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30화 (130/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0화

[미션 성공.]

[더쇼케이스 2에서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강도승의 사망이 회수됩니다.]

……미션 성공 알림이 들렸다.

“하아아.”

난 가쁜 숨을 내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나도 모르게 쓰러질 뻔했다.

그걸 도승이 형이 잡아준 덕에 쓰러지지 않았지만,

“아아…….”

벅차오는 감정을 쉽사리 수습할 수 없었다.

멤버 사망을 걸고 미션 성공을 강제하는 이 정신 나간 시스템 탓에 그간 마음 졸인 날이 하루 이틀이던가.

나름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후우우…….”

지금 이리 숨이 가빠오는 걸 보니 많이 고됐었나 보다.

좋은 순간이고, 기쁜 날이다.

다만 이미 기진맥진해 버린 마음은 도저히 기뻐할 힘을 내지 못했다.

형들과 함께 얼싸안고 춤이라도 춰도 모자랄 판에 이런 꼴이라니.

도저히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이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은데,

“봉태윤, 괜찮아? 얌마. 숨 쉬어 숨!”

도승이 형이 날 강하게 붙잡아주고 있기에 쓰러지지 않았다.

내 상태가 심상치 않은 걸 안 걸까.

“태윤아?”

“태윤아!”

“태윤이 무슨 일이야?”

함께 얼싸안고 포효 중이던 연훈이 형, 운이 형, 동준이 형이 내 쪽으로 온다.

남들이 보면 이상하다 여길 거다.

좋은 날에 나 혼자 이러고 있으니까.

한데,

“……형.”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난 도승이 형 가슴에 얼굴을 묻고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한창 기뻐해야 할 자리에 내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어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어떻게든 감정을 수습하려 했지만,

“괜찮아. 괜찮아.”

연훈이 형이 뒤에서 날 껴안아주며 토닥였다.

그 뒤로 운이 형도, 동준이 형도 같이 날 껴안아줬다.

또 한 번 우리 다섯은 무대 위에 동그랗게 뭉쳐 있는 꼴이 되었다.

얘네 오바한다, 라는 소리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하아…….”

지금 이 순간, 이곳만큼 안전하고 편안한 곳은 없을 것 같았다.

* * *

내가 감정을 어느 정도 수습하고 난 뒤, 본격적인 우승 소감을 밝히는 자리가 이어졌다.

그제야 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우릴 가운데 두고 다른 그룹들이 구석으로 자리를 비켜준 모양새였다.

그중 강현성과 눈이 맞았는데,

‘흐음.’

생각 외로 평온한 눈빛이었다.

저게 진짜 평온인지 가장한 평온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할 처지냐.’

온리원에게 마음을 쓸 순 없었다.

시스템이 지금은 미션을 추가로 안 주고 있지만 언제 또 추가 미션이 나올지 모르는 것이니 말이다.

난 이번 미션과 비슷한 순간이 또 온다 하더라도 주저 없이 우리 팀을 위해 움직일 거다.

그러니 괜히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연훈 씨부터 우승 소감 부탁드리겠습니다.”

때마침 김영진이 마이크를 돌리며 우승 소감을 부탁했다.

연훈이 형은 마이크를 잡은 뒤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두 달간 많은 일이 있었던 거 같고, 많은 변화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아까 전 무대에서 뿌에엥 하고 울었던 사람이 맞나 싶은 의젓한 멘트가 이어졌다.

“저희를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이 생겼고, 팬분들 덕분에 이렇게 멋진 분들 사이에서 우승을 하는 행운까지 거머쥘 수 있게 된 거 같습니다.”

난 연훈이 형을 빤히 바라봤다.

그 순간 형도 나와 잠깐 눈을 맞췄다.

연훈이 형은 날 보며 작게 눈웃음을 지어주더니,

“여러분들이 만들어준 기회이니, 그 기회가 아깝지 않도록 우리 멤버들과 함께 끝까지 달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훈이 형의 소감이 끝나자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후 운이 형, 도승이 형, 동준이 형도 소감을 말했다.

“더 좋은 곡과 앨범으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이토록 큰 사랑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금방 다시 올 테니 너무 심심해하지 않으시길 바라겠습니다.”

형들을 모두 지나 이제 마이크가 내게 왔다.

무대 소감을 말했던 것과 비슷하게, 이번에도 내가 할 말은 없다.

형들이 다 말을 해줬으니까.

