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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50화 (150/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50화

이운은 넥스트 웨이브 회사 지하에 있는 연습실에 앉아 몸을 풀고 있었다.

사실 굳이 연습을 할 만한 건 없으나 숙소에만 있기엔 몸이 뻐근해서 나온 거였다.

데뷔가 곧 다가올 거란 게 실감이 나서 그런가.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잠이 들 수도, 편히 밥을 먹을 수도 없는 상태였다.

물론 일상생활도 안 될 정도로 심한 상태는 아닌지라 멤버들에게 티는 안 내고 있으나,

“후우우…….”

그도 본인이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딱히 연습할 만한 안무가 없기에 기본적인 스트레칭을 하고 유명 댄서들의 안무를 카피하고 있었다.

타이틀곡이 어떤 곡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트렌디한 코레오가 무엇인지 체크는 꾸준히 해둬야 한다.

즉석으로 안무를 짜기보단 여러 데이터를 쌓아두고 그것들을 조합하거나 변형시키는 게 더 결과물이 좋았으니 말이다.

‘발목이. 조금 시큰거리네.’

최근 무리를 해서인지 발목이 조금 시큰거렸다.

다만 춤을 추다 보면 이 정도 통증들은 일상적이었다.

에어파스를 뿌린 후 다시 한번 동작들을 점검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춤을 추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해지곤 했다.

제 딴에는 쌓인 감정을 춤으로 풀어놓는 게 습관이 되어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운은 본인의 속마음을 자주 터놓는 편이 아니었다.

이전 회사에서 데뷔조에 떨어졌을 때에도.

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연습생이 먼저 데뷔를 하는 걸 보게 됐을 때에도.

어이없는 술수에 걸려 데뷔가 무산됐을 때에도.

그는 큰소리 한번 내지 않았고, 신세 한탄을 하지 않았다.

그냥 자기 때가 아닌 거라고.

뭐든지 운명이 있는 거고, 흘러가는 대로 살면 되는 거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며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다만 풀지 않으면 넘어가지지 않는 마음들도 있는 법이다.

그 마음들을 애써 잊기 위해 춤에 더 몰두했던 거 같다.

그때,

지이잉.

이운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한창 춤에 열중하고 있던 이운은 잠시 노래를 중단했다.

발신자를 보니,

-YM 엔터 황준결

“얘가 왜…….”

별로 달갑지 않은 이름이었다.

YM엔터는 이운과 강도승에게 상처만 남은 회사였다.

그쪽 인연들과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둘 다 노력 중이었는데,

“하아.”

세이렌이 최근 유명해지기 시작하니 이런저런 사람에게서 연락이 다 오고 있었다.

설마 이쪽에서도 올까 걱정했는데,

“진짜…… 변하질 않네, 얘들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나 보다.

이운은 전화를 받았다.

-와, 개오랜만이다. 야 이운. 잘 지냈냐?

그러자 듣고 싶지 않았던 목소리가 반가운 척 이운에게 말을 건다.

“아, 응. 오랜만이네…….”

이운은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답했다.

* * *

6월 데뷔를 제안한 후 강현성에게선 한참 동안 답이 없었다.

6월 데뷔가 본인들에게 뭐가 득이 될지를 계산 중일 터다.

강현성 입장에선 크게 메리트 있는 제안이 아닐 거다.

7월 중순에 데뷔를 한다면 어나더원 정도의 회사에서라면 꽤 퀄리티를 높여서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굳이 한 달이나 시간을 당겨서 퀄리티를 떨어뜨리는 모험을 하고 싶진 않을 거다.

그럼에도 강현성이 섣불리 이 제안을 거절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강현성도 차라리 한 번쯤 붙을 거면 데뷔부터 붙는 게 낫다 생각 중이려나.’

나랑 비슷한 그림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왕 붙을 거면 데뷔 때부터 붙어서 화제성 끌어올리자는 그림.

다만 그게 7월이 아닌 6월이 되니 조금 고민스러운 것 같았다.

나도 처음엔 온리원과는 무조건 데뷔일이 안 겹치는 게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괜히 같이 나왔다가 한쪽이 앨범 퀄리티가 압도적으로 좋으면 다른 쪽은 그대로 몰락이니까.

하지만 올해 안에 초동 50만을 찍어야 하는 현재, 안전한 길만 골라가선 절대 닿지 못하리란 계산이 섰다.

지금 우린 신인치고 눈에 들어오네, 정도가 아닌, 와 애네 뭐야? 미쳤는데? 라는 소리가 나와줘야 된다.

