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5화
지금 시각은 저녁 5시 30분.
노을이 질락 말락 하고 있어 산이 어슴푸레한 빛을 품고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나 이거 처음 입어보는데…… 괜찮나?”
“이거 한국사 쌤이 입으셨던 건데…….”
“오……. 근데 편하긴 한데요?”
배경이 예쁜 것과 별개로.
이 생활한복은 별로 안 예뻤다.
착용감은 좋다.
어르신분들이 애용하시는 데에는 역시나 이유가 있다.
다만 이걸 우리가 입고 있는 게 문제인 거다.
대체 어느 아이돌이 생활한복을 깔맞춰 입고 리얼리티를 찍는단 말인가.
“세이렌 왔어요?”
때마침 박수철 피디가 다가왔다.
“아, 네.”
“왔습니다…….”
“하하…….”
우린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박수철 피디의 인사에 답했다.
욕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예의를 차렸는지 알 수 있을 거다.
리얼리티 촬영이라 하면 으레 힐링과 호화스러운 나날을 꿈꾸게 마련이다.
나는 전생에 온리원 리얼리티를 보기도 했으므로 더더욱 그런 그림을 생각했다.
그때 온리원이 했던 건 고급 풀빌라에서 먹고 자고 노는 그림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풀빌라와 이 산 깊은 곳의 초가집은 거리가 멀다.
“이거 초가집이죠……?”
“네. 초가집입니다.”
“……저 살면서 초가집 처음 봤어요.”
“내부는 현대식이니까 너무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바람도 잘 막고 방바닥도 뜨끈뜨끈합니다.”
그래.
그건 당연히 해줘야지.
당신이 사람이라면 말이야.
난 심란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혔다.
“마이크부터 차실게요~”
우린 제작진이 나눠주는 마이크를 찬 후 초가집 마루에 걸터앉았다.
다섯 명이 황토색 생활한복을 입고 쪼르르 앉아 있는 게 웃겼던 걸까.
그냥 앉아만 있는데도 스태프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희가 웃깁니까! 너무 하세요!”
연훈이 형은 그런 스태프들의 반응에 잔뜩 심통 난 반응을 보였으나,
“하하하!”
그마저도 웃음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한차례 웃음이 현장을 휩쓸고 간 후.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자 세이렌분들! 오늘 이곳에 오신 이유는 다들 잘 알고 계시죠?”
“……아뇨? 전혀 모르겠는데요?”
“더쇼케이스2 우승자 특전으로 리얼리티 촬영을 하러 오신 겁니다! 호오오!”
“……와아아.”
“저희 리얼리티의 부제는 건강해져라! 이고요. 그간 더쇼케이스2를 하며 몸과 마음 모두 지치셨을 세이렌분들이 이곳에서 일주일간 생활하며 힐링하시길 바라는 마음에 기획한 콘텐츠입니다!”
“……하하하.”
“……좋다.”
“……건강, ……그래 건강은 좋죠…….”
“여기 배달은 안 되죠?”
“하아…….”
우리의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일까.
박수철 피디가 우릴 째려본다.
결국 우린 텐션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으음! 근데, 어, 음. 자세히 둘러보니까 풍경이 진짜 좋아요!”
“어! 여기 무슨 벌레가……!”
“끼이이이이!”
다만 연훈이 형이 앞장서서 장점을 찾으며 텐션을 올리려던 순간 마루 위로 벌레가 사사삭 지나가는 바람에 흐름이 다시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도시에서였다면 100의 확률로 바퀴벌레였을 테지만,
“저거 풍뎅이 아니야?”
“풍뎅이……?”
“지금 풍뎅이가 마루를 지나간다고요……?”
“나 살면서 풍뎅이 처음 봤어요.”
역시 깊은 산 속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바퀴벌레가 아니라 풍뎅이가 지나간다.
“하하, 네. 여기가 그만큼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란 겁니다. 도시에서는 이런 거 경험 못 해봐요.”
박수철 피디는 이때를 놓칠세라 멘트를 치고 들어오며 우리에게 시골라이팅을 한다.
“여기 정말 좋은 곳입니다. 심호흡을 해보세요. 공기가 다르다니까요.”
“어디서 전담 냄새 나는데…….”
“……크흠.”
다만 후각 좋은 운이 형은 심호흡을 하다가 전담 냄새를 맡았고 박수철 피디는 헛기침을 하며 급히 시선을 돌렸다.
오프닝부터 이렇게 삐걱대는 리얼리티 촬영은 없을 거다.
“에휴.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둘러봐요!”
결국 박수철 피디도 포기한 걸까.
오프닝 씬 찍기를 포기한다.
이게 리얼리티라서 편집을 구성 맞춰 딱딱 해낼 필요가 없으니 이런 장면도 나오는 것이다.
“와 우리가 오프닝을 캔슬시켰네.”
