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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53화 (15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53화

“말해줘도 괜찮겠어요?”

왜 데뷔조에서 떨어졌는지를 말해준다니.

사실 걱정이 앞섰다.

괜히 잘 아문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서 덧나게 하는 꼴이 될 거 같았으니까.

하지만,

“괜찮아.”

“지난 일인데 뭐 어때.”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사실 크게 신경을 쓰진 않아. 그냥 심리적으로 불쾌할 뿐이지.”

“이제 YM엔터 연습생도 아니고 비션 데뷔조도 아니잖아.”

두 사람이 말로라도 괜찮다고 하니 일단은 안심이긴 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잘 감이 안 오긴 하는데……. 나랑 황준결 사이에 있던 일을 얘기해 보자면…….”

운이 형은 차분하게 자신과 황준결 사이에 있었던 일을 끄집어냈다.

다만 차분한 운이 형의 표정과 달리 그걸 듣는 우리들의 표정은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이유론,

“황준결이 바닥에 왁스칠을 해뒀어. 내가 연습하기로 되어 있는 시간대에.”

“……네?”

“바닥에 왁스칠을 해뒀다고요……?”

“응. 밟으면 미끄러질 수 있게끔. 좀 진하게.”

시작부터 선을 너무 세게 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일의 전말을 풀어보자면 이러했다.

황준결이 운이 형이 연습하는 시간대의 연습실 바닥에 왁스칠을 해뒀단다.

그때가 하필이면 비션 데뷔조 합류를 하냐 마냐의 기로였고.

운이 형의 경우엔 내부적으로 데뷔조로 확정이 난 분위기였다는데, 그때 왁스칠 한 바닥을 잘못 밟고 완전히 발목이 꺾여 데뷔가 무산됐다는 이야기였다,

“의사가 한 달은 깁스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격한 운동은 세 달은 금지고. 당연히 춤도 못 췄지.”

그 사이에 비션 데뷔조는 최종 확정이 났고, 그 멤버에는 황준결이 대신 끼어 있었다고 한다.

“회사 입장에선 당장 그해 상반기에 데뷔시킬 예정인데, 3달이나 제대로 연습 못 하는 멤버를 넣기가 쉽지 않았겠지. 이해는 가.”

운이 형은 이해는 간다고 했으나,

“……형, 이건 고소감이에요.”

듣는 우리가 이해가 안 갔다.

나였으면 고소하고도 남았을 사안이다.

“아니……. 하아……. 물론 운이가 비션으로 데뷔 안 해서 우리가 다 만나긴 한 거지만…… 그래도…….”

연훈이 형은 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운이 형을 바라보고 있었다.

“쓰레기인 줄은 알았는데 개쓰레기 새끼였네요.”

동준이 형은 평소보다 더 흥분하며 분노하는 중이었다.

“근데 형은 그 사람이 왁스칠 한 거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다만 화가 나는 와중에도 궁금한 건 있는 모양인지, 동준이 형은 어쩌다 왁스칠 한 걸 알게 됐냐고 질문했다.

사실 나도 이 부분이 궁금해서 질문하고 싶긴 했다.

“연습생 동기가 말해줬어. 황준결이 자기가 왁스칠 해서 내가 자빠진 거라고 데뷔조 멤버들한테 풀고 다녔더라고. 무슨 무용담 풀 듯이.”

운이 형은 담담하게 어쩌다가 이걸 알게 된 건지 말해줬다.

다만,

‘동기가 말해줬다라.’

이 부분이 살짝 걸렸다.

일단 생각이 더 이어지진 않게 이 부분은 잠깐 뒤로 미뤄뒀다.

“와, 근데 그런 짓을 해놓고 이제 와서 다시 연락을 한 거예요? 심지어 라방에서 엄청 친했다는 듯이 썰까지 풀고?”

“그러니까……. 진짜 사람이 어떻게 그러지……?”

“진짜…… 길에서 만나면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동준아, 그건 안 돼.”

“네.”

형들은 분노가 채 가시지 않는 건지 황준결에 대해 계속 이야기했다.

왜 운이 형 멘탈이 터진 건지 이해가 가고도 남는 사안이었다.

오히려 이 정도로만 멘탈 터진 게 용한 정도였다.

“고생 많았어요, 형.”

“아냐. 뭐. 다 지난 일인데.”

이제 남은 건 도승이 형의 이야기다.

우리가 말없이 도승이 형을 쳐다봤다.

