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42화
“저기서부터 뛰어와 봐요. 형들.”
“저기서부터?”
“너무 먼데, 태윤아?”
“뛰다가 지치겠어.”
“스프린트 하는 느낌으로 햄스트링을 통제하면 되는 건가?”
“……그냥 뛰어오라고 하면 좀 뛰어와 줘요.”
한적하기 짝이 없는 강원도 홍천 한 산골짜기의 오전.
난 카메라 한 대를 들고 형들과 자체 제작 뮤직비디오를 촬영 중이었다.
이틀 전에 작곡과 작사를 끝냈고, 어제 레코딩까지 초고속으로 마쳤으며, 지금은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다.
사흘 만에 이 모든 걸 전부 끝내고 있다니.
내가 생각해도 경이로운 스케줄이었다.
다만 하다 보니 작곡과 작사가 빨리 끝났고, 하다 보니 레코딩도 순식간이었으며, 뮤직비디오도 크게 어려운 구도는 없었기에 쉽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뮤직비디오의 컨셉은 봄 소풍을 함께 나왔다는 컨셉이다.
우린 오랜만에 생활한복을 벗고 사복을 입은 채 뮤직비디오 촬영 중이었다.
청춘 영화처럼 다 같이 달려오는 씬도 찍고.
돗자리 펼쳐두고 김밥 먹는 씬도 찍었다.
산 안에는 작게 흐르는 계곡이 있었는데 거기 빠지는 장면도 원치는 않았지만 얻게 됐다.
빠진 사람은 다름 아닌 동준이 형이었는데,
“……강도승. 죽여 버릴 거야.”
“네가 거기 어정쩡하게 서 있던 거잖아.”
“강도승!”
“이게 형 이름을 함부로,”
“아아아악!”
도승이 형이 모르고 동준이 형을 툭 치는 바람에 동준이 형이 빠진 거였다.
사실 동준이 형이 진짜 어정쩡한 위치에 장난치듯 서 있었던 게 문제였다.
나름 도승이 형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는 일이지만 워낙 동준이 형이 분기탱천하고 있어설까.
대충 받아주며 화를 날릴 수 있게 해줬다.
난 그 장면도 놓칠세라 카메라로 전부 남겨두었다.
이후 운이 형이 잔디 위에 누워 있는 장면도 찍었는데,
“좋은데요?”
“……그냥 누워만 있는 건데?”
“잘생겼어요.”
“잘생긴 척을 딱히 하고 있진 않는데…….”
사람이 청초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가.
자연이랑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그다음은 연훈이 형.
형은 누가 봐도 꽃이랑 어울리는 이미지다.
해서 꽃이 만발한 지역으로 가서 동영상을 찍었다.
산에 핀 들꽃 옆에 연훈이 형이 쪼그려 앉아 턱 아래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었다.
“어때?”
“잘 나와요.”
“진짜?”
“네.”
뭐 구도나 그런 걸 딱히 고민할 것도 없었다.
대충 찍어도 잘 나오고, 연훈이 형도 카메라 앞에서 굳는 타입이 아니라 포즈도 자연스럽다.
이후 도승이 형은 형의 강력한 요청 탓에 나무에서 턱걸이를 하는 걸 찍었고.
동준이 형은 그런 도승이 형을 골려주려고 나무 위에 올라타려 했다가, 완력이 부족해 결국 밑으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장면을 찍었다.
나름 알차다면 알찬 뮤직비디오 촬영이었다.
마지막은 나였는데,
“태윤아! 저기! 좀 더 일몰이 보이는 방향으로.”
난 일몰을 배경으로 찍는 영상이었다.
“여기요?”
“응!”
“거기 서 있어!”
형들이 다 같이 카메라를 들었고 난 혼자 일몰 스팟에 가서 서 있었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가서 서 있었는데 막상 일몰이 잘 보이는 곳에 가 있다 보니 상념이 마구 떠올랐다.
‘이제 오늘이면 리얼리티 종료네.’
리얼리티 방영은 아직도 3주나 남아 있지만, 실제 촬영은 오늘까지다.
‘이제 데뷔할 시간이겠구나.’
지금까지도 바쁘게 달려왔지만, 앞으로는 더 바쁘게 달려가야 할 거다.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는데,
“와, 태윤아. 화보야 화보.”
“뭐야?”
“잘생겼네.”
“왜 갑자기 멋있는 척을 하는 거야 쟤는.”
“……?”
생각이 많아져서 허공 보며 멍 때리고 있었는데 그게 동준이 형이 보기에는 멋있는 척하는 걸로 보였나 보다.
“멋있는데 왜 그래!”
“태윤아! 멋있어! 계속 그러고 있어!”
