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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24화 (124/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4화

박수철 피디는 제작진 대기실이라 적힌 곳에 앉아 일일촬영계획표를 넘겨보고 있었다.

본인 손으로 쓴 계획표고, 이미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정보들이지만, 그래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라이브 방송.

경연의 마지막.

최종 우승자가 가려지는 날.

오늘을 수식하고 있는 수많은 문장들이다.

이중 어느 것 하나도 가볍지 않았다.

과하게 긴장한 탓일까.

목이 뻐근하다.

“으아아. 죽겠네. 얼른 끝내고 사우나나 가야지.”

박수철은 그리 말하며 일일촬영계획표를 잠시 손에서 놨다.

목을 주물주물하며 마사지하고.

잠깐 스트레칭도 하고.

“잘 될 거야. 걱정 말자.”

나름 긴장을 털어내기 위해 자기암시도 하는데,

똑똑똑.

밖에서 누군가 노크한다.

아마 작가진 중 누구거나 무대 현장 인력 중 한 사람일 거다.

“들어오세요.”

박수철은 목을 좌우로 돌리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끼익.

이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안녕하세요, 피디님.”

“……?”

무대 현장 인력도.

작가도 아니었다.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세이렌의 막내 봉태윤이었다.

그간 출연진이 본인의 공간에 먼저 들어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부르지도 않았거니와, 누가 인사를 오려고 하면 쳐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인사하러 온 거거나 뭐 부탁하러 온 거면 그냥 나가요. 나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니까.”

해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쳐내려 했는데,

“인사하러 온 건 아니고, 부탁은 하러 온 게 맞습니다.”

봉태윤은 박수철의 축객령에도 불구하고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부탁이요?”

박수철은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봉태윤을 바라봤다.

원래 같았으면 그런 거 안 받는다고 내보냈을 테지만,

“……하아. 일단 들어나 보죠.”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세이렌이다.

더쇼케2의 메인 출연진이란 말이다.

파이널 무대 당일이고.

그간 잘해왔기도 했으니.

“말해봐요.”

부탁을 들어주는 것 정도야 뭐 괜찮을 거 같았다.

한데 봉태윤의 입에서 나온 말들에,

“……잠깐만요.”

“네.”

박수철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이건, 나랑 얘기할 게 아니라 법원 가서 이야기하셔야죠.”

모든 이야기가 그의 권한 밖의 이야기 같았으니까.

* * *

난 박수철 피디와 만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하나둘 꺼냈다.

원래는 박수철 피디에게까지 올 생각은 없었다.

처음 미래시를 통해 윤태형의 계획을 알게 된 날.

그때 내가 짠 계획은 방금 전 김동현 사장에게 전화하는 것.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윤태형은 빨리 움직였고, 그 탓에 계획을 수정 및 보완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윤태형은 사장에게 불려간 후, 사무실로 돌아와 내부고발자를 찾아낸 뒤 두 번째 기회를 노리려 할 거다.

그러니 그 두 번째 기회 자체를 제거하는 게 맞다.

“제일 그룹과 합작회사가 세워질 시, 윤태형이라는 사람의 이직이나 개입은 전부 배제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해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윤태형이 그쪽 회사 팀장 아닙니까?”

“네.”

“근데 그 사람을 배제하라고요? 법인 설립이랑 계약 이관할 때 가장 앞장서야 할 사람인데요?”

“네.”

“이유가 있습니까?”

“자료가 있는데,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는 질문에는 자료를 보여주는 게 빠르다.

사실 이 자료들이 범죄를 저지른 자료들은 아니긴 하다.

단순 업무 태만일 뿐이지.

나도 하루 이틀, 아니, 며칠쯤 일 대충 하는 걸로 이러는 게 아니다.

“지금 보여드린 자료가 약 3주친데, 3주 내내 오전 내에 출근한 날이 하루도 없습니다. 이른 오후도 아니고 점심때가 한참 지난 시간에 출근합니다.”

박수철 피디는 여기까진 뭐, 그럴 수도 있지 않나라는 얼굴이었다.

연예계에서 제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물론 현장을 뛰지 않는 내근직인 윤태형의 경우엔 당연히 제시간에 출근해야 하는 거긴 하지만 말이다.

난 반응이 없자 다음 자료로 넘어갔다.

소파에서 자는 사진.

게임 하는 사진

맥주를 마시는 영상까지.

하나둘 업무 태만의 증거들이 튀어나왔다.

회사 소파에서 출근하자마자 자빠져 자는 걸 볼 땐 박수철도 꽤 놀란 모양이었다.

회사를 마치 자기 집 안방처럼 쓰는 모습에 박수철은 보기 싫단 듯 미간을 구겼다.

그러곤,

“그만 보여주시죠.”

자료를 치워달라 했다.

