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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40화 (140/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40화

난데없는 산토끼의 등장에 놀란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산책을 한단 소식에 함께 길을 나섰던 제작진분들도 덩달아 놀랐다.

“엄마야…….”

“세상에.”

“와…… 진짜 귀엽다.”

늘 침묵을 유지하던 작가진분들도 이리 중얼거렸고.

“허업!”

“와…….”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침묵을 유지해야 하는 카메라맨분들조차 귀여움에 신음을 흘릴 정도였다.

운이 형을 따라 졸졸졸 들어온 산토끼 다섯 마리는 털 색깔마저 가지각색이었다.

하얀색 토끼. 검은색 토끼. 점박이 토끼. 갈색 토끼. 회색 토끼.

대체 이 많은 산토끼를 어디서 꿰어온 건가 싶다.

이미 한 마리는 운이 형 품 안에 들어와 있었다.

흰색과 갈색, 검은색이 섞인 점박이 토끼였는데 운이 형 가슴에 머리를 비비며 기분 좋은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운이 형은 조심스레 토끼를 안은 채로 돗자리에 앉았고, 형들과 나는 잔뜩 경계한 채 행동을 조심했다.

문제는,

“토끼……. 너무 귀여워……. 안녕 토끼야……!”

연훈이 형 눈이 이미 돌아가 있다.

토끼의 등장에 과흥분한 상태다.

억지로 토끼를 끌어올 수 없어서 만지진 못하고 있지만, 한 마리가 허락만 해준다면 당장 온몸으로 껴안을 태세였다.

특히 관심을 보이는 건 하얀색 토끼.

하얀 토끼를 바라보는 연훈이 형 눈동자엔 은근 집착마저 보일 정도다.

문제는,

사사삭.

연훈이 형이 한 발 다가가려 하면 하얀 토끼가 풀쩍 뛰어올라 다른 곳으로 간다.

“아아……. 토끼야…….”

연훈이 형은 토끼가 자신을 무시하자 꽤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연훈이 형 말고는 다들 한 마리씩 토끼가 다가와 줬기 때문이다.

도승이 형에겐 검은색 토끼가.

동준이 형에겐 갈색 토끼가.

심지어 나한테도 회색 토끼가 와서 머리를 비볐다.

“흐음.”

난 내 무릎 위에 올라온 회색 토끼의 털을 만져줬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생긴 것도 귀여우나 이 순간 내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야생 토끼면 세균 같은 게 많지 않을까.’

지금은 귀여우니 만지고는 있다만 집 가서 옷은 필히 갈아입어야 할 거 같다.

“형들 혹시 모르니까 토끼 만진 손으로 눈이나 코 만지지 마세요.”

“오케이~”

“알았어.”

“나 손 소독제 있으니까 토끼들 보내고 난 후 임시로 그거라도 바르자.”

형들은 그리 말하며 품 안에 들어온 토끼 만지기에 열중이었다.

이게 펫 테라피인 건가.

토끼 하나 만진다고 스트레스가 꽤 풀린다.

한데,

‘얘 별로 기분도 안 좋아 보이는데 왜 계속 여기 있는 거야.’

이 회색 토끼 내가 만져주는 걸 별로 즐거워하지 않는 거 같은데 손을 거부하지도 않는다.

표정이 뚱한 것이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떠날 거 같은데.

뭐 토끼 생각까지 내가 알 수는 없는 것이므로 그냥 하던 거나 마저 했다.

토끼 분양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내려가면 찾아볼까 생각하던 중,

“나만……. 나만 토끼 없어…….”

연훈이 형은 아직도 하얀 토끼랑 내외 중이었다.

하얀 토끼는 연훈이 형 옆에 앉아서 뒷발로 귀를 사사삭 긁고 있었다.

참, 저 정도 정성이면 한 번쯤 다가가 줄 법도 한데.

그때 하얀 토끼와 내 시선이 맞았다.

이걸 동물과 시선이 맞았다고 해도 되는 건가.

암튼 하얀 토끼가 날 물끄러미 쳐다보는가 싶더니,

사사사삭!

“뭐, 뭐야.”

갑자기 내 쪽으로 돌진했다.

이내 몸통박치기 하듯 내 품으로 뛰어들더니,

“……?”

잘만 누워 있던 회색 토끼와 함께 자리 경쟁을 시작했다.

역시나 회색 토끼는 내 품이 별로였던 걸까.

별로 경쟁을 해보지도 않고 자리를 내준다.

그러곤,

“허어억! 나한테 와준 거야? 진짜로?”

연훈이 형에게로 설렁설렁 다가가 무릎 위에 앉았다.

난 회색 토끼를 보낸 후 내 품에 안긴 하얀 토끼를 내려다봤다.

