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55화
시간은 빠르게 흘러 라이브 방송을 하는 당일이 되었다.
더쇼케2가 방영되던 매주 금요일 저녁.
이 시간에 그대로 라이브 방송을 켠다는 것이니 더쇼케2 애청자들을 그대로 끌고 오겠다는 전략이었다.
실제로 지난 한 주간 라이브 방송 예고를 프로그램 공식 SNS로 꽤 많이 홍보하기도 했고 말이다.
급히 시작된 라이브 방송이라 해서 그냥 휘뚜루마뚜루 진행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본격적이었다.
운이 형은 이날만 한시적으로 발에 차고 있던 반깁스를 풀기로 했다.
의사와 상의한 끝에 큰 움직임 없이 하루 정도는 풀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기도 했고 말이다.
‘그냥 깁스하면 안 되나…….’
물론 나는 이걸 굳이 숨겨야 하나, 라는 쪽이었지만 운이 형이 팬들에게 이런 모습 보여주기 싫다며 단호하게 말한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우린 점심 즈음까지 회사에서 앨범 작업을 하다가 식사를 마친 후 샵에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았다.
이번에 회사가 바뀌며 달라진 점 중 하나는 그간 애용하던 샵을 바꿨다는 것이다.
원래 현아 씨의 지인이 하던 강북의 샵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변경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론 잘 맞았던 샵이니 그대로 쓰는 게 어떻겠냐 물었으나,
‘원래 새벽일 안 하는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해준 거였다는데 어떻게 다시 물어봐.’
더쇼케2 때 한시적으로 새벽에 샵을 열었을 뿐.
원래는 새벽에 일을 하지도, 연예인 메이크업과 헤어를 하지도 않는단다.
어쩔 수 없이 우린 다른 연예인들이 그러하듯 강남과 청담에 있는 샵 중 일 잘하기로 유명한 몇 군데를 새 거래처로 뚫었다.
그래도 확실히 실력은 있는 것인지,
“오늘 가벼운 라이브 방송 한다면서요? 그러면 너무 과하게 세팅하는 것보다는 조금 자연스럽게 갈게요~”
“네에~”
우리가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해줬다.
‘이런 게…… 알잘딱깔센인가……?’
이전 샵이 센스 없단 건 아니고, 여기가 유독 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느낌이었다.
머리를 만지고 메이크업을 해주는 실력은 그곳도 여기에 비해 전혀 밀리진 않았다.
연예인 전담이냐 아니냐의 에티튜드 차이 정도일 뿐이지.
물론,
“그…… 안녕하세요, 태윤 씨…….”
“네.”
“머리…… 만져도 될까요……?”
“……머리하러 온 건데요……?”
“아!”
그쪽에서나 여기서나 내 담당 헤어 선생님은 나한테 말을 제대로 못 건다.
이번에 내 쪽에 배정된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인데 같은 남자라 좀 더 편하게 말을 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번이 더 말을 조심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미용사로서의 서비스 정신이 남아 있는 건지,
“오늘도…… 멋있습니다, 태윤 씨……!”
“……감사합니다……?”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에 뜬금없는 칭찬을 던지곤 본인 혼자 만족하며 다시 작업에 집중했다.
오늘은 라이브 방송이기에 세팅도 과하지 않게 진행됐다.
헤어를 마치고 메이크업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을 무렵,
“어?”
“음?”
“뭐야?”
“오오오!”
샵 구석에서 익숙한 얼굴 다섯이 걸어오고 있었다.
다름 아닌 온리원 멤버 다섯이었다.
저쪽은 이미 메이크업과 헤어가 끝난 상태였다.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걸어온 건 온리원이었다.
“와! 진짜 오랜만이에요!”
우리 쪽에서는 비교적 먼저 메이크업이 끝난 동준이 형이 대표로 온리원에게 인사를 해줬다.
한창 메이크업을 받는 중인 형들과 나는 눈으로만 짧게 인사를 건넸고 말이다.
다만,
‘샵을 같은 곳을 쓴다고?’
눈으로는 인사를 건넸으나 속으로는 적잖이 놀랐다.
이 샵이 아이돌들이 많이 쓰는 곳이니 업계 동료 몇을 만날지도 모르겠단 생각은 했으나,
‘온리원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그게 온리원이라니.
이 정도면 온리원과 우리는 인연은 인연인 거 같았다.
“세이렌분들도 오늘 라방 준비하려고 샵 오신 거죠?”
“아, 네네! 어떻게 온리원은 라이브 방송 준비 잘하셨어요? 막 오늘 엄청난 거 공개해 버리는 건 아니죠?”
“에이. 엄청난 게 뭐가 있나요. 그냥 하는 거죠, 뭐.”
“하하하!”
“하하하하!”
