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46화
유원동은 잠시 고민했다.
뜬금없는 세이렌의 면담 요청이라니.
이걸 받아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단이 잘 안 섰다.
머릿속은 복잡한데 아직 그중 아무것도 정리가 안 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왜 나한테 이러는 거야……?’
유원동으로서는 지금 이 모든 상황이 굉장히 곤란스러웠다.
일단 이런 기사들을 내보낸 게 세이렌이란 것에는 어느 정도 확신이 있다.
세이렌이 아니고서야 이런 기사를 낼 만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타이밍 좋게 지금 등장한 것도 중요한 심증이기도 했고.
아무튼 세이렌이 이 기사를 낸 건 맞을 텐데, 왜 본인이 요청한 적도 없는데 본인을 칭찬하는 기사를 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고민을 거듭해 봐야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었다.
유원동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침음을 삼켰다.
이내,
“들어오라고 하세요.”
세이렌의 면담을 허락했다.
* * *
“지금 대표님이 면담 가능하다고 하셔서요. 이제 들어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데스크에 앉아 있는 직원분의 말에 형들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세요.”
넥스트 웨이브 직원이 물러가고 나와 형들은 일제히 사장실이 있다는 10층으로 올라갔다.
“후우우. 잘할 수 있겠지?”
도승이 형이 답지 않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걱정 마. 괜찮을 거야.”
그런 도승이 형을 운이 형이 위로해 줬다.
동준이 형은 별생각이 없어 보이는 표정이었고, 연훈이 형은 살짝 결연해 보였다.
“걱정할 거 없어요. 그냥 저희는 아티스트로서 할 말 하고 나오면 되는 거니까요.”
오늘 이 면담의 목적은 큰 게 없다.
‘유원동이랑 친해져야지.’
일차적 목표라 하자면 유원동과 친분 관계를 다지는 거다.
물론 진짜 친해질 생각은 아니다.
나이 오십 넘은 아저씨랑 친해져서 뭘 한단 말인가.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거고,
‘기 싸움을 좀 해야 하는데…… 선 안 넘을 수 있을까…….’
선 넘지 않고 유원동과 기 싸움을 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그 기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고.
지금 유원동은 실적에 눈이 멀어 있는 상태다.
자기 손으로 만들어낸 프로젝트로 성공을 거둬서 승승장구하고 싶어 한다.
뭐 일 열심히 하려는 거야 좋다.
다만,
‘방향이 잘못됐어.’
이건 유원동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지 않은 방향이다.
그러니 한 번쯤 이야기를 해야 한다.
때마침,
띵-
엘리베이터가 10층에 멈췄다.
“가죠.”
형들과 나는 10층에서 내려 사장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문을 똑똑 두드리니,
“네~ 들어오세요~”
유원동의 사람 좋은 목소리가 들린다.
우린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유원동은 자신의 오피스 안으로 들어오는 세이렌을 바라봤다.
언제 봐도 느끼는 거지만 유원동 입장에선 핏덩이밖에 안 되는 나이였다.
가장 나이가 많다는 우연훈도 스물세 살.
심지어 막내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자신의 조카뻘밖에 안 되는 아이들과 일적으로 엮이자니 본능적인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오는 길 안 힘들었어요? 주스? 콜라? 물? 뭐 마실래요?”
“아, 음료는 괜찮습니다.”
“아, 그래요? 다른 친구들은요?”
“저희도 다 괜찮습니다.”
“하하, 그래요. 그럼 난 커피 한 잔 마실게요.”
유원동은 서글서글한 미소를 유지하며 거래처 사장들을 대한다는 마인드로 세이렌을 대했다.
세이렌이 대표실 접견용 소파에 주르륵 앉고.
유원동은 상석에 앉았다.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먼저 입을 뗀 건 유원동이었다.
“새 숙소 마련해 준 건 어때요? 살 만해요?”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이런 식의 비즈니스적인 대화가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
해서 일상적인 이야기로 포문을 연 뒤 스몰토크를 하는 쪽으로만 대화를 유도할 생각이었다.
“숙소 티브이 제가 직접 모델 골라서 구매하라고 지시한 거예요~ 우리 넥스트 웨이브 대표 아이돌들인데 모니터링은 잘해야 하잖아요. 큼지막하고 좋죠? 하하하!”
