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7화
평상을 만들다가 박살이 난 이후로 우린 마루에서 밥을 먹었다.
“앞으로는 설계도를 꼭 보고 다니기로 해요.”
“……우웅.”
“……하하.”
“그래~”
연훈이 형과 운이 형과 동준이 형은 앞으로 꼭 무언가를 만들 때 설계도를 반드시 참고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날 이후로 평상은 접근 금지 구조물이 되었다.
부서진 평상 근처에 동그랗게 선을 그은 후 주의! 라는 종이까지 붙여두었다.
평상 붕괴 사건 이외에 첫날엔 이렇다 할 사건은 없었다.
다 같이 저녁 먹고 안방에서 티브이 좀 보다가 밤이 되니 바로 곯아떨어졌다.
두 번째 날도 그렇게 큰 사건이랄 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된장찌개 끓여서 밥 한 끼 먹고,
점심에 제작진들이 공 갖다 준 걸로 족구 좀 했다.
“우아아악!”
“연훈이 형. 그러다 다리 찢어져요.”
“안 찢어져!”
몸치인 연훈이 형은 마음만 앞설 뿐 몸이 따라주진 못했다.
다만 족구 게임 중 큰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부욱!
“…….”
“……오 마이 갓.”
동준이 형 바지가 터진 거다.
높이 뜬 공을 스파이크로 꽂아보고 싶다며 무리해서 다리 벌릴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으아아악! 다들 보지 마요!”
“하하하하!”
동준이 형이 이렇게 당황한 건 또 처음 본다.
형은 곧장 바지춤을 붙잡고 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이후 점심밥 차려서 형들이랑 다 같이 나눠 먹고.
저녁까지 각자 시간 좀 갖다가.
저녁에는 어제 못 만들어 먹은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었다.
밤에는 불을 피워 불멍을 때릴 생각이었는데,
“……태윤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가요.”
“그거 지금 당장 내려놔.”
“……?”
“헉! 태윤쓰! 그게 무슨 잔인한 짓이야!”
“……태유나?”
운이 형, 동준이 형, 연훈이 형이 날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이유론,
“어차피 불 피울 거면 장작 필요하잖아요. 부서진 나무니까 써도 될 거 같은데.”
내가 부서진 평상의 자재를 땔감으로 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평상이를 가만 놔둬!”
“반인륜적이야!”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잔인한 생각을 하는 거지?”
세 사람 다 날 피도 눈물도 없는 싸이코로 보는 것 같다.
아니, 근데 이건 누가 봐도 저쪽이 비정상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평상이 이미 타고 있는데요?”
“뭣?”
“어?”
“강도승!”
도승이 형이 이미 평상 자재 중 일부를 가져가 저기서 불을 피우고 있었다.
때마침 평상이 자재를 쌓아두고 토치로 화아악 불을 붙인 상태였다.
“걱정 마. 잘 타고 있어.”
“으아아아악!”
“평상아! 평상아!”
“……다음엔 손재주 좋은 주인을 만나렴…….”
그렇게 평상이는 좋은 땔감이 되어 우리의 불멍을 돕는 역할을 해줬다.
형들이랑 담요를 덮은 후 불 앞에 앉아 있다 보니,
‘좋다.’
이대로 그냥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라왔던 삶이 이런 삶이었다.
난 대단한 성공을 바란 적 없다.
많은 돈도, 큰 명예도, 수많은 트로피도.
사실 있으면 좋은 거지만 내게는 없어도 큰 문제는 없다.
내가 바란 건 형들과의 평범한 하루하루였다.
맛있는 밥 한 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밤 되면 자고.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렇게 늙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데,
[2022년 안에 앨범 초동 50만 장을 기록하시오.]
[성공 시, 다음 미션으로 진행.]
[실패 시, 멤버 이운의 사망.]
‘……망할.’
이 시스템은 분명 내 머릿속의 생각을 읽는 게 분명하다.
내가 이대로 만족할 거 같은 순간에 채찍질을 가하니까.
주먹을 꽉 쥐었다.
나도 안다.
이렇게 멍하니 있을 순 없단 걸 말이다.
‘초동 50만…….’
일단 내 계획은 데뷔 앨범으로 초동 30만을 먼저 달성하는 거다.
올해 데뷔할 신인 중 초동 30만을 달성할 만한 남자 그룹은 없으니까.
올해는 유독 걸그룹이 강세를 보이는 한 해다.
그 사이 유일한 신인 남돌로 자리 잡으면 초동 유지는 쉬울 거다.
일단 미니로 데뷔 30만 찍고.
매진 띄울 수 있는 사이즈로 콘서트도 한 다음.
중간에 떡밥 식지 않게 리패키지랑 자체 콘텐츠 하고.
싱글로 활동 한 번 더 채우고.
그때쯤 있을 아이돌들 단체 콘서트에서 눈도장 몇 번 찍어서 화제성 끌어올린 후에.