“음. 이게 나도 이제 와서 말하려니까 약간 뒤죽박죽이긴 한데.”

우린 도승이 형의 이야기를 가만히 경청했다.

운이 형 이야기도 꽤 강도가 높았다 생각했는데.

“나는 곡을 뺏겼어. 윤동혁한테.”

이야기의 첫 시작부터 이번에도 선을 세게 넘었다.

“오…….”

“미친.”

“하아…….”

곡을 뺏겼다니.

이건 또 어떤 화딱지 나는 사연일지 감도 안 온다.

“YM엔터는 특기를 하나씩 뽑아서 그걸 살리는 방향으로 트레이닝을 시켜주거든. 난 거기서 작곡이 특기였어서 작곡 수업을 들었고.”

여기까진 아는 이야기다.

“그때 같이 듣던 연습생 동기들이 여러 명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윤동혁이야.”

아직까진 큰 문제는 없는 이야기였다.

다만,

“근데 윤동혁이 작곡 수업 청음회 할 때마다 내 곡에만 유독 쓴소리를 하더라고.”

듣다 보니 이건 장기적으로 이어진 가스라이팅이었다.

“윤동혁만 쓴소리를 하는 거면 모르겠는데 그때 작곡 수업 같이 듣던 애들이 다 그러니까 좀 힘들었지.”

“다 형 곡에만 쓴소리를 했다고요?”

“어. 작곡 선생님은 좋다고 하는데 동기들이 아니라 하니까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고.”

작곡 선생은 좋다는데 아마추어인 학생들이 무시한다니.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윤동혁이 친구들 매수라도 한 거예요?”

내 의심을 동준이 형이 대신 짚어준다.

“응.”

그 질문에 도승이 형은 담담한 목소리로 응이라고 말했다.

“같은 연습생이 어떻게 다른 연습생을 매수해서 나쁜 소리를 하게 만드는 거야?”

연훈이 형은 매수를 어떻게 했는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이게, 사실 매수라는 말을 쓰긴 좀 그렇긴 한 게, 그냥 제가 윤동혁 그룹에 안 끼어 있었던 탓이었어요.”

“그룹?”

“학교 가도 무리 만들어놓고 남들 무시하는 애들 있잖아요. 그런 무리였어요. 윤동혁이 대장으로 있는 무리. 전 그 작곡 클래스에 가장 늦게 합류한 연습생이라서 그 무리에는 못 들어갔고요. 사실 들어갈 생각도 없긴 했고요.”

“아아.”

연훈이 형은 이제 이해가 간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이건 매수라기보단,

“진짜 억까 당한 거네요”

자기들 무리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자기들보다 실력이 좋은 누군가에 대한 추한 열등감이었을 거다.

“나는 분명 내 곡이 좋은 거 같은데, 남들은 다 아니라 하고, 그러다 선생님은 따로 불러서 나한테 곡 좋다고 말해주고. 암튼 미칠 거 같더라고.”

이럴 경우엔 선생님 말만 믿는 게 가장 좋겠으나 청소년기의 남학생이 그럴 수 있을 수가 없다.

당연히 동기들의 의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마음이 흔들릴 거다,

“근데 곡을 뺏겼다는 건 뭐예요?”

“아, 그게. 사실 난 원래 데뷔조 떨어진 상태였어. 작곡 멤버로 나랑 윤동혁 둘 중 하나를 계속 고민했다는데 윤동혁을 최종 픽스 했다고 하더라고.”

“아, 그래요?”

“근데 알고 보니 윤동혁이 내 곡 베낀 곡으로 피디님한테 점수 따서 들어간 거였더라고.”

“……네?”

“말 그대로야. 나중에 들어보니까 원래는 나랑 윤동혁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고 있었대. 그때 윤동혁이 자작곡을 담당 프로듀서님한테 들고 가면서 이 곡 내가 썼으니 나 뽑아주면 이걸로 타이틀곡 완성해 보겠다, 라고 했대. 그 곡이 좋아서 담당 피디님은 윤동혁 데뷔조로 픽스한 거였고.”

“근데 그 곡이 형이 쓴 곡을 베낀 거고요?”

“응. 몇 개 소스는 다르지만 곡 진행이랑 멜로디가 90퍼센트 이상 동일했어.”

“형은 그걸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그때 내 편 들어주던 작곡 선생님 덕에 알게 됐어. 작곡 선생님이 비션 타이틀곡 블라인드 투표 하는 곳 들어가서 곡 들어봤는데, 내가 쓴 곡이랑 너무 똑같은 곡이 있어서 물어보니까 윤동혁이 쓴 곡이었다 하더라고.”