동준이 형은 무슨 넉살 좋은 중소기업 사장 마냥 온리원의 김주현을 대했다.
김주현도 마찬가지로 사장님 같은 태도로 동준이 형을 대했고.
오늘 라이브 방송은 우승자인 우리만 진행하는 라이브 방송이 아니었다.
총 다섯 개의 채널에서 다섯 개의 출연 그룹이 각각 방송을 진행한다.
그러니 라이브 방송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반가운 얼굴들 몇을 보겠거니 싶었는데,
‘빨리 만났네.’
가장 늦게 만났으면 싶었던 쪽을 가장 먼저 만나 버렸다.
그때 내 쪽으로 스윽 다가오는 인원이 있었으니,
“태윤 씨, 잘 지냈어요?”
“아, 네.”
박영호였다.
좀 더 길게 답을 해주고 싶었으나 때마침 들어오는 브러시에 쉽사리 입을 뗄 순 없었다.
“아, 그 메이크업 중이시니까 다음에 인사 나누죠.”
박영호가 떠나려는 찰나,
“메이크업 끝났습니다……!”
메이크업 담당자분이 브러시를 치우고 제품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메이크업 끝났다네요.”
“아, 그러네요……!”
박영호 얼굴에 잠깐 화색이 돌았다.
다만 이렇게까지 해서 대체 뭔 대화를 나누려나 싶었다.
이 사람이랑 나랑 나눌 만한 대화가 있었던가.
뭔가 하고 보니,
“이거 드실래요……?”
“……?”
“쿠키인데…… 아버지가 주셔서요.”
“쿠키……구나.”
난 박영호가 건네주는 쿠키를 받았다.
큼지막한 초코칩이 박힌 커다란 쿠키였다.
그냥 카페에서 종종 파는 큼직한 쿠키였다면 별로 놀라지 않았으리라.
문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태복음 11장 28절
날이 따뜻해지는 요즘, 주님의 은혜로운 말씀과 달콤한 쿠키를 먹으며 잠깐의 휴식 어떠세요?
예닮교회 02-xxxx-xxxx
오시는 길……」
전도용 쿠키였다는 거다.
“아버지가 전도하라고 주신 거군요.”
“아…… 네……! 방송국에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많다고…… 보이는 사람 있으면 하나씩 주라고…… 근데 초코칩은 하나밖에 안 남아서 친한 사람 만나면 주려고 따로 빼놨어요……! 이거 진짜 맛있어요.”
날 친한 사람 분류에 넣어준 건 고맙긴 하다만 전도 쿠키 받아본 건 처음이라 꽤 놀랍긴 했다.
살면서 도를 믿으십니까와 예수천국 불신지옥에 한 번도 걸려본 적 없는 사람인데, 샵에서 전도를 받아볼 줄은 몰랐다.
‘역시 복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건가.’
새삼 하나님이 짜둔 인프라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잘 먹을게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박영호는 그리 말하곤 수줍게 웃었다.
“이제 가자 슬슬. 너무 오래 있어도 예의가 아니니까.”
그때 뒤에서 가만히 이 상황을 바라보던 강현성이 입을 뗐다.
“아, 그러네요?”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가운 마음에 시간을 많이 뺏어버렸네요. 하하.”
그러자 다른 온리원 멤버들이 이리 말하며 우리 형들에게서 하나씩 떨어졌다.
“이제 가야겠네요.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봐요!”
박영호도 마찬가지로 나에게서 떨어져 강현성에게로 돌아갔다.
“잠시 후에 스튜디오에서 봐요~”
“반가웠어요~”
그렇게 온리원 멤버들은 우리에게 반가운 티를 팍팍 낸 뒤 샵 밖으로 나갔다.
나가는 동안 잠깐 강현성과 눈이 맞았는데,
‘뭐야, 저건.’
말을 걸 거면 차라리 말을 걸지.
마지막에 나가는 길에 왜 눈싸움을 갈기는 건지 이해는 안 간다.
“아휴, 정신없네.”
한바탕 왁자지껄해졌다가 조용해지고 나니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난 박영호를 보낸 후 그에게서 받은 초코칩 쿠키의 포장지를 뜯었다.
한 입 먹어보니,
‘수제야……?’
이거 어디서 사온 게 아니라 수제였다.
쿠키 질감과 퀄리티가 공장이나 매장 제품이라기엔 너무 재료를 안 아낀 맛이었다.
“형들 이거 먹어봐요.”
난 큼직한 쿠키를 여러 등분 내서 형들에게 나눠줬다.
“오!”
“음!”
“와, 진짜 맛있어!”
“쿠키 장인이신가……?”
쿠키를 한 입씩 먹어본 형들 모두 입을 가린 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쿠키라도 하나 받았으니 이 정도면 이 갑작스러운 만남이 영 손해는 아니었을 터다.
