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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25화 (12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5화

난 대기실에 앉아 과흥분 상태에 돌입한 형들을 멍하니 지켜봤다.

공연 시작이 2시간 안으로 들어옴에 따라 형들 상태가 점점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난 괜찮아.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나 진짜 멀쩡해, 나 컨디션 최고야.”

연훈이 형의 경우 무슨 주문처럼 자기암시를 건다.

자신이 최고라느니, 멀쩡하다느니, 아무렇지 않다느니.

뭐랄까.

소형동물이 털을 부풀리는 느낌의 행동들이었다.

운이 형의 경우엔,

“우리 다 잘할 수 있을 거야. 그치?”

“정말 잘할 수 있을 거야. 안 그래?”

“무조건 우리가 최고야. 그렇지?”

“……네. 형 말이 다 맞아요.”

아니요, 라고 답할 시 그대로 참수형에 처해질 것만 같은 분위기다.

저 착해 보이는 눈에 광기가 번뜩일 수 있단 게 놀랍다.

이 정도 광기가 있어야 무대에서 그렇게 날아다니는 건가.

오늘 운이 형은 진심으로 좀 무서워서 살짝 거리를 벌렸다.

도승이 형과 동준이 형의 경우엔,

“으아아악!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오오오오!”

성난 오랑우탄 두 마리였다.

목청껏 소리를 치며 잘할 수 있다고 무지성으로 반복한다.

그것도 대기실을 마구 돌아다니면서 말이다.

도승이 형은 매일 동준이 형 구박을 하던 사람인데,

‘왜 흥분하니까 동준이 형이랑 동급이 되는 거예요…….’

지금은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이 하는 짓이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난 이런 형들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너무 정신없이 이러고 있으니 머리까지 아프다.

먼지도 계속 날리고.

물론 나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자꾸만 손발이 저리고.

속이 울렁거리는 중이니까.

하지만 내 증상은 어디까지나 내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거다.

“나 괜찮아. 나 최고야. 나 다 이겨. 나 진짜 짱 세.”

“우리가 최고잖아. 맞지? 맞잖아? 응?”

“우라라라라라락!”

“호오! 호오! 호오!”

……이렇게 외부로 긴장감을 발산하는 것보다는 한 백만 배쯤 나은 것 같다.

난 잔뜩 긴장한 형들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어버렸다.

늘 무대에 긴장하지 않는 형들이었는데.

이리 보니 약간의 동질감도 생긴다.

난 형들이 마음껏 긴장감을 표출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이건 뭐 막는다고 막아질 게 아니니까.

대신,

‘오늘 파이널 우승……. 반드시 해야 해.’

나 스스로 각오를 다졌다.

이 망할 시스템이 던져준 미션들 중 가장 큰 고비를 오늘 넘겨야 한다.

난 동준이 형과 방방 뛰어다니는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나름 진지한 생각 중에 저러고 있으니까 몰입이 안 되긴 하는데,

‘지켜야지.’

한 번 잃었던 걸 두 번째에 또 허망하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반드시 우승해야 한다.

다만 만에 하나.

우승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멍하니 있으면 안 되지.’

슬픔에 잠겨 있을 시간 따위 없다.

어쨌든 시스템도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거스르진 못한다.

두 번째의 기회를 노려야 한다.

“후우우.”

긴장감을 떨쳐내려 심호흡했다.

그때,

“태윤아! 이거 봤어?”

조금 정신을 차린 걸까.

털 부풀리기에 여념이 없던 연훈이 형이 핸드폰을 들고 내 쪽으로 온다.

화면에 떠오른 건 오늘 팬들이 공연장에서 나눔 했다는 비공식 굿즈들이었다.

“내 졸업사진까지 사람들이 굿즈로 만들어줬어. 다들 너무 귀엽지 않아?”

“네. 형 졸업사진 귀엽네요.”

“그, 귀엽단 게 내 졸업사진을 두고 한 말은 아니긴 한데. 근데 이렇게까지 나 좋아해 주는 분들이 있는 거니까……. 내가 최고인 거 맞겠지?”

……정신을 차린 것 같단 말은 취소다.

“내가 최고야. 맞아. 진짜 나 짱 잘해. 나 이길 거 아무것도 없어. 내가 진짜 짱이야.”

기승전 짱이야로 끝나는 대화였다.

연훈이 형이 옆에서 짱이다 뭐다 중얼거리는 동안 난 핸드폰으로 다른 파랑새 게시글들을 더 봤다.

‘벌써 이만큼 팬덤이 생겼구나.’

