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45화 (14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45화

강현성에게 전화가 왔다.

형들이랑 다 같이 거실에 앉아서 팬송과 자체제작 뮤직비디오 반응을 확인하던 중이었는데.

난데없는 강현성의 전화에 나보다 더 놀란 건 형들이었다.

“현성 선배님이잖아?”

“엥?”

“뭐야?”

“이분이 왜 갑자기 이 시간에 전화를 해?”

“설마 도승이 형 생일 축하 전화?”

“……그게 맞겠냐.”

형들은 강현성의 뜬금없는 전화에 저마다 반응을 보였다.

다만 이 반응들이 긍정적인 반응들이라 보기엔 어려웠다.

다들 놀란 건 맞다만,

‘묘하게 껄끄러운 느낌이네.’

반기는 눈치는 아니었다.

형들도 다 나름대로 우리들의 대중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있을 테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온리원과 우리 사이에 남아 있는 라이벌 구도를 읽었을 테니 말이다.

더쇼케 때에야 프로그램상 어쩔 수 없는 구도였다 치고 별로 불편한 거 없이 넘겼지만, 이젠 진짜 커리어가 걸렸고 그룹의 명운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마 무의식중에 다들 불편한 반응을 내보인 것이리라.

나중에 방송에서 온리원을 만날 수도 있을 텐데.

‘그때만 별일 없으면 되겠지.’

난 일단 이 정도로만 생각을 마무리한 후 다시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 고민한 끝에,

‘받지 말자.’

수신 거부를 눌렀다.

“안 받아도 괜찮아?”

“오…….”

“센데……?”

“지금 받아봐야 할 것도 없잖아요.”

“맞긴 해.”

“흐음.”

“근데 왜 전화하신 걸까?”

형들은 강현성이 왜 내게 전화를 걸었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다만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금방 유추할 수 있다.

“제이퀸이랑 진짜 콜라보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 건 거 아닐까요?”

“……그치?”

“하아…….”

“소문 진짜 빨리 나는구나.”

“소문이 빨리 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죠. 아예 기사가 쭉 깔렸잖아요. 모르는 게 이상한 거죠.”

우린 이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강현성이 왜 전화했는지는 더 토론해 봐야 얻을 게 없는 주제니 말이다.

“방금 승연 씨랑 현아 씨한테 뮤직비디오랑 음원 다 올라갔다고 문자 했어요. 아마 이제 알아서 잘 해주실 거예요.”

승연 씨와 현아 씨에게 기자 수배를 해달라는 것.

이건 어제 미리 부탁을 드려놓은 상태였다.

승연 씨와 현아 씨 두 분 다 이쪽 일 하면서 명함 주고받은 기자들에게 12시 맞춰서 연락 돌리겠다고 했고.

팬송과 뮤직비디오 만든 것을 왜 기자들에게 부탁해서 기사까지 내야 하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원동이랑 친해지기 어렵네.’

유원동과 전략적 화친을 맺어야 하기 때문이다.

원래 뭐가 됐든 예상치 못한 게 더 치명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게 선물이든, 습격이든 간에 말이다.

“이젠 기다려보면 될 거 같아요. 할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잘 되겠죠.”

“그래.”

“후우.”

“잘돼야 할 텐데.”

“잘될 테니까 걱정 마요.”

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애써 부정적인 생각들을 밀어냈다.

* * *

세이렌이 만든 팬송 <항해>의 뮤직비디오는 항해, 라는 제목과 달리 배경이 바다가 아닌 산이었다.

다만 어쩔 수 없던 것이 해당 뮤직비디오는 리얼리티 촬영 중에 찍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이렌은 이를 오히려 역이용하여 뮤직비디오를 제작했다.

산 중턱에 모여앉은 세이렌 멤버들은 바다가 인쇄된 해외 잡지를 펼쳐놓고는 그곳을 가리킨다.

그리곤 항해 시 필요한 체크리스트, 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와 하나씩 항목들을 채워넣기 시작한다.

각 멤버별로 하나씩 적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화면에 끝까지 잡히진 않았다.

그 뒤 본격적인 팬송 반주가 들려오며 뮤직비디오의 본편이 시작된다.

아련하고 밝은 분위기의 피아노 사운드가 들리고.

그 위로 통통 튀는 미림바 사운드가 에코가 걸린 채 울려 퍼진다.

