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41화
박동준은 귓가에 들리는 희미한 키보드 타건음에 눈을 떴다.
몇 시간을 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잤다.
잠깐 낮잠 자겠다 했는데 사위는 이미 어두워진 후였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오후 7시.
약 4시간은 낮잠을 잔 셈이다.
오늘 밤에 잠은 다 잤다, 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일으킨 순간.
“……뭐야.”
거실 구석.
봉태윤과 강도승이 쪼그려 앉아 노트북 앞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 깼다.”
“형 깼어요?”
“뭐 하는 거예요……?”
박동준은 눈을 비비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팬송 만들고 있었는데.”
“……팬송?”
박동준은 감겨오던 눈을 부릅떴다.
봉태윤과 강도승은 두 개의 헤드셋에 소리를 출력할 수 있게 해주는 젠더를 사용한 채 음악 작업 중이었다.
혹여라도 멤버들이 깰까 나름 배려를 한 모습이었다.
“곡 작업을 했다고요?”
“다 일어나면 그때 청음회 할 생각이었어.”
“가사도 제가 뼈대만 잡고 형들이 채울 공간들 남겨뒀어요.”
“……그래?”
또 둘이서만 곡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은 것 같아 미안해지려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박동준의 시선은 자연스레 모니터 화면으로 갔다.
그는 봐도 알 수 없는 여러 화면들이 떠올라 있다.
“한번 들어봐도 돼요?”
“어.”
“헤드셋은 제 거 쓰세요.”
박동준은 봉태윤이 건네준 헤드셋을 머리에 썼다.
곡 작업이라 해봐야 본인이 잠든 4시간 정도밖에 못 했으리라.
그러니 대단한 퀄리티를 기대하면 안 될 것 같았는데,
“……오.”
생각 이상의 퀄리티였다.
“여기서 쉬면서 느낀 것들을 토대로 써본 곡이야.”
박동준은 강도승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사람이 이런 곡을 들고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와…… 진짜. 짜증 나네요.”
“뭐 임마?”
“곡 좋은데요?”
“……그래?”
자기 야식 못 먹게 하고 매일 운동하러 헬스장에 끌고 가긴 하다만, 곡 쓰는 거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하단 걸 말이다.
“근데 뭐가 짜증 나는 거야?”
“아, 그냥 일어나서 형 얼굴 보니까 짜증 났단 거였어요.”
“……이 새끼가 진짜,”
“근데 곡 좋은데요?”
“……진짜?”
박동준은 곡을 인질 삼아 강도승을 놀리기 시작했고, 세 번쯤 반복됐을 때부터 눈치를 챈 강도승 탓에 결국 곡의 후반부를 듣지 못한 채 헤드셋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 * *
강원도 홍천 시내.
그곳에 있는 오래된 레코딩 스튜디오의 알바생은 핸드폰으로 세이렌 영상을 보는 중이었다.
실용음악과 휴학생인 그녀는 하루 중 낙이 아이돌 영상을 보는 거였다.
그래도 실용음악에 많이 멀어져 있는 건 아니라는 자기합리화를 하며 하루 중 2시간만 아이돌 영상 보는 데에 할애했다.
2시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과거엔 하루 종일을 아이돌 보는 데에 할애했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요즘 그녀의 최대 관심사는 세이렌.
처음 알게 된 것은 더쇼케2를 통해서였다.
대면식 무대에서 남들은 다 검은색 덩어리 무대를 할 때 홀로 청량한 무대를 준비해 왔다.
그걸 보고 꽂힌 후부터 틈나면 세이렌 관련 떡밥을 찾는 중이었다.
‘얘들 데뷔를 해야 떡밥이 제대로 풀릴 텐데.’
아직 데뷔도 안 한 팀이다 보니 공식적으로 데뷔를 한 팀들에 비해 덕질 할 거리가 부족했다.
그래도 저번 주에 올라온 리얼리티가 꽤 재밌었기에 당장은 만족 중이었다.
‘홍천이면 이 근처에 있으려나.’
리얼리티 촬영지가 홍천이라곤 들었다.
하지만 홍천의 어디인지는 아직도 밝혀진 바가 없었다.
홍천이 큰 도시는 아니라지만 사진과 영상만 보고도 어딘지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작진 않다.
뭐 운이 좋다면 길 가다가 마주칠 수도 있겠지.
아니, 진짜 진짜 운이 좋으면 녹음하려고 지금 저 문을 열고 들어올지도 몰…….
“계세요?”
“여기에요?”
“제작진분들이 가장 가까운 스튜디오로 잡아줬다 했어.”
“오……. 약간, 감성이 옛날 감성이긴 하다.”
알바생은 눈앞의 풍경을 의심했다.
