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56화
텐션이 올라가지 않는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걱정하다 보니 어느새 스튜디오 앞이었다.
오랜만에 더쇼케2 제작진들을 만나설까.
“와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하하하. 오랜만이에요 동준 씨~”
다들 서로를 붙잡고 인사를 나누며 그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시간을 가졌다.
물론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사람은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 두 사람뿐이었고.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아무것도 안 하기엔 어색하기에 어쩔 수 없이 제작진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느낌이었다.
반면 나는,
“어……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이 정도의 가벼운 인사만 나눈 후 아무 말 않고 멀뚱멀뚱 서 있을 뿐이었다.
내 옆에 선 제작진분이 뭐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어 안절부절못하시는 것 같았지만 딱히 나눌 만한 주제가 없다.
괜히 어색한 대화를 나눌 바에야 편안한 침묵이 낫다.
“나중에 좋은 기회 있으면 저희 세이렌! 꼭 찾아주세요!”
“하하! 알았어요~ 내가 세이렌 아니면 누구 찾아요. 걱정 마요.”
그렇게 약 5분간 이어진 사회생활을 곁들인 근황 토크는 다음에 꼭 우리를 찾아달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리며 대기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오늘 라이브 방송은 전문 MC까지 섭외하여 진행되는 본격적인 라이브 방송이었다.
정해진 규격이 있고 미리 짜둔 코너들이 있기에 대기실에 가서 대본들을 한 번씩 훑어볼 생각이었다.
대기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
“헉! 연훈 씨!”
“어어어? 도영 씨!”
블레슈의 리더 한도영과 마주쳤다.
“잘 지냈어요?”
“하하하! 네! 와아, 미천한 저희가 더쇼케2 우승팀을 뵙다니, 감개무량합니다.”
“왜 그래요~”
연훈이 형과 한도영이 대기실 문을 앞에 두고 친목 2차전을 시작했다.
‘하아.’
난 한도영과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회사 근처 맛집이 어디인지, 자신이 최근에 먹은 진짜 맛있는 빵집이 어디인지를 공유하는 연훈이 형을 멀뚱멀뚱 바라볼 뿐이었다.
형들도 다른 블레슈 멤버들과 근황 토크를 이어갔다.
난 멍하니 이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한데,
‘뭐야?’
블레슈분들 다이어트 상태라든가, 헤어와 메이크업 상태 등등.
예사롭지가 않았다.
관리를 빡세게 받은 게 체감되는 상태였다.
오히려 더쇼케2 때보다 전반적으로 훨씬 괜찮아진 느낌이었으니까.
나도 모르게,
“혹시 블레슈도 이제 곧 데뷔하나요?”
이리 물어버렸다.
그리고 입에서 이 말을 뱉자마자 이게 갑분싸 멘트임을 바로 깨달아 버렸다.
“아, 하하하…….”
“오…….”
“그건…… 대외비입니다! 하하!”
블레슈가 어색하게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고.
한창 신나서 떠들던 연훈이 형이 은근슬쩍 한 발 뒤로 빠졌으며.
헤실헤실 웃고 있던 동준이 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으니까.
지금 우리들에게 데뷔라는 주제는 이런 주제였다.
누가 먼저 나오냐를 두고 눈치싸움을 하는 중이니까.
잘못해서 시기가 엉켜 버리면 누구 하나 살아남지 못하고 와르르 망해 버릴 수도 있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결국,
“다음에 또…… 뵙는 걸로…….”
“하하하…….”
“조심해서 들어가세요…….”
이 화목한 대화의 장은 내 트롤링 탓에 엉망이 되어버렸다.
대기실에 들어가고 난 후,
“우리 막냉이 눈치 공부부터 시켜야겠네~”
동준이 형이 은근히 꼽을 줬다.
* * *
비션의 윤동혁은 자신의 작업실 책상에 앉아 핸드폰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간은 오후 5시.
이제 곧 더쇼케이스2 종연 기념 라이브 방송이 있을 예정이다.
지난 며칠간 SNS와 공식 채널 등을 통해 시끄럽게 홍보를 때려댔기에 더쇼케2를 본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소식이었다.
그 탓일까.
윤동혁은 아침부터 곡 작업을 하려고 계속 이 자리에 앉아 있었으나 좀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아……. X발…….”
그는 욕을 중얼거리며 마른세수를 하곤 핸드폰 화면을 껐다.
그러곤 입에 담배를 문 후 라이터에 불을 붙였다.
담배 연기가 폐부를 훑고 들어왔다가 부드럽게 빠져나간다.
