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1화
난 유원동에 대해 쏟아졌던 수많은 파랑새 글들을 기억해 냈다.
유원동 그딴 식으로 일하지 말아라.
유원동 나가 죽어라.
유원동 미쳤냐?
유원동 제발 프로듀싱에 손대지 말아라.
유원동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하면…….
유원동 대가리 존…….
유원동 진짜 죽…….
‘하아……. 돌겠네.’
아무리 생각해도 유원동에 대해 칭찬을 쓴 파랑새 글을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유원동이라는 사람이 일을 그렇게까지 못하느냐?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또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었다.
연예계에 최악은 언제나 따로 존재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이런저런 말은 늘 많았지만 결국 결과물은 나름 그럴싸하게 뽑아내긴 했었다.
다만 헷갈리는 건 그게 온리원이 잘해서 결과물이 나름 그럴듯한 건지.
유원동이 감이 있는 듯 없는 듯 있는 인물이라 그런 건지가 애매하단 거다.
확실한 건,
‘완전 맹탕은 아니긴 하겠지.’
이상하리만치 유원동은 다른 기획사 사장들보다 파랑새에 자주 나왔다.
올라오는 글들도 조롱이 섞이긴 했지만 간혹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음 직한 글들도 있었고.
이게 얼어죽을 스타성이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상한 방향으로 일을 잘하는 건지는 두고 봐야 한다.
그래도 일단은,
‘명함 디자인은 예쁘네.’
명함을 받아서 지갑에 넣어두긴 했다.
계약할 때 명함은커녕 계약서 조항으로만 등장했던 WD엔터 사장들에 비하면 이미 훨씬 앞서 있는 출발점이다.
“오늘 이렇게 자리 만든 건 앞으로 한솥밥 먹게 될 식구로서 얼굴 먼저 트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불편하진 않죠? 하하하!”
유원동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다.
다만,
“아, 하하하. 안 불편합니다……!”
“좋습니다……!”
“하하하…….”
형들 모두 삐걱대며 말을 제대로 못 한다.
동준이 형은 괜찮아 보였지만 연훈이 형, 운이 형, 도승이 형은 누가 봐도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래.
생각해 보니 우리 형들이 이런 자리를 어색해할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회사에서 케어받은 적이 없으니 이렇게 회사 대표급 인물과 독대할 자리가 없었을 거다.
방금 막 무대 끝내고 내려왔는데 대기업 간부랑 미팅하는 자리가 바로 만들어졌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
난 그런 형들을 바라보며 속으로만 미소를 지었다.
지금이야 어색하지 적응하면 자기 할 말 다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 형들이 그렇게 주눅이 많이 드는 타입들이 아니니까.
“뭐, 이렇게 자리를 만들긴 했지만 크게 거창한 건 없고……. 흐음. 박 피디님. 오늘 세이렌분들 우승도 했고 그간 고생도 많이 했는데, 뭐 제가 따로 특별히 해줬으면 하는 거 있어요?”
유원동은 박수철 피디님께 우리에게 뭐 해줄 만한 게 있는지를 물었다.
역시 대기업은 뭔가 달라도 다른 건가.
첫 만남에 벌써 뭘 주려나 보다.
그리고 이런 건 보통,
‘회식비? 법카 지원?’
이런 쪽을 생각하게 마련이다.
박수철 피디도 나랑 생각이 같은 걸까,
“아, 그러면 오늘 세이렌분들 수고하셨으니 회식비 지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회식비 얘기를 꺼낸다.
‘좋은데?’
회식비라니.
WD엔터에선 회식비는커녕 점심 식대도 지원받아 본 적 없는데,
시작이 좋다고 생각하려는 순간,
“아~ 회식비~ 좋지! 이렇게 마른 거 보니 다들 많이 먹고 운동도 하고 해야겠네.”
‘음……?’
뭐랄까.
회식비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유원동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상하게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회식하면서 다 같이 끈끈한 우정도 다지고, 술도 한잔 마시면서 좋은 대화도 나누고! 아, 근데 이 팀 다 술은 마실 수 있나? 미성년자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 네, 제가 미성년자입니다.”
“몇 살이죠? 이름이 태……윤 씨가 맞죠?”
“19살입니다. 태윤 맞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럼 태윤 씨는 술을 못 마시겠네요? 하하!”
난 대답을 마친 후 멍하니 유원동을 바라봤다.
“열아홉 살이라……. 크으. 그때 나도 아주 청춘이었는데. 하하하! 부럽다, 부러워.”
그래. 이제야 기억해 냈다.
“이게 열아홉 살이란 나이가 적다면 적겠지만 그래도 생각할 만한 머리는 이미 만들어지는 나이에요. 앞으로도 형들이랑 같이 으쌰으쌰 해서 우리 좋은 결과 만들어 봅시다!”
“……네. 알겠습니다.”
“하하! 좋아요!”
유원동.