형들과 나는 어처구니없단 듯 웃으며 일단 주변을 둘러봤다.
올라오면서 보긴 했지만 일단 풍경은 좋긴 하다.
나무가 많고 저 아래에 계곡이 흐르기도 하고,
너무 나무만 빽빽하게 있는 느낌이 아닌 적당히 듬성듬성 나 있어서 산등성 아래로 떨어지는 해를 보기에도 좋다.
우린 집 안쪽을 확인해 봤다.
“어! 이거 방바닥 진짜 뜨끈뜨끈한데요?”
“뜨끈뜨끈이 아니라 뜨거운 수준인데……?”
“이거 감자랑 고구마 누가 갖다놓은 거야?”
“먹어도 되겠지?”
일단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첫 번째 방은 박수철 피디의 말대로 정말 뜨끈뜨끈했다.
크기 자체도 꽤 넓어서 다섯이서 다 같이 누울 수 있을 정도였고.
이불과 티브이도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거 그냥 이대로 쌓아두고 소파로 써도 되겠는데요?”
이불이 워낙 두꺼워서인지 쌓아두기만 하면 소파처럼도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여기 옆에 방 하나 또 있어!”
연훈이 형은 옆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두 번째 방을 확인했다.
이 방은 부엌과 연결된 방이었는데,
“여기가 거실 느낌인 건가.”
“저 안쪽이 안방이고요?”
“나름 용도에 맞는 구획을 갖추고 있구나.”
부엌에서 바로 음식을 해와서 여기에 식탁을 펼치고 먹으면 될 거 같았다.
“이 뒤쪽은 화장실이네?”
“와 화장실 신식이구나. 다행이다.”
“그치……. 신식이어야만 하지. 이것마저 신식이 아니면…….”
그렇게 룸투어를 마친 후 안방으로 돌아오니,
“이 감자 엄청 포슬포슬해요.”
동준이 형이 이불더미에 몸을 묻은 채 티브이 보면서 감자 까먹고 있었다.
“으아아! 따뜻해!”
연훈이 형은 그대로 방바닥에 몸을 쭉 펼친 채 몸을 지지기 시작했고.
“누워 있으면 진짜 잠 솔솔 오겠다.”
“전담 냄새 빠지니까 진짜 공기 좋은 게 느껴지긴 하네.”
운이 형과 도승이 형도 같이 방바닥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 올 때까지만 해도 여기가 맞나 싶었는데,
‘적응이 왜 이렇게 빨라.’
다들 이 집에 벌써부터 마음을 붙이고 있는 게 느껴진다.
* * *
세이렌이 깊은 산 속 초가집에 앉아 힐링 아닌 힐링을 즐기고 있을 무렵.
더쇼케이스2 공식 SNS에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세이렌은 지금 건강해지는 중입니다. (마루에 모여앉은 세이렌.jpg)
초가집 마루에 생활한복을 입고 쪼르르 앉아 있는 세이렌의 사진이었다.
뜬금없이 올라온 사진 한 장에 세이렌 팬들은 득달같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ㅠㅠㅠ동준아ㅠㅠㅠ우리 댕준이 너무 귀여우ㅠㅠㅠ
-아닠ㅋㅋㅋㅋ건강해져서 좋다만 언제 저기 간건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리얼리티 촬영 벌써 시작한 거임??
└ㅇㅇ이번 주에 리얼리티 올라간다고 했음
└와 너무 빠른 거 아님?
사람들은 해당 사진을 공유하며 여기저기에 퍼다 나르기 시작했다.
-연훈이 너무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 재질임ㅠㅠ
-아니 공녀님 진짜 맑눈광인같음ㅋㅋㅋㅋㅋ저 은은한 미소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깜고도승 헬스해야 하는데 산에 끌려와서 씅질 났넹 개귀여워 ㅠㅠㅠㅠㅠㅠ
-동준이 혼자만 너무 신난 거 아니야?ㅋㅋㅋㅋ
-태윤이 왜 혼자 나라 잃음 ㅋㅋ
└태윤앜ㅋㅋ제발 웃어줘ㅋㅋㅋㅋ
사진 한 장에 각 멤버들의 성격이 투명하게 들어가 있다 보니 더더욱 빠르게 인터넷에 퍼져 나갔다.
물론 좋은 소리만 있는 건 아니다.
-ㅅㅂ 애들 서바이벌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또 굴리는 거임?
-초가집……. 수철아 정신 차려 제발.
-애들이 착해서 반응 잘해주니까 진짜 다 괜찮은 줄 아나 봄;;
-아니 5성급 호텔 잡아주라고 수발놈아 ㅠㅠ
세이렌이 좋은 곳에서 먹고 자고 놀기를 바라는 팬들에게 산속의 초가집은 극악한 환경으로 보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근데 수발놈도 구르는 재주가 있어서 리얼리티는 개꿀잼일 거 같음
└ㅇㅇ 수철이 타돌 리얼리티 만들었었는데 그게 daeng 웃겼음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곧 공개될 리얼리티에 기대감을 비추고 있었다.