담뱃재를 아침에 사 온 아메리카노 컵 안에 탁탁 털어넣은 뒤 다시 두 번째 담배를 입에 물었다.
“좀 망하라면 망해라……. 강도승아……. 제발…….”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두 번째 담배까지 마저 태웠다.
속이 마구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황준결과 윤동혁.
둘 다 세이렌의 성공이 두려운 자들이었다.
일단은 본인들 라이브 방송에서 온갖 수를 써가며 친한 척도 하고 은근히 까내리기도 하는 등 갖은 방법을 써가고는 있지만 사실 그 둘도 모르진 않고 있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강도승과 이운이 잘 된다면 그들이 했던 악행이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단 걸 말이다.
이운과 강도승이 억지로 소문을 내서 본인들을 반쯤 죽여 놓을 만한 인간들은 아니라고 생각하긴 한다.
하지만 그 둘이 어디 가서 자신들이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며 한풀이하듯 속 얘기를 꺼내놓기만 해도,
‘금방 소문날 텐데.’
황준결과 윤동혁의 일은 연예계 전체에 소문이 날 수밖에 없다.
자기들끼리 야 이거 진짜 비밀인데, 라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을 테니 말이다.
이후 연예계에 조금 깊게 들어가 있는 팬들의 귀에 그 소문이 들어갈 테고.
곧 라이트한 팬덤에게도 들어갈 테며.
그때부터 소문은 순식간에 불어날 거다.
이런 방식으로 이미지 망해서 복귀 못 하는 연예인을 수도 없이 봐왔기에 윤동혁은 담배가 자꾸 말리는 거였다.
“X같네…….”
그는 세 번째 담배를 피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집어넣었다.
더 피웠다간 현기증이 나서 작업을 못 할 것 같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제 별게 없었다.
“전화라도 해보자…….”
강도승에게 전화해서 용서를 구하는 것.
하지만,
“제발…… 싹싹 빌자, 동혁아. 후우우.”
마음으론 싹싹 빌어야 한단 걸 알아도, 열등감이 남아 있는 마음은 좀체 말을 제대로 뱉어내는 법이 없단 걸 윤동혁은 모르고 있었다.
* * *
이제 곧 라이브 방송이 시작된다.
우리는 미리 세트장에 올라와서 자리에 앉은 상태였다.
“여기 이 라인 밖으로 나가면 완전 앵글 아웃이니까 그것만 조심하세요.”
“네!”
“중요 이슈들이나 꼭 읽어야 하는 댓글들은 우리 작가들이 여기 화면에 타이핑해서 띄워줄 거니까 모니터 수시로 확인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도 잘해봐요.”
“넵!”
오랜만에 박수철 피디와 만나서 방송 주의사항들을 듣기도 했다.
박수철 피디님은 시즌 2가 성공적으로 끝나설까.
시즌 초반에 보였던 그 집착과 광기가 얼굴에서 빠져나간 것 같았다.
지금은 그냥 일 잘하는 온화한 아저씨 같았다.
우린 카메라 테스트를 한 후 다시 대기실로 내려갔다.
방송 시작까지 약 30분밖에 안 남긴 했으나 굳이 세트장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지하 계단을 타고 대기실로 내려가는데,
지이잉.
“응? 누구 진동 오는데?”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렸다.
진동의 주인은 도승이 형.
형은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러곤,
“아.”
외마디 침음을 날리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뭔가 싶어 보니,
-YM엔터 윤동혁
이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런 미…….”
욕이 튀어나올 뻔했으나 스튜디오 안이었기에 참았다.
라이브 방송 전에 전화라니.
이 정도면 멘탈 흔들려고 작정한 거 아닌가.
뭐라도 해야 하나 싶었는데,
“전화 줘봐.”
“……응?”
탁.
운이 형이 전화를 잡아채더니.
“받지 마.”
수신 거부를 눌러 버렸다.
“운아?”
도승이 형이 놀라서 물으니,
“라이브 방송 해야 하잖아. 괜히 멘탈 흔들리면 우리 손해야. 어차피 받아봤자 나눌 대화도 없잖아.”
운이 형이 차분하게 이리 말한다.
그래.
이게 맞는 말이다.
“잠깐 마음 정리만 하고 방송 준비하러 올라가자.”
운이 형이 자기보다 1.5배는 큰 도승이 형을 끌고 대기실로 들어갔고.
‘박력 있네.’
난 운이 형의 의외의 모습에 놀라며 대기실로 따라 들어갔다.
* * *
오후 6시가 조금 넘은 시각.
윤동혁은 어느새 4개비째 피운 담배를 커피 컵 안에 집어넣었다.
