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3화
그래.
시스템도 내게 실패 패널티로 언쟁이 시작된다고만 했다.
그 언쟁이 우리에게 이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냥 ‘시작’된다고만 한 거지.
져서 멘탈이 탈탈 털린다거나, 아니면 이긴다 한들 상처뿐인 승리만 남는다든가 하는.
뭐 그런 구체적인 미래를 알려준 게 아니다.
즉 어떻게 언쟁을 하냐에 따라 이 실패 패널티가 진짜 패널티가 될지, 그냥 지나가는 해프닝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얘 데려가서 뭐 하시려고요? 설마 때리려고요?”
“아니, 태윤이한테 갑자기 잠깐 따라 나오라뇨…….”
형들 전투력을 보니 결코 패널티로 남진 않을 것 같았다.
운이 형과 연훈이 형은 은근하게 꼽을 주며 윤태형의 말을 비꼬았고.
“아니, 근데. 윤 팀장님. 지금껏 저희 방치하다가 우승하니까 오늘 처음 찾아오신 거 아닌가요?”
도승이 형은 진심으로 시비를 걸 생각인 건지 꽤 전투적으로 다가갔으며.
마지막 동준이 형은,
“개웃기네, 데려가서 지가 뭐 어쩔라고.”
대놓고 비아냥대며 윤태형을 욕보였다.
자기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연습생들에게 욕먹을 줄은 몰랐던 걸까.
“뭐……?”
윤태형이 버퍼링이라도 걸린 듯이 버벅댄다.
그러고 보니,
‘형들이 윤태형을 딱히 무서워한 적은…… 없구나.’
내가 형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있어서 그렇지.
형들이 윤태형에게 쫄 정도로 담이 작진 않다.
사실 이 인간이 나이만 많다뿐이지 진짜 몸 대 몸으로 하면 상대가 안 될 건 뻔하다.
술배 나온 아저씨랑 관리하는 20대의 싸움인 거니까.
“일단, 뭐 어쨌든 여기에 할 일 있어서 오신 거 아니에요?”
난 윤태형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볼일 보러 오신 거면 일이나 마저 보세요. 괜히 저희한테 말 걸지 마시고.”
대충 이 정도로 이 언쟁을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윤태형은 나와 눈이 맞더니 한 발 앞으로 나오며 다시 입을 뗐다.
“네가 사장한테 전화해서 협박했다면서? 뭐 직무유기 그걸로 고소한다느니 뭐 어쩐다느니. 너 미쳤냐?”
그러곤 방금 전에 미처 끝내지 못한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내가 사장에게 전화해서 협박한 걸 형들은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해서 지금 다들 꽤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고.
“네. 맞아요.”
다만 쫄릴 건 없다.
형들에게는 일단 나중에 설명하는 걸로 하고.
지금 윤태형 앞에선 당당하게 나가야 한다.
“제가 전화해서 당신이 일 더럽게 안 한다고 뭐라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당당한 자세로 나올 줄은 몰랐던 걸까.
윤태형이 잠시 주춤한다.
“근데, 그래서 저한테 뭐 하시게요? 뭐, 혼이라도 내시려고요?”
방금 유원동이 이 인간에게 그렇게 냉랭하게 대한 이상 이 사람이 합작회사로 이직이 될 리는 없다.
즉 앞으로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사람인 거다.
물론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는 것이니 섣부른 확신은 위험하겠지만,
“전 잘못한 게 없습니다. 팀장님이 일을 안 하신 거고, 그걸 보고한 거뿐이에요. 저희 권리도 지켜야죠.”
이 정도는 문제없으리라.
난 아직도 내가 잘못했다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인으로서 상급자에게 대든 거라면 문제가 생길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린 직장인이 아니고, 이 인간은 우리의 상급자도 아니다.
그냥 같이 일하는 관계.
서로 이득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 정도다.
한데 이 인간이 협력을 안 하니 시정할 수 있게 보고를 한 것일 뿐이다.
여기에 매너니 예의니 하는 걸 따질 필요는 없다.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팀장님.”
난 이리 말한 후,
“형들 가요.”
“그래, 가자.”
“에휴.”
형들과 함께 대기실로 돌아갔다.
승연 씨와 현아 씨도 우리를 따라 같이 이동했다.
복도에 홀로 남겨진 윤태형은 멍하니 우릴 쳐다보는가 싶더니,
“……하아. X됐네. X발.”
혼자 이리 중얼거리더니 터벅터벅 걸어갔다.