이 인간 뒤에 늘 따라붙었던 말.
원가절감, 이다.
유원동은 돈을 죽어도 쓰지 않는 인간이다.
지금도 저렇게 말을 빙빙 돌리며, 영양가 없고 뭔 말인지 모를 대화만 주구장창 이어간다.
저건 관리자급 직장인들의 대표적 화술이다.
밑에 실무진이 원하는 바가 있어 지원을 해달라고 말을 하면, 관리자는 일단 사람 좋은 웃음으로 좋게 말을 해주며 계속 논점을 비껴간다.
안 된다! 라는 말은 죽어도 하지 않지만 된다! 라는 말도 죽어도 안 하는 거다.
지금 유원동은 그 관리자들 특유의 논점 비껴가기 화술을 쓰며 회식비 이야기를 빙빙 돌리는 거다.
‘……아니, 그렇다고 회식비도 안 준다고……?’
다만 우리가 뭐 신사옥을 짓자는 것도 아니고.
데뷔를 미국 시장 겨냥해서 하게 예산 500억쯤 달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회식 이야기가 나온 거다.
뭐 회식도 싼 건 아니다.
한우 같은 거 먹고 술까지 곁들이면 수백만 원 나오는 건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우린 인원이 고작 다섯이다.
승연 씨, 현아 씨 합쳐도 일곱이고.
일곱이서 많이 먹어봐야 오십만 원도 안 나올 텐데.
‘너무하네…….’
어처구니가 없었다.
짜게 식은 눈으로 유원동을 쳐다보자,
“아, 이제 슬슬 파할 시간이네요? 하하하!”
……뭐?
이 인간이 시계를 보곤 일어나려 한다.
회식 이야기는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거다.
유원동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때,
“아, 본부장님. 그러면 회식은 어떻게 할까요?”
역시.
박수철이 이런 거 그냥 넘어갈 사람은 아니긴 했다.
유원동 얼굴에 아주 잠깐 웃음이 사라졌다.
다만 금세 다시 웃고는,
“회식? 해야지요~”
이렇게 시원하게 말한다.
역시 회식 정도는 지원을 해준다 믿으려 했건만,
“예능국으로 편성된 조직활성화비로 사용한 후 결재 올리세요~”
“……네.”
이 미친 인간은 절대 JI ENM 돈으로 회식을 시켜주겠다 하지 않는다.
예능국 돈.
즉 W넷 돈으로 하란 거다.
박수철 또한 나처럼 짜게 식은 눈을 하고는 유원동을 바라봤다.
이런 인간들 특징이 남한텐 눈치 엄청 주면서 자기는 눈치를 안 본단 거다.
“다음에 더 좋은 자리에서 봅시다~ 잘 있어요.”
유원동은 끝까지 얼굴에 미소를 유지한 채 VIP 대기실을 나섰다.
유원동이 사라지고.
복도에서 발소리마저 완전히 사라질 때쯤.
“세이렌 회식은, 제가 사비로 지원하겠습니다. 먹고 싶은 거 다 말해요.”
박수철 피디가 이리 말했다.
“아뇨아뇨! 괜찮습니다! 진짜예요!”
“맞아요.”
“저희 다 야식 안 먹는 게 버릇 된 상태라 먹으면 탈 날지도 몰라요.”
다만 연훈이 형을 비롯한 다른 형들이 손사래를 치며 고사한 덕에 회식은 이어지지 않았다.
이런 식의 엎드려 절 받기 느낌의 회식은 원치 않는다.
난 그냥 멍하니 유원동이 나간 방향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뭐.
WD엔터 보다야 여기가 백배 천배 낫겠지만,
‘쉽지는 않겠네…….’
머리가 아파 온다.
“그러면, 저희도 슬슬 일어날까요?”
박수철 피디의 말에 우리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복도로 나가는 중.
연훈이 형이 박수철 피디에게 질문했다.
“아, 피디님. 그러면 저희 이제 바로 다음 주부터 합작회사로 이관이 되는 걸까요? 저희가 일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전달받은 게 없어서요.”
당연히 일이 어떤 식으로 굴러갈지 궁금할 거다.
“그거 관련해서는 내부 회의 하고 다시 안내드리겠습니다. 일단 하루 이틀은 가서 푹 쉬어요.”
“네. 감사합니다~”
우린 박수철 피디와도 헤어진 뒤, 대기실로 들어왔다.
“응? 현아 씨랑 승연 씨 어디 가셨나?”
대기실에 있어야 할 현아 씨랑 승연 씨가 없긴 했지만, 크게 이상하게 생각은 않고 자리에 앉았다.
“하아아.”
“후우.”
“아아. 피곤하다.”
“그러니까요.”
다 같이 소파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며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무대 공연 후 바로 예비 사장과의 만남을 갖고 이제야 숨 돌릴 틈이 생긴 거다.
