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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36화 (13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6화

박수철 피디는 카메라와 방송 장비들만 설치해 둔 채 자리를 떠났다.

제작진들 숙소는 세이렌 숙소에서 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초가집이었다.

세이렌 숙소보다 조금 더 낙후된 초가집에 들어온 후, 안방 문을 열어젖히니.

“아, 피디님 오셨어요?”

“밖에 추우니까 문 닫아요!”

“으으, 산이라 그런가 저녁 되니까 진짜 춥네요.”

제작진들이 감자와 고구마를 까먹으며 모니터 앞에 모여앉아 있었다.

이곳은 모니터링을 하는 일종의 상황실이었다.

세이렌 초가집 앞에 설치해 둔 관찰카메라의 실시간 촬영 영상을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사생활 침해의 우려가 있으니 모니터링 가능한 구역은 딱 초가집 마당까지다.

초가집 내부부터는 그들에게도 미스터리의 영역이다.

“어때, 세이렌 애들 평상 만들기 시작했어?”

박수철의 질문에,

“아뇨. 아직은 시작 안 했어요.”

작가 한 사람이 이리 말했다.

“아예 평상 안 만들려나?”

“그건 아닌 거 같긴 한데.”

“사실 안 만들어도 되긴 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재밌을 거 같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자재 준비했으니까 만드는 게 좋긴 하잖아요.”

“그렇긴 하지.”

“좀 더 지켜봐요.”

박수철은 패딩을 벗으며 방바닥에 누웠다.

“아으 좋다. 아으으~”

“와 너무 싫어.”

“발 냄새 나요.”

“조용히 해.”

박수철은 누운 채로 고개만 돌려 모니터를 쳐다봤다.

“얘들 평상 만들면 깨워라.”

그는 그리 말하곤 고개를 돌리더니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평상이 신경 쓰인다.

미친 듯이 신경 쓰인다.

인간이란 게 참 간사한 것이,

‘왜 애처로워 보이는 건데. 대체 왜.’

그저 박수철 피디가 한마디 했다고 저 평상이 인격체처럼 느껴진단 말이다.

사람은 상상력이 좋은 동물이고 그 상상력을 뻗어나갈 길만 뚫어두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홀로 펼쳐내게 마련이다.

“아아. 평상. 으으으으.”

“아, 진짜 왜 이러지 우리.”

“그냥 나무일 뿐이야, 애들아. 신경 쓰지 말자.”

“그치만 형. 저 평상, 울고 있다고요.”

“맞아 도승아, 저 평상의 울음이 안 들려……?”

“대체 쌍으로 왜들 그러는 거예요…….”

형들과 나는 저 평상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저걸 만들어야 하냐 아니냐로 말이다.

결국 우리의 선택은,

“아 몰라! 난 평상 만들어줄 거예요!”

평상 만들기였다.

먼저 튀어나간 건 동준이 형.

연훈이 형 다음으로 평상에 과몰입하더니 결국 가장 먼저 행동을 개시하는 데에 이르렀다.

“맞아! 평상이 만들어주자.”

다음은 당연한 수순으로 연훈이 형.

형은 이미 평상을 ‘평상이’로 부르고 있다.

“그래. 만들어주자. 너무 애처로워 보였어.”

운이 형도 설렁설렁 평상 만들기에 합류한다.

나랑 도승이 형은,

“에휴.”

“그럼 셋이서 그 평상 만들어요. 나랑 태윤이가 저녁밥 할 테니까요.”

“응!”

“부탁해요~”

“맛있게 부탁해~”

평상 만들기를 동준이 형, 운이 형, 연훈이 형에게 맡기고 저녁 식사 준비에 돌입했다.

다만,

‘잘 만들려나. 저 셋이.’

불안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셋 다 손재주 없는데.’

라면도 겨우 끓이는 저 셋이 과연 평상을 만들 수 있을까 싶다가,

‘요리랑 가구 조립이 같은 결은 아니니까.’

대충 이리 생각하고 넘겼다.

* * *

“피디님. 피디님!”

“으으? 엉?”

“지금 세이렌 평상 만들기 시작했어요.”

“오오, 그래?”

“네. 일로 와서 보세요.”

아랫목에 누워 뜨끈하게 몸을 지지던 박수철은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읏챠~”

“어우, 아저씨.”

“조용히 해.”

자기를 아저씨라 부르는 작가에게 눈총을 준 후 곧바로 모니터에 시선을 돌렸다.

“저 셋이 만드는 거야? 평상을?”