“오늘 여기 박수철로 예약되어 있을 텐데, 아닌가요?”
화면에서만 보던 우연훈이 눈앞에 나타나 말을 걸고 있었다.
뒤에는 카메라맨이 들어오고 있었고.
알바생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굳어버렸다.
사장한테서 오전에 서울에서 온 촬영팀이 레코딩 하는 거 촬영하고 간다는 소식은 들었다.
다만 언제나 그렇듯 인디 뮤지션 팀이 본인들 자체제작 뮤직비디오에 쓸 영상이나 건지려고 온 건가 싶었다.
이 스튜디오는 옛날에 지어진 이후로 내부 인테리어를 새로 안 해서 옛 감성을 그대로 갖고 있으니 말이다.
한데 세이렌이라니.
이럴 거면 옷 좀 제대로 갖춰 입고 오는 건데.
진작 알았으면 머리라도 감고 오는 건데!
“……와, 세상에.”
알바생은 입을 막았다.
“그, 예약 안 되어 있나요?”
눈앞에서 우연훈이 예약 여부를 물으며 고개를 갸웃한다.
실물로 보니 한눈미남이란 게 뭔지 체감되는 비주얼이다.
얼굴은 손바닥만 한데 그 안에 이목구비가 싹 다 들어가 있다.
주변인들 시선은 전부 다 빨아들일 것 같이 생겼다.
“혹시 예약 여부만 확인 가능할까요?”
그 옆의 이운은 실제로 보니 이토록 오묘하게 생길 수가 없었다.
방송에선 예쁘게 생긴 느낌이었는데, 실물로 보면 예쁨과 잘생김이 한데 있어서 시선을 잡아 끈다.
“와 여기 진짜 SNS에 많이 올라올 거 같은 인테리어다.”
“실제로 인디 밴드분들이 여기서 뮤직비디오 많이 찍더라.”
“아 진짜요?”
뒤쪽에 있는 강도승은 화면보다 훨씬 남자다운 얼굴이었다.
몸이 생각보다 훨씬 컸고, 손발도 모두 다 컸다.
이목구비도 방송보다 더 찐한 느낌이었고.
강도승과 인테리어를 둘러보며 대화 중인 박동준은 전반적으로 화면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실제로 보면 표정이나 행동 등이 훨씬 더 생기 있게 느껴지다 보니 귀여움이 두 배였다.
마지막 봉태윤은,
‘진짜 무섭게 생겼어……!’
방송에서도 냉한 얼굴 같다 느꼈는데 실제로 보니 냉한 걸 넘어 무섭게까지 생겼다.
물론 냉한 얼굴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있어 이건 극찬에 가까웠다.
“그……. 혹시 예약 여부를…….”
“아, 아아! 네!”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이운의 물음에 다시 그쪽을 바라봤다.
어려울 건 없는 일이다.
예약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한데,
“저기요……?”
“아, 아아! 네!”
벌써 세 번째 본인이 뭘 해야 하는지를 까먹었다.
그녀는 예약 내역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5번 방. 박수철 예약.
맞다.
“11시 박수철로 예약……. 맞습니다……!”
“아……. 네.”
그녀는 세이렌을 쭉 둘러보며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천 번 고민했다.
아이돌 만나면 사진 같이 찍어달란 요구를 다들 쉽게만 하던데, 그녀는 이상하게 입이 잘 떨어지질 않았다.
지금 촬영 중이라 괜히 이런 걸 물어보면 실례인 거 같고.
그렇다고 안 물어보자니 이런 기회가 언제 다시 올까 아깝고.
한데 막상 다가가자니 머리도 안 감고 온 본인이 한탄스럽다가.
머리 좀 안 감은 걸로 이 기회를 놓치는 건 더 바보 같단 생각을 하며.
양극단의 선택지를 한 100번쯤 오간 끝에.
그냥 보내주려 했는데,
“……호오옥시. 그, 저희를 아세요……?”
“……!”
우연훈이 먼저 말을 건네왔다.
그녀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우연훈만 바라봤다.
“아, 그, 모르신다면, 그냥 이대로 지나가겠습니…….”
“알아요! 세이렌 진짜 좋아해요!”
그녀는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녀 입에서 세이렌이란 단어가 나온 순간,
“……!”
“와!”
“저희를 아세요……?”
“대박……!”
오히려 세이렌 측이 더 놀란다.
특히 냉한 얼굴로 미동조차 않고 가만히만 서 있던 봉태윤이 잔뜩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본 게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녀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세이렌 멤버 다섯의 시선을 가만히 응시했다.
‘10년 치 운 다 썼다…….’
10년간의 불행을 각오하며 그녀는 이 순간의 행복을 즐겼다.