“일단 이 사람이 일을 안 하는 건 알겠네요. 하지만 제가 따로 도와줄 순 없어요. 어디까지나 합작회사 설립과 계약 이관은 회사끼리 하는 일인데, 제가 개입할 틈이 없을 겁니다.”

박수철 피디는 이리 말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이건 WD 내부에서 해결하셔야지, 저한테 이렇게 여쭤보셔도 해결해 드릴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선을 그으려나 보다.

이러는 게 당연한 상황이긴 하다.

사실 내가 보여준 게 비리도 아니고 범죄도 아니니까.

“만일 업무 태만으로 세이렌이 손해 본 게 있다면, 이건 나랑 얘기할 게 아니라 법원 가서 이야기하셔야죠.”

박수철 피디의 말이 다 맞다.

사실 나도 이런 반응이 나올 걸 당연히 알고 나온 거기도 하고.

하지만,

“아까 합작회사와의 일에 윤태형을 배제해 달라 했지만, 사실 거창한 걸 부탁드리려고 온 건 아닙니다.”

나도 아직 말이 끝나진 않았다.

내가 박수철이라는 사람을 잘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방송을 같이하면서 느낀 바는 있다.

이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려는 사람이다.

그 밖의 일은 전부 귀찮고 짜증 나는 일로 생각하는 사람.

지금 박수철 피디가 내가 부탁한 일을 고사하려는 건 아마 이 일이 귀찮고 짜증 나는 ‘자기 업무 밖의 일’로 여겨져서일 거다.

그렇다면 윤태형 관련된 일을 박수철 피디에게 자기 업무와 ‘연관된’ 일로 인식시키면 된다.

“윤태형은, 아마 저희가 우승 시 차후 더쇼케 관련된 스케줄에도 피곤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난 조금씩 빌드업을 시작했다.

“더쇼케 관련 스케줄이요……?”

박수철이 아까보다 조금 더 기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보인다.

“아마 윤태형이 합작회사에서 실무를 맡게 된다면 업무에 굉장히 비협조적으로 나올 겁니다.”

“근거는요?”

“자기 귀찮은 거 싫어서 저희를 몇 년간 데뷔 안 시키고, 회사에서는 맥주나 마시는 사람이 업무에 협조적일 거라 생각하신 건가요?”

“……맞네요.”

박수철은 이제야 이 일을 조금씩 자기 소관의 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더쇼케 관련 스케줄뿐만이 아닌 저희에게 떨어지는 모든 스케줄에 관심이 없을 겁니다. 당연히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할 사람이 이따위니 일이 제대로 될 리도 없을 거고요.”

“흐음.”

“오늘 우승하는 팀이 나오게 되면, 그 팀으로 리얼리티까지 이어서 방영하실 계획, 아니세요?”

“……그거 어떻게 알았어요. 대외빈데.”

“지나가다가 스태프분들이 대화하는 거 엿들었습니다.”

난 강현성에게 들었던 정보를 적당히 재탕해서 써먹었다.

“저희가 우승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승을 하게 된다면 리얼리티 촬영에 아마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제시간에 방영도 못 할 정도로요.”

“…….”

“대충 계산해 보면 지금도 촬영 일정 촉박할 것 같은데, 여기에 일 못 하는 실무자가 껴서 일정까지 어그러지면 휴방해야 하지 않을까요? 특별편 같은 걸로 때우거나요.”

“……하아.”

“그러니까, 합작회사 관련된 일에 윤태형 배제시킬 수 있게 도와주시면, 이런 일들은 안 일어나게 될 겁니다.”

이쯤이면 윤태형 관련된 일이 더쇼케 밖의 외부 일이 아닌, 더쇼케 안의 내부 일로 보일 것이다.

이제 마지막이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윤태형 배제시킬 수 있게 도와달란 게 거창한 걸 부탁하려는 건 아닙니다, 피디님.”

“……뭔데요?”

“오늘 제일그룹분들 공연장에 오신 걸로 아는데, 아닌가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것도 대외빈데.”

“……그, 이것도 스태프분들이 하는 말 주워들었습니다.”

“하아. 입 단속하라고 해야겠네.”

갑자기 스태프분들에게 죄송해진다.

아무튼,

“그분들에게 말만 해주시면 됩니다.”

“무슨 말요?”

“합작회사로 일 진행하고 싶으면 윤태형 통해서 WD엔터로 가지 말고 그냥 사장에게 직접 가라고요. 윤태형이 일하는 꼴이 이상하다는 것도 같이 알려주면 좋고요.”

“사장에게 직접 연락하면 일이 잘 풀리는 겁니까?”

“아마 그쪽도 크게 적극적으로 나오진 않을 겁니다.”

“……대체 뭐 하는 회사에요 거긴?”