결국 내가 할 만한 말이라곤,

“……저희를 지지하고 믿어주고 사랑해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

그것뿐이었다.

그렇게 우승 소감까지 말하고 난 뒤.

“이걸로, 지난 두 달간 숨 가쁘게 달려온 더쇼케이스 2 퍼스트 찬스의 모든 경연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MC 김영진이 앞으로 나오며 클로징 멘트를 시작했다.

난 그 멘트들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있었다.

이 순간 자체가 워낙 말이 안 되는 순간이다 보니 다소 멍한 것 같다.

늘 꿈꿔왔고 그토록 바라왔건만,

‘하아. 미치겠네.’

아직도 이게 현실이 맞나 싶었다.

때마침 김영진의 클로징 멘트도 마무리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더쇼케이스2 퍼스트찬스를 사랑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박수가 쏟아지고.

함성이 쏟아지는 무대 위.

우리를 포함한 다섯 그룹은 관객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피디가 시킨 것도, MC가 시킨 것도 아니다.

아마 무대 위에 누군가가 시작한 거 같은데, 누가 시작한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감사합니다!”

객석을 향해 허리를 숙인 채 인사했다.

그걸 보고 무대 위에 서 있던 모두가 뭐에 홀린 듯 다 같이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뱉으며,

탁.

우린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최종 우승팀이 되었다는 게 말이다.

이유론,

“세이렌 잠시만 이쪽으로 모일게요!”

스태프들이 우리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서 우리 이름을 부르는 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도 정신이 없었는데 아래로 내려오니까 더 정신이 없다.

“세이렌! 이쪽으로 이동할게요!”

그렇게 우린 제작진들의 안내에 따라 영문도 모른 채 이곳저곳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 * *

무대 뒤쪽.

세이렌이 나간 후 텅 비어버린 세이렌 대기실.

그곳에서 무대 모니터링을 하던 윤승연과 이현아는 세이렌이 최종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본 순간 본인들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함성을 내질렀다.

“허업! 이거, 진짜!”

“꺄아아아아!”

“진짜예요? 진짜 세이렌이 우승했어요? 진짜?”

“네! 진짜로!”

사실 세이렌이 우승한다 한들 두 사람에게 이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직장이 대기업으로 옮겨지는 것도 아니고.

금일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두 사람은 마치 본인들 일인 것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어어어? 태윤 씨 왜 저러죠? 막 쓰러지려고 하는데?”

“아아……. 너무 긴장했던 게 한 번에 막 풀려서 그런가 봐요.”

“하아…….”

봉태윤이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질 뻔할 때는 누구보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화면을 바라봤으며,

“아이고…….”

“우시네요…….”

봉태윤이 강도승 품에 안겨 울 때는 그녀들도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 두 달간 누구보다 세이렌 곁에 서서 그들의 활동을 지켜봤던 그녀들이었다.

사실상 블랙기업에 취직 사기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도 그녀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세이렌을 케어했다.

물론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서투른 곳도, 미흡한 곳도 많았으나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아니, 어찌 보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세이렌을 챙겼다.

그렇기에 세이렌의 우승에 이토록 기뻐할 수 있는 거였다.

동시에,

“이제 다 끝났네요.”

“그러니까요.”

그녀들의 역할이 여기까지임이 분명해졌다.

이제부터 세이렌은 WD엔터 소속이 아닌 WD엔터와 제일그룹 사이의 합작회사 소속이 된다.

애초에 여기까지만 세이렌을 맡은 후 훌훌 털고 일어나 재취직을 알아볼 생각이었던 그녀들이다.

다만 막상 끝이라고 하니까,

“승연 씨 울어요?”

“……아니에요.”

괜히 더 아쉬웠다.

지난 두 달.

세이렌을 성공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뛰었던 시간이기도 했지만,

“사실……. 저도 세이렌분들한테 진짜 정신적으로 많이 기댔던 거 같아요.”

윤승연과 이현아에게도 중요한 시간이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한 직장에서 아무 일도 맡지 못한 채 시간만 허비하던 날들이 몇 개월간 지속됐다.

이게 과연 맞는지, 내가 쓸모 있는 인간인 건지, 내가 고작 이렇게 자리를 뭉개고 앉아 있기 위해 지난 십수 년을 살아온 것인지.

이런 고민들로 맘고생을 해왔던 그녀들이었다.