미디움 템포보다 살짝 느린 속도감에 듣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마음이 포근해지게 만드는 도입부 반주였다.

도입부는 봉태윤이 불렀다.

-이 깊은 밤, 주윌 둘러봐도 온통 까맣지

-그런 날, 단번에 찾아준 건 분명 너였지

-이 순간, 난 너에게로 다시 또다시,

-Ooh── Ooh── Oh

봉태윤은 나무 위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기도 하고.

산을 부지런히 오르기도 했으며.

카메라를 바라보며 평소와 달리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기도 했다.

색감과 구도가 워낙 자연스럽고 포근해서일까.

어딘가 사적인 느낌마저 드는 영상이었다.

그다음은 박동준이 노래를 이어갔다.

-들어봐, 지금 이 노래가 누굴 향한지

-너와 난,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사이지

-두고 봐, 누가 뭐래도 난 끝까지

-Ooh── Ooh── Oh

박동준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봉태윤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곤 나무를 올라가다가 아래로 주르륵 미끄러지기도 했으며.

산을 마구 뛰어다니며 해맑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박동준 특유의 통통 튀는 분위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영상이었다.

그다음 파트는 이운이었다.

비슷한 멜로디가 반복되었던 봉태윤, 박동준 파트와 달리 이운 파트부터는 음계가 마이너로 전환되며 좀 더 아련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Oh you and me 넌 나에게 포근한 품

-오랜 밤 기다려온 유일한 꿈

-그런 널 향해 가는 길은

-언제나 꿈결같이 빛나는 곳

이운의 아련하고 고운 음색이 마이너 음계와 딱 달라붙어 사람들 뇌리에 깊이 각인되는 파트였다.

이운은 산마루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봤고.

턱을 괸 채 지그시 카메라를 바라보기도 했으며.

눈웃음을 지으며 어딘가를 가만히 응시하기도 했다.

그 뒤.

마이너로 전환시킨 음계가 다시 밝아지더니.

우연훈이 카메라 앞에 불쑥 등장했다.

-So I will sailing for you!

-이 깊은 바다 끝에

-sailing for you

-높은 파도와 풍랑을 헤치고

-sailing for you

-네가 있는 그곳으로

-나의 품, 나의 꿈을 향해

곡의 분명한 하이라이트 구간이었다.

우연훈이 나왔으니 하이라이트 구간은 전부 우연훈이 부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하이라이트 구간의 두 번째 부분은 강도승이 나와서 불렀다.

-You are my compass

-길 잃은 항해 끝에

-I will never give up

-네가 있다면

-keep sailing

-네게 닿을 때까지.

맑고 높은 우연훈의 음색 뒤에 낮고 무거운 강도승의 음색이 붙어설까.

같은 하이라이트임에도 극명한 차이가 보였고,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파트로 남게 되었다.

또한 곡에서 노래를 잘 부르지 않는 강도승이 이번엔 랩이 아닌 노래를 부름으로 인해 팬들은 더더욱 이 파트를 주목했다.

위와 같은 구성으로 2절과 3절까지 흐르고.

뮤직비디오의 마지막에 갔을 때.

봉태윤이 노을이 지는 언덕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주가 서서히 잦아들며 모든 소리가 뮤트되는가 싶더니,

-하하하!

-다 같이 가자!

-붙어, 붙어!

음악이 아닌 현장음이 들려오더니 봉태윤 곁으로 세이렌의 멤버들이 몰려갔다.

그렇게 봉태윤 단독샷이던 그림이 세이렌 단체샷으로 변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탁.

영상은 끝이 났다.

* * *

팬송 겸 자체제작 뮤직비디오가 끝난 후.

세이렌 팬덤은 한 차례 난리가 났다.

기습적으로 나온 선물이라기에 크게 고퀄리티의 무언가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항해>라는 곡은 기대 이상의 퀄리티였고 자체제작 뮤직비디오조차 은근히 프로 느낌이 나는 편집이었다.

-ㅠㅠㅠㅠ아 진짜 노래 너무 좋음ㅠㅠㅠ

-아…… 봉떤남자…… 나 진짜 미치게 함…….(활짝 웃는 봉태윤.gif)

-이게 어딜 봐서 사람이죠 그냥 댕댕이 아닙니까(뛰어다니는 박동준.gif)

-우리 말랑 복숭아 햇빛 듬뿍 받고 싱싱해진 거 보시라고요ㅠㅠㅠㅠ(태양빛에 눈을 살짝 찌푸리는 우연훈.gif)

무엇보다 거의 영상 화보집 수준으로 만들어진 장면들에 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체제작인 거 같은데 대체 이런 구도와 촬영을 어떻게 해낸 건가 싶었다.