“그래도, 금전적 보상이나 합작회사에 지분 같은 걸 유리하게 해준다면 아마 전권을 위임해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귀찮은 건 전부 제일그룹에서 알아서 하란 식으로요.”

“……정말로 확신해요?”

“100프로 확신은 못 하지만, 확률은 높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아.”

박수철은 잠시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래요. 오늘 온 본사 사람들한테 내가 말 전하는 것 정도라면, 한번 해볼게요.”

내 부탁을 들어줬다.

“단.”

한데 조건을 건다.

“오늘 우승해야 말 전달해 줄 겁니다. 사실상 우승 못 하면 다 의미 없는 짓이니까요.”

뭐 이런 조건쯤이야.

“당연하죠.”

지극히 일반적인 거였다.

“그럼 이제 돌아가요. 파이널 무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가서 연습이라도 더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난 박수철 피디에게 꾸벅 인사하곤 밖으로 나왔다.

* * *

봉태윤이 떠난 자리.

일일촬영계획표를 쥐고 오늘 있을 촬영을 시뮬레이션하던 박수철은 탁, 소리 나게 종이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러곤 봉태윤이 나간 자리를 보며 생각했다.

어린놈의 자식이 애 같은 구석이 없다고는 생각했는데,

‘이 새낀 진짜 뭐야.’

이 정도로 치밀한 구석이 있는 줄은 몰랐다.

정말 저 나이대의 사람이 맞나 싶다.

오늘 보여준 모습은 이십 대가 아니라 삼십 대라 해도 노련한 구석이 있었다.

‘별의별 군상은 다 봤는데 이런 건 또 처음 보네.’

어린 애가 너무 빨리 철이 든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암튼,

‘회사가 심각하긴 하네.’

WD엔터에 구린 구석이 있는 걸 박수철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실무자인 윤승연과 이현아에게는 크게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아마 위쪽에 큰 문제가 있을 거라 예상은 했는데,

‘이 정도로 폐급 회사일 줄은 몰랐는데.’

들어보니 예상보다 더 폐급이다.

회사 같지도 않은 회사.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는 환장의 콜라보였다.

한데,

‘이런 회사를 달고 여기까지 온 거면 얘네 포텐이 어느 정도인 거야.’

회사가 폐급인 걸 알아설까.

세이렌에 대한 평가가 상향조정된다.

만일 제대로 케어해 주는 회사가 뒤에 붙어서 확실하게 밀어준다면,

‘음.’

그림이 꽤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때마침,

“박 피디님 계세요~?”

문밖에서 누군가 그를 불렀다.

낯선 중년 남성의 목소리.

익숙하진 않지만 아는 목소리다.

다름 아닌,

“아, 본부장님 오셨군요.”

“오랜만에 얼굴 보네요. 앉아서 얘기할까요?”

제일그룹 계열사, JI ENM의 연예사업본부 본부장이었다.

앞으로 세워질 제일그룹과 우승팀 소속사와의 합작회사 사장으로 내정된 자이기도 했고 말이다.

* * *

파이널이 열리는 공연장의 밖.

오전부터 나눔이나 오프 만남 등을 하던 더쇼케이스2의 팬들은 이제 하나둘 공연장 입구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여기서 입장 도와드리겠습니다!”

“계단 쓰지 마시고 그냥 쭉 직진하시면 됩니다!”

“안쪽에 계단 있어요! 그 계단 사용하시면 됩니다!”

오후 4시가 되어 본격적인 입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방송은 오후 6시가 되어야 시작되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와, 왜 이렇게 떨리지.”

“제발, 현성아. 우승하자.”

“우리 애들 대기업 가게 해주세요. 아아아…….”

입장을 시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당장에라도 방송이 시작될 것처럼 긴장 상태에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 좌석이 채워지기 시작하고.

방송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현장엔 벌써부터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밖에서 망원경 사 올걸. 하아.”

“아, 시야 에반데.”

“화장실 가려면 앞사람 밟고 가야겠는데……?”

“저, 혹시 오늘 누구 응원 오신 건가요?”

“아, 저는 그, 온리원.”

“……저는 세이렌.”

“아.”

“…….”

“이거 드실래요?”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점점 현장이 공연장다운 구색을 갖춰가고 있는 동안.

공연장 뒤쪽.

출연진들 대기실이 있는 곳은 현장의 열기에 맞춰 각각 텐션을 올리고 있었다.

“할 수 있다! 쫄지 말자!”

“으아아아아!”

“할 수 있다, 세이렌!”

특히나 시끄러운 건 세이렌 쪽 대기실.

생방송이 이제 2시간 안으로 다가온 걸 느껴설까.

“형들, 그, 먼지 날리니까 제발 앉아서,”

“으아아아아!”

“무섭지 않아!”

“우리 진짜 잘할 수 있을 거야!”

“예에에~”

봉태윤을 제외한 4인 전부가 아드레날린 과분비 상태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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