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29화
무대가 끝이 났다.
엔딩 포즈를 한 채로 우리들은 무대 위에 서 있었다.
2주간 미친 듯이 달려왔던 무대다.
아니, 2주가 아니다.
2달은 이 무대를 위해 달려온 거나 마찬가지다.
더쇼케이스라는 대장정의 끝.
벅차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가빠오는 숨을 억지로 참아내며 카메라를 바라봤다.
처음 더쇼케에 나갈 때엔 무대가 무서웠던 난데,
‘……재밌네.’
지금은 그때완 분명 달랐다.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또 준비한 무대를 실수 없이 해내는 것이.
어떤 작업보다 즐겁고 짜릿했다.
난 시선을 돌려 형들을 바라봤다.
형들도 어딘가 벅차오른 표정이었다.
아직도 무대엔 꽃가루가 흩날리는 중이다.
-꺄아아아아아
-태윤아!
난 객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곳곳에 우리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를 보며 환호하는 사람들.
우리를 보며 우는 사람들.
우리를 보며 웃는 사람들.
벅차오른 듯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들까지.
온갖 감정들이 한데 엉켜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지금인가?’
‘통찰’을 사용해 봐야 할 타이밍이 지금이란 것을 말이다.
전에 미션 성공으로 통찰이 강화되었다고 했는데, 얼마나 강화된 것인지 알지 못했다.
“후우우.”
난 심호흡을 하며.
지이잉.
통찰을 발동시켜 봤다.
처음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강화가 되었다 한들 원래도 비현실적인 능력이었으니 크게 차이가 없을 줄 알았으니까.
한데,
‘……뭐?’
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서서히 진공상태에 빠져들더니, 시간도 풍경도, 공기의 흐름마저도 정지했다.
얼핏 보면 이전의 통찰과 동일하다 할 수 있으나 그 정지되는 순간까지의 느낌이 이전보다 분명 강렬했다.
하지만 진짜 ‘강화된’ 통찰의 힘은 그다음부터였는데,
‘……세상에.’
이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이 일제히 내게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기쁨, 슬픔, 질투, 분노까지.
공연장이라는 공간에 뒤엉켜 있는 거대한 감정들 하나하나가 마치 내 것처럼 느껴졌다.
통찰은 한 가지 사물이나 사태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제공해 주는 능력인 줄 알았다.
내 사고 속도를 가속시켜 주는 능력 정도인 줄 알았고.
이건 그 정도가 아니다.
마치 독심술이라도 하게 된 것 같다.
난 숨을 참았다.
통찰을 쓰는 중이라 숨을 참고 말고 할 것도 없으나, 절로 숨이 막혀왔다.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아 통찰을 해제했다.
세계가 원래 속도로 돌아오고.
진공 상태에 빠졌던 세계가 다시 활력을 찾는다.
내게 쏟아지던 수천 개의 감정들이 서서히 원래 주인을 찾아 돌아간다.
난 차분하게 숨을 내쉬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을 척을 하려 했으나,
“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아직 카메라가 내려가지 않았다.
엔딩 포즈 잡다가 울어버리다니.
이거 생방송일 텐데.
심지어,
‘미친.’
날 잡는 카메라에 불이 들어온 상태였다.
-태윤아아아!
-울지 마!
아마 내가 우는 게 전광판에 들어왔나 보다.
난 급히 고개를 돌렸다.
괜히 우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창피하다.
얼른 수습하려 했는데,
“우우우우……. 태유나…….”
내 쪽으로 연훈이 형이 다가왔다.
한데,
“……형?”
난 눈물 한 방울 흘린 것에 불과했다면,
“울지 마, 태유나…….”
연훈이 형은 거의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형은 분명 나를 안아주려고 온 거 같았는데,
“아이고……. 형…….”
연훈이 형이 너무 우는 바람에 내가 안아주고 말았다.
그게 팬들 눈에도 보인 걸까.
-연훈아아!
-꺄아아아아!
분명 내가 울었던 그 시점에는 안타까워하는 듯한 반응들이 쏟아진 데 반해, 연훈이 형이 우는 것에는 묘하게 들뜬 감정들이 느껴지는 거 같다.
그때,
“다들 잘했어……. 진짜 너무너무 잘했어.”
운이 형이 나와 연훈이 형 쪽으로 다가왔다.
이제 보니,
“형?”
운이 형 눈가도 촉촉했다.
운이 형은 말없이 날 안아줬다.
“우리가 최고였어, 진짜.”
“……다들 너무 멋있었어요.”
뒤이어 도승이 형과 동준이 형도 다가왔다.
무대 위에서 다섯이 뒤엉켜 동그랗게 모여 있는 게 방송에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다만,
‘……좋네.’
방송에 어떻게 나오든 말든.
지금 이 순간의 기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난 형들 품에 안겨서 이 순간을 가만히 만끽했다.
* * *
박수철 피디는 무대 위에 동그랗게 모여 있는 세이렌을 바라봤다.
“꺄아아아아악!”
“연훈아! 연훈아!”