‘뭐야, 얘.’

토끼가 이렇게 적극적인 건 또 처음 본다.

아니, 이게 토끼가 맞나.

이 정도면 개 아닌가.

난 토끼들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좋아하는 줄 몰랐는데.

난 회색 토끼를 만지던 손으로 하얀 토끼 등도 쓰다듬어줬다.

그러자 귀를 아래로 축 내리며 기분 좋은 듯 눈을 감는다.

그렇게 우리가 토끼와 함께 오전 산책을 즐기는 동안.

작가진분들과 카메라맨분들은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우릴 바라만 볼 뿐이었다.

* * *

토끼들과의 산책이 끝났다.

토끼들은 언제 우리와 함께 있었냐는 듯 갑자기 환영처럼 사라졌다.

하얀 토끼가 떠나는 걸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검은색 토끼, 점박이 토끼, 갈색 토끼, 회색 토끼가 떠났다.

산토끼 5인방을 보낸 후 묘한 적적함에 아쉽기도 했지만,

“손 소독제 바릅시다~”

우린 운이 형이 건네주는 손 소독제를 바르며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했다.

이후 숙소로 내려와서 손을 제대로 다시 씻은 후 옷을 갈아입었다.

이번에도 역시나 생활한복이다.

한데,

“와, 아침에 오미자 색깔 별로다라고 생각했는데 바로 오미자색이 왔네?”

업보처럼 오미자색 생활한복이 왔다.

“하하하!”

“이 색깔이 근데 실물파네. 실물로 보니까 괜찮다.”

“혈교 하급 무사 같은데요?”

“……혈교? 하급 무사?”

“그게 뭐야, 태윤아?”

“……아니에요.”

일반인들의 순수한 물음표에 잠깐 자아성찰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분명 운이 형은 알아들은 거 같은데 나랑 같은 급으로 묶일까 봐 딴청 부리는 거 같았다.

이후 점심을 먹는 시간을 가졌는데 메뉴는 아침에 정한 대로 라면이었다.

떡 사리 남는 게 있어서 떡도 넣고.

넣다 보니 김치도 조금 잘라 넣게 되고.

햄도 있길래 넣어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라면이 아닌 부대찌개가 되어버렸다.

“자 먹읍시다~”

“오오!”

“맛있겠다!”

그렇게 부대찌개 라면으로 속까지 채운 후.

마치 짠 것처럼 형들은 하나둘 안방으로 들어가 눕기 시작했다.

“나 좀 잘게.”

“봄이라 그런가. 식곤증이 심하네.”

“잘 자요.”

연훈이 형, 운이 형, 동준이 형이 안방으로 들어가고.

도승이 형은 소화시킬 겸 산을 한 바퀴 돌고 오겠다고 했다.

난 혼자 마루에 앉아 풍경을 바라봤다.

사실 회귀 후 지금처럼 평안한 날이 있었나 싶다.

산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것도.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다.

하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려 하면 드는 생각은,

‘……초동 50만. 운이 형.’

시스템이 던져준 미션이다.

“하아.”

난 마른세수를 하며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힐링을 하려고 해도 힐링이 되지 않는다.

난 다시 한번 핸드폰으로 온리원에 대해 검색해 봤다.

뭐 추가적인 정보가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

추가적인 정보가…… 올라왔다.

국내에서 규모로만 보자면 한 손가락 안에 드는 연예기획사인 Q엔터테인먼트.

아이돌 1세대부터 지금까지 1군 아이돌 배출을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회사였다.

그곳의 메인 프로듀서이자 소속 레이블의 사장인 라민과 강현성이 함께 식사하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당연히 셀카나 SNS 업로드용 사진은 아니고, 기자가 찍은 후 보도한 사진이었다.

기사 제목도 ‘온리원의 강현성과 라민의 은밀한 만남’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라민은 남자이니 당연히 스캔들 기사는 아니고.

온리원이 Q엔터의 하위 레이블이자 라민이 사장으로 있는 ‘어나더원’에 소속될 수 있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는 기사다.

내가 알 수 있는 소식을 파랑새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다.

조금만 SNS를 뒤져보니 역시나 반응들이 나온다.

-아 우리 아기들 ㅠㅠ 제발 대기업 가자 중소 가서 썩을 애들 아닌 거 다 알잖 ㅠㅠㅠ

-아 제발 라민 씨 우리 온리원 좀 거둬주세요

-어나더원 온리원 라임도 맞잖아요ㅠㅠㅠ제바류ㅠㅠㅠ

-근데 진짜 온리원이 Q엔터 가는 거면 미친 거 아님?

-나 진짜 심장 떨려……. 제발 어나더원 가자 온리원…….