우린 아무 말도 않고 각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리곤,
“……이제 우리, 데뷔하는 거 맞겠죠?”
동준이 형의 말을 시작으로,
“……데뷔?”
“대기업?”
“드디어?”
“우리가 우승했어!”
형들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더니,
“끄아아아아!”
“예에에에!”
“우리가 우승했어!”
“아아아악!”
포효와 탄성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다들 대기실을 방방 뛰어다니며 이제야 제대로 기쁨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무대 위에선 내가 다리에 힘이 풀리는 바람에 못 날뛰었고.
무대가 끝난 후엔 유원동 만나느라 못 날뛰었다.
그러니 이제야 미친 듯 날뛰어 보는 거다.
난 대기실을 미친 듯 뛰어다니는 형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이전 생에선 데뷔조차 못 해본 우리다.
데뷔한다 한들 성공을 맛보지 못했을 우리고.
하지만 지금은,
‘됐어……!’
데뷔가 눈앞에 있다.
성공이 먼 이야기가 아니다.
괜히 또 가슴이 벅차 오려는데,
끼익.
대기실 문이 열리더니,
“다들 오셨어요……?”
승연 씨와 현아 씨가 돌아왔다.
“승연 씨! 현아 씨!”
연훈이 형이 제일 먼저 승연 씨랑 현아 씨에게 다가간다.
“저희 우승했어요! 우승이요!”
저 해맑은 미소에 어지간하면 같이 따라 웃어줄 법도 한데,
“아, 하하하.”
“하하하…….”
두 사람의 표정이 밝지 않다.
그제야 형들도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채고 승연 씨와 현아 씨를 바라봤다.
“무슨 일 있어요?”
연훈이 형의 질문에,
“지금, 윤태형 팀장님이 여기로 오셨어요…….”
“……JI ENM 사람이랑 대화하시겠다면서요.”
승연 씨와 현아 씨는 이리 답했고.
“……네?”
“아니, 왜…….”
“그동안 한 번도 얼굴 안 비추더니…….”
형들은 단체로 굳었다.
윤태형.
형들에게도 윤태형은 당연히 좋은 기억이 아니다.
몇 년간 자기들을 방치하기만 한, 희망 고문만 시키며 무엇도 지원해 주지 않은 한량 같은 인간이니까.
난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생각했다.
윤태형이 유원동을 만난다.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데.’
막아야만 한다.
“혹시 지금 만나셨어요? 아니죠? 방금 전까지 JI ENM 쪽 본부장님 저희랑 같이 있었으니까 아직 만나지는 못하셨을 텐데.”
일단 만나지 못했을 거란 판단에 이리 말했는데,
“아, 그, 방금 복도에서 마주쳐서, 대화 시작하셨어요…….”
“저희가 어떻게든 막으려고 공연장 입구에서부터 팔다리 붙잡고 늘어졌는데……. 막무가내로…….”
“복도에서 보자마자 바로 알아채더라고요. 저 사람이 JI ENM 사람일 거라고.”
“하아아.”
이미 만났단다.
일이 참, 끝도 없이 비틀리고 어려워진다.
그래, 유원동 알아보는 거야 쉬울 거다.
방송 현장직 근무자들은 대체로 복장이 자유로운데 유원동 혼자서 풀 정장을 갖춰 입고 있으니까.
또 나이도 가장 많고.
앞구르기 하면서 봐도 JI ENM 사람일 거다.
다만 이렇게 바로 복도에서 마주쳐서 대화를 시작하다니.
지금이라도 복도로 가서 몸으로라도 윤태형을 밀어내야 하나 싶었는데,
‘……근데, 시스템이 왜 이렇게 잠잠해?’
생각을 하다 보니 갑자기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우리 신변에 문제가 생길 것 같은 상황이 오면 시스템이 먼저 내게 신호를 준다.
돌발 미션을 주든.
미래시를 띄우든 해서 말이다.
한데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멤버 사망 미션을 끝냈으니 시스템이 사라진 걸까?
아니다.
내 추론상 시스템이 그 정도로 쉽게 사라질 녀석은 아니니까.
그 말은 즉,
‘위협이 아닌 거야?’
시스템은 지금 이 상황을 위협이 아니라 판단한 거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지만,
‘그래도 나가보자.’
뭐가 됐든 확인을 해봐야 할 거 같았다.
“지금 저희 다 같이 윤태형 팀장님 찾으러 가보죠.”
“그래.”
“가보자.”
“이상한 소리 하기 전에 우리가 컷 해야 할 거 같아.”
해서 형들과 다 같이 복도로 나가려 했는데,
[돌발 미션 발발.]
[윤태형을 피해 주차장으로 내려간 후 숙소로 돌아가시오.]
[성공 시, 보상 없음.]
[실패 시, 윤태형과의 언쟁.]
‘……뭐?’
내가 윤태형을 만나려는 걸 마치 말리려는 듯.
시스템이 급작스레 미션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