다만 이런 소리가 나오려면 그 시기에 활동하는 모든 그룹들 중에서 우리가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여야 하는데,

‘쉽지 않겠지.’

앨범 퀄리티를 무한정 높이기만 하는 걸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단계다.

앨범 퀄리티만이 아닌 외부적인 조건이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

아예 그 시기에 돌판 소비자들의 모든 눈과 귀를 우리에게 전부 집중시켜야 하니 말이다.

그러려면,

‘최대한 빨리. 더쇼케2 구도를 그대로 살려서 다시 나와야지.’

더쇼케2라는 잘 차려졌던 그 밥상을 그대로 다시 끌고 와줘야 한다.

다만 아무리 맛있어도 같은 맛이라면 소비자들은 두 번은 안 먹는다.

좀 더 자극적으로, 좀 더 구성을 다채롭게 해서, 이전의 맛이 잊히지 않은 빠른 시기에 다시 갖고 와야 한다.

그러니 올 상반기에 온리원과 우리가 같은 주에 데뷔를 한다면,

‘화제성은 확실하겠지.’

분명 더쇼케2에서 붙었던 그 불길이 다시 한번 타오를 거다.

심지어 이번엔 데뷔를 두고 하는 경쟁이 아닌 커리어를 두고 하는 본게임 시작이니 이전보다 더 자극적이게 느껴질 테고.

문제는,

‘너무 도박이긴 해.’

이 플랜은 온리원과 우리가 그 시기 돌판을 다 잡아먹겠다는 보장이 없는 한 위험하다.

화제성이 애매하게 있거나, 더쇼케2때보다 분명하게 발전된 모습을 못 보여주면 아 얘네 거품이었네 소리 들으며 몰락할 게 뻔하니 말이다.

유입을 긁어모으긴커녕 붙어 있던 팬덤까지 꺼뜨려 버릴 수 있다.

다만 성공한다면,

‘누구 하나가 지는 게 아니라 둘 다 유입 박박 긁어올 수 있어.’

신인치고 선방했다가 아니라 그해 남돌들을 다 이길 수도 있다.

현재 앨범 초동 백만 장을 넘겨버리는 1군 남돌들은 죄다 군대에 갔거나 유닛으로 쪼개졌거나 해외 투어만 도는 상태다.

즉 남돌 비수기란 말이다.

이 해에 온리원과 우리가 다른 아이돌들을 다 잡아먹는 압도적인 느낌으로 같이 데뷔를 하게 되면,

‘……1년 안에 초동 50만 가능할지도 몰라.’

비어 있는 자리를 꿰차면 기간제 1군일지라도 해볼 수 있을 거다.

실패 시 리스크는 크지만, 성공 시 보상도 크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거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강현성이 다시 입을 뗀다.

-7월 동시 데뷔는 안 됩니까?

역시나 6월 데뷔가 걸리나 보다.

“저흰 6월에 할 겁니다.”

난 다짜고짜 6월로 밀고 갔다.

7월로 가면 안 된다.

7월까지 가게 되면 동시 데뷔를 한다 하더라도 온리원 좋은 꼴만 보여주게 된다.

사실 넥스트 웨이브 끼고 어나더원이랑 비슷한 퀄리티의 앨범을 낼 자신이 없으니 말이다.

한 달 반 정도의 기간 안에 타이트하게 준비해서 나와야 온리원과 우리 둘 다 비슷한 퀄리티로 나올 수 있을 거다.

강현성도 이걸 알고 있으니 7월로 가자고 하는 거다.

다만 6월 동시 데뷔를 나도 양보할 수 없다.

제발 6월에 하잔 말을 해주길 바랐는데,

-아쉽지만 그러면 동시 데뷔는 없겠네요. 저흰 7월 중순에 하겠습니다. 먼저 활동하세요.

고집이 황소고집이다.

더쇼케2로 뽑아먹을 수 있는 마지막 화제성까지 싹 뽑아낼 마지막 기회인데.

이렇게 놓치긴 아쉽다.

그 아쉬움이 꽤 커서일까,

“……그냥 한번 져주면 안 됩니까.”

나도 모르게 아쉬운 소리가 나왔다.

-……뭐요?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갈 줄은 나도 몰랐다.

강현성과 나 사이에 한동안 어색한 침묵만 오갔다.

이대로 전화를 끊어버릴까 한 백번 고민했다가 그냥 뒀다.

여기서 전화 끊으면 그건 진짜 쪽팔린 꼴이 될 것 같았다.