-이거 촬영 대체 누가 한 거임????

-애들 4명씩 나올 때마다 태윤이 없는 거 보면 거의 태윤이가 촬영한 거 같음

-전문 카감이 아니라 태윤이임?

-ㅇㅇ 그런 듯

-ㅅㅂ 나 죽음;;

-아 이건 진짜 사랑임;;;

-연훈이 가족도 연훈이 이렇게 사랑스럽겐 못 찍을 듯;;

사람들은 이 영상의 촬영 담당자가 봉태윤이라는 것에 크게 반응했다.

-강도승 음색 진짜 미침;;

-이운 지그시 쳐다보는 거 너무 고자극임 (카메라 바라보는 이운.jpg)

-도승이 나무에서 턱걸이 하는 건 진짜 왜 넣은 거얔ㅋㅋㅋㅋ(턱걸이 하는 강도승.gif)

-진짜 최고의 선물임

-이런 선물 해주는 아이돌이 어디 도 있냐고요ㅠㅠㅠ

이후 영상과 노래의 킬링포인트들을 더 분석하며 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

-??이거 생일날 내보내자 한 거 유원동 아이디어였다는디?

-????

-원동이가??

세이렌의 팬송과 뮤직비디오의 기습적인 홍보가 시작되었고, 그 홍보의 중심이 유원동이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 * *

강도승의 생일인 5월 5일.

유원동은 회사로 출근한 후 잔뜩 쌓인 모니터링 보고서와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법정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젯밤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유원동을 비롯한 홍보팀 팀원들은 출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결과로만 따지자면 좋은 일이다.

손해 본 게 하나도 없다.

세이렌의 기습적인 팬송과 뮤직비디오 오픈에 인터넷이 뜨겁게 달궈졌고, 이는 거대한 홍보 효과를 낳았으며, 세이렌에 대한 아이돌 팬덤들의 관심도를 집중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유원동이 원했던 대중적 인지도는 아니었다만 그래도 아이돌 판에서의 인지도는 한 차례 더 크게 상승한 상황이었다.

심지어 이 모든 일정과 계획 등이 유원동의 기획이었다고 기사에서 밝혀졌다.

다만,

‘무슨 개소리야 이게…….’

이게 유원동의 속마음이었다.

기사 전문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세이렌에 관한 내용이긴 했다.

하지만 마지막.

[팬송과 뮤직비디오 오픈 일정 등에 대해서는 넥스트 웨이브 유원동 대표와 논의하여 결정지었다고 세이렌 관계자는 전달했다.]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기사 내내 세이렌에 대한 칭찬만 하다가 왜 갑자기 이런 불필요한 정보가 말미에 포함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누가 한 짓이야, 이거.’

본인이 제이퀸과의 콜라보로 반응을 떠본 것처럼, 이것도 누군가의 큰 그림이 담긴 기사들이란 거다.

저런 쓸데없는 정보가 담긴 문장을 기사 마지막에 배치한 것부터.

마치 짠 것처럼 뮤직비디오가 공개가 되고 난 후 약 10여 분 만에 기사들이 올라온 것까지.

누군가가 사주해서 만들어낸 기사라는 냄새가 솔솔 났다.

이걸 기뻐해야 할지 아닐지 유원동은 가늠하지 못했다.

대외적으론 그의 실적이 벌써 사람들 눈에 띄기 시작했으니 이건 좋다만,

“후우우.”

그가 모르는 암중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불안했다.

무엇보다,

‘이게 왜 이렇게 반응이 좋은 거야.’

본인이 추진한 제이퀸과의 콜라보는 반응이 미온적인데 그가 손대지 않은 프로젝트의 반응이 폭발적이라는 것이 불쾌했다.

그때,

똑똑.

누군가 유원동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유원동은 심란한 마음을 숨기고 입을 뗐다.

“저, 대표님. 지금 시간 잠깐 괜찮으신가요?”

“무슨 일이죠?”

“세이렌분들이 잠깐 면담 가능하냐고 연락이 와서요.”

“아…… 세이렌이요?”

유원동은 그 순간 직감했다.

이 모든 소동의 중심이 어디인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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