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7화
더쇼케이스2 퍼스트찬스의 파이널 무대는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형들과 나는 대기실에 앉아 모니터로 다른 팀들의 무대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온리원 다음으로 나온 팀은 블레슈.
늘 우리랑 온리원에게 밀려 3등을 차지하던 팀이었다.
더쇼케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우리를 살갑게 대해줬던 팀이었고.
블레슈가 가져온 오리지널 무대의 곡명은
-bless you
-우리 앞에 있을 길들은
-험하다 할지라도 함께 걸을 수 있다면
-I just bless we
-꽃길이 아니라도 웃을 수 있기를
기존에 보여줬던 무대들보다 훨씬 더 편안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무대였다.
블레슈는 원래 이런 식의 보컬 라인이 강조된 곡을 더 잘하는 팀이다.
그간 퍼포먼스를 더 보여줘야 된다는 압박에 본인들이 잘하는 걸 잠깐 내려놨던 것 같고.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본인들이 하고 싶었던, 또 가장 잘하는 무대를 만들어낸 거 같았다.
‘멋있네.’
난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했는데,
“곡 너무 좋다.”
“진짜 블레슈분들 목소리 엄청 좋구나.”
운이 형과 연훈이 형은 입 밖으로 칭찬을 내뱉었다.
이게 착한 사람들의 화법이란 걸 머릿속에 다시 한번 새겨넣었다.
이후 블레슈는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대뜸 눈물을 터뜨렸다.
-……너무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고, 저희 잊지 말아주세요.
처음엔 블레슈의 리더만 울고 있었는데, 잊지 말아달란 그 말에 멤버들 모두가 다 같이 눈물을 보였다.
현장이 잠깐 눈물바다가 되고.
“후우우우우…….”
“형, 여기 휴지요. 메이크업 안 번지게 잘 닦으세요.”
“우우우…….”
연훈이 형 눈도 다시 한번 그렁그렁해졌다.
그다음 무대는 원바이원.
아마 더쇼케이스 하면서 가장 많은 변화가 있었을 팀일 거다.
5인으로 지원했다가 3인으로 파이널을 하게 됐으니까.
한데,
‘뭐야……?’
김준혁과 이영준이 족쇄였던 건지, 막상 나가고 나니까 더 날아다닌다.
“다들 보컬 라인 아니었어?”
“랩을 왜 저렇게 잘하셔……?”
“랩이랑 노래 둘 다 잘하는데?”
셋이서 퍼포먼스고 랩이고 노래고 전부 기깔나게 해낸다.
곡명은
가벼운 전자음이 많이 섞인 봄 느낌 나는 청량한 곡이었다.
-one and one 우리 사이 남은 이야길
-하나하나 우리 앞에 길게 펼쳐질
-기대해온 만큼 더 짜릿할 날들이 되길
컨셉도 무난하게 청순한 컨셉에, 의상도 과한 것 없이 귀여웠다.
어쩌면 김준혁과 이영준이 억제기였던 모양이다.
원바이원은 무대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지막 무대에서 저희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제대로 해본 거 같네요.
-후회…… 정말 없습니다.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소감에서 블레슈가 눈물바다를 만들었던 것과 달리 이쪽은 정말 속 시원해 보였다.
다음으로 이어진 무대는 루미닌이었다.
사실 우리랑 별로 감정이 좋진 않다.
몇 번 우리에게 대놓고 비아냥댄 적도 있고.
딱히 친해질 수 있을 만한 접점도 없었으니까.
다만 그와 별개로 같은 업계에 종사한다는 리스펙은 있었다.
뭐, 저쪽도 나름 다급했겠지.
자신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데 우리랑 온리원이 죄다 뺏어가니까.
그래도 그런 식의 비아냥대는 태도는 좋게 보이진 않지만,
‘뭐, 이만하길 다행이지.’
김준혁이나 이영준 정도의 폐급은 아니니 대충 흐린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루미닌의 오리지널 곡명은
찾아보니 라틴어로 빛, 이란 뜻이란다.
아마 루미닌의 팬들에게 바치는 팬송인 거 같았다.
-빛처럼 다가와 내 곁에 있어준
-언제나 환하게 내 맘을 밝혀준
가사 하나하나가 전부 청자를 지칭하고 뱉는 가사였으니 말이다.
이전 무대들만큼 빡센 퍼포먼스를 넣진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곡이 잘 들리는 무대였다.
