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26화 (12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6화

온리원의 무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강현성은 무대 센터로 나오며 생각했다.

5,000명이 있는 공연장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고 말이다.

유어스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이것보다 훨씬 큰 공연장에서도 공연을 했던 그였다.

그때에는 별로 크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던 그였고.

하지만 고작 5,000명 사이즈의 공연장이.

아니, 방송 장비 탓에 실제론 3,000명밖에 수용하지 못한 공연장이 이토록 크게 느껴지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긴장하니 몸이 굳기 시작한다.

그는 억지로 긴장을 뚫으며 근육을 이완시킨 뒤 안무를 시작했다.

곡은 아직 도입부.

물방울이 튀는 듯한 질감의 베이스 사운드가 울려 퍼지고.

강현성을 중심으로 온리원 멤버들이 동그랗게 서더니, 마치 시곗바늘이 돌아가듯 움직였다.

강현성이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린 후 절도 있게 탁, 아래로 내리그은 순간.

-슬픈 엔딩 따윈 없길 바래

-우리 사이 피어난 이 길 끝에

-함께 걸어온 마음들에

-아픈 감정 따위 설 수 없게

원을 그리며 돌아가던 멤버들이 허리를 숙이며 내려가고, 그 사이 강현성이 홀로 돋보였다.

강현성은 다시 한번 무대를 보며 생각했다.

왜 이 무대가 이렇게 큰가 하고 말이다.

센터에 섰던 강현성이 들어가고.

박영호가 무대 앞으로 나섰다.

-긴 시간 달려온 그댈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해온 이 순간을

강현성은 센터에 선 박영호를 보고.

-맞잡은 두 손에

-움켜쥔 꿈속에

-말로만은 할 수 없는

-두 눈 속에 숨긴 맘은

김주현이 무대 하는 것을.

김시운이 무대 하는 것을.

이철운이 무대 하는 것을 바라봤다.

그제야 이 무대가 왜 크게 느껴졌는지 알 거 같았다.

-You make me bloom

-그대 덕에

아이돌을 한다고 했지만 그간 그룹으로서의 정체성은 없던 강현성이었다.

그에게 아이돌이란 은퇴하는 순간까지 경쟁해야 하는 직업이었고, 그를 위해선 같은 그룹일지라도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고까지 생각했던 그였다.

-I bloom for you

-그댈 위해

하지만 이제야 그룹으로서의 유대감이 무엇일지 이제 조금 알게 된 것 같았다.

해서 무대가 크게 느껴졌던 거였다.

자신만 잘하고 끝날 무대가 아니라, 자신과 함께하는 멤버들 모두가 잘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현성은 어울리지 않게 떨고 있었지만, 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무대를 잘 소화해 내고 있었다.

-always here

-waiting for you

강현성의 시선은 객석을 향했다.

이 곡은 고마움을 담아 만든 곡이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았지만, 어쨌든 이 멤버들을 이끌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준 힘. 그 원동력.

바로 팬들을 위해 만들어낸 곡이 이 곡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그대 곁에

-You make me bloom

-당신이 피워낸 한 떨기 꽃에.

온리원의 첫 번째 오리지널 곡, 는 그렇게 1절 후렴구를 지나고 있었다.

* * *

온리원의 한 팬은 무대 위의 강현성을 멍하니 바라봤다.

곡은 1절 후렴을 지나 2절로 이어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그녀도 이 자리에 있는 수많은 온리원 팬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파고 들어간다면, 조금은 특색이 있는 팬이었다.

-오랜 시간 품어온

-소중하게 가꿔온

-우리 사이 피어난

-그 마음은 때때로

-feel so blue

-한없이 무너지게

셀유돌 시절.

아무도 강현성을 잡지 않았을 때 홀로 파랑새 인장에 강현성 걸어두고 활동하던 초창기 팬이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강현성 덕질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때의 강현성 덕질은 거의 정신수양에 가까웠다.

피디픽이 아니라는 이유로 은은하게 악편을 당하는 통에 늘 파랑새에서 까이게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해명하러 다니고, 설전을 벌이고, 적극적으로 팬덤을 만들어나가려 애썼다.