* * *
복도 뒤쪽 비상계단에 숨어 있던 박수철은 윤태형과 세이렌 간의 언쟁이 끝난 후 조심스레 복도로 다시 나왔다.
유원동과 윤태형이 대화할 때까진 어떻게 뻘쭘한 자세로라도 서 있어 볼 수 있었는데, 세이렌과 언성을 높이니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면 자리를 피하겠지만 앞뒤 퇴로가 전부 세이렌과 윤승연, 이현아, 윤태형에게 막혀 그냥 비상계단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계단 타고 내려갈까 말까 하다 그냥 서 있었고, 자연스레 언쟁 내용을 다 들었다.
“참나. 애들 기 세네.”
봉태윤만 좀 의견이 센 줄 알았더니 전반적으로 팀이 다 기가 센 모양이다.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것 같았다.
좋든 싫든 당분간은 같이 다니게 될 텐데 이런 성격이 차라리 낫다.
박수철은 앞으로 촬영할 리얼리티에 디테일 등을 더하며, 촬영 계획에 조금씩 변화를 줬다.
원래는 순한 맛으로 하려 했는데,
‘수위 좀 올릴까.’
얘들 멘탈 보니 좀 더 굴려도 될 거 같았다.
* * *
“자, 이제 숙소 갑시다. 진짜로요. 이제 더는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안전벨트 매세요! 진짜 규정 속도만 지키면서 과속할 겁니다!”
“규정 속도를 지킨다는 데에서 이미 과속이 아니지 않아요?”
“태클 걸지 마요!”
윤태형과 언쟁 후.
우린 다 같이 주차장으로 내려가 승합차에 올라탔다.
하루 종일 이 공연장에 있어설까.
지긋지긋하다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긴 했다.
다만,
‘나름, 추억이긴 한데.’
난 주차장부터 시작해서 공연장의 시설물들을 눈으로 조금 더 담았다.
늘 이렇게 센티멘털한 건 아니지만 지금은 조금 감성적이다.
오랜 시간 노력해온 더쇼케2 우승이 현실이 된 날이니까.
도승이 형을 살려준 고마운 공간이니 좀 더 눈에 담고 싶었다.
“오늘은 진짜 야식 어때요? 마라탕이랑 꿔바로우랑 먹으면……. 와 나 생각하는 것만으로 지금 입에 침 고였어요.”
다만 이런 내 센치한 타이밍을 방해하는 사운드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시작되는 동준이 형의 야식 염불과.
“지금 이 시간에 먹으면 속 뒤집어져.”
“아 근데 조합 개꿀맛인 건 인정 아닙니까?”
“인정이고 자시고 먹으면 아프다고.”
“아파도 먹어야 진짜 먹꾼인데.”
그런 동준이 형에게 태클을 거는 도승이 형.
“다 같이 셀카 찍자!”
누가 듣든 말든 카메라를 높이 들어 셀카부터 냅다 박아버리는 연훈이 형까지.
이젠 익숙한 풍경이라 대충 백색소음으로 치고 다시 감상에 잠기려 했다.
한데 주차장을 빠져나오자,
“어어?”
“응?”
주차장 나가는 입구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
일단 머리로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긴 했다.
퇴근길 보려고 기다린 상황인 거니까.
“우릴 기다린 거야 지금?”
“우리를?”
“와…….”
한데 이게 마음으론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팬들을 무대 외의 공간에선 만나본 적이 없는 우리다.
이전에 경연을 했던 스튜디오는 퇴근길이 불가능한 구조라 이런 식으로 우릴 기다리는 장면도 없었고.
우리만 당황을 한 게 아니라,
“어, 어어! 그, 이거 운전을……!”
승연 씨와 현아 씨도 당황을 했다.
액셀을 밟고 나가려 했는데 갑자기 인파가 확 몰린 거니까.
“그냥 액셀 안 밟고 천천히 굴러만 가야겠는데요?”
“하, 하하하.”
“와, 진짜 대박이다.”
승연 씨와 현아 씨는 당혹감 반, 놀라움 반인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나랑 형들도 멍하니 차량 밖을 바라봤다.
우리는 오늘 유원동도 만나고 윤태형이랑도 싸우고 이것저것 이야기도 많이 듣느라 다른 팀들보다 훨씬 늦게 퇴근을 한 상태다.
한데 지금 이 한순간을 보려고 1시간 넘는 시간을 여기서 기다린 거다.
“인사해도 되겠죠?”
“그, 그렇겠죠?”
“위험한 상황 나오면 제가 바로 내려서 컷 할게요.”