* * *
세이렌이 스튜디오에 찾아온 그다음 날 밤.
파랑새에는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한 낡은 레코딩 스튜디오의 로비에 세이렌이 한 여성과 함께 단체샷을 찍은 사진이었다.
일반인 여성의 얼굴은 스티커로 가려져 있고 세이렌의 얼굴만 온전히 나온 이미지였다.
계정주인이 공유를 해도 된다고 허락했기에 이 사진은 파랑새를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한데 팬과 함께 찍은 첫 사진임을 사람들도 모두 알아서 그런가.
세이렌이 굉장히 어색하게 앉아 있단 걸 모두가 눈치채고 있었다.
-아닠ㅋㅋㅋ근데 얘들아 왜 너네 낯가리냐ㅋㅋㅋㅋ
-동준이 저렇게 다소곳하게 앉은 거 처음 봄ㅋㅋㅋㅋ
-봉떤남자가…… 수줍게 웃고 있네요……?
-우리 말랑복숭아 왤케 신나떠?
-공녀님 눈에서 광기 빠진 게 오랜만인데.
-우리 깜고가 눈을 저렇게 착하게 뜰 수 있다고요?
팬과 찍은 첫 사진에서 팬뿐만이 아닌 아티스트까지 함께 긴장하고 있단 게 느껴지는 사진이었다.
더쇼케2로 돌판에서 순식간에 인지도를 쌓아 올린 팀이지만 아직 데뷔도 하지 못한 신인임이 느껴져서일까.
-얘들 너무 귀여움ㅠㅠㅠ
-팬이랑 실제로 처음 만나본 거 같음
└경연 말고는 진짜 처음 아닐까?
└아 미친 알고 나니까 더 귀여움;;
사람들은 두 번은 오지 않을 순간임을 알았기에 해당 사진을 본인들 피드에 리트윗 해두었다.
다만 이쯤에서 드는 의문이 있었는데,
-근데 얘들 레코딩 스튜디오 왜 간 거임?
-녹음할 거 있음?
-데뷔곡 녹음함?
└ㄴㄴ 데뷔곡을 저렇게 낡은 스튜디오에서 할 리 없음.
└그럼 뭐임?
세이렌이 이 시점에 저 스튜디오를 갈 일이 뭐가 있냐는 거다.
-저기 어디임?
└홍천이라고 뜨는디?
└리얼리티 찍다 간 거임?
└ㅇㅇ그럴 듯
사람들은 하나둘 그림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이내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는데,
-애들 설마 팬송 만드나
정확도가 굉장히 높은 결론이었다.
* * *
세이렌의 팬들이 팬송이 만들어질 것을 기대하며 SNS에서 추론을 주고받는 동안.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순백색의 모던한 건물 최상층엔 강현성이 앉아 있었다.
강현성뿐만이 아닌 온리원의 멤버들 모두가 그곳 소파에 앉아 초조한 얼굴로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은 Q엔터의 사옥.
그중에서도 라민이 작업실 겸 사무실로 쓰는 공간이었다.
어나더원의 건물이 따로 있지만 작업실과 사무실은 아직 이전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그들의 만남은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또한 기사를 흘릴 요량으로 장소선택을 한 것도 있었다.
이전에 식사 자리를 가진 것 하나만으로도 화제성을 만들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Q엔터 사옥에 온리원 멤버들이 들어오는 걸 기자들이 미리 찍어갈 수 있도록 소스를 흘렸다.
그리고 지금.
강현성을 비롯한 온리원 앞엔 다섯 장의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업계 평균보다 훨씬 나은 정산비율입니다. 계약 기간은 7년이고요.”
“네…….”
“조항 하나씩 뜯어봤는데…… 진짜 좋네요.”
강현성을 제외한 온리원의 다른 멤버들은 계약서 내용에 이미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다만 강현성은 예외였는데,
“일단 한 번 더 변호사분에게 계약서 검토 부탁드리겠습니다.”
“끝까지 꼼꼼하네요.”
“편의 봐주신 건 감사하지만 그래도 데인 게 많아서요.”
“괜찮아요.”
강현성은 계약서를 봉투에 담아 챙겼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계약서에 문제없으면 바로 도장 찍을게요.”
“빈정 안 상했으니까 괜한 걱정 마요.”
“……네.”
강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화를 마쳤다.
“아, 그 데뷔일은 언제쯤 생각하고 있는지 미리 말해줄래요? 그래야 우리 쪽도 그거에 맞춰서 마케팅 계획도 짜고 예산도 편성하니까요.”
강현성이 떠나기 전.
라민이 강현성에게 물었다.
강현성은 주저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입을 뗐다.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알려드릴게요. 아직 생각 정리가 안 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