우리 팬덤이 커진 건 알고 있었으나 사실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감이 잘 안 잡혔던 게 사실이다.

아이돌들이 주로 쓰는 어플 같은 것에 아직 우리가 등록된 것도 아니고.

앨범을 판매해 본 것도 아니며.

공연을 단독으로 개최해 보지도 않았다.

대략 파랑새를 보며 어림짐작만 하던 중이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여전히 팬덤의 크기가 투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정성스러운 굿즈가 나올 정도라면 영 작지는 않을 거 같았다.

‘잘해야지.’

오늘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이 시간 아깝단 생각이 안 들도록 잘해야겠다.

그때,

‘음?’

온리원 관련 게시글들도 피드에 자주 올라왔다.

‘온리원 굿즈도 좋은 게 많네.’

생각은 자연스레 온리원 쪽으로 흘러갔다.

과연 이 팀이 얼마나 준비를 했을지.

어떤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 중일지.

난 온리원에 대해 생각하려다가,

‘괜히 생각했다가 컨디션 망치지 말고 우리한테만 집중하자.’

생각을 돌려 빠르게 형들을 바라봤다.

온리원이고 자시고 다 필요 없다.

오늘은 우리가 주인공인 날이 되어야 한다.

* * *

공연 시작까지 1시간이 남은 시각.

온리원 대기실은 가벼운 긴장감으로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강현성은 세이렌에 대해 생각하던 것을 잠시 멈췄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세이렌을 견제하고 경우의 수를 짜본다 한들 이제 와선 크게 의미 없단 걸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진작에 알고는 있었지만 멈추지 못했을 뿐이다.

긴장하면 습관적으로 생각이 깊어지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금은 의지적으로 무한히 이어지려는 생각을 끊어낼 수 있었는데,

“형, 좀 괜찮아요?”

박영호가 강현성에게 괜찮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팀에서 눈치 많이 보는 막내가 이리 물을 정도면 얼굴이 정말 좋지 않았나 보다.

“응. 괜찮아.”

강현성은 짧게 답하곤 작게 웃어줬다.

박영호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된 건지 강현성과 함께 따라 웃고는 소파 옆에 몸을 푹 기댔다.

“오늘 무대 진짜 잘할 수 있겠죠?”

박영호가 조금은 희망에 찬 목소리로 묻는다.

“우리 진짜 열심히 했잖아요.”

맞는 말이다,

원래도 연습을 타이트하게 시키는 강현성조차도 이번 연습은 과연 따라올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각박하게 스케줄을 짰다.

하지만 멤버들은 그걸 하나도 남기지 않고 전부 소화해 낸 상태다.

그러니,

“응. 잘할 수 있어.”

강현성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게 가능했다.

“와, 진짜요?”

“헉! 지금 현성이 형이 뭐라고 한 거야?”

“형, 방금 잘할 수 있다고 한 거예요?”

“세상에.”

한데 잘할 수 있단 말이 나오자 온리원 멤버들 전원이 놀라서 강현성을 쳐다봤다.

“……하, 진짜.”

강현성은 그걸 보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지었다.

“응.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러곤 다시 한번 말해줬다.

“예에!”

“잘할 수 있다!”

“호오오!”

“뿌이뿌이뿌이!”

온리원 멤버들은 한 번 더 주접을 떨며 대기실을 소란스럽게 돌아다녔다.

강현성은 그걸 보며 작게 웃었다.

본인이 얼마나 칭찬에 각박하게 살았는지 셀프 모니터링이 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잘해야지. 무조건.’

스스로 한 번 더 마음을 다지는 순간이었다.

무조건 우승해서 합작회사로 멤버들을 데리고 이동하고 싶었다.

이 아이들을 TH엔터라는 블랙기업에 계속 둘 수 없었다.

그곳에서 한없는 세월을 희망 없이 기다리기엔 다들 재능도, 성격도 좋은 멤버들이었다.

강현성은 심호흡을 했다.

무대에 긴장하는 것은 셀유돌 때 끝났다 생각했는데,

“흐음.”

간만에 심장이 떨린다.

“우리 가사, 이거 팬들에게 잘 전달 되겠죠?”

그때 박영호가 가사에 대한 걸 묻는다.

이번 경연은 각 그룹만의 오리지널 노래로 무대에 서는 거다.

다만 온리원은 자체제작이 안 되기에 곡과 가사 모두 외주를 맡겼는데, 그중 가사 작업을 할 때에 멤버별로 키워드를 하나씩 잡아서 작사가에 전달했다.

한데 동일하게 나왔던 키워드가 고맙다, 라는 거였다.

