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39화
“일단은 좀만 쉬자. 경연하면서 곡 너무 많이 썼어.”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며 벌러덩 바닥에 누웠다.
“곡이란 게 탁 치면 타닥 하고 나오는 게 아니잖아.”
“그쵸.”
“쉬러 왔으니까 쉬는 게 좋지.”
난 도승이 형을 말없이 바라봤다.
사실 내가 도승이 형을 억지로 곡을 쓰게 만들 순 없다.
도승이 형 말대로 경연하는 내내 매번 곡을 찍어냈으니 당연히 쉬고 싶을 거다.
그 마음도 충분히 이해하고.
하지만 난 도승이 형을 안다.
동시에 창작자란 사람들의 특징도 알고.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속에 파문이 일면 참을 수가 없는 게 창작자다.
또 그런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게 도승이 형이고.
물론 노골적이면 안 된다.
“그냥 팬분들 덕에 저희가 이렇게 행복한 시간 보내는 중인 거잖아요. 곡 하나 만들어서 리얼리티 끝나기 직전이나, 아니면 직후에 풀면 좋겠다 싶었던 거죠.”
지나가는 투로.
아쉽긴 하다만 어쩔 수 없단 듯이 밑밥을 깔았다.
아마 도승이 형이라면 여기서 한 번 움찔할 거다.
그 증거로 고르게 위아래로 움직이던 가슴이 ‘팬분들 덕에’ 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멈칫거렸다.
“근데 지금 곡 만드는 건 제가 생각해도 형한테 너무 부담일 거 같아요. 가사 쓰는 것도 어려운데 곡 만드는 건 얼마나 더 어렵겠어요.”
다만 도승이 형에게 너무 부담이 가지 않도록 한 번쯤 살살 압박감을 풀어준다.
“뭐 되면 쓰고 안 되면 말죠. 너무 부담 갖진 말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쓰든 말든 어떤 방향으로든 원하는 대로 하란 걸 일러주고 끝내면 된다.
이쯤 해뒀으면 도승이 형 성격상 아마 팬송 만들자, 라고 할 거 같은데
“와, 봉태윤 지금 심리전 거는 거냐? 넘어갈 뻔했네.”
“아.”
……걸렸다.
아니, 원래는 이런 걸 눈치챌 만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눈치챈 거지?
“파랑새에서 맨날 네가 흑막이다 뭐다 하더니 진짜였네.”
도승이 형이 SNS를 통해 내 캐릭터 해석을 새롭게 했나 보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연하남 싫은 척은 혼자 다 하더니 방송에서 누나 나 뽑아줘요~ 하던 가락이 어디 안 가네.”
……연하남이라는 내 역린을 건드리는 바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버렸다.
“조심해. 쉽게 안 넘어가니까.”
괜히 어쭙잖게 덤볐다가 뼈가 가루가 돼서 밀려났다.
난 도승이 형이 던진 정신 공격에 아무것도 못 하고 구석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래도 일단 팬송 만들지 말지는 좀 더 생각해 볼게. 좋은 아이디어고 나도 동감하는 거니까.”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며 작게 웃었다.
그래.
이 정도 성과만으로 일단은 만족해야 할 거 같았다.
* * *
다음 날부터 다시 한번 게으르고 행복한 날이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프렌치 토스트에 시리얼을 먹었다.
산속에서 마루에 앉아 아침 해를 보며 시리얼을 먹는 건 색다른 기분이었다.
“이거 프렌치 토스트 누가 한 거야?”
“운이 형이 했어요.”
“진짜? 운이가 이런 요리도 할 줄 알아?”
“어우, 다신 이운한테 요리시키지 마요. 얘 지금 손 봐요. 나 프렌치 토스트 하다가 손 베인 사람 처음 봤어요.”
“엥? 칼을 쓸 게 없는 요린데?”
“내 말이요.”
“그, 식빵 봉투가 안 열려서 가위로 자르다가…….”
“심지어 칼도 아니야. 가위에 베였어.”
“…….”
운이 형이 처음으로 아침밥을 해줬는데 꽤 이런저런 사고가 많았다.
뭐, 그래도 해준 요리이니 난 맛있게 먹었다.
물론 프렌치 토스트라고는 하지만 하나도 안 달고 하나도 안 눅눅해서 이게 과연 프렌치 토스트인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맛없단 소리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이거 숙소에서 입어도 좋을 거 같지 않아?”
이제 생활한복도 꽤 편해져서 색깔 별로 여러 가지를 주문할까 고민하는 정도였다.