“다들 곡 진짜 잘 뽑아오셨네.”
곡이 생각보다 좋아설까.
도승이 형이 살짝 떨리는지 이리 말한다.
이 다섯 팀 중 오직 우리만 팀 멤버가 곡을 찍는 팀이니까.
저쪽은 전문가가 만든 곡, 우린 가내수공업 곡이다.
비교가 될까 걱정하는 모양인데,
“걱정은 형이 아니라 저 곡 쓴 작곡가들이 해야죠.”
“뭔 말이야.”
“저 사람들은 돈 받고 곡 쓰는 프론데, 형이 훨씬 잘 썼잖아요.”
“……하, 참나. 주접도 떨 줄 아냐?”
도승이 형은 내 주접이 영 듣기 싫진 않은지 가볍게 웃으며 날 쳐다봤다.
루미닌의 무대가 슬슬 끝나가는 중,
-세이렌! 스탠바이하겠습니다!
스탠바이 사인이 떨어졌다.
“…….”
그 순간 대기실 분위기가 싸해졌다.
다들 일동 정지한 채로 아무것도 못 하고 앉아만 있었다.
“후우우.”
난 차분하게 심호흡을 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우리가 짱이야!”
침묵은 깬 건 연훈이 형.
연훈이 형은 무논리로 우리가 짱이란 말만 반복했다.
“우리가 제일 잘할 거잖아. 그치?”
운이 형은 또 물음표 살인을 시작했고.
“으아아악!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도승이 형, 동준이 형은 동시에 벌떡 일어나 고함을 외친다.
“할 수 있다, 세이렌!”
“할 수 있다!”
우린 다 같이 모여서 어깨를 맞대고 구호를 외쳤다.
“떨지 말고. 쫄지도 말고. 우리가 제일 잘하니까, 가서 다 이겨 버리고 오자.”
연훈이 형이 평소의 모습은 집어던지고 꽤 박력 있는 멘트를 친다.
“네!”
“가자!”
“우승하자!”
“호오오!”
우린 텐션을 끌어올리며 대기실 밖으로 나갔다.
더쇼케이스2의 파이널 무대.
어쩌면 몇 개월을 준비한 그 마지막 무대를 후회 없이 해낼 생각이었다.
* * *
박수철은 루미닌의 무대가 이어지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온리원부터 블레슈, 원바이원, 루미닌까지.
이제 4팀이 무대를 끝낸 상태다.
문자 집계는,
“……이 많은 데이터가 처리는 가능하대?”
“……업체에서도 지금 꽤 놀란 모양이에요. 어떻게든 집계해 보겠대요.”
너무 많은 투표가 몰리다 보니 전산이 마비되지 않을까 우려가 될 정도였다.
이전에도 더쇼케이스를 했던 박수철이다.
시즌 1도 분명 좋은 성적을 거뒀던 프로그램인데,
‘거의 두 배는 넘는 거 같은데.’
당시 문자량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이었다.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지표들을 많이 보게 된다.
시청률도 보게 되고, 클립 재생횟수 등도 보게 되니까.
하지만 그런 것들은 말 그대로 ‘숫자’에 불과해 보였다.
그냥 월급에 통장에 찍힐 때, 그 액수 보는 것과 비슷한 감상이랄까.
좋긴 한데 체감은 잘 안 된다.
하지만 이 문자투표는,
“……하아. 짜릿하네.”
“……그러니까요,”
그 번 돈을 직접 쓰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다.
온몸으로 체감이 되는 것 같달까.
더쇼케이스2가 여러 지표에서 시즌 1을 넘어섰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넘어섰을 줄은 몰랐다.
하나의 방송가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에 절로 전율이 일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취하는 건 잠시 멈춰두고.
무대를 좀 더 주시했다.
“지금 집계량으로는 1위가 누구라고?”
“어……. 잠시만요. 이게 라이브 집계는 아니고, 조금 딜레이는 있을 텐데…….”
“지금 바로 눈에 보이는 등수만 말해봐.”
“……온리원이요.”
“그래? 세이렌은?”
“온리원한테 살짝 모자라요…….”
“격차가 커?”
“크진 않은데, 쉽게 뒤집히진 않네요. 방송 시작하고 한 번도 못 뒤집었어요.”
“흐음.”
박수철은 무언가 더 말하지 않았다.
