭐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싶다.

김동현 사장에게 전화해서 협박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적당히 둘러댈 만한 말을 찾으려는데,

지이잉-

‘……뭐?’

갑자기 능력이 발동되려는 것과 비슷한 전조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상이 잠시 멈추고.

내 인지능력만 가속한다.

원래는 이런 상황 속 미래시 같은 게 튀어나오곤 한다.

한데,

“……윤태형은 잘 막아냈지 태윤아……?”

“……?”

멈춘 시간 속,

연훈이 형이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기억 저편에 있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처음 회귀를 할 때 연훈이 형에게 전화가 왔던 것.

그리고 통찰의 통제권을 확보하게 된 날 밤, 잠깐 뭐에 씐 듯해 보였던 연훈이 형의 모습.

마지막으로 최근에 도승이 형에게 빙의해 왔던 다른 세계의 도승이 형까지.

여러 증거들이 하나둘 자리를 찾아가며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하려 한다.

‘설마…….’

난 연훈이 형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곤 이전에 실패했던 것.

연훈이 형을 대상으로 또 한 번 통찰을 사용하려 했다.

처음 통찰의 통제권을 얻었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능숙하다.

또 얼마 전에 3차 경연 1등으로 통찰의 통제권이 더욱 강화되기도 했으니까.

한데,

후웅!

통찰을 걸기가 무섭게 또 한 번 튕겨 나온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예전에도 들었던 문장이다.

하지만,

후웅!

난 또 한 번 통찰을 걸었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맥없이 풀린다.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여 통찰을 사용하려 하니

후웅!

[접근 권한…….]

기계적인 목소리가 갑자기 뚝 하고 끊기더니,

‘뭐……?’

연훈이 형의 인영 위로 새로운 형체가 떠오르는 듯 보였다.

조금만 더 통찰을 써보면 무언가가 보일 것도 같은 그 순간,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후웅!

다시 한번 튕겨져 나갔다.

난 허망하게 연훈이 형을 바라봤다.

그러곤,

“……너 누구야.”

연훈이 형에게.

아니, 연훈이 형의 탈을 쓴 누군가에게 물었다.

그러자 눈앞의 존재가 잠시 날 빤히 쳐다본다.

잔뜩 경계한 채 거리를 벌리려는데,

“……안아봐도 될까?”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장이 튀어나왔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한 채 주춤대고 있자,

스윽.

연훈이 형이 내게 다가와 날 꽉 끌어안았다.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다.

연훈이 형이 아닌 줄 알았는데,

‘연훈이 형이, 맞나……?’

머리가 복잡하다.

그때,

“……윤태형은 잘 막은 거 같네. 다행이다.”

연훈이 형은 이런 말을 내뱉더니,

“이제 갈게. 몸조심해.”

후우웅!

정말로 사라졌다.

아니, 연훈이 형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내 허리를 감싸 쥔 채 여기 서 있다.

다만,

‘원래대로 돌아왔네.’

세계가 원래의 속도로 돌아왔고.

지금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연훈이 형도 원래의 형으로 돌아왔다.

그 증거로,

“어? 뭐야? 태윤아?”

연훈이 형이 내 허리를 감싼 채 이런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왜 지금 자신이 이곳에 있고, 왜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지 전혀 이해가 안 간단 표정으로 말이다.

전에 도승이 형 때는 쓰러지듯 잠들었던 거 같은데.

연훈이 형의 첫 빙의 때도 그렇고.

아마,

‘잠들어 있을 때 빙의를 하면 빙의가 끝난 후 다시 잠드는 건가.’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그냥 잠든 몸에 빙의할 때와 깨어 있는 몸에 빙의할 때의 차이 정도이지 않나 싶다.

“내가, 왜, 태윤이 품에 안겨 있지……? 그보다 여기가 어디야? 으아아아아…….”

연훈이 형은 지금 이 상황이 너무 미스터리한 건지 그대로 품에 안겨 냅다 비명을 지른다.

“이게 무슨 일이야 태윤아……. 나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 나…….”

“그, 어, 제가 비품창고에서 통화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어왔어요. 하하.”

“내가? 정말로?”

“……네.”

“세상에……. 큰일 났어, 태윤아……. 진짜 하나도 기억이 안 나…….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봐…….”

“하하……. 걱정 마요. 요즘 다들 조금씩 그런대요.”

“우리 바쁜 거 끝나면 당장 건강검진 받자…….”

“네…….”

난 오들오들 떠는 연훈이 형을 데리고 비품창고를 나섰다.

그러곤 연훈이 형을 대기실 앞까지 데려다준 후 난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기실에 같이 안 들어가고 다른 곳에 가려는 나를 연훈이 형이 붙잡았다.

“안 가? 화장실 가려고?”

그 질문에,

“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난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곤 마저 걸음을 옮겼다.

화장실에 가려는 건 당연히 아니다.

윤태형 보내버리기 과정의 마지막 스텝을 아직 안 밟았기 때문에 그걸 해결하려고 이동하는 거다.

“금방 올게요.”

난 그리 말하곤 복도를 걸었다.

일차적으로 김동현에게 한번 전화를 걸었으니, 이제 다음 사람을 찾아가야 한다.

윤태형과 우리 사이에 든든한 막 하나를 만들어줄 수 있을 만한 사람.

다름 아닌,

‘박수철 피디가 지금 어디에 있으려나.’

더쇼케2의 박수철 피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