* * *
헤어와 메이크업을 마치고 차량에 올라탔다.
확실히 더 커지고 더 좋아진 차량은 탈 때마다 감탄이 나오는 것 같다.
뒤쪽 3열 시트에 몸을 묻은 후 앉아 있으니,
“출발할게요~”
승연 씨가 액셀을 밟으며 차를 출발시켰다.
“아, 그 쿠키 또 먹고 싶다. 진짜 맛있네.”
“인생 쿠키였어.”
동준이 형과 연훈이 형은 방금 먹은 그 쿠키가 아직도 생각나는지 차에 타서도 쿠키 이야기를 했다.
“만들어볼까, 우리?”
“아, 그럴까요?”
급기야 쿠키를 만들자는 이야기로 나아가려 했는데,
“둘 다 평상 박살 낸 전과가 있는 사람들인데 또 뭘 만들려고요.”
내가 중간에서 잘라냈다.
“이이익!”
“평상이를 그 험한 입에 올리지 마!”
그러자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은 버튼이라도 눌린 사람 마냥 급발진하며 쿠키 이야기에서 평상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동 중이었는데,
‘음.’
역시나.
도승이 형과 운이 형에게서 반응이 없었다.
나만 이걸 느낀 건 아닌 걸까.
동준이 형과 연훈이 형도 장난을 치는 듯하면서 자꾸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힐끔거렸다.
어떻게든 저 두 사람 텐션을 올려보기 위해 우리 셋이서 좀 더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아도.
“운아, 이거 먹을래?”
“뭔데?”
“홍삼.”
“아니.”
“어.”
“다리는 괜찮아?”
“응. 문제없어.”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물론 저 둘이 우리가 눈치 보일 정도로 낮은 텐션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황준결과 윤동혁 사태 이후로,
‘텐션이 올라가는 일이 없냐, 왜.’
운이 형과 도승이 형 둘 다 텐션이 일정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이 없었다.
어쩌면 이게 더 안 좋은 일이다.
낮은 텐션인 건 티가 나니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헤쳐나갈 수 있는데,
‘함부로 말을 걸 수도 없고…….’
이런 평이한 텐션을 유지만 한다는 건 티를 내고 싶지 않아 한단 거니 내가 앞뒤 안 가리고 다가갈 수도 없다.
우리가 신경을 쓸까 봐 둘 다 티는 안 내고 있으나,
‘당연히 신경 쓰일 텐데. 황준결이랑 윤동혁이.’
분명 둘 다 비션의 악질 두 마리를 떠올리며 혼자 고민하고 있을 터였다.
먹금을 한다고는 하지만 먹금도 무작정 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하아.’
뭔가 분명한 타개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 * *
서울 성수에 있는 한 음악 학원.
그곳은 실용 음악과 입시생들에게서 입시 전설로 불리는 학원이었다.
기본적으로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갖춘 실음과는 보컬 전공이든 악기 전공이든 간에 합격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특히 가장 경쟁률이 높은 예술대학들의 합격은 하늘의 별 중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곳들이고.
한데 그 가장 높은 경쟁률의 예술대학에 매년 합격자를 배출해 내며, 별을 따긴커녕 우주로 출발도 못 할 학생들에겐 별까진 못 따주더라도 인공위성쯤은 안겨다 주는 학원이 있으니 입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곳의 젊은 원장은 오늘 오전과 오후 수업을 전부 끝낸 후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제 저녁이 되면 재수반이 아닌 현역반 학생들이 수업을 들으러 올 테다.
그러니 다음 차시 수업을 준비해야 하건만.
“흐으음.”
그는 6시에 있을 수업을 1시간만 뒤로 미루면 어떨까 생각 중이었다.
이유론,
“강도승이…… 오랜만에 얼굴 좀 봐야 하는데.”
젊은 시절 그가 가르치던 제자이자 이젠 한 사람의 작곡가로 성장한 아이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직접 본단 것은 아니고 오늘 있을 라이브 방송을 보겠단 거였다.
그간 바빠서 강도승이 어떻게 사는지 체크도 못 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보게 된 후부터 시간 날 때마다 강도승의 작업물을 체크하고 있었다.
동시에,
“윤동혁……. 이 새끼는 아직도 이러고 사네?”
그는 강도승뿐만 아닌 다른 이의 근황도 체크했는데, 그가 아이돌 작곡 트레이너에서 입시학원 선생으로 직업을 바꾸게 된 계기가 된 인간의 근황도 체크했다.
입시학원 선생이자 강도승의 스승.
작곡가 현성준은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자신이 아이돌 트레이너로서 키운 마지막 제자.
그 아이를 위해 해줄 만한 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