별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온리원이 우승하면 어떻게 리얼리티를 기획해야 하나 그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근데……. 원래 무대 하고 나면 문투량 급증하잖아요. 그 증가치까지 계산해 보면, 아마…….”
“아마?”
“세이렌이 최종 1등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이렌?”
박수철은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세이렌이 우승하면 그쪽 리얼리티는 또 어떻게 기획할지를 말이다.
사실 어느 것 하나 아직 정해진 것은 없었다.
다만,
‘재밌겠네.’
세이렌이든 온리원이든 둘 다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 * *
더쇼케이스2 파이널 무대가 한창 이어지는 중.
파랑새를 비롯한 아이돌 관련 SNS 및 커뮤니티 등은 더쇼케 이야기가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상반기에 나온 아이돌 관련 방송 콘텐츠 중 가장 파급력이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대부분이 망돌이고 데뷔도 안 한 팀도 있지만 이 순간만큼은 돌판에서 가장 핫한 토픽이었다.
-아 방금 온리원 무대 개미쳤음;;
-ㅅㅂ 현성아
-ㅠㅠㅠㅠㅠㅠ온리원 제발 꽃길만 걷자
-진짜 에바잖아…….
-현성아ㅠㅠㅠㅠㅠ
-온리원 문자 투표 부탁드립니다. #2557 1 #더쇼케이스 #온리원 #강현성 #박영호 #김시운 #김주현 #이철운
방송 시작 후 가장 많은 반응이 나온 것은 당연하게도 온리원이었다.
무대가 좋기도 했거니와, 팬이 아니더라도 과몰입을 시킬 만큼의 서사가 있는 무대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와 근데 진짜 온리원 무대가 ㅈㄴ 벅차긴 했음
-셀유돌 짬바 어디 안 감
-온리원이 우승함?
└ㄴㄴ 아직 안 나옴
파랑새와 커뮤니티 등의 분위기에서는 이미 온리원의 우승을 점치는 상황이었다.
비슷한 크기의 팬덤을 가진 세이렌이 있긴 했지만 온리원 팬덤이 워낙 들끓고 있기 때문이었다.
또 파이널 무대에서 온리원이 레전드 무대를 갱신해 버리기도 했고 말이다.
다만 세이렌 팬덤도 가만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우리 애들 안 나왔다…….
-아 제발 세이렌…….
-세이렌 문투 인증한 분들에게 맥 립스틱 보내드려요~~~ 추첨 되신 분은 문투 인증 한 번만 보내주세요~~
-세이렌 문투 인증하면 추첨하여치킨 깊티 보내드립니다!!! 문투 인증한 10명!!
-우리 와기들 무대 기다리며 보는……. 귀한 교복 봉태윤……. 츄베룹……. 이 개쩌는 와기의 무대가 보고 싶은 분은 더쇼케 파이널 생방으로…….
세이렌 팬덤은 문투 인증 이벤트를 뿌리거나 레전드 클립 등을 피드에 올리며 다가올 무대에 결집력을 더했다.
하지만 아직까진 전반적인 파랑새와 커뮤니티 분위기 등은 온리원에게로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아 ㅅㅂ 진짜 우리 애들 우승 못 하면 어캄?;;;
-WD엔터 폭발시키러 갈 사람 구함
-우승 못 하면 진짜 개에반데…….
그걸 세이렌 팬들 또한 알았기에 종종 피드에 불안감을 표하는 글들도 올라왔다.
다만,
-아직 결과 모르는 겁니다! 우리 마지막까지 힘내봐요!
-우리 바다요정 와기들 절대 지켜
그런 불안함을 일축하는 글들 또한 꾸준하게 위로 올라왔다.
이런저런 의견들과 감정들이 오고 가고.
그 과정 중에 괜히 시비가 붙어 설전이 오가는 일도 많았으며.
쓸데없는 감정 소비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아ㅏㅏㅏㅏ 제발 수철아!! 세이렌 좀 뽑아주라!
└피디가 안 뽑음
└ㅅㅂ 알고 있어 나도
-현성이 우승 시켜주세여 님들아…….
온리원 팬덤이든 세이렌 팬덤이든 두 쪽 다 확신하지 못하고 있단 거였다.
누가 우승을 할지를 말이다.
온갖 반응이 올라오며 더쇼케이스2의 화제성이 극한으로 올라갔을 때,
-아 세이렌 올라옴
무대 위로 세이렌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