난 허락을 받은 후 형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러곤 내가 있는 쪽 창문만 슬쩍 열었다.
“그, 안녕하세…….”
가볍게 인사만 하려 했는데,
“꺄아아아!”
“태윤아아!”
“헉!”
“연훈아!”
내 목소리보다 더 큰 함성이 쏟아진다.
“오늘도 수고했어!”
“우승 축하해!”
“고생 많았어!”
저 멀리서 우리에게 축하한다는 함성을 질러주기도 했고 말이다.
뭐랄까.
멍한 기분이다.
우리가 저 사람들 살림살이에 보탬이 된 건 하나도 없는데.
이런 호사스러운 축하를 받아도 되나 싶어서.
이게 끝이 아니었다.
창을 통해 하나둘 편지와 쪽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이걸 이렇게 불쑥 받아도 괜찮은 건가 싶어서 승연 씨를 바라봤으나.
‘괜찮은 거 같네.’
승연 씨가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만든 걸 보니 이 정도는 안전한 수준인가 보다.
다만,
‘미안한데.’
뭐라도 주고 싶었다.
내 마음을 알아차린 걸까.
“아,”
“잠시만.”
“창문 닫지 말고 있어 봐!”
형들이 단체로 갑자기 분주해진다.
그러곤,
“이거 전해드려!”
연훈이 형이 차량 시트 뒤에 쑤셔 넣어뒀던 걸 건네준다.
다름 아닌,
‘홍삼스틱?’
우리가 먹는 홍삼스틱이다.
이전에 드라이브갈 때 홍삼스틱을 다 같이 먹어본 이후로 종종 이렇게 쟁여둔 채 먹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알고는 연훈이 형이 늘 재고 안 떨어지게 채워두던 건데,
‘이걸 줘도 돼?’
팬한테 홍삼스틱을 주는 게 과연 옳은 행위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다만,
“그! 이거 드세요!”
“……?”
밖에 있는 사람에게 무작위로 계속 홍삼스틱을 쥐여줬다.
분명 10개는 넘게 손에 잡힌 거 같았는데 한 사람씩 정신없이 쥐여주다 보니 다 사라졌다.
“이제 여기까지만 하죠!”
이 이상은 위험해 보였는지 승연 씨가 상황을 제지한다.
“오늘 너무 감사했어요!”
“다음에 또 봐요!”
“고마워요!”
형들은 급히 창 너머로 팬들에게 인사했다.
이후,
지잉.
난 창문을 닫았고.
“갑시다, 이제.”
차는 팬들이 다치지 않게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 * *
세이렌이 공연장을 떠난 후.
퇴근길을 기다리던 세이렌의 팬들은 멍한 기분이었다.
퇴근길에 창문 안 내려주는 아이돌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사실 그게 뭐 의무도 아니니 안 내려주는 걸로 뭐라 그럴 순 없다.
한데,
“……우리 애들 진짜 뭘까요?”
“천산가?”
“와.”
세이렌 팬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냥 우리 애들이 창문을 내려주니 그것만으로도 맘이 벅찼다.
더군다나,
“홍삼…… 진짜. 너무 귀엽지 않아요?”
“덕계못 진짜 다 구라…….”
“아 이거 진짜 어떻게 먹어.”
홍삼스틱까지 손에 쥐여주는데,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세이렌 팬들은 홍삼스틱을 받은 사진을 찍어 파랑새에 올렸고.
-ㅋㅋㅋㅋㅋㅋ아 진짜 개귀여움ㅋㅋㅋ
-홍삼스틱 누가 먹는 거야 진짜ㅋㅋㅋ
-뭔가 봉태윤이 먹을 거 같음.
-우리 와기들…… 쪼꼬렛만 묵게 생겨서 홍삼 먹네…… 할미랑 입맛이 같구나……?
홍삼스틱은 소소하게 팬들 사이에서 오고 가며 훈훈한 웃음을 자아냈다.
* * *
퇴근길 인사를 마치고 안전히 숙소에 도착했다.
“하아아.”
“집이다아!”
“끄으으!”
형들과 나는 숙소로 올라가 바닥에 다 같이 퍼져 버렸다.
오늘 하루는 참 길었고, 참 알찼다.
우린 다 같이 거실에 누워 한참을 멍하니 천장만 올려다봤다.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그대로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무렵,
[미션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다음 미션을 수령합니다.]
시스템이 말을 걸어왔다.
[2022년 안에 앨범 초동 50만 장을 기록하시오.]
[성공 시, 다음 미션으로 진행.]
[실패 시, 멤버 이운의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