“와…….”

“그 곡으로 데뷔조 들어가게 된 거라는 이야기도 그때 같이 들었다고 하셨고.”

듣는 내내 어질어질한 이야기였다.

비션 데뷔조 시절이라면 아직 미성년자였을 시절일 텐데.

아니, 어쩌면 어리니까 악한 걸지도 모르겠다.

자기 목표를 위해선 윤리의식이 옅어질 수도 있는 나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건 선을 넘었다.

“작곡 선생님 통해서 항의는 안 했어요?”

“했지. 근데 이미 데뷔조 다 나왔고 연습까지 하는 마당에 내가 들어갈 틈이 없더라고.”

“아…….”

“그리고 내 곡을 베낀 건 맞지만 사실 그 곡이 정규 음원으로 발매된 곡도 아니고, 그냥 연습용으로 만든 곡이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표절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결국 회사에선 윤동혁 손을 들어준 거네요.”

“그렇지……. 그 일로 작곡 선생님도 현타 왔는지 회사 때려치우셨다더라고.”

“하아…….”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괜히 무거운 침묵만 고여갔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에게 쉽지 않은 과거가 있으리란 걸 모르진 않았다.

YM엔터에서 WD엔터까지 흘러들어오려면 온갖 일이 다 있어야 했을 테니까.

한데 이런 사정이 있었을 줄은 전혀 몰랐다.

“흐음…….”

“이걸 진짜 다 까버릴 수도 없고…….”

“하아…….”

맘 같아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걸 다 까고 비션 머리채 잡고 싶지만, 사실 그건 세이렌도 자멸하는 꼴이다.

어쨌던 비션은 선배 그룹이고, 망조가 들긴 했으나 팬덤이 꽤 큰 그룹이다.

함부로 덤볐다간 밟히는 건 우리다.

사실상 할 수 있는 전부는,

“그냥…… 비션 쪽에 딱히 관심 안 주고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네요.”

“그러니까요.”

일명 ‘먹금’을 시전하는 거다.

“맞아요. 그냥 지금처럼 신경 안 쓰고 살면 돼요. 라이브 방송에서 계속 우리 얘기 이상하게 해도 뭐…… 나중에 심해지면 회사 통해서 YM엔터 쪽에 의견 보내는 게 가장 깔끔할 거 같고요.”

“저희가 오늘 이 얘기 한 것도 괜히 우리 팀 간에 오해 쌓일까 봐 한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일단 얘네가 어떻게 나오는지 저희도 좀 지켜볼게요. 팀에 피해 줄 정도로까지 커질 거 같으면…… 그땐 저희가 개인적으로 나서서 이야기해 보든가 할게요.”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이리 말하며 일단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나도 먹금 하며 가만있는 게 가장 안전하고 쉬운 길임을 모르진 않는다.

이런 류의 카더라 수준의 루머들과 궁예글은 관심 안 주면 알아서 사그라들 테니까.

황준결과 윤동혁이 평생 라방에서 형들 이야기할 리도 없을 테고.

아마 세이렌이 잘 될 거 같으니까 지금 좀 불안해서 몇 개월 반짝 이러는 거 같은데, 이 이상 하면 뇌절이 된단 걸 본인들도 알 거다.

다만,

‘이렇게 넘어가는 게 최선일까……?’

먹금이 안전한 방법은 맞으나, 최고의 방법은 또 아닐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 예시로,

‘운이 형한테 왁스칠 한 거 말해준 동기랑 도승이 형 편들어준 작곡 선생님. 이 사람들은 지금 뭐 하려나.’

이 일들은 제삼자인 목격자들이 분명한 일이다.

그 목격자들 통해서 객관성 확보하여 공론화시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건,

‘그 사람들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더 있지 않을까?’

우리가 굳이 나설 것 없이 이 일을 해결할 수도 있을 것 같단 거다.

악한 인간은 특정 몇몇에게만 악한 게 아니다.

아마 살면서 만나온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악한 짓을 했을 거다.

아마 작곡 선생님과 운이 형 동기도 저 둘에게 알게 모르게 쌓인 게 있으니 그 순간에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의 편에 서준 걸 테고 말이다.

즉,

‘다른 쪽에서 먼저 터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굳이 우리를 걸고넘어질 게 아니라, 다른 쪽에서 터질 수도 있다.

그걸 유도할 수 있는 작은 계기만 생겨준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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