-물론 소속사는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래도 애들이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할 수 있는 회사 갔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누구보다 온리원이 어나더원에 소속되길 바라는 중이었다.

어나더원은 나도 익히 아는 회사다.

요즘 잘 나가는 그룹들의 타이틀곡을 전부 다 이곳에서 제작하거나 편곡했으며.

지금은 자체적으로 아이돌 데뷔를 시키기 위해 연습생도 받는 중이라 하며.

차후 Q엔터의 캐시카우로 성장하기 위해 발돋움하고 있는 회사로 유명하니 말이다.

이미 업계 사람들은 어나더원이 가장 트렌디한 음악을 하는 걸 다 알고 있을 정도다.

실제 미래에서도 어나더원에서 나온 아이돌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유명세를 얻게 되기도 한다.

다만 이건 세간의 평가고, 동시에 미래의 일일 뿐.

아마 어나더원 내부에서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알릴 아티스트가 필요한 시점이라 판단하고 있을 거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의 이미 데뷔한 인원을 데려오는 것은 그들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보이지 않을까 우려될 거고.

새로 키워서 보내자니 그 기간 동안의 공백이 무서울 거다.

그러던 차에 매물로 나타난 온리원은 어쩌면 어나더원에게 꼭 맞는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이건……. 잘하면 성공할 수 있겠는데?’

어나더원과 온리원의 계약이 성사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거 같았다.

‘이러면 위험한데 진짜.’

온리원에게는 좋은 일이다.

만일 내가 세이렌이 아니었고, 형들의 목숨이 걸린 미션이 있지만 않았어도 분명 축하해 줬을 터다.

다만 지금은 아니다.

“하아아.”

Q엔터의 화력을 등에 업고 어나더원의 트렌디함을 장착한 온리원은 얼마나 위협적일까.

걱정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찰나,

“아직도 멍 때리는 중이냐?”

“아, 형.”

도승이 형이 산책을 끝내고 돌아왔다.

한데 산책이 내가 아는 그 산책이 아니었나 보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 걸 보니 가벼운 조깅을 뛴 모양이다.

평지가 아닌 산에서 말이다.

‘왜 운동선수가 아닌 거지?’

잠깐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으나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

“아무 생각 안 했는데요.”

“눈이 누가 봐도 생각 많은 눈이던데.”

도승이 형은 그리 말하며 생수 한 병을 깐 후 숨도 안 쉬고 한 번에 들이켰다.

“하아! 이제야 살겠네.”

다 마신 생수병을 야무지게 찌그러뜨린 후 도승이 형은 내 옆에 앉았다.

“전에 말한 팬송 생각 중이었냐?”

그때 형이 영 헛다리를 짚는다.

팬송이 아니라 온리원 생각 중이었는데.

그래도 뭐 지금은 그렇게 오해하게 두는 게 낫다.

“네. 팬송 생각 중이었어요.”

대충 이리 답하자,

“뛰면서 생각해 봤는데. 그거 만들자. 팬송.”

“……?”

난 놀라서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아니, 뛰면서 계속 생각해 봤는데 나도 만들고 싶더라고. 오늘 토끼들도 보고, 이렇게 늘어지게 잠도 자고, 좋은 시간 보낼 수 있게 된 것도 결국 다 팬들이 있어서잖아.”

도승이 형은 나름 생각 정리를 한 모양이었다.

“그냥 입 닦는 건 나도 싫더라. 뭐라도 보여주고 싶어. 팬들을 위해서.”

온리원이 무서운 행보를 보이며 화제성을 가져가는 중.

팬송을 만들자는 소식은 가뭄에 단비 같았다.

“그럼 지금 당장 만들까요?”

“……뭐 임마?”

“지금 당장요.”

“……미쳤어?”

“정상인데요?”

도승이 형은 내게 미쳤냐고 했지만 난 지극히 정상이었다.

난 제작진분들에게 문자를 한 후 곡 작업을 위한 기본 장비들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사달라는 게 아니고 원래 도승이 형이 쓰던 장비들을 산 밑 차량에서 꺼내서 가져다 달란 말이었다.

도승이 형은 그런 날 미친놈 쳐다보듯 바라만 볼 뿐이었다.

이내 30분 만에 도승이 형이 쓰는 노트북과 헤드셋, 미니 마스터키보드가 세팅되었다.

이제 막 운동 후 샤워를 끝내고 나온 도승이 형에게,

“형 곡 찍어요, 빨리. 멜로디 나오자마자 옆에서 실시간으로 제가 가사 쓸게요.”

“……너 진짜 뭐 하는 놈이냐.”

난 어서 곡을 찍어내라 말하고 있었다.

다만 시간이 없다, 시간이.

리얼리티 촬영 끝나기 전에 전부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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