어쨌든 공통적인 것은 다들 세이렌이 행복하길 바란단 거였다.
초가집에서든 초호화 호텔에서든 행복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 같았다.
다만 실제 세이렌은,
“……뭘 만들라고요, 피디님?”
“평상이요, 평상.”
“우리가요……?”
“여기 설계도면이랑 재료 다 드릴게요.”
박수철 피디의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심히 고통받고 있었지만 말이다.
* * *
초가집도 좋고, 산속도 좋았다.
이 생활한복도 입다 보니 그 나름의 맛과 멋이 느껴졌다.
이토록 빠르게 적응하게 될 줄은 몰랐으나,
“아, 귤 달다.”
“이게 어쩌면 마지막 귤인가?”
“이제 봄이니까 마지막 귤이지.”
우린 벌써 초가집 안방에 누워서 감자와 고구마와 귤을 양껏 먹고 있었다.
“아 여기에 이제 동치미나 김치만 있으면 진짜 딱인데.”
벌써 고구마와 감자를 두 개씩 해치운 동준이 형은 짠맛을 더해줄 반찬이 없단 것에 심히 아쉬워하고 있었고.
그래도 뭐.
이 정도면 무난하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초가집이라 해서 심적 거부감이 들었지만 이것도 나름 정답고 좋다.
한데,
“다들 잠깐 나와볼래요?”
밖에서 박수철 피디가 우릴 불렀다.
“응?”
“뭐지?”
일단 나오라니까 나가긴 했다.
시간도 저녁 6시 30분이니 아마 밥 먹으라고 나오라 한 것 같았다.
다만 밥만 먹으라고 불러낸 것은 아니었는데,
“이게…… 뭔가요, 피디님……?”
“평상입니다.”
“제 눈엔 각목과 나무판떼기와 망치와 못이 보이는데요?”
“평상이 될 예정, 입니다.”
“제작진분들이?”
“으음. 세이렌이.”
밖에 나가 보니 식재료와 함께 다른 자재들도 함께 놓여 있었다.
“……뭘 만들라고요, 피디님?”
“평상이요, 평상.”
“우리가요……?”
“여기 설계도면이랑 재료 다 드릴게요.”
박수철 피디는 그리 말하며 평상 설계도를 우리에게 보여줬다.
설계도를 보니 만드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 같았다.
나무판과 각목들이 모두 용도에 맞게 재단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가 할 건 망치로 이 나무 덩어리들을 맞춰 끼우는 것뿐이었다.
“요새 다 DIY 가구 사잖아요. 딱 그 느낌이에요. 어려울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 어려울 건 없겠지.
하지만,
“미치겠네.”
강원도 어딘가에 있는 산으로 끌려와서 생활한복으로 갈아입은 뒤 평상을 만들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냔 말이다.
“그, 평상 안 만들면 저녁 식사 못 하는 건가요?”
“에이, 그런 건 아니죠. 저희가 건강해지라고 불렀는데 밥도 안 주겠어요. 이 식재료 다 가져가서 요리하세요.”
“그럼 평상은…….”
“그냥 뭐 만들어도 좋고 안 만들어도 좋아요. 만들지 안 만들지는 세이렌 자유입니다. 다만 이 평상은 여기에 계속 있을 거예요. 하염없이……. 하염없이……. 난 언제쯤 평상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요.”
이 미친 사람이 평상에 과몰입해서 우릴 몰아간다.
저 악랄함에 치가 떨렸으나,
“평상 불쌍해.”
“아니, 형. 뭐가 불쌍한데요, 대체.”
연훈이 형은 평상에까지 몰입한다.
“그럼 여기 평상재료와 식재료를 두고 갈 테니까,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박수철 피디는 그리 말하곤 뒤로 물러났다.
이제 마당에는 식재료와 함께 평상 자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일단 음식부터 챙기자.”
우린 음식 바구니를 들고 마루로 갔다.
닭고기도 있고 삼겹살도 있고 소고기도 있다.
야채도 많고 감자, 고구마도 추가로 더 있다.
각종 소스와 향신료와 MSG까지.
그냥 주방 하나를 통째로 털어온 느낌이다.
“이 정도면 음식 만드는 건 문제없겠는데?”
“맞아요.”
도승이 형과 나는 식재료를 분류하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한데,
“흐음.”
“음.”
“오늘, 뭐 닭볶음탕을 해 먹을까……. 말까…….”
박수철 피디가 이상한 말을 하고 가서일까.
저기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평상 자재들이,
‘왜 애처로워 보이는 건데…….’
이상하게 마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