그래도 노력할 맛이 났던 게 매 방송마다 강현성의 팬덤이 커지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피디가 아무리 편집으로 소외를 시키려 해도 강현성의 춤 실력은 사람들 눈에 띌 수밖에 없었고, 그걸 보고 반한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거기에 트렌디하게 도화살 낀 것 같은 마스크는 한번 들어온 팬들을 그 자리에 꽉 묶어놓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해서 늘 즐겁기만 했던 덕질이냐.

그건 또 아니었다.

빠가 많을수록 까도 늘어난다고 하위등수였다가 견제해야 할 곳까지 치고 올라오니 타 팬덤에서의 억까가 말도 안 되게 늘어났다.

이후 데뷔에 성공하고 난 뒤엔 꽃길만 있을 줄 알았더니 이런저런 사건들 탓에 그때부터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었다.

다만 거기까진 순한맛이었다는 듯, 유어스 해체 이후 TH엔터에 돌아가더니 망돌 모아서 한다는 경연 프로그램에 참가까지 했다.

친구들 사이에선 그녀를 돌판 부처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였다.

다만 부처라고 할 순 없는 것이 그 모든 일에 의연하긴커녕 매번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강현성을 놓을 수 없는 것은.

-어지럽던 그 밤에

-내 곁에 찾아온

-널 본 순간

-내 맘은 light it up

-Like red

무대를 볼 때마다 이토록 가슴을 뛰게 만드는 사람은 강현성이 유일했기 때문이다.

-You make me bloom

-그대 덕에

-I bloom for you

-그댈 위해

그녀는 무대 위 강현성을 멍하니 바라봤다.

곡의 후렴구에 맞춰 센터에 선 강현성은 누구보다 빛이 나는 것 같았다.

-always here

-waiting for you

더군다나,

‘이거 가사, 아무리 생각해도 팬송이잖아…….’

현재 멤버들이 부르는 곡의 가사는 팬들을 위해 쓴 가사 같았다.

실제 온리원이 작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순간에 이 곡을 들고 와서 파이널 무대를 꾸린다는 게 중요했다.

오랜 시간 달려온 팬들을 위해 준비한 무대.

그 무대를 바라보는 팬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가슴을 쿡쿡 찌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그대 곁에

-You make me bloom

-당신이 피워낸 한 떨기 꽃에

온리원의 팬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자꾸만 고개가 떨어졌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막고 숨을 죽였다.

이 마음이 천 년이 갈지, 백 년이 갈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내일 아침 허망하게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강현성을 좋아하길 정말 잘했다고 말이다.

* * *

온리원의 무대가 끝이 났다.

형들과 나는 대기실에 앉아 말없이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온리원이 어떤 무대를 들고 왔을지 내내 궁금했던 나다.

한데 지금 모니터링을 끝내고 나니,

‘……괜히 봤다.’

이걸 왜 봤나 싶었다.

파이널이니 잘했을 거라 생각은 했다.

실제로 회귀하기 전에 봤던 온리원 파이널 무대도 좋은 무대였고.

하지만 결단코 이 정도 무대는 아니었다.

회귀 전엔 온리원이 늘 하던 만큼 무대를 했다 정도의 감상이었는데,

‘……단체로 각성을 했나.’

이번엔 아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했다.

방금 그 무대는 커리어 하이 시절의 온리원이 보이는 무대였다.

춤이나 표정 등이 좋았다는 걸 넘어서, 팀으로서의 호흡이 분명히 살아난 무대였다.

무엇보다,

‘치트키 썼네.’

강현성은 이 프로그램에서 본인만 쓸 수 있는 치트키를 이번 파이널에 사용했다.

‘자기 서사를 팔아먹어……?’

강현성 본인도 알고 있을 거다.

본인 덕질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아이돌 팬들 멘탈 갉아먹는 행보만 골라서 걸어왔으니까.

한데 그걸 역이용해서 이런 곡으로 파이널에 올라오면,

‘흐음…….’