유원동이 티브이 이야기로 대화를 빼려는 순간,
“저희가 오늘 찾아온 건 티브이 모델 이야기하려고 온 건 아닙니다, 대표님.”
봉태윤이 먼저 입을 뗐다.
가장 어린 멤버가 가장 비즈니스적으로 나오니 유원동은 잠시 당황했다.
“그…… 저희가 온 건 이 기사 때문인데요.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연훈이 핸드폰을 꺼내 연예면 기사 하나를 보여줬다.
제이퀸과의 콜라보 기사였다.
“아 콜라보요. 왜요? 관심 있나요? 관심 있다면 회사 차원에서 바로 추진해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추진할까요?”
유원동은 콜라보가 좋아서 한달음에 달려온 건가 싶어 잠시 화색을 지었다.
잠깐이나마 이 어린 애들을 진짜 비즈니스 상대로 생각한 본인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는데,
“아뇨. 콜라보와 같은 커다란 안건에 저희 의견이 왜 반영되지 않은 건지 여쭤보려고 온 거였습니다.”
이운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뗐다.
그 말에 유원동은 일차적으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콜라보와 같은 큰 안건에 당사자인 세이렌을 배제하고 의사결정을 내렸다.
이건 사실상 아티스트 기만이다.
일단 잔머리를 굴려봤다.
‘이걸 우리가 직접 추진한 거라고는 말 안 했지?’
약간 모호하게 들리긴 하겠으나 이 기사들을 회사에서 보도자료 뿌린 거라곤 말하지 않았다.
아직 빠져나갈 구석은 있겠다 싶어서 말을 돌리려 했는데,
“앞으로는 이런 의사결정에 저희가 배제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저희 커리어니까 저희가 직접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강도승이 입을 떼며 유원동의 입을 막아버렸고.
“사실상 이 콜라보가 저희 데뷔 앨범이 될 뻔한 거잖아요. 다음부턴 저희 의견 좀만 더 수용해 주세요.”
박동준도 입을 떼며 한 번 더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가만히 듣던 유원동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콜라보에 대해 세이렌을 배제한 것은 분명 회사 측의 실수가 맞다.
다만,
‘……예의가 왜 이리 없어……?’
그걸 전달하는 태도가 잘못되었다.
어찌 되었든 상관은 유원동이다.
나이로 봐도 한참 어른이고.
직장 상사이자 어른에게 의견을 전달하기에는 그 태도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해서 본격적으로 반론을 펼칠 생각으로 입을 뗐다.
“일단, 콜라보 건은 저희와 관련이 없는 건이에요. 아마 기자가 SNS상에서 저희 홍보팀이 제이퀸의 게시물을 공유한 걸로 흥미성 기사를 남발한 거라 생각합니다.”
본격적인 반론을 할 거라면 이 콜라보 기사가 회사가 뿌린 기사가 아니란 걸 말하고 가야 한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지만 그런 거야 중요치 않다.
지금 이 애들한테 언쟁에서 지면 앞으로도 의사 결정에 있어 이런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도록 이 자리에서 분위기를 잡아둬야 한다.
이제 이다음 말로 상관에게 이런 식으로 본인들의 말만 쏟아내는 건 옳지 않다.
전후 관계를 확실히 알고 좀 더 부드러운 스탠스로 나와야 한다.
콜라보 건은 추진하지 않는 걸로 할 테니 일단 돌아가라.
데뷔 앨범은 회사에서 잘 준비해 줄 테니 걱정 말아라.
라는 말을 순차적으로 할 생각이었다.
봉태윤이 입을 떼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 회사에서 콜라보와 관련이 없었군요? 그것참 다행입니다, 대표님.”
“……음?”
일장연설을 시작하려던 유원동은 봉태윤의 한마디에 말이 턱 막혀 버렸다.
“사실 제이퀸분과의 콜라보를 회사에서 직접 추진한 거라면 그것만큼 암담한 일도 없는 거거든요.”
유원동은 본인도 모르게 욱하고 성격이 올라올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왁킹이라는 댄스와 세이렌이란 그룹이 가진 정체성 사이에는 넘지 못하는 장르적 벽이 분명하거든요.”
왁킹……?
유원동에게 제이퀸은 그저 춤 잘 추는 유명 댄서 정도였다.
그는 왁킹이 뭔지 몰랐다.