겨울에 정규 앨범으로 최대 마케팅비 쏟아서 돌아오는 거다.
만일 이 사이에 우리를 위협할 만한 신인 남돌이 데뷔하지 않는다면.
혹은 올해에 대부분 군대에 간 1군 남돌들이 대뜸 유닛 활동을 시작하지 않는다면.
‘50만 가능해.’
유입 박박 긁어모으며 초동 50만 달성할 수 있다.
다만 언제나 계획은 누구든 그럴싸하다.
‘변수가 나오면 안 되는데…….’
생각이 깊어질 무렵,
“마시멜로 먹어, 태윤아.”
연훈이 형이 불쑥 들어왔다.
우린 캠프파이어라면 마시멜로라며 나무젓가락에 마시멜로를 꽂아서 앞에 세워뒀었다.
그게 적당할 정도로 익은 모양이다.
“고마워요.”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아? 고민 있어?”
연훈이 형은 내가 고민이 있단 걸 알았나 보다.
한데,
‘이걸 어떻게 말해.’
초동 50만 못 찍으면 운이 형이 죽는단 말을 할 수는 없다.
“아뇨. 그냥 멍 때린 거예요.”
난 형이 준 마시멜로를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분명 회귀 전에는 단 걸 많이 안 먹었는데,
‘……맛있네?’
19살이 되면서 입맛도 어려진 걸까.
단 게 많이 땡긴다.
“너무 고민 혼자 끌어안고 있지 마. 태윤아.”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날 빤히 바라봤다.
“우리랑 상의할 거 있으면 꼭 상의하고. 혼자 다 끌어안지 않아도 돼.”
형이 내 손등에 자기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 순간 현장에 묘한 정적이 퍼졌다.
도승이 형도 운이 형도 동준이 형도.
모두 묘하게 내 눈치를 보는 중이다.
“앞으로 뭐든 우리랑 이야기해 보고 하자. 그게 뭐 앨범 관련된 이야기일 수도 있고, 회사랑 이야기해 봐야 하는 사무적인 걸 수도 있고. 뭐든 간에 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맞다.’
내가 김동현 사장에게 전화해서 윤 팀장을 고발했던 게 떠올랐다.
그간 정신없이 놀기만 하느라 형들에게 사정을 설명한단 걸 깜빡했다.
아마 형들끼리는 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나 보다.
연훈이 형이 형들을 대표해서 나한테 이야기한 거고.
“네. 알았어요. 자주 말할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이제 마시멜로 마저 먹자!”
연훈이 형은 그새 살짝 식은 내 마시멜로를 다시 불 앞에 가져갔다.
그러곤 크래커 두 장을 꺼낸 후 그 사이에 마시멜로를 끼워 넣더니,
“스모어 마시멜로야!”
마시멜로 샌드위치 같은 걸 만들어서 준다.
“초코시럽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
그 위에 초콜릿 시럽까지 뿌려주니.
“……먹다 죽는 건 아니죠?”
“맛있어서?”
“……그럴 리가요.”
혈관을 막기 위한 무시무시한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조심스레 한 입 먹어보니,
“……!”
“어때? 맛있어? 막 죽을 거 같아?”
“……네!”
너무 맛있다.
최근 들어 먹은 것 중 이토록 충격적이게 맛있는 건 처음이었다.
“하하하!”
“와, 태윤이가 이렇게 음식 먹고 좋아하는 건 또 처음 봤네.”
“맛이떠 태윤아? 오구오구.”
“많이 먹어. 더 줄게.”
형들은 내가 이 마시멜로 스모어에 빠진 게 꽤 웃긴가 보다.
동준이 형은 이때다 싶어 아주 날 애 취급까지 하고.
뭐, 나쁘지 않다.
이런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늘 그리워했던 거니까.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야. 형들이랑 같이하면.’
초동 50만.
사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 * *
시간은 흘러 흘러 우리의 리얼리티 1화가 방영되는 날이 왔다.
금요일 저녁 6시.
우린 오늘은 밥상을 마루에다가 차리지 않고 안방에다가 차렸다.
밥 먹으면서 다 같이 리얼리티 1화를 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어어어! 국 조심해! 아직 뜨거워.”
“와, 근데 이거 생선 구이를 누가 이렇게 잘 구웠어?”
“저요.”
“태윤이 만능이네.”
오늘 메뉴는 고등어 구이에 김칫국이다.
꽤 토속적인 메뉴조합인데 맛이야 뭐 보장되어 있다.
사실 형들과 내 입맛은 20대 초반의 남자들치고 꽤 아저씨스럽긴 하다.
고등어 뼈 제거한 후 살점 발라서 형들 밥그릇 위에 하나씩 올려두고 있자니,
“오오! 시작한다.”
더쇼케이스2의 외전.
세이렌 리얼리티.