그런 동준이 형을 연훈이 형이 타박했고, 운이 형은 나한테 멋있으니 계속 그러고 있으라 한다.
난 아무 생각이 없는데 형들이 유독 더 과몰입한 거 같다.
그러던 중,
“차라리 이걸 여기 세우고…….”
연훈이 형이 삼각대를 설치한 후 거기에 카메라를 픽스하더니,
“다 같이 가자!”
형들을 끌고 내 쪽으로 달려왔다.
“태윤아!”
연훈이 형이 달려와서 내 품에 안겼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내 뒤에 와서 섰고.
동준이 형은 앞에 쪼그려 앉았다.
뜬금없이 단체 샷이 되어버렸지만,
“갑자기 왜 온 거예요?”
“그냥 이 일몰샷은 다 같이 찍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카메라 봐. 환하게 웃자.”
이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우린 마지막 샷으로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는 걸 찍은 후,
“가자~”
“이제 집에 가자~”
뮤직비디오 촬영을 종료했다.
* * *
뮤직비디오 촬영 종료 후 바로 리얼리티 촬영이 종료됐다.
“지난 일주일간 이 산에서 푹 쉬다 갔길 바랄게요.”
“네에~”
“고생 많았고, 우린 더 좋은 기회로 또 봅시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린 클로징 씬을 딴 후 제작진분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걸로 리얼리티도 완전 종료였다.
“여러분!”
“지난 일주일간 잘 지내셨어요?”
때마침 윤승연과 이현아도 우리를 픽업하러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간만에 본 얼굴이라 그런가.
형들 모두 웃는 낯으로 두 사람을 반겨줬다.
“일단 내려가요. 차 밑에 대기 시켜 뒀어요.”
우린 산 중턱에 주차시켜 뒀다는 차량을 확인했다.
다만,
“……잠시만요.”
섣불리 올라탈 수가 없었다.
분명 우리가 타는 차는 연식이 10년도 훨씬 넘은 차량이었다.
탈 때마다 차가 망가지고 있는 게 느껴지던 그런 위험한 차량.
한데,
“뭐죠……. 이게?”
“우리가 타는 승합차는 어디 갔어요……?”
난생처음 보는 새 차가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연예인이 타는 차.
벤, 이라고도 부르는 그 차.
검은색에 커다랗고 단단해 보이는 차였다.
“회사에서 차량 지원이 나왔습니다……!”
“허억……!”
가장 먼저 감격한 건 동준이 형.
그간 막내라인으로서 가장 자주 3열 찌그러진 좌석에 꾸역꾸역 올라탔던 멤버다.
그랬기에 이 커다란 차가 더 감격스럽게 다가왔나 보다.
더 이상 찌그러진 채로 차량에 올라탈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하아.”
나도 이 차가 너무 좋았다.
다른 형들도 이 차를 맘에 들어 하는 분위기였다.
“진짜 대기업으로 이적됐구나…….”
“대박이야…….”
다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는데.
차량에 올라탄 후 홍천을 빠져나오는 고속도로에 올라타자,
“그리고 가서 바로 숙소 이사도 해야 하거든요? 일단 가구나 그런 것들은 아예 새 걸로 짜서 새 숙소에 설치해 뒀는데, 여러분들 개인 짐은 저희가 따로 건들 수가 없어서 다 그 자리에 있어요.”
“새 숙소요……?”
“지금 쓰는 곳은 동준 씨 개인 소유의 임시 숙소 아니었어요?”
“맞아요.”
“거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입지 좋은 곳에 숙소 잡아뒀어요.”
“와.”
새 숙소까지 준단다.
이후 서울에 도착한 후 곧바로 짐을 싸 들고 들어가 본 새 숙소는,
“와 좋다!”
“오오오!”
“여긴 방이 몇 개야?”
“여기도 큰 방 두 개, 작은 방 하나요.”
“좋다.”
예상보다 더 좋은 컨디션이었다.
강남 한복판이라는 미친 입지의 아파트는 아니었지만, 이곳도 신축에 보안 좋은 곳이었다.
오히려 강남이 아니다 보니 사람이 덜 몰려 있어 안전할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우린 거실에 나란히 앉아서 새 숙소도 둘러봤다.
티브이부터 냉장고, 소파, 테이블, 침대, 옷장, 진열장, 그 밖의 가정집이라 하면 있어야 할 것들 전부가 싹 다 있었다.
형들은 다들 멍한 얼굴이었다.
새 차량부터 새 숙소까지.
리얼리티 종료 후 갑자기 세상이 변한 느낌이겠지.
나도 그렇다.
갑자기 이런저런 혜택이 쏟아지니 이게 현실인가 싶다.