그때,

-6월 말 어때요.

“……예?”

-져달라면서요. 반만 져줄게요.

기대도 안 했는데 칭얼거리는 게 먹혔다.

한데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 건지.

“6월 셋째 주 어때요.”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중순에 가까운 날짜로 끌고 가려고 하네요.

“……네.”

-그래요. 그러면 6월 셋째 주에 합시다.

……됐다.

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근데 데뷔일을 이렇게 맘대로 정할 수 있는 거 맞아요?

그때 강현성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쪽은요?”

-우리는 데뷔일 정하는 거 우리 재량입니다.

“우린 재량껏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그렇게 되도록 해볼 겁니다.”

-…….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마요.”

-……그래요.

“그러면…….”

난 뭐라 말하고 통화를 끊어야 할지 고민했다.

사실 이런 식의 의기투합하는 통화가 될지 몰랐다.

서로 견제하고 얕은수를 던지고 정보를 떠보는……. 뭐 그런 기 빨리는 대화일 줄 알았는데,

‘그냥 협력하자는 거 이야기한 셈이니까.’

분위기가 다소 험악했을 뿐 내용은 지극히도 윈윈인 내용이었다.

해서,

“……잘 지내세요.”

-…….

“……끊습니다.”

난 답을 듣기 전에 전화를 뚝 끊었다.

뭐 이 정도면 나름 괜찮은 전화이지 않았나 싶다.

“하아아.”

통화를 끊고 나니 급 피로가 몰려온다.

일단 저질러 놓긴 했는데,

‘6월 셋째 주면 진짜 얼마 안 남았네.’

막상 시작하려니까 머리가 아프다.

일단 예산부터 따내야 할 거 같은데,

‘예산 따내려면 앨범 컨셉이랑 곡이 다 나와야겠구나.’

완성된 게 없으니 막막하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곡 수집이 시작될 테니 아마 5월 중순 전에는 곡 픽스와 레코딩이 시작될지 모른다.

‘더쇼케2 하면서 만든 곡이랑 팬송은 내일부터 레코딩 들어가면 되겠네.’

이미 만들어졌던 곡은 리마스터링 레코딩만 하면 되니 내일 당장 들어갈 수도 있을 거다.

‘그러면 시간을 꽤 아낄 수 있겠네.’

총 일곱 곡 중 네 곡을 먼저 레코딩을 끝내두면 레코딩 작업 자체는 금방 끝날 거다.

6월 되기 전에 뮤직비디오와 포토북 촬영하고.

6월부터 사전예약 받고.

데뷔일 직전까지 어떻게든 뮤직비디오 편집과 앨범 제작까지 끝내면,

‘진짜 아슬아슬하긴 해도 되긴 되겠다.’

돈을 처바른다는 가정하에 가능할 거 같았다.

그때.

끼익.

연훈이 형 방문이 열리더니,

“태유나아아…… 태윤아…….”

잠옷 차림의 연훈이 형이 울먹거리면서 나온다.

“……형?”

뭔가 싶어서 벌떡 일어났더니,

“레이첼…… 어떻게 해……? 방금 남편이 죽었어…….”

“……?”

“이거 봐…… 내가 이번 시즌에서 제일 밀던 커플인데…….”

보고 있던 드라마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었나 보다.

“나 너무 괴로워 태윤아…….”

“아…… 네.”

“히잉…….”

난 드라마 때문에 고통받는 연훈이 형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줬다.

형은 소파에 웅크려 앉은 채로 레이첼의 남편을 애도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냐…….’

너무 연훈이 형답긴 한데 가끔 이럴 때마다 참 곤혹스럽다.

형은 겨우 OTT 어플을 끄더니,

“하아…… 나 좀 진정할 필요가 있겠어.”

“네. 제가 보기에도 그래요.”

“아이스크림 먹을까……?”

“그것도 나쁘진 않죠.”

난 연훈이 형을 달래주기 위해 냉동실로 갔다.

도승이 형 생일 카페 중에 컵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도 있었다.

흔치 않은 메뉴라 여러 개 사 온 후 냉동실에 넣어둔 상태였다.

깜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두 개를 꺼낸 후 연훈이 형에게로 돌아가는데,

[돌발 미션 발발]

‘……또?’

시스템이 또 미션을 던진다.

한데 그 내용이,

[연습실로 찾아가 이운을 만나시오.]

[성공 시, 이운의 슬럼프 방지]

[실패 시, 이운의 슬럼프 시작]

‘운이 형의 슬럼프?’

전혀 고려해 본 적 없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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