“황토색 말고 색깔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어떤 색?”
“음, 그, 오미자색?”
“……황토색이 가장 낫네.”
형들과 어떤 생활한복을 살지 인터넷 쇼핑을 하기도 하고.
“오늘 점심으로 만두 해 먹을까요?”
“만두 너무 손 많이 가지 않아?”
“여기서 남는 게 시간이잖아요.”
“만두 하면 점심이 아니라 저녁이 될 거 같은데.”
“그냥 간단하게 라면 끓여 먹자, 태윤아.”
“오, 좋다.”
“라면도 좋죠. 그럼 라면 먹어요.”
점심으로 뭘 먹을지도 의논한다.
박수철 피디가 리얼리티를 만든다길래 다들 어마어마한 미션 같은 게 있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그런 건 없었다.
첫날 평상 만들기 하는 거 보고 우리한테 미션 주면 힐링이란 소재가 퇴색될까 봐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뭐가 됐든 몸이 편하니 만사 오케이였다.
다만,
‘온리원은 지금 회사 찾았으려나.’
이런 행복하고 한적한 오전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인터넷으로 온리원을 검색해 보면 아직도 소속사를 찾는 중이란 기사만 뜬다.
뭐 인터넷 뷰어 검색으로 여론을 파악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안 했다.
인터넷 뷰어가 아닌 파랑새를 비롯한 SNS를 통해 검색해 보면,
-이번에 진짜 제대로 케어해 줄 수 있는 회사 찾아서 계약했으면 좋겠어 행복해 줘
#온리원_꽃길만_걸어
-애들아 걱정 마. 꽃길이 아니어도 계속 기다릴 수 있어
#온리원_꽃길만_걸어
-진짜…… 억울해서라도 우리 애들 끝까지 응원할 거임
#온리원_꽃길만_걸어
-강현성 김시운 박영호 김주현 이철운 행복만 해줘
꽃피울 날 얼마 남지 않았어!
#온리원_꽃길만_걸어
온리원 팬덤이 빠르게 뭉치고 있는 게 나온다.
아직 더쇼케이스2의 열기가 가시지 않은 시점에.
더 나아가 우리 리얼리티가 공개되며 사람들 의식 중에 ‘그럼 다른 팀은 이제 뭐 하려나?’ 라는 의문이 생길 만한 그 시기에 알맞게 기사가 공개된 게 컸다.
우승은 우리가 했지만 체감상 더 많은 버즈량을 생산해 내는 건 온리원 같았다.
생각이 깊어지려는데,
“태윤아! 산책 가자!”
연훈이 형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며 말한다.
마루에 앉아 멍하니 처마만 바라보고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도무지 우울해질 수가 없는 생활환경이다.
“네, 산책 가요.”
“뭐 간식 같은 거 챙겨갈까?”
“고구마! 감자!”
“산책이다~”
“돗자리도 챙길까요?”
“좋아 좋아~”
우린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돗자리를 챙겨서 산 뒤쪽으로 산책을 갔다.
* * *
서울에 있는 WD엔터의 사무실.
그곳은 이제 합작회사 설립에 필요한 최종 단계를 밟는 중이었다.
중소기업들이 주로 입주해 있는 오피스 단지에 수행원 셋을 대동한 채 유원동 본부장이 등장했다.
윤승연과 이현아는 거물급 인사의 등장에 절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유원동이 직접 행차한 만큼 당연히 WD엔터 쪽에서도 사장이 등장했다.
김동현 사장이 다른 사장을 대표해서 직접 왔다.
“안녕하십니까. WD엔터 대표 김동현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유원동입니다.”
두 사람은 오늘 WD엔터와 JI ENM 사이의 합작회사 설립에 대한 최종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
새롭게 세워질 회사의 이름은 넥스트 웨이브.
바다의 요정인 세이렌을 위한 파도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JI ENM과 WD엔터 사이의 합작사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JI ENM의 자회사라 보는 게 타당했다.
실제 지분구조 자체가 JI ENM이 90%를 먹고, 유원동이 6%를 먹으며, 4%가 WD엔터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 기괴한 지분구조가 가능해진 것은 WD엔터의 사장들이 딱히 회사 운영이나 지분 자체에 크게 의미를 안 두고 있었기에 가능해졌다.
김동현을 포함한 WD엔터의 사장들은 지분을 더 받을 바에야 차라리 돈을 더 받길 바랐고, JI ENM 쪽도 차라리 돈으로 지분을 사는 게 낫겠단 판단하에 가능한 한 최대로 지분을 받아냈다.