“네. 요리는 태윤 씨랑 도승 씨가 하려나 봐요.”

“오오.”

이미지만 보면 우연훈과 이운이 요리하고 강도승과 봉태윤이 평상을 만들 줄 알았는데.

반대로 간 게 꽤 신기하다.

아, 박동준은 이미지로만 보면 요리도 평상도 안 하고 뒤에서 얄밉게 응원만 할 거 같은 이미지다.

그때 박수철 피디의 눈에 이상한 게 포착됐는데,

“응? 뭐야 저거?”

“네?”

“저거 조립 저렇게 하는 거 아닌데?”

“아 그래요?”

“설계도 어디 갔어?”

“어, 그러게요? 설계도가 화면에 안 보이네요.”

“지금 뭘 보면서 만드는 거야 저 세 사람?”

“아무것도 안 보고……?”

“……?”

박수철은 묘한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내 씨익 하고 웃더니,

“오히려 좋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 * *

도승이 형과의 요리는 어려울 게 없었다.

우리 둘 다 요리를 할 줄 알고 서로 생활도 같이하다 보니 손발이 꽤 잘 맞았다.

“거기 양파.”

“네.”

“대파 썰어뒀어?”

“네.”

“양념장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 만들어뒀어요.”

“오.”

“간 한번 보실래요?”

“아냐. 알아서 잘 만들었겠지.”

지금 우리가 만드는 건 제육볶음이었다.

처음엔 닭볶음탕을 계획했다가 감자와 당근 익는 시간을 고려해서 변경했다.

지금 닭볶음탕을 제대로 끓이려 하면 저녁 식사를 9시는 되어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빠르게 볶고 먹을 수 있는 제육볶음이 나았다.

“밥은 안쳤지?”

“네. 근데 가마솥 밥은 처음이라 너무 꼬들해지지 않을까 싶긴 해요.”

“불 조절만 잘하면 되겠지 뭐.”

순식간에 제육볶음이 완성되고.

“와, 밥 잘 됐는데?”

“그러게요.”

생각 이상으로 밥도 잘됐다.

준비되어 있던 밥그릇과 접시에 제육볶음과 밥을 담았다.

제작진들이 사다 준 김치도 꺼내서 올리고.

상추도 씻어서 바구니에 담아냈다.

“그럴싸하네요.”

“남의 주방에서 이 정도 만든 거면 잘한 거지.”

나랑 도승이 형은 바쁜 게 끝나자 자연스레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정확히는 평상을 만드는 그 셋을 향해서.

“잘 만들고 있겠죠?”

“그런 거 같긴 한데.”

“가서 보고 올게요.”

난 평상 만드는 쪽으로 걸어갔다.

“괜찮아요, 형들?”

“어? 태윤아! 밥 다 했어?”

“네. 밥 다 했어요. 평상 만들 만하죠?”

“뭐, 그냥 이렇게 저렇게 뚝딱뚝딱거리곤 있는데, 그래도 만들어지긴 할 거 같아.”

“설계도 없어도 잘 만들 수 있다 했잖아요~”

형들은 평상 만드는 데에 큰 문제는 없다고 말했다.

한데 걸리는 게 있었는데,

“설계도가 없다고요, 형?”

동준이 형이 말한 설계도가 없단 말이다.

“아, 응! 보려고 했는데 바람에 날아가 버렸어.”

“……네?”

난 해맑게 말하는 연훈이 형을 멍하니 바라봤다.

이걸 이렇게 해맑게 말하니 화도 못 내겠다.

“그……래요. 뭐. 알았어요.”

“이제 마무리만 하면 돼 마무리만. 가서 쉬고 있어.”

“평상이 마저 만들자!”

“예에!”

형들은 다시 손에 망치를 들고는 평상을 붙잡고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가도 되나 싶었으나.

‘에휴. 가자.’

형들을 믿기로 했다.

* * *

형들을 믿으면 안 됐다.

도승이 형과 나는 준비한 음식들을 동그란 양철 식탁에 올린 채 평상으로 나갔다.

평상을 만들었으니 저 위에서 밥을 먹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들고 나가 보니,

“이거 무너질 거 같은데요, 형?”

“……아냐.”

“그…… 튼튼해…… 우리 평상이…….”

“건강할……걸?”

형들은 딴 곳을 쳐다보며 말을 빙빙 돌린다.

다만 외면하려 해도 평상의 상태가 너무 극악하다.

가장 큰 문제는,

“왜 수평이 안 맞는 건데요.”

평상 수평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여기 지금 평상 다리들 자재 다른 거 쓴 거 아니에요?”