어떻게든 한 마디라도 완성해 보려 했던 곡은 이제 안중에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는 홀린 듯 작곡 프로그램을 끄며 라이브 방송 어플에 들어갔다.
더쇼케이스2의 채널명으로 라이브 방송이 5개가 이어지고 있었다.
“시청자 수가…… 무슨 일이야.”
비션의 라이브 방송 시청자 수는 나날이 줄어가는데, 여긴 지금 모든 방의 시청자 수가 기본으로 10만이었다.
특히 세이렌과 온리원의 경우 벌써 30만을 넘기고 있었다.
지금 시각은 6시 8분.
라이브 방송이 시작된 지 아직 10분도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한데 벌써 이 정도라니,
며칠간 홍보를 돌렸다곤 해도,
“하아아.”
너무 빠른 수치였다.
이쯤 되니 윤동혁은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다.
세이렌은 이미 비션의 인지도와 팬덤을 넘어섰단 걸 말이다.
그래도 아직 데뷔도 안 한 팀이니 비션이 근소하게라도 앞서 있을 줄 알았다.
다만 그건 본인들이 해온 악행을 과소평가한 셈이었다.
마음이 착잡해지니 절로 술 생각이 난다.
작업실에 채워둔 소주 한 병을 깠다.
안주도 없이 아무 컵이나 집어서 콸콸 부은 후 입에 가져다 댔는데,
“아 X발.”
소주 색깔이 까맣다.
담뱃재 털던 곳에 소주를 따른 후 마신 거다.
“우욱!”
헛구역질이 튀어나올 뻔했으나 가까스로 참았다.
입에 생수를 넣은 후 급히 가글한 후 컵에 다시 뱉었다.
“하아아. 진짜 뭐 되는 일이 없냐…….”
윤동혁은 의자에 몸을 깊이 묻은 후 한탄했다.
오늘 날이 좋지 않다.
뭔가 시작될 것만 같은 안 좋은 예감이 든다.
그는 핸드폰 화면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세이렌의 시청자 수는 지금도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핸드폰을 치워 버렸다.
기분도 안 좋으니 저녁부터 반주나 해야겠단 생각에 작업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건 윤동혁이 최근 한 선택 중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숙취에 절은 채로 자신의 몰락을 확인하게 되는 선택이었으니 말이다.
* * *
오후 6시에 딱 맞춰 시작된 라이브 방송은 예상했던 대본대로 흘러갔다.
MC분과 인사를 나누고.
근황 토크를 주고받으며.
팬분들과 인사를 한다.
라이브 방송의 도입부라 할 수 있을 만한 시간으로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고 MC분과 가벼운 호흡을 맞춰보는 시간이다.
시청자들에게 이 방송이 어떤 텐션으로 흘러갈지를 직간접적으로 알려주는 시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세이렌분들은 방송 끝나고 쉬는 동안 주로 뭘 하세요?”
“저희는 주로 숙소에 누워 있거나 드라마 보거나 만화 보거나 그래요.”
“아, 근데 딱 한 사람만 매일 밖으로 나돌아다닙니다!”
“그래요? 그 한 사람이 누군가요?”
“하아……. 그…… 아마 저인 거 같습니다.”
“오, 도승 씨가요?”
“헬스장에…… 가느라고…….”
“아, 하하하. 어쩐지. 몸이~”
MC분의 질문에 텐션 떨어지지 않게 대답하며 방송을 재밌게 끌고 가려 애썼다.
이런 노력이 빛을 발한 걸까.
작가진과 눈이 맞으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 척을 해줬다.
이후 도입부라 할 만한 시간의 마지막 순서.
“세이렌이 이번 라이브 방송에서 팬분들에게 깜짝 공개할 사실이 있다면서요?”
“아, 넵! 원래 저희 데뷔 쇼케이스에서 공개를 하려 했는데, 더쇼케이스2로 저희가 데뷔 기회를 갖게 된 만큼 이 라이브 방송에서 밝히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요.”
“오오, 막 두근두근 떨리는데요? 세이렌분들이 밝히는 비밀이 과연 어떤 건가요?”
“바로, 저희의 팬덤명입니다!”
팬덤명 밝히기 시간이 다가왔다.
다만 바로 무미건조하게 팬덤명을 발표하면 김빠지지 않겠는가.
그에 맞춰 우리가 따로 준비한 게 있었는데,
“얘들아! 준비해!”
“넵!”
우린 일사불란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대형을 갖추기 시작했다.
“네? 네? 에?”
그러자 MC분이 당황하여 이런 소리를 냈고,
-????
-애들아???
-팬덤명 발표한다매??
세트장 구석의 모니터에선 이런 채팅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