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4화
……내용을 듣고 욕이 나오려던 걸 참았다.
오늘 막 더쇼케2를 끝낸 상탠데.
이번엔 초동 50만 장이다.
난 가만히 계산을 해봤다.
지금이 2022년 4월 8일이다.
2022년이 끝나려면 약 8개월쯤이 남았다.
사실상 8개월 안에 초동 50만 장을 찍으란 건데…….
‘……미쳤네.’
기한이 너무 촉박했다.
일단 시뮬레이션부터 돌려봤다.
내가 가진 우리와 가장 유사한 데이터는 전생의 온리원뿐이다.
‘걔네가 데뷔 초동 30만이 나왔으니까…….’
이리 놓고 보면 영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은 아니다.
온리원이 했다면 우리도 데뷔 초동 30만 장을 낼 수 있다.
그 흐름을 잘 이어가서 중간에 상승세 꺾이지 않게 폼 유지하면 올해 겨울쯤에 초동 50만을 찍는 것도 영 불가능하진 않을 거다.
물론 그러려면 남은 8개월을 정말 미친 듯 쥐어짜 내야겠지만,
‘……하라면 해야지.’
안 할 수는 없다.
다만 가만히 누워서 생각은 해봤다.
이 시스템의 끝은 어딜까.
어디까지 가야 나랑 우리 형들을 가만두려는 걸까.
이렇게 굵직한 사건들 중심으로 미션이 떨어지는 거라면,
‘뭐 다음은 초동 100만이나 대상 받아오라고 시키려나.’
이런 걸 수도 있고.
‘월드투어?’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이쯤은 되어야 나랑 형들을 가만 두려나 싶다.
난 생각이 더 이어지려던 것을 끊어냈다.
“우리 진짜 야식 시켜 먹을까요, 오늘?”
때마침 동준이 형이 야식 계획을 추진한다.
“흐으음.”
“야식이라.”
“땡기긴 하는데.”
평소 같았으면 어김없이 컷이겠지만 오늘은 우승도 했고, 당분간은 스케줄이 없으니 다들 혹하는 것이리라.
결국,
“먹자!”
“그래. 오늘 하루는 먹자.”
“나쁘지 않을 것 같아.”
형들 모두 먹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됐고.
“나 진짜 마라탕에 꿔바로우 시켜요?”
동준이 형은 최근 본 모습 중 가장 밝게 웃고는 배달 어플을 켰다.
* * *
세이렌이 야식을 시켜 먹고 간만에 새벽까지 수다를 떨며 우승 후의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파랑새를 비롯한 SNS 등은 세이렌과 더쇼케에 관한 이야기들이 소소하게 올라왔다.
지난 시즌 1에서는 최종 우승팀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가 8화 동안 방영되었다.
하지만 이번엔 경연 후 최종 우승팀이 나오는 데 6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근데 6화 만에 지금 더쇼케2 끝난 거임??
-왤케 짧음?
이런 형식의 서바이벌은 장기적으로 이어지는 방송이 아닌 시즌별로 짧게 치고 나가는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너무 짧은 편에 속했기에 나오는 반응이었다.
-더쇼케2 6부작 아니래! 방송 공홈 가면 10부작이라고 적혀 있어!
└오 리얼?
└경연 끝난 거 아님?
사람들은 6화 만에 끝난 경연과 10화까지 편성된 더쇼케2에 의문을 가졌다.
다만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사람이 나왔는데,
-리얼리티 국룰 아님?
누군가가 파랑새에 가볍게 이런 게시글을 올린 거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세이렌 리얼리티에 대한 반응들이 파랑새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아 이거 마따
-바다요정 리얼리티ㅠㅠㅠㅠ제작진분들 힘내주세요ㅠㅠㅠ
-와 근데 바로 리얼리티까지 이어서 편성한 거임?
└수철이…… 편집은 개X같이 해도 돈냄새 개잘맡음;;
새벽 동안 이런 반응이 쏟아질 것을 제작진도 알았던 걸까.
그다음 날 오전 9시가 되자 공식 홈페이지와 공식 SNS를 통해 의미심장한 게시물을 올렸다.
-더쇼케이스2 7화는 다음 주 화요일 정상적으로 방영 예정입니다. 많은 문의와 관심 감사드립니다.
어떤 방송 내용을 내보낼지는 안 알려준 채 7화가 정상적으로 올라갈 거라는 말만 올라갔다.
-이래놓고 7화 내용 기존 컷들 짜깁기 한 거면 진짜 가만 안 둘 거임.