“……아닐걸.”

“……아닐‘걸’이 나오면 안 되죠, 형.”

무게중심이 다르면 평상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 만들어봤으니까 올라는 가보자.”

“흐음.”

“음식 쏟아지면 어쩌죠?”

“에이. 설마 그러겠어.”

“그래. 아무리 엉망으로 만들었어도 평상인데!”

도승이 형과 나는 끝까지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으나 형들은 이 평상이 괜찮을 거라고 적극 어필했다.

일단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음식은 잠깐 마루에다가 놓아두고 오기로 했다.

천천히 올라가 앉아보니,

“음?”

“거봐! 튼튼하지!”

일단 무너지진 않는다.

“형들도 다 올라와 보세요.”

난 형들도 평상 위로 다 불렀다.

“에이, 문제없다니까 진짜.”

“걱정 마, 태윤아~”

형들은 이상한 자신감을 보이며 평상 위로 올라갔다.

도승이 형은,

“난 안 올라가요.”

“왜에!”

“위험해 보이니까요.”

끝까지 안 올라왔고 말이다.

그렇게 도승이 형을 제외한 우리 넷이 평상 위에 앉은 순간.

“거봐! 괜찮지!”

처음엔 별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우지직.

어디선가 각목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 어어!”

순식간에 다리 한쪽이 부러져 버렸고.

“으아악!”

평상은 그대로 한쪽이 확 주저앉아버렸다.

당연한 수순으로,

“으갸가각!”

“으윽!”

“꺄아악!”

“……하아.”

우린 다 같이 한 방향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마당으로 떨어졌다.

평상 높이가 50㎝ 정도밖에 안 돼서 별문제는 없었지만,

“다신 우리 이런 거 만들지 맙시다.”

평상에 앉았다가 굴러떨어져 보긴 또 처음이다.

난 마당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 * *

제작진들은 평상이 무너져 멤버들이 굴러떨어지는 걸 본 순간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아! 됐다!”

“크으!”

“연훈 씨! 믿고 있었다고요!”

세이렌에게는 뜬금없는 날벼락이었겠으나 제작진들 입장에선 1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나온 셈이니 말이다.

“하하하하! 아니, 저걸, 저렇게 엉성하게 만드는 사람이 어딨어.”

특히나 박수철은 배꼽을 잡고 웃으며 좋아했다.

이 인간이 이렇게까지 웃는 걸 본 기억이 거의 없기에 작가진들조차 의아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수철은 모니터를 보며 한참을 웃다가 겨우 웃음을 멈췄다.

“아, 제발 이 텐션으로만 쭉 갔으면 좋겠다.”

박수철 피디는 그리 말하며 모니터를 쳐다봤다.

그의 소원이 이뤄진 걸까.

실제 세이렌의 리얼리티 촬영은 온갖 사건 사고를 만들며 우당탕탕 이어져갔다.

* * *

세이렌이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건강을 챙기는 동안.

윤승연과 이현아는 서울에 있는 WD엔터 사무실에서 사무일을 보고 있었다.

아니, 사무일을 본다기보단 눈치를 보며 자리 뭉개고 앉아 있단 게 더 맞는 표현이다.

공연장에서의 사건 이후로 윤태형은 출근을 안 하고 있었다.

잘린 건지 제 발로 나간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잘린 것이라 보는 게 타당했다.

윤태형이 출근을 안 한 날 이후로 김동현 사장이 출근을 해서 사무실을 지켰으며, 정장 입은 대기업 사람들이 자주 회사에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차후 이어질 스케줄을 위해 합작회사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느낌이었다.

김동현은 사장단을 대표하여 JI ENM 쪽 사람들과 세부 내역을 조율하고 있었는데,

“이게 사장님들께 돌아갈 지분이고……. 그간 세이렌 케어하고 육성하며 들었던 비용들은 이 정도로 책정해서 전달드리려 합니다. 괜찮으실까요?”

“흐음. 세이렌 키우는 데에 사실 생각 외로 자본이 많이 들어서…….”

“그러면 어느 부분에서 자본이 들어간 건지 서류 보내주시면 다시 조율하여 금액 산정해 드리겠습니다.”

“이게 근데 그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모든 걸 서류로 증명할 수는…….”

“서류가 없으면 저희는 보고를 못 합니다.”

“유도리 있게 해야죠 유도리 있게.”

윤승연과 이현아는 제일그룹과 김동현 사장 간의 대화를 들을수록 암담한 심정이었다.

세이렌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이건만, 이중 진짜 세이렌을 위하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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