다만,
‘유원동이……?’
내가 아는 유원동이 돈을 이렇게 펑펑 쓸 리가 없다.
물론 유원동 돈은 아니고 회삿돈이겠지만,
‘놀라운데?’
그래도 놀라운 건 놀라운 거다.
온리원 앨범 찍을 때마다 원가절감 소리 듣던 양반인데.
실제 우리 회식 한 번을 안 쏴주던 사람이고.
이 사람은 수치와 실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임원인지라 어떻게든 나가는 돈 줄이고 들어오는 돈 뻥튀기할 생각만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아직 돈이 들어오지도 않는 우리를 위해 새 차에 새집을 해준다?
‘뭐지?’
내가 너무 꼬인 걸 수도 있지만 일단 의심부터 들었다.
해서,
“혹시 이 집 회사 소유 자가인가요?”
“자가요?”
“네.”
“아, 네! 맞아요. 회사 명의로 숙소로 쓰려고 집을 아예 샀다고 들었어요.”
이 집이 회사 소유의 재산인지 물으니 맞다고 한다.
보통 연예인 숙소를 매매하는 경우는 잘 없다.
전세로 살다가 중간에 계약 종료 하고 다른 집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즉 그 말은,
‘그냥 회삿돈으로 투자한 거네.’
이건 우리를 위한 복지보단 투자에 좀 더 가까운 느낌이다.
지출로 잡힌다기보단 회사 재산 목록 중 하나로 잡힐 거다.
그래도 뭐 새집 해준 건 고맙다.
그렇다면 이제 차량을 왜 해줬냐는 건데,
“혹시 이 차량 어디에서 가져오셨어요?”
“어디요?”
“그, 처음 이 차량 인수받았던 장소요.”
“아! 그 JI ENM 주차장이요. 거기 가면 이런 차 엄청 많던데요?”
“아하.”
대충 알겠다.
이것도 유원동이 사장으로 앉을 합작회사의 돈으로 나온 게 아니라, 그 모회사인 JI ENM의 장비 지원 느낌으로 나온 거다.
즉,
‘한 푼도 안 썼네?’
역시는 역시다.
그래.
뭐 한 푼도 안 썼지만 어쨌든 자신이 가진 역량 안으로 우리 편의를 챙겨준 거니까.
이것도 능력 있는 경영인의 마인드긴 하다.
다만,
‘왜 쎄하지.’
뭐랄까.
자꾸만 가성비를 추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지금이야 숙소나 차량 같은 가성비를 추구해도 될 만한 것들이니 괜찮게 느껴진다만,
‘흐음.’
이게 가성비를 챙길 부분에서만 가성비를 챙기는 건지, 냅다 모든 구석에서 가성비를 챙기려는 건지 감이 잘 안 온다.
* * *
강남역 4번 출구.
역과 다소 떨어진 대로변의 한 건물.
총 11층짜리 꼬마건물인 그곳은 현재 옛 간판을 떼고 새 간판을 붙이는 중이었다.
JI ENM에서 이번에 구매한 건물이자, 세이렌의 소속사 ‘넥스트 웨이브’가 사옥으로 사용할 건물이었다.
“건물 인테리어 싹 해서 그런가. 보기 좋군요. 하하하!”
“여기 1층은 카페로 만들어서 세이렌 팬분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예정입니다.”
“아, 그래요?”
“네네.”
“그것도 수익이 나오겠네요?”
“아, 그렇긴 하죠? 근데 보통은 그냥 팬서비스 차원으로 하는 거긴 한데,”
“가격을 조금만 올려도 괜찮겠죠?”
“……평균 카페 가격 정도로 받는 걸 추천드리긴 합니다만,”
“하하! 그래도 우리 세이렌인데, 조금 더 얹어서 팔아도 충분하죠!”
“……그렇죠. 세이렌 충성층에게 큰 지출은 아닐 테니까요.”
유원동은 건물 외관을 보며 흡족한 듯 웃었다.
“이제 여기서 우리 같이 실적도 잘 내고 매출도 잘 올려서 한번 승승장구해 봅시다!”
“네. 저도 분골쇄신하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좋아요!”
유원동에게는 이 건물과 세이렌이란 상품이 그를 더 높은 곳에 올려다줄 사다리로 보였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건 딱 두 가지뿐이었다.
실적과 매출.
어차피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은 없다.
딱 5년.
5년 안에 제일 그룹의 중심으로 들어갈 계획이다.
그러니 5년 동안 누가 보더라도 헉 소리가 나올 만한 실적을 낼 생각이었다.
물론 그는 아이돌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아직도 이 바닥을 하나의 산업이 아닌 어린 애들 놀이터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