지난 두 달간 불철주야 뛰었던 노력은 세이렌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녀들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난 열심히 일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사람임을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서 말이다.

“뭔가, 세이렌분들이 우승도 했으니까, 저도 막 다 이겨 버릴 수 있을 거 같고 그러네요.”

“저희도 잘해야죠. 그리고 잘할 수 있을 거 같고요. 이 살벌한 아이돌 판에서도 버텼는데 다른 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연하죠.”

두 사람은 지난 몇 달간 충만하게 채워진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자본 삼아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갈 목표를 다졌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

서로가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고 있었는데,

지이잉.

윤승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윤승연은 핸드폰을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별것 없는 스케줄 전화이겠거니 싶었는데,

-윤태형 팀장님

“아.”

“왜요?”

“이게,”

“헉! 지금 윤 팀장 전화 온 거예요?”

WD엔터의 빌런.

윤태형이 전화를 건 거다.

윤승연과 이현아 둘 다 직감했다.

이 빌런이 진짜 진상을 피우려 하고 있다고 말이다.

* * *

무대가 끝난 후.

제작진들 손에 끌려온 우리는 이윽고 무대 뒤쪽의 한 공간에 도착했다.

워낙에 정신없이 끌려온 탓에 우리 모두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VIP 대기실

문 앞에 붙은 팻말과,

“들어가셔서 말만 좀 조심하시면 됩니다.”

제작진이 해주는 말에,

‘아.’

난 직감적으로 대충 눈치챘다.

그리고 이 눈치가 확신이 되는 순간이 있었는데,

“아, 왔어요? 우리 우승팀 세이렌.”

박수철 피디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이 사람이 이렇게 따로 행차까지 할 정도라면 분명 거물이다.

“제가 문 열고 짧게 소개할 테니까 가서 주르륵 앉으면 돼요. 알겠죠? 쫄지 말고요.”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박수철 피디가 이렇게까지 공손해질 정도의 인물이라면,

‘그 사람인가.’

JI ENM의 연예사업본부 본부장이자, 후에 세워질 합작회사의 사장이 될 사람.

무엇보다,

‘이 사람은, 연예기획사 사장을 할 인간이 아니지.’

연예기획사 판에 있기에는 사이즈가 커도 너무 큰 인간이다.

내가 기억하는 5년 뒤 미래에선 JI ENM의 부사장까지 가는 인간이니 말이다.

“자, 들어갑시다.”

지금도 JI ENM 내에서 유력한 실권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인간일 테니, 박수철이 이토록 공손한 자세로 나오는 것이리라.

박수철이 속한 W넷 또한 JI ENM의 수많은 자회사 중 하나일 뿐이니까.

내가 이걸 어찌 아느냐.

‘하도 온리원 팬들이 정신 차리라고 욕을 해대서 알지.’

파랑새에 틈만 나면 이 사람 이름을 거론하며 정신 좀 차리라는 말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냥 능력 없는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나중엔 JI ENM 부사장까지 단 거에 꽤 놀라서 기억하게 되기도 했고.

우린 박수철을 따라 대기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아, 왔어요, 박 피디? 하하, 이쪽이 우리 세이렌이고요?”

풍성한 모발에 둥근 눈매.

오십은 넘어 보이는 얼굴이지만 나이에 비해 탄탄한 몸.

굴러가면서 봐도 기업 높은 곳에 있을 것만 같은 아우라가 풍기는 중년인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여기 앉아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린 저 사람의 안내에 맞춰 자리에 앉았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는 JI ENM 본부장이자 곧 세워질 합작회사 사장이 될 사람입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중년인은 주머니에서 명함지갑을 꺼내더니 우리에게 한 장씩 건네줬다.

“제 이름. 유원동입니다.”

그는 그리 말하며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까먹지 말고 기억하고 계세요.”

유원동.

그래.

기억하기 싫어도 기억하게 될 이름이다.

회귀 전,

온리원의 매 활동 때마다 파랑새에 이런 글이 올라왔으니 말이다.

-유원동 씨 99%의 경우 개빡치게 하는데 1%의 경우 진짜 개 미친 놈 같은 거 들고 와서 날 개같이 설레게 함

-유원동 씨 남소 시켜주세요

-유원동 방향으로 머머리 빔 쏨 그렇게 심보 쓰다가 몇 가닥 안 되는 머리 다 빠짐 ^^

└원동이 머리 많아요

└알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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