“만일 진짜 회사에서 제이퀸과 저희와의 콜라보를 기획하고 그 전초전으로서 보도자료를 뿌린 거라면 저희로서는 회사가 저희에 대해 조금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유원동은 봉태윤을 말없이 노려봤다.
지금 봉태윤의 저 화법은 노리는 바가 분명한 화법이다.
‘어린놈이…… 날 먹이네……?’
본인이 거짓말한 걸 알고 면전에 대고 욕을 하는 중인 거다.
다만 여기서 발끈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유원동은 화를 억지로 내렸다.
일단은 화제를 돌리는 게 먼저다.
적당한 게 뭐가 있을까.
화제도 돌릴 수 있고 역으로 세이렌도 당황시킬 수 있는 것.
‘아, 그게 있었지.’
코너에 몰린 유원동의 사고는 편협해지고 말았다.
결국 그는 최악의 수를 꺼내 들게 되었는데,
“……지금 세이렌 생일 축하 기사, 거기에 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던데. 저는 생일날에 팬송을 공개하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없거든요. 이 기사…… 세이렌분들이 부탁한 건가요?”
이 말을 하는 순간 본인도 아차 싶었다.
하지만 뱉은 말을 되돌릴 순 없었다.
이미 말은 뱉어졌으며,
“아! 그거요.”
봉태윤은 이때다 싶었는지 다시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 * *
원하던 그 말이 유원동 입에서 직접 튀어나왔다.
이 찬스를 그냥 흘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저희가 직접 기자님들께 특별히 부탁드린 거였습니다. 사실 오늘 여기 온 것도 저희가 기자님께 직접 부탁드려서 그 기사 냈다는 걸 알려드리려고 온 것도 있거든요.”
유원동은 지금 이 기사가 자신을 공격하는 기사인지 응원하는 기사인지 감을 못 잡고 있었을 거다.
자신에게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해 준 것은 맞지만 자신이 그런 지시를 내린 적이 없는데 마치 본인이 기획한 일인 마냥 기사가 나왔으니 말이다.
손해 본 것은 없지만 굉장히 찜찜해하고 있었을 거다.
그러니 심리적으로 조금만 위축이 되어도 아마 이 기사 관련한 질문이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진짜 물어보네.’
정말 오늘 대화 중에 그 기사 관련한 이야기가 나왔고, 난 준비한 대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서 저희 숙소랑 차량도 새로 해주고, 저희 신경 많이 써주는데, 너무 저희가 잘하는 걸로만 일이 포장되길 바라지 않았거든요.”
난 유원동의 눈을 마주 보며 차분하게 입을 뗐다.
“그래서 조금 억지스럽긴 하지만 회사가 도와줬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돌린 거였습니다. 회사가 잘되어야 저희도 잘되는 거니까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유원동은 감이 잘 안 올 거다.
말로만 듣는다면 좋은 일을 함께 나누자는 이야기로 들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유원동쯤 되는 눈치의 인간이 내가 말 밑에 다른 뜻을 품고 있단 걸 모를 리가 없을 테니 아마 지금 꽤 혼란스러울 거다.
해서 조금 더 노골적으로 내 말의 본뜻을 말해줬다.
“앞으로도 저희는 저희 일을 열심히 잘해내겠습니다. 회사에서도 지금처럼만 지원해 주시면 감사할 거 같아요. 그러면 저희도 인터뷰나 방송에서 회사에서 너무 잘 케어해 준다고, 대표님이 너무 배려를 잘해주신다고 늘 이야기하고 다닐게요.”
아마 이쯤이면 유원동은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았을 거다.
“아…… 지금처럼요?”
지금처럼만 해달라.
이 말의 뜻은 곧,
‘아무것도 하지 마라.’
이거다.
지금처럼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너네는 우리가 가는 방향에 맞춰 화력지원만 하란 거다.
그러면 너네 실적은 우리가 알아서 챙겨줄 테니까.
유원동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다만 금세 표정을 바꾸더니,
“하하하, 회사가 해준 게 뭐가 있다고요. 저희가 유능한 아티스트를 만나서 복에 겨운 일만 생기네요.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이리 말한다.
정말 기분이 좋은 걸까?
설마.
‘눈꺼풀에 경련 나겠네, 저 아저씨.’
화가 나도 아주 단단히 난 건지 눈꺼풀 아래가 살살 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