“태윤아!”
“이운!”
“강도승!”
“동준아아!”
아직도 세이렌 팬들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멤버들 이름을 외치며 환호 중이었다.
온리원 무대도 분명 좋은 무대였고, 무대 후에 환호성이 길게 이어진 무대였다.
한데,
‘다른데 느낌이?’
세이렌 무대가 끝난 지금.
온리원 때완 조금 다른 열기가 느껴졌다.
박수철은 더 생각하지 않았다.
본인이 아무리 생각하고 예상한다 한들 누가 최종 우승을 하게 될진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피디님. 지금 얼추 최종 결과 근사치까지 나온 거 같은데, 알려드릴까요?”
그때 작가진 한 사람이 물었다.
박수철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나도 마지막에 같이 들을 거야.”
“……오. 진짜요?”
“왜?”
“아니에요.”
박수철은 다시 무대를 바라봤다.
세이렌은 아직까지도 다섯이서 뭉친 채 떨어지질 않고 있었다.
다른 그룹들이 팀 간 우애가 안 좋은 건 아니다만,
‘얘넨 진짜 좀 특이하네.’
세이렌은 유독 더 애틋한 구석이 있었다.
마치 얘는 나 없으면 안 돼, 라는 생각을 각 멤버들이 서로에게 해주는 느낌이랄까.
박수철은 저 그림이 보기 좋단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피디로서 방송 진행을 위해 디렉팅을 내렸다.
“지금 세이렌 떼어놓고 소감 발표 시작하죠.”
“네, 알겠습니다.”
이후 밑에서 분주하게 스태프들이 움직였고, 이제 떨어지라는 스태프의 수신호를 누군가가 본 건지 세이렌 멤버들은 자연스레 떨어졌다.
한데,
“……어?”
“……풉.”
“하하하!”
다섯이서 아주 끝장나게 울어 젖힌 걸까.
다섯 명 다 눈가가 아주 붉게 올라와 있었다.
메이크업을 잘한 건지 화장은 크게 안 지워졌는데,
“저건…… 나중에 썸네일로 꼭 써야겠네.”
눈가가 아주 팅팅 부어오른 게 같은 남자가 봐도 귀여웠다.
박수철은 마치 귀여운 조카들 보듯 세이렌을 바라본 뒤,
“소감 시작하죠.”
방송을 마저 이어갔다.
* * *
멀뚱멀뚱하게 무대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마이크가 주어졌다.
뒤에서 김영진 선배와 나현 선배가 올라왔다.
형들이랑 얼싸안고 있느라 몰랐는데,
‘이제 소감 발표 시간이구나.’
아직 무대 끝난 게 아니었다.
한데 우리가 운 게 웃긴 걸까.
“여기, 티슈 드릴게요.”
“그, 눈물을 좀…… 닦고 시작하시죠.”
MC 두 분 모두 온 힘을 다해 웃음을 참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한 웃참도 버티지 못하는 게 있었으니,
“……감사해요오…….”
연훈이 형이 울먹울먹거리며 티슈를 받으러 오종종종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풉! 아, 그, 연훈 씨…….”
“아…… 흐으읍.”
김영진 선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웃음을 터뜨렸고 나현 선배는 고개를 돌린 채 있는 힘껏 웃음을 참았다.
연훈이 형 본인만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단 표정이었다.
그리곤 받아 든 티슈로 조심스레 눈물을 닦아내기까지 했다.
관객석에서도 웃음이 거세게 터져 나왔으나,
“……왜 웃으시지……?”
연훈이 형만 몰랐다.
뭐가 웃긴 건지를.
그렇게 한바탕 웃음이 지나가고 난 후.
“자, 그럼 이번 무대 소감을 한 사람씩 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분위기가 얼추 정리됐을 때 한 사람씩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운이 형부터였다.
원래는 연훈이 형부터일 테지만 연훈이 형이 아직 감정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운이 형이 대신 받았다.
“지난 두 달간 너무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많은 기적들이 일어난 거 같습니다. 오늘 무대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팬분들에게는 더더욱 감사드립니다.”
진정성 있는 소감이 지나가고 난 후 다음 마이크는 도승이 형에게로 넘어갔다.
“팬분들을 위해 쓴 곡이었고, 또 함께 준비한 무대였습니다. 부디 이 곡의 의미가 전달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동준이 형.
“더쇼케이스 무대 하면서 늘 행복했습니다. 팬분들을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요. 앞으로는 더 좋은 곳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저희가 더 노력하겠습니다.”
동준이 형의 기대 이상의 의젓한 멘트에 조금 놀랐다.
그다음은 연훈이 형이었는데,
“……다들 너무너무 감사해요……. 팬분들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하고. 또 우리 멤버들…… 후우우…….”
소감 말하다가 또 운다.
다만 마이크를 내리긴 싫은지 억지로 눈물을 참고는 다시 입을 뗐다.
“우리 멤버들……. 못난 리더 따라와 주느라 너무 고생 많았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연훈이 형은 거기까지 말하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연훈이 형을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다시 안아줬다.