-아 리얼리티 맞다고요
-ㅠㅠㅠㅠ바다요정 리얼리티 개츄베룹 아님?ㅠㅠㅠ
-나랑 같이…… 개 맛도리일 것 같은 와기들의 일상……. 핥짝할 사람들 없나요?
이쯤 되면 모두가 모를 리 없는 세이렌의 리얼리티였다.
다만 리얼리티가 기획되어 있든 말든 천하태평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오늘 계획은 뭐야, 동준아?”
“오늘 계획은 끝장나게 숨쉬기. 늘어지게 자기. 엄청 맛있는 걸 배불리 먹기입니다. 형은요?”
리얼리티의 당사자 세이렌이었다.
* * *
불과 이틀 전이 더쇼케2 우승 일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 일요일이었다.
그간 극도의 스트레스와 압박감 속에 있었던 걸까.
형들은 단체로 이 이틀간을 늘어지고 게으르게 보냈다.
“아, 너무 좋다. 너무 행복해. 이게 인생인데.”
동준이 형은 지금 소파에 누운 채 리모컨만 까딱까딱하며 티브이 채널을 돌리는 중이었고.
“도승아, 아침부터 운동 가?”
“……아뇨. 갔다 온 건데요? 그리고 지금 아침 아니에요. 오전 11시죠.”
도승이 형은 밀린 운동을 실컷 하고 있었다.
운이 형과 연훈이 형은 누워서 드라마나 소설을 읽는 중이었다.
다만 운이 형이 읽는 소설들이 다소 놀라웠는데,
“……형, 이거 웹소설 아니에요?”
“오! 맞아. 태윤이도 웹소설 봐?”
봤기만 했겠는가.
쓰기도 했는데.
운이 형이 읽고 있는 소설은 노랑페이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로판이었다.
“형, 로판 쪽 좋아해요?”
“나? 그냥 막 이것저것 다 읽긴 하는데, 요새 그냥 판타지는 조금 질려서 이것도 읽고 있었어.”
“그러면 그거 말고 차라리 이게 더 재밌을 수도 있는데. 신선한 걸 원하는 거잖아요.”
“아, 응 그렇긴 한데.”
“그러면 차라리 꽁냥꽁냥한 재질 말고 좀 더 하드한 걸로…….”
난 운이 형에게 내가 알고 있던 소설들을 죄다 말했다.
사실 나도 이맘때쯤부터 웹소설을 읽기 시작했었다.
해서 이 시기에 나온 작품들은 전부 꿰고 있다.
내가 너무 흥분한 걸까.
“태윤아, 그, 추천 고마운데 일단 이거부터 읽고 읽을게.”
“아, 네.”
거절 안 하는 운이 형이 거절을 한다.
괜히 머쓱해져서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연훈이 형은 OTT 어플로 드라마를 보는 중인데,
“형, 울어요?”
“……아니, 안 울어.”
“눈물이 그렁그렁한데요?”
“근데…… 주인공이 너무 멋있고, 대견하고, 이게 지금 마지막환데…….”
어김없이 과몰입해서 우는 중이다.
난 그런 연훈이 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이틀 전 초동 50만을 찍으라는 미션을 받긴 했지만,
‘일단은 쉬어도 되겠지.’
당장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쉬는 것밖에 할 게 없다.
또 지금 쉬어둬야 앞으로 이어질 스케줄에 최선을 다할 수도 있을 거고 말이다.
다만,
‘이제 슬슬 시작될 타이밍 아닌가.’
언제까지고 이렇게 놀 수는 없다.
아마 이쯤에서 연락이 올 거다.
개인적으로는 오늘 중으로 주지 않을까 싶었는데,
“응? 뭐지?”
드라마를 보느라 한창 핸드폰 화면에 집중 중이던 연훈이 형이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였다.
연훈이 형의 ‘응? 뭐지?’에 우린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100의 확률로 제작진에게 연락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뭔데 그래요?”
늘어지게 소파에 누워서 리모컨을 까딱거리던 동준이 형이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 있는 거예요, 형?”
운이 형도 읽고 있던 로판 소설을 끄고는 연훈이 형을 바라본다.
“뭔데요?”
도승이 형도 이리 말하며 다가온다.
“그게, 갑자기 주소 하나가 띡 왔어.”
“주소요?”
“응.”
“다른 말 없어요?”
“그, 뜬금없는 말이 적혀 있긴 한데.”
“뜬금없는 말?”
“건강해지래. 우리보고.”
“……?”
연훈이 형 주위로 동그랗게 모인 우리는 문자 내용을 다 같이 돌려봤다.
정말 연훈이 형이 설명해 준 그대로다.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XXX리 978
-건강해지세요.
