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54화
YM엔터테인먼트의 그룹 비션.
그곳의 숙소 분위기는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션은 올해가 데뷔 4년 차다.
커리어 하이 찍으며 승승장구 해야 할 연차에 그룹은 이미 망조가 들어 있었다.
잦은 사건 사고로 있던 팬들 떨어뜨리며 활동하다 보니 어느새 초동과 팬싸컷 등이 눈에 띄게 낮아진 상태였다.
그러니 숙소 분위기가 박살 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탓일까.
비션의 멤버들은 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여자를 계속 만나며 불필요한 스캔들을 낸다든가.
클럽을 밥 먹듯이 다니며 인터넷에 클럽 목격썰 같은 걸 뿌리고 다닌다든가.
심지어는 눈이 풀린 채 숙소에 들어와서 죽은 듯이 잠만 잔다든가.
외부와 내부 모두 망조가 들어 서서히 곪아가는 그룹이었다.
그곳 멤버 황준결과 윤동혁은 서로를 좋아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죽이 잘 맞는다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둘만 남아 있을 땐 곧잘 대화를 나눴다.
“야. 황준결.”
“뭐.”
“너 이운한테 전화했냐?”
“어.”
“뭐래?”
“뭘 뭐래야 걍 암 말도 안 하고 끊었지. 넌 강도승한테 전화했냐?”
“문자했어.”
“등신아 전화하라 했잖아.”
“너 같으면 전화할 엄두가 나겠냐? 이운은 착해 빠진 새끼고 강도승은 눈 돌아가면 큰일 나는 새끼야.”
“X발 그래서 어쩔 건데. 걔네랑 어떻게든 풀어야 할 거 아니야.”
“안다고. 그니까 닥치고 좀 있으라고.”
황준결과 윤동혁은 각각 이운과 강도승에게 빚이 있다.
황준결은 이운의 발목을 꺾은 덕에 데뷔했고, 윤동혁은 강도승의 곡을 표절함으로 데뷔했다.
“얘네가 눈 돌아가서 과거사 싹 풀어버리면 그땐 진짜 완전 나락이다.”
“안다고 했잖아. 적당히 좀 앵앵대.”
해서 그 과거를 어떻게든 무마할 생각이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게 맞다.
아니, 용서를 빈다, 가 아닌 자비를 구걸해야 할 정도의 사안들이다.
하지만 이 둘은 그러지 못했다.
이운과 강도승에게 오랜 시간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인간들이라 그런 것도 있었으며.
“X발 넌 그 새끼들한테 미안하다 말하는 게 가능해?”
“X같지.”
“WD엔터인가 뭔가 암튼 개X만 한 곳 가서 알아서 인생 말아먹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떡상할 줄 알았냐고.”
겨우겨우 그 열등감을 이겨내고 두 사람을 데뷔조에서 치웠다 싶었는데 다시 세이렌이라는 그룹으로 더쇼케2에 기어 나오더니 이젠 대박을 낼 조짐까지 보이고 있으니, 그 열등감이 훨씬 강화된 상태이기도 했기에 더더욱 용서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화해하고 얘네 화제성 좀 뺏어와야 우리도 뭐 앨범을 내든 뭘 하든 할 거 아니냐고.”
이 둘에겐 이운과 강도승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이유가 꽤 많았다.
과거를 덮기 위함도 있었으나 망조가 든 그룹의 마지막 불씨라도 붙여보기 위함이었다.
이게 그룹을 생각하는 갸륵한 마음은 아니고,
“저 발정 난 놈들이랑 약쟁이 새끼들 재계약 때 떨구고 우리끼리라도 살아야지.”
어떻게든 화제성 유지하며 상품으로서의 가치만 증명한다면 재계약 후 두 번째 기회를 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이건 본인들의 연예인 생명 연장을 위한 발버둥인 셈이다.
“너 그리고 라방에서 이운 얘기 싸하게 하지 말라고 했지. X발 슬슬 비계에서 너 좀 싸하다고 말 나오는 거 아냐?”
“알아.”
“적당히 좀 해. 친한 척하라 했지 은근히 까내리라고는 안 했잖아.”
“야, X발 나만 그러냐? 니도 강도승 X나 쎄하게 말해서 말 나오고 있어.”
“……나도?”
“내 이름만 서치하지 말고 니 이름 좀 서치해 봐 등신아. 함부로 서치했다가 표절 논란 글 볼까 봐 쫄리냐?”
“……닥쳐.”
“암튼 너나 나나 이제 라방에서 은근히 얘네 까내리는 거 그만하자. 하아……. 친목해 보려고 해도 맘 같지가 않네.”