<세이렌, 건강해져라!>의 타이틀이 올라왔다.
“오오오!”
“뭔가, 나는 자연인이다 폰트 아니야?”
“그러게.”
“재밌을 거 같은데?”
난 아무 말 없이 쌀밥에 고등어 살점 올려서 오물거릴 뿐이었다.
그렇다고 리얼리티에 아무 기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출연진의 입장이긴 하다만,
‘온리원 리얼리티보단 재밌을 거 같은데.’
전생에 보고 왔던 온리원의 리얼리티보다는 우리 리얼리티가 조금 더 재미 포인트가 많을 거 같았다.
그때 당시 온리원 리얼리티는 웃기다기보단 돈 쓰는 게 놀라워서 볼만했던 느낌이었으니까.
그래선지 별로 화제성을 끌어오지도 못했고.
우리 리얼리티는 그것보단 아마 웃길 거 같다.
그러면 화제성도 노려볼 만하다.
초동 50만을 2022년에 달성해야 하는 지금,
‘이것도 나름 순풍이라면 순풍이겠네.’
재밌는 리얼리티는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신호다.
그 재미 없던 온리원 리얼리티로도 꽤 많은 유입이 들어온 걸 보면 더쇼케2 외전으로 편성하여 같은 시간대에 바로 방영하는 게 꽤 큰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시작은 우리가 산 초입에 모여서 황망하게 이곳을 둘러보는 장면이었다.
보통의 아이돌 리얼리티는 우와~! 로 시작하게 마련인데,
-……여기가 뭐죠.
-……산?
우린 그와는 정반대되는 반응이었다.
“하하하! 제가 저렇게 어이없는 표정이었어요?”
그 영상에 동준이 형은 혼자 빵 터지더니 화면을 주시했다.
-생활한복?
-와, 이걸 입으라고요?
-호오…….
이후 생활한복 입는 장면이 나오고.
우리가 다 같이 황토색 생활한복을 갖춰 입고 나왔을 때,
“왜 저렇게 슬픈 음악이 깔리는 거야.”
“하하하!”
“우리 리얼리티 재밌는데?”
아이돌 리얼리티라기보단 버라이어티 예능 느낌의 편집이 많이 들어갔다.
‘좋네.’
화제성 긁어모으고 시청률 올리려면 이런 방향이 좋긴 할 거다.
난 이쯤에서 반응을 살피기 위해 파랑새에 들어가 봤다.
대부분이,
-ㅋㅋㅋㅋㅋㅋㅋ아닠ㅋㅋㅋ애들앜ㅋㅋ
-우리 아기 복숭아 시골 브라운 생활한복 입고도 뽀둥한 거 보세요 여러분
-생활한복으로도 가릴 수 없는 깜고도승의 대흉근
└ㅈㄴ 츄베릅…….
이 영상 자체를 꽤 즐기고 있었다.
또 너무 애들 고생시킨다고 욕도 조금 먹는 거 같은데,
‘아무 반응 없는 것보다야 이런 게 낫지.’
초가집 생활이 딱히 불편하지도 않았기에 오히려 화제성 긁어모은 게 낫다고 생각 중이었다.
한창 우리 이야기가 피드로 올라오는 걸 보며 모니터링 중인데,
-ㅁㅊ 온리원 TH랑 계약 해지했다는데?
└??? 강현성 혼자 말고 온리원 전체???
└ㄹㅇ?
“아.”
대뜸 우리 리얼리티가 아닌 다른 쪽의 반응이 나왔다.
난 급히 그 글의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화면 위에 떠오른 건 인터넷 기사였는데,
[온리원, TH엔터와 전속계약 해지]
[TH엔터테인먼트의 데뷔 예정 보이 그룹이었던 온리원이 TH엔터와 전속계약을 해지한다. 데뷔 이전 전원이 전속계약을 해지하는 이례적인 사건으로서…….]
강현성의 온리원이 TH엔터와 전속계약을 해지했단 거다.
난 기사 전문을 쭉 읽어나갔다.
이 기사의 목적이 이 마지막 줄에 실려 있었는데,
[둥지를 찾지 못한 온리원이 어느 회사를 선택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보 기사구나.’
온리원 홍보 기사였다.
난 초동 50만 계획에 대해 생각했다.
올해 데뷔할 그룹 중 우리가 가장 성공해야 하는데,
‘……화제성 뺏길 수도 있겠구나.’
처음엔 우리가 온리원의 화제성을 뺏어 먹었다면, 이젠 온리원이 우리 화제성을 뺏어 먹을 차례였다.
이 바닥이 원래 그런 바닥이니 이 자체에 대해선 나쁘게 생각 안 한다.
온리원의 전속계약 해지 소식도, 그 밖의 다른 행보도, 모두 축하해 줄 수 있다.
다만,
‘미치겠네…….’
운이 형의 목숨이 달린 이상 난 누구에게도 지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