온리원의 팬이던 사람들이야 당연히 과몰입할 거고.

온리원 팬이 아니던 사람들도 저 서사에 매력을 느끼고 안 하던 과몰입을 할지 몰랐다.

그 예로,

“후우우…… 후우우우…….”

“차라리 울어요, 형.”

“후우우……. 안 울 거야…….”

“그 정도면 이미 우는 거예요.”

연훈이 형 수도꼭지가 또 터졌다.

원래도 과몰입을 자주 하는 형이긴 하다.

하지만 파이널에서 남의 무대 보고 과몰입을 할 정도는 아니다.

우리 무대를 앞두고 잔뜩 긴장한 상태였을 테니 말이다.

한데 방금 온리원 무대의 서사는 긴장마저 잠시 무너뜨릴 정도로 흡입력이 있었다.

연훈이 형이 소매로 쓱쓱 눈가의 눈물을 닦는 동안.

“……와, 진짜 잘하셨다.”

“……대박이야.”

“울컥해.”

“진짜…… 온리원만 할 수 있는 무대를 했네요.”

다른 형들도 모니터를 보며 한마디씩을 꺼냈다.

연훈이 형이 울든 말든.

사실 우리 대기실 분위기는 마냥 밝을 수는 없었다.

“우리도 잘해야 할 텐데.”

“흐으음.”

“아, 진짜 쉽지 않다.”

경쟁자가 지금껏 보여줬던 무대들보다 확연하게 더 좋은 무대를 가져왔는데, 허허실실 웃고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이길 수 있겠지……? 저 무대를……?”

도승이 형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리 물었다.

그 질문에 어느 한 사람도 당당하게 답하지 못했다.

해서,

“네. 충분히 이길 수 있어요.”

내가 다른 형들 대신 답했다.

사실 나도 우리가 저 무대보다 훌륭한 무대라고 장담은 못 한다.

하지만,

“걱정 마요. 우리가 더 잘할 거니까.”

형들에게 안심을 시켜줘야 한다.

이전에 했던 무대들에서 형들이 날 토닥여 줬던 것처럼.

오늘은 내가 확신을 심어주는 역할이어야 했다.

“오늘 우리가 우승하고 돌아갈 테니까 그렇게들 아세요.”

“……진짜?”

“우리가 우승해?”

“하하하!”

내 허세에 형들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나머지는 형들이 알아서 할 거다.

“그래, 할 수 있어. 벌써부터 겁먹지 말자.”

“후우우……. 맞아……. 우리 짱이야……!”

“형은 눈물 닦고 그런 말 하세요.”

“……우리, 짱이야!”

형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긴장감을 조금씩 몰아냈다.

“일단은 다음 무대에 집중하죠.”“그래.”

“이다음이 블레슈분들이지?”

“기대된다.”

우린 자세를 바르게 한 뒤 다시 모니터를 바라봤다.

* * *

온리원의 무대가 끝나고 난 후.

온리원 멤버들이 일렬로 서서 짧게 더쇼케를 하는 동안의 소감을 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 시간에 사방에서 눈물을 훌쩍이는 온리원 팬들이 속출했다.

‘……위험한데.’

하필이면 동서남북이 온리원 팬으로 가득 차버린 상황에서 세이렌의 팬은 속으로 위험하단 생각을 했다.

온리원 팬들이 우는 걸 보고 위험하다 생각한 게 아니었다.

온리원에 관심 없는 그녀조차 방금 그 무대 보고 이건 좀 대단하다, 라는 생각을 품었단 게 위험한 거다.

그녀는 온리원 멤버들이 무대 소감을 밝히려고 입을 뗄 때마다 사방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걸 그저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제발 우리 애들이 더 잘하게 해주세요.’

조금 인성 터진 싸패 같지만, 지금 동서남북으로 눈물 흘리는 중인 이 온리원 팬들이 다른 의미로 눈물을 흘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이렌 우승…….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이든 누구든 간에 제발요…….’

이미 분위기가 온리원으로 넘어가 버린 객석에 앉아.

세이렌의 팬은 본인이 잡은 그룹의 우승을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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