라방에서 이운과 강도승과 친한 척하며 조금씩 화제성 뺏어 먹기의 빌드업을 쌓으려 했지만 이상하게 입만 떼면 말이 비뚤게 나갔다.
아마 오랜 기간 쌓인 열등감의 발로였을 테지만 이 둘은 그 사실을 끝까지 모른 척했다.
“……잘하자, 제발 좀.”
“……니나 잘해.”
그 둘은 끝까지 서로 탓을 하며 의미 없는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 * *
황준결과 윤동혁 탓에 마음이 복잡하던 그 날.
세이렌 멤버들의 마음이 복잡한 것과는 관계없이 더쇼케2의 외전이자 리얼리티인 세이렌! 건강해져라의 마지막 화는 방영되었다.
세이렌! 건강해져라의 마지막 화는 세이렌이 만든 팬송 <항해>의 작업기와 뮤직비디오 촬영기가 담겼다.
그 덕일까.
세이렌 팬덤은 또 한 번 들썩이며 잔뜩 풀린 클립들을 맘껏 즐겼다.
-ㅋㅋㅋㅋㅋ아니 저거 턱걸이 하는 거 도승이가 떼 써서 넣은 거였음?
-태윤이 단호하게 디렉팅하는 거 개웃김ㅋㅋㅋㅋ
-ㅅㅂ…… 난 여기 누움(꽃받침하는 우연훈.jpg)
-태윤이 왜이렇게 잔잔하게 주접을 떠는 거임?(이운 외모 칭찬하는 봉태윤.mp4)
-박댕준아ㅋㅋㅋ왜 도승이 턱걸이하는 나무에 따라 올라가냐ㅋㅋㅋㅋ
-마지막 엔딩씬 연훈이가 즉석으로 찍은 거였음?
-ㅠㅠㅠㅈㄴ 청춘영화 재질 아니냐고요ㅋㅋㅋㅋ
-아 제발 리얼리티 천년만년 해주세요
-마지막화인거 안 믿김;;
사람들은 세이렌 리얼리티를 즐거워하는 만큼 이번 회차가 마지막 회차임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 촬영을 끝으로 리얼리티는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종영 기념으로 애들이랑 토끼들 다 같이 있는 사진 보고 가세요(세이렌과 토끼 단체사진.jpg)
└아 이거 진짜 레전드였음;;
└귀신 같이 자기랑 닮은 토끼들이랑 같이 앉아있음
사람들은 리얼리티 방영 중 팬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던 클립이나 사진 등을 다시 끌어올리며 여운을 만끽했다.
그리고 이 조짐을 심상치 않게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종영했는데도 열기가 안 식는데, 뭐 얘들 모아서 라방이라도 할까요?”
더쇼케2의 메인 피디 박수철이었다.
* * *
황준결과 윤동혁이 우리 형들을 까내리든 말든.
시간은 알아서 흘러갔고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나가서 레코딩을 우선 시작했다.
기존에 더쇼케2를 통해 공개했던 곡들의 리마스터링이다.
그때에도 음원이나 곡의 퀄리티가 나쁘진 않았으나 다시 한번 녹음하여 재출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 과정 중에 도승이 형 귀에만 들리는 아쉬운 점들도 일부 수정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애써 덮으려는 듯 다들 일에 매진했다.
“태윤아. 여기 너 음색 좋으니까 뒷부분 목을 너무 누르듯이 부르지 말고 숨을 파! 하고 뱉듯이 불러봐. 지금 너무 좋아. 잘하고 있어.”
난 토크백 버튼을 누르고 디렉팅을 주는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형은 누구보다 더 열심히 레코딩 작업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우리 팀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이기에 그런 것도 있지만,
‘마음 복잡할 땐 일이 최고지.’
나도 저 마음을 모르진 않다.
“네. 한번 다시 해볼게요.”
난 도승이 형의 디렉팅에 맞춰 다시 레코딩을 시작했다.
이미 한 번 불러봤던 곡들이라 그럴까.
레코딩 작업은 하루에 한 곡씩 빠르게 마무리되어 갔다.
기존 곡들 레코딩이 끝난 후부터는 새로운 곡 청음회가 열렸다.
한 번 원동이랑 기 싸움을 해놓아서일까.
A&R 팀은 우리에게 매우 협조적이었고, 곡이 수집될 때마다 우리를 회사로 불렀다.
그렇게 앨범 작업은 착착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앨범 아트워크의 전체적인 톤앤매너도 정하고.
앨범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큰 메시지도 정하며.
우리의 세계관 파일을 A&R 팀에게 공유해 주며 이런 이야기들을 담은 가사를 선보이려 한단 것도 전달해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요일이 되었을 때.
“음? 현아 씨한테 전화가 왔네?”