박영호는 이 고맙다, 라는 말이 과연 팬들에게 잘 전달이 될까를 걱정하고 있었다.

“걱정 마. 전달 될 거니까.”

사실 잘 전달되려면 우리가 무대를 잘해야지, 라는 말이 습관적으로 나갈 뻔했다가 급하게 말을 바꿨다.

“그쵸?”

“응.”

“다행이다.”

강현성은 박영호의 정수리를 톡톡 두드린 후 대기실 거울을 바라봤다.

온리원 멤버들 다섯이 강현성을 가운데에 두고 다닥다닥 소파에 붙어 앉아 있었다.

그는 거울 속 온리원을 잠시 바라보곤,

“가서 우승하고 오자.”

“넵!”

“우승하자!”

“예에에!”

“호오오!”

다시 한번 우승의 의지를 다졌다.

때마침,

-온리원 스탠바이하겠습니다!

스탠바이 사인이 떨어졌다.

“가자.”

온리원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온리원의 한 팬은 이제 곧 방송이 시작된단 것에 두 손을 꼭 쥐고 무대를 바라봤다.

새벽부터 일어나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온 팬이었다.

셀유돌을 할 때에도 안 좋아했던 강현성한테 어처구니없게도 더쇼케 중에 빠지는 바람에 이 장거리를 뛰러 오게 된 거였다.

다만 장거리든 뭐든 상관없었다.

“제발, 제발 우승시켜 주세요. 하나님.”

온리원이 우승만 할 수 있다면 아프리카 어디 오지쯤에라도 기꺼이 갈 의향이 있을 정도였다.

간절한 마음이 너무 큰 걸까.

고통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이내 오후 6시가 되고.

공연장 조명이 달라지더니.

방송 장비들에 하나둘 전원 표시가 들어오고.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허업!”

온리원 팬은 숨을 참고 무대를 바라봤다.

시야가 좋지 않아 전광판이 아니고서야 무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위치였다.

하지만 점으로나마 온리원을 이제 볼 수 있단 것에 가슴이 떨려왔다.

오늘 파랑새에 유출된 공연 순서를 보면 온리원이 1번 오프닝 무대였다.

우리 애들을 오프닝에 심은 게 화가 났다가도, 또 그간 행보를 보면 차라리 엔딩 아니면 오프닝을 원하던 애들이었기에 겨우 화를 삭일 수 있었다.

때마침,

-아직 잡지 못한 첫 번째 기회를 거머쥐어라.

-안녕하십니까. 더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MC를 맡은 개그맨 김영진,

-가수 나현입니다. 반갑습니다!

더쇼케이스2를 보면 늘 나오는 두 사람.

김영진과 나현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와아아아악!”

연예인은 연예인인 걸까.

김영진의 경우엔 방송으론 그냥 평범한 직장인 같은 느낌의 생김새였는데 실제로 보니 비율도 좋고 마스크도 입체적이었다.

“오, 잘생겼네.”

그녀는 대충 이 정도의 감상이었다.

-오늘 드디어 더쇼케이스2가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날입니다.

-그동안 울고 웃고 참 많은 일이 있었는데요. 오늘이 바로 그 모든 이야기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네요.

MC들은 크게 영양가 있지 않은 방송 시간 때우기용 멘트를 계속 치며 무대 전 긴장감을 돋우었다.

언제쯤 온리원이 나오나.

그것만 목 빠지게 기다리던 찰나.

-오늘 파이널 무대의 오프닝을 장식해 줄 팀이죠.

-당신들의 하나뿐인 별이 되겠다는 포부를 가진 팀입니다. 온리원의 무대.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어, 어어! 아아아악!”

온리원 소개 멘트가 나오더니, 무대 조명이 꺼졌다.

공연장 전체가 암전 상태에 빠지고.

앞사람 뒤통수 모양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순간.

탁.

무대 조명이 켜지더니,

“와, 와, 와아아아악!”

“끄아아아악!”

온리원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한데 착장이며 마스크며, 전광판 위로 얼핏얼핏 잡히는 그 몽타주 하나하나가 심상치가 않았다.

심장이 벌써부터 설레발 치며 방망이질을 시작하려는데,

딴-

경쾌한 EDM 베이스의 인트로가 들려오더니.

강현성이 센터로 나왔고.

용안에 눈이 번쩍 뜨인 그 순간,

-슬픈 엔딩 따윈 없길 바래

-우리 사이 피어난 이 길 끝에

-함께 걸어온 마음들에

-아픈 감정 따위 설 수 없게

온리원의 무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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