그 결과 WD엔터는 정말 유명무실한 기업이 되었고. 세이렌은 깔끔하게 JI ENM의 자회사로 이적되게 되었다.
사장들 입장에서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가 말년에 꽁돈이 한 번에 들어오게 되었으니 이득이고.
JI ENM 측에선 세이렌이라는 미래 가치가 충분한 아이템을 헐값에 가져올 수 있으니 이득이었다.
각각 변호사들을 대동한 채 왔기에 계약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마지막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후.
유원동과 김동현은 악수를 나눴다.
“우리 세이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하.”
“하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손을 맞잡고 웃는 두 사람의 사진을 기자 한 사람이 찍어갔다.
“그럼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김동현은 먼저 사무실에서 나갔다.
아직 손님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집주인이 먼저 집을 나가겠단 말한 상황인 셈이었다.
JI ENM 측 사람들은 그 모습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만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쓸 위인이 아니었다.
맞지도 않는 기업인 흉내를 내며 이 자리를 버티고 있던 것 자체가 김동현에게는 고역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김동현이 먼저 나가고.
사무실에 남은 WD엔터 쪽 사람은 윤승연과 이현아 둘 뿐이었다.
묘한 정적이 흐르는 가운데.
유원동마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던 찰나,
“그, 유원동 본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윤승연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오, 네. 무슨 말인가요?”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유원동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윤승연을 바라봤다.
윤승연은 그런 유원동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윤승연과 이현아 둘 다 며칠간 고민이 많았다.
세이렌을 위한 합작회사를 차린다고는 하지만 넥스트 웨이브란 이름 외엔 그 어디에도 세이렌을 위한 것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어느 누구도 세이렌의 입장을 대변해 주지 않을 것 같단 위기감이 들었다.
하여 되든 안 되든 일단 그녀들이 할 수 있는 한 마지막 발버둥이라도 쳐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혹시 세이렌 팀 매니저 아직 구직 중이시라면 저희를 먼저 고려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경력이 긴 것도 아니고 이쪽 관련 전공을 한 건 아니지만 지난 몇 개월간 세이렌 담당하며 멤버들과 형성한 신뢰가 두텁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둘 다 1종 보통 면허 있어서 운전에 문제없고요,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여기 저희 이력서를,”
“네. 두 분이서 세이렌 담당해 주세요.”
“……?”
“……네?”
윤승연과 이현아 둘 다 놀라서 유원동을 다시 바라봤다.
유원동은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빠르게 인사 배치 끝내고 세이렌 데뷔 준비를 해야 하는데, 각 멤버들 성향들 파악하고 계신 두 분이 업무 이어서 해주시면 저희야 고맙죠. 안 그래도 저희 측에서 부탁드릴 생각이었는데, 고맙네요. 아주 열정 있고 좋습니다! 하하하!”
윤승연과 이현아는 멍하니 서서 유원동을 바라만 봤다.
업계에서 평판이 썩 좋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들었는데.
생각 외로 쾌남 같은 구석이 있다.
“장원 님이 두 분 연락처랑 이력서 따로 받은 후에 저한테 보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유원동이 떠나고.
JI ENM 쪽 직원이 윤승연과 이현아에게 다가왔다.
“이력서는 저 주시면 되고요, 여기 서류 드릴 테니 그곳에 희망 연봉 기입하시면 됩니다.”
“……희망 연봉이요?”
“네.”
윤승연과 이현아는 별것 아닌 멘트에 입을 벌렸다.
WD엔터 입사 시 연봉은 내규에 따름, 이라는 말만 들었는데.
“와.”
“알겠습니다……!”
여긴 연봉을 정할 수 있단다.
* * *
아침밥을 먹고 점심 먹기 전까지 소화시킬 요량으로 산 뒤쪽으로 산책을 나왔다.
분명 처음 산책을 나갈 땐 별문제 없을 줄 알았다.
실제로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펼친 뒤까진 별문제 없었다.
산뜻한 봄 날씨에 광합성 하며 풀냄새 맡으니 절로 힐링이 되고 있을 뿐이었지.
문제는 주변 둘러보고 오겠다며 개인 행동에 나섰던 운이 형이 돗자리로 돌아오면서부터였는데,
“……형?”
“……운아……?”
“……?”
“그, 뒤에 주렁주렁 매달고 온 건 대체 뭐죠……?”
“……나도 모르겠어. 근데 계속 날 따라와…….”
사사삭.
사사사삭.
운이 형이 산토끼 5마리를 대동한 채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