점심 이후 다시 회의실에 들어가 앨범 회의를 하던 우리는 간만에 온 현아 씨의 연락을 받았다.
당연히 연훈이 형을 통해 들어온 연락이었다.
연락의 이유는 명확했는데,
“아, 더쇼케 계정으로 라이브 방송을 한단 거죠? 외전 종영 기념으로요?”
라이브 방송을 한단 거다.
외전까지 종영이 된 기념으로 말이다.
“오오!”
“좋다!”
“팬분들이랑 요즘 직접 소통하는 게 부족하긴 했어.”
형들도 이 라이브 방송이 반가운 모양이었다.
최근 알게 모르게 황준결과 윤동혁으로 다들 기분이 안 좋은 거 같았는데,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아, 근데 라이브 방송에서 할 콘텐츠나 최초 공개 할 만한 소스들 좀 전달해 달라고요?”
물론 그냥 즐기고 오기만 하면 되는 놀이는 아니고, 당연히 이 또한 일의 연장선이었다.
“일단 라이브 방송은 이번 주 금요일 저녁인 거죠? 기존 더쇼케 방영 시간이던? 아 네네. 알겠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까지 라이브 방송을 위한 준비를 마쳐야 할 거 같다.
“얘들아! 잠깐만 우리 라방 관련해서 이야기 좀 하자!”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중구난방으로 이어지고 있던 앨범 회의를 잠시 정리했다.
우리가 마구잡이로 꺼냈던 아이디어들을 빠르게 핵심만 정리하여 타이핑한 후 바로 라이브 방송 회의로 넘어갔다.
“최초 공개 할 만한 소스가 뭐가 있을까?”
“앨범 스포를 좀 하란 거죠?”
“그것도 맞고, 근데 난 개인적으로 앨범 스포에 플러스알파로 다른 것도 있었으면 좋겠어.”
“흐음.”
형들과 나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아이디어들을 마구 던졌다.
브레인 스토밍이 우리의 회의 방식으로 굳어진 지는 오래였다.
회의 후 나온 결과만 축약하자면,
“그러면 앨범 컨셉 스포일러 조금이랑 팬덤 이름 발표?”
“아, 그리고 날짜도 약간 느낌만 볼 수 있게 언급해 봐요.”
“오케오케. 근데 절대 과하면 안 된다.”
“네네~”
앨범 스포 조금과 팬덤명 발표, 데뷔일 은근하게 티 내기 정도였다.
팬덤명은 전에 회의를 통해 나온 게 있었기에 어차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었다.
어쩌면 이번 라이브 방송이 적절한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동시에,
‘잘하면…… 황준결이랑 윤동혁도 날릴 수 있지 않을까.’
내 개인적으론 조금 다른 기대도 품고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깜짝 라이브 시작!
-비션 : 치즈 냥이 와써 히히
모니터링을 위해 알림 설정을 해뒀던 게 때마침 울렸다.
난 말없이 알림을 옆으로 밀어 삭제했다.
* * *
서울에 있는 한 4년제 종합대학의 캠퍼스.
책가방을 메고 과잠을 입은 채 그곳을 걷는 한 남성은 핸드폰 화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혹여 누구와 부딪히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을 정도로 핸드폰 화면에 몰두한 듯했으나 아슬아슬하게 장애물들을 피해가며 걸었다.
“현중이 형!”
그때 멀리서 그 남자를 향해 달려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남자와 같은 과잠을 입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오, 뭐야. 너네 휴강 아니야? 학교엔 왜 왔어?”
“엥? 뭔 소리예요, 형. 오늘 전공 중간고사 있는 날인데.”
“뭐……?”
“와, 형. 진짜 요즘 왜 이렇게 정신을 빼놓고 살아요. 진짜 깜빡했어요?”
“……어. 하아. 나 재수강할 각이다.”
“진짜 무슨 일 있어요? 요즘 몇 달간 내내 정신없어 보이던데.”
“……아냐. 그냥 개인적인 일.”
남자는 그리 말하며 핸드폰 화면을 뒤로 숨겼다.
“뭐예요?”
“별거 아냐.”
그는 그리 말하며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어차피 망한 거 그냥 속 편하게 시험 보련다.”
“오오, 상남자.”
“내가 인생에 파도가 좀 많아~”
그는 그리 말하며 동기들과 함께 캠퍼스를 걸었다.
남자가 직전까지 보고 있던 핸드폰 속 화면은 아이돌 그룹 비션의 라이브 방송 클립이었다.
그가 비션의 팬이냐?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비션을 싫어했다.
남자의 이름은 김현중.
전 YM엔터 연습생이자 비션 데뷔조 최종 멤버 중 1인이었으나 마지막에 탈주했던 멤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