“홍천군?”
“홍천읍?”
“끝은 리인데요?”
“건강해지란 건 왜 뜬금없이 들어가 있는 거야?”
다들 제작진이 보낸 문자에 의아해하고 있을 무렵.
이게 실무진 라인에게도 간 걸까.
-연훈 씨! 지금 문자 받으셨죠? 바로 숙소로 갈 테니까 간단하게 준비만 하고 계셔주세요!
승연 씨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 일단 준비를 해야겠지 얘들아……?”
“그래야죠……?”
“흐음…….”
우린 굉장히 찜찜한 감정을 숨긴 채 각자 준비를 시작했다.
다만 워낙 원시인 상태로 있어설까.
“샤워부터 하고 나오자.”
목욕이 먼저였다.
* * *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XXX리 978.
그곳은 강원도에 있는 깊은 산 속의 자그마한 시골집 주소였다.
사실상 주소가 인터넷에 찍히지 않아도 이상할 게 없는 주소였다.
그리고 그곳에,
“케이블 안 걸리게 조심하세요~”
“지금 전기 어디서 끌어온 거야?”
“끌어올 데가 어딨어, 여기가. 발전기 돌리는 거지.”
더쇼케2의 제작진들이 모여서 촬영 현장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자란 얘들이 여기서 생활할 수 있을까요?”
“못 할 건 없죠. 화장실도 있고 부엌도 있고 마당에 거실에 방도 두 개나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주변 인프라가…….”
“숲세권이죠, 숲세권.”
이 현장을 진두지휘 중인 박수철은 전자담배 연기를 뿌우우 하고 내뱉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있으면 확실히 건강해지긴 하겠네.”
“그렇게 담배 피워대면 안 건강해질걸요.”
“미세먼지 마시며 피우는 것보단 나을 거 아니야.”
그는 그리 말하며 손에 들고 있는 기획서를 확인했다.
더쇼케2 리얼리티 기획안.
<세이렌. 건강해져라!>의 기획안이었다.
일단 부제는 건강해져라! 로 잡긴 했다.
세이렌이 잘 먹고 건강해졌으면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진짜 건강해지면 재미없지.’
건강한 배경에 다른 맛을 조금 더할 생각이었다.
* * *
샤워를 하고 대충 짐을 싼 채 승연 씨와 현아 씨를 기다렸다.
사실 짐을 싸고 있으라는 말은 없었지만 그냥 싸둬야 할 거 같았다.
주소를 지도 어플에 찍어보니,
“산인데……?”
“산……?”
“아니, 대체 왜 저기로 부르는 거야?”
“몰라…….”
정말 산 한가운데가 찍혔기 때문이다.
난 저곳에 집이 있으리란 걸 상상도 못 해봤다.
아니, 저기에 집이 있더라도 저게 인터넷에 주소로 찍힐 줄은 더더욱 몰랐다.
‘무서운 대한민국이야.’
그렇게 캐리어를 싸둔 채 기다리니,
띵동-!
벨소리가 들린다.
우린 인터폰을 조작해 현관문을 열어줬다.
승연 씨와 현아 씨가 들어왔다.
“다들 준비 마치고 있었네요?”
“아, 네, 근데 무슨 일인 건가요?”
운이 형의 물음에 승연 씨와 현아 씨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희한테도 그냥 오늘 안에 여기로 도착만 해달라고 하셔서요.”
“아마 리얼리티 촬영 때문인 거 같은데…….”
“리얼리티 촬영을 산에서 한다고요?”
“네. 아마 예상은 그럴 것 같아요.”
형들 표정이 심란해졌다.
뭐, 아직 까보기 전이니까 너무 겁부터 먹을 필요는 없겠지.
“그래도 리얼리티니까 좋은 것도 있겠죠.”
난 그리 말하며 형들을 달래려 했다.
하지만 촬영장에 도착하고 난 후.
난 이 말을 한 것을 후회해야 했다.
“좋은 것도 있을 거라며 태윤아.”
“여기가…… 맞지?”
“한국은 맞는 거야……?”
분명 내가 전생에서 보고 왔던 온리원 리얼리티는 초호화 느낌이었던 거 같은데,
‘제작비가 궁한가……?’
이번엔 초호화가 아닌 산림욕에 가까워 보였다.
“세이렌분들 도착하셨습니다!”
“촬영 준비할게요!”
우리의 도착과 함께 제작진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일단 세이렌분들은 이것부터 입어주세요.”
“이거요?”
“네.”
우리에겐 1인당 한 벌씩 황토색 생활한복이 제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