이제 마이크는 내게로 넘어왔다.
난 마이크를 쥐고 객석을 바라봤다.
할 말은 사실 크게 없다.
앞에서 형들이 다 말을 해줬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야,
“저희를 좋아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를 계속 더 좋아하실 수 있도록 실수하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갈게요.”
이 정도뿐이다.
우리에게 대가 없는 지지와 신뢰를 보내준 사람들에게 그 마음이 내동댕이쳐지지 않을 거란 작은 약속을 해주는 것 말이다.
“앞으로도 세이렌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난 여기까지 말하곤 마이크를 내렸다.
“세이렌분들의 진정성 있는 소감 잘 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MC 김영진이 타이밍 맞춰 멘트를 시작하며 방송을 진행시켰다.
난 그 멘트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형들을 바라봤다.
이전 생에선 시작조차 못 해보고 끝났던 일이, 지금은 아득바득 흘러 여기까지 왔다.
난 주먹을 세게 쥐었다.
다시 한번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시스템이 어떤 짓을 벌이든.
세상이 정말 말도 안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든.
두 번은 잃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때마침,
“그럼 이제 더쇼케이스2를 빛내준 다섯 그룹을 모두 무대 위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MC 김영진의 멘트에 맞춰 다섯 그룹이 모두 무대 위로 올라왔다.
이 타이밍에 그룹 모두를 무대에 올릴 일이라면 하나밖에 없다.
‘우승자 발표겠구나.’
나만 이걸 느낀 건 아닌 건지, 형들도 단체로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내 온리원, 원바이원, 블레슈, 루미닌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도 긴장한 건지 무대 위엔 묘한 적막이 흘렀다.
“후우우.”
난 심호흡을 했다.
‘미션 실패하면, 당황하지 말고 계획한 대로 하자.’
그러곤 최악의 방향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 * *
우리는 다리가 아플 정도로 오랫동안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팀이 모두 무대에 올라왔다 해서 바로 결과 발표가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문자 집계를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하고.
이 대목 같은 타이밍에 광고도 집어 넣어줘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 긴 시간 동안 정말 가만히 있느냐.
맞다.
가만히 있는다.
다만 그렇다고 지루함이 끼어들 틈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후우우우.”
“하아.”
“죽겠다…….”
지난 몇 달간 목숨 걸고 달려온 일의 결과를 듣는 자리다.
1분 1초가 긴장감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이후 광고가 끝나고 다시 결과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최종 결과 발표임에도 불구하고 5위부터 3위까지의 발표는 굉장히 순식간에 이뤄졌다.
어찌 보면 예상이 가능한 순위였으니 더 빨리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5위 루미닌, 4위 원바이원, 3위 블레슈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3위까지 발표가 끝난 후.
공연장에는 잠시 적막이 흘렀다.
다들 직감적으로 알고 있으니 그런 거다.
5위부터 3위까지는 애피타이저고, 본 게임은 지금부터라는 걸 말이다.
관객들도 아는 걸 프로 방송인인 김영진이 모를 리가 없다.
그는 아까보다 좀 더 진중해진 어조로 입을 뗐다.
“……지금, 제 손에는 더쇼케이스 2의 최종 우승팀의 이름이 적힌 쪽지가 있습니다.”
MC 김영진은 잠시 숨을 참고는 좌중을 훑었다.
“지금 이름이 불린 팀은 최종 우승이 될 것이고, 불리지 않은 팀은 2위에 머물게 될 겁니다.”
너무 긴장이 되는 걸까.
손톱이 살갗을 파고든 것 같다.
난 겨우 주먹에 힘을 풀고 심호흡을 했다.
“남아 있는 팀은 세이렌과 온리원. 이번 경연 내내 늘 1위와 2위를 주고받았던 팀입니다.”
우리뿐만이 아닌 팬들도 덩달아 긴장한 걸까.
이 큰 공연장에도 적막만 가득할 뿐이었다.
“더쇼케이스2, 퍼스트 찬스의 영광의 주인공이 될 우승팀의 이름은!”
김영진은 그리 말하며 말을 한 템포 끊었다.
“후우우.”
“아, 아아.”
“제발.”
저 감질맛 나는 진행에 나랑 우리 형들이 더 먼저 숨넘어가겠다.
심장이 조여와 숨이 안 쉬어질 정도다.
난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결과 발표 나기 전까진 꿋꿋이 버틸 거다.
그때,
“세이렌입니다! 축하드립니다!”
김영진의 입에서 우리 이름이 나왔고.
펑!
하늘에서 또 한 번 꽃가루 터졌으며,
“아, 아아! 아아악!”
“으아아아악!”
“얘들아!”
“형!”
“으아아악!”
형들이 단체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미션 성공.]
[더쇼케이스 2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강도승의 사망이 회수됩니다.]
줄곧 날 괴롭혀 왔던 사망 미션.
그 미션이 드디어 클리어되었다.
그 탓일까.
“어어어!”
“태윤아!”
다리에 힘이 풀려 그만 쓰러질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