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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57화 (157/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57화

팬덤명을 발표하기 위한 대형이 완성되었다.

사실 대형이라 할 것도 없었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후 스케치북을 들고 선 게 전부니까.

우린 각자 스케치북 하나씩을 들고 일렬로 서서 카메라를 바라봤다.

“이게 뭐, 뭡니까?”

MC분이 당황해서 이리 외쳤지만,

“저희가 준비한 나름의 이벤트입니다.”

난 차분하게 그 물음에 답을 해줬다.

이런 방식의 이벤트가 있단 걸 제작진들도 몰라설까.

다들 당황한 눈치다.

사실 미리 말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 말을 안 해뒀다.

물론 아예 말을 안 해준 건 아니고 팬덤명 말할 때 우리끼리 준비한 게 있는데 해도 되냐고 허락 정도는 맡긴 했었다.

그때는 ‘네 이상한 것만 아니면 돼요~’라고 했으면서 막상 본격적인 무언가가 시작되려 하니 다들 당황하는 게 꽤 재밌다.

“그럼 시작해도 될까요?”

난 MC에게 이리 물었고.

“아, 네네. 시작하셔도 됩니다.”

MC는 약간 얼빠진 얼굴로 우릴 보며 이리 말했다.

제일 먼저 스케치북을 들고 한 발 앞으로 나오는 건 도승이 형이었다.

도승이 형은 본인이 왜 이걸 해야 하는 건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한 눈치다.

실제로 연훈이 형이 이런 이벤트를 하자고 제안했을 때 마지막까지도 극렬하게 반대하던 게 도승이 형이었으니까.

이런 오글거리는 이벤트엔 젬병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연훈이 형은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결국 도승이 형을 설득시켰고, 그 결과 저 가오 깜고 손에 스케치북을 들려놓을 수 있었다.

도승이 형은 스케치북을 한 장 넘기며 입을 뗐다.

스케치북에 그려져 있던 것은 바닷속에 있는 인어왕자 다섯의 그림이었다.

“먼 옛날, 바닷속에 사는 잘생긴 인어왕자 다섯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닷속에서만 사는 것이 지루해 다 같이 모험을 떠나보자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치 구연동화를 읽어주듯 상냥한 말투였다.

그제야 제작진들과 MC는 우리가 뭘 하려는 건지 이해한 눈치였다.

맞다.

우린 팬덤명을 그냥 띡, 하고 건조하게 발표하고 싶지 않았다.

나름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었고, 그 스토리텔러로서는 우리가 직접 나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았다.

도승이 형이 들어가고 그다음으로 스케치북을 들고 나온 것은 운이 형이었다.

도승이 형 얼굴은 당장에라도 터질 듯 붉었지만, 운이 형의 얼굴은 그와 상반되게 한 줌 동요조차 없었다.

팬들이 말하는 그 맑은 눈의 광인 같은 모먼트였다.

“다섯 왕자는 반짝거리는 하늘을 뚫고 날아오른다면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단 걸 알고 있었습니다. 왕국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었으니 말이죠. 그날부터 다섯 왕자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운이 형은 삐걱대던 도승이 형과는 대조될 정도로 매끄럽게 멘트를 읽었다.

그러자 이전까진 그냥 쿡쿡대며 웃기만 하던 제작진들 또한 오오~ 하며 좀 더 이야기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다음 나온 건 나다.

난 스케치북을 한 장 넘기며 입을 뗐다.

“깊은 밤, 모두가 잠든 그 시간. 다섯 왕자들은 모험을 떠날 계획을 단단히 마친 후 성을 나왔습니다. 그러곤 반짝거리는 하늘을 향해 있는 힘껏 날아올랐습니다. 꼬리에 힘을 주고 하늘을 향해 팟 하고 뛰어든 순간-”

이 뒤부터는 이제 연결과 연출이 중요하다.

내가 ‘순간-’ 이라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동준이 형이 스케치북을 넘기며 한 발 앞서 나오더니,

“와아아! 얘들아! 전설이 정말이었어! 여긴 정말 새로운 땅이야!”

동준이 형이 나와서 이번 스토리텔링의 가장 오글거리는 부분을 능청스레 소화한다.

오글거림도 한 치 부끄러움조차 없다면 함부로 폄하할 수 없게 된다.

동준이 형은 마치 자신만을 위한 무대라는 듯 거침없이 대사를 이어갔다.

“오오? 근데 우리 꼬리는? 멋진 지느러미는? 왜 갑자기 다리가 두 개가 된 거지?”

동준이 형이 든 스케치북엔 인어의 다리가 아닌 사람의 다리로 바뀌어버린 다섯 왕자들이 서 있었다.

물에서 뭍으로 나오며 생긴 신체적 변화인 셈이다.

이후 동준이 형이 뒤로 들어가고.

연훈이 형이 스케치북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바닷속 삶이 지루해 모험을 떠난 왕자들이었지만, 물속과 달리 뭍에서의 생활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걷는 것은 지루하고, 잘 곳은 시원치 않았으며, 먹을 것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죠.”

연훈이 형의 그림 속엔 굶주리고 고생 중인 인어왕자 다섯이 나온다.

모든 이야기엔 갈등과 고난의 파트가 있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인어왕자 다섯을 조금 굴렸다.

“하지만 고생만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요. 그들에게도 모험의 목적이 생기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온 마을에 떠도는 소문이었는데요. 모든 이들의 꿈이 이뤄지고, 행복이 가득하며, 사랑하는 마음만이 가득한 꿈의 나라가 있다는 거였습니다!”

연훈이 형은 강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이런저런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열심히 연기를 했다.

그 덕에 유치원 선생님이 어린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나긴 했으나,

‘귀엽네.’

귀여우니 그걸로 됐다 생각했다.

“그 꿈의 나라는 바로!”

연훈이 형이 ‘바로’라는 말을 하는 타이밍에 맞춰,

촤악!

옆에 서 있던 동준이 형이 스케치북 한 장을 넘겼다.

스케치북 위엔 성 모양의 그림 하나와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세일린

“바로 세일린 왕국이었습니다!”

나름 이 스케치북 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법한 곳이었다.

“다섯 왕자들은 그 세일린 왕국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나름 우리가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 덕일까.

처음엔 저게 뭔가 하던 제작진들도 이젠 이 끝이 어떻게 날지 꽤 궁금하단 눈으로 우릴 쳐다봤다.

“다섯 왕자들에겐 이제 꿈이 생겼습니다. 세일린 왕국에 사는 사람들을 세일러라 부른다는데, 그 세일러들과 만나 함께 행복과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자, 이제 다 왔다.

이 오글거리고 귀여운 이야기의 종지부를 찍을 때다.

“가는 길이 험하고 고될 수도 있겠지만, 세일린 왕국에 닿을 때까진. 세일러들을 만날 때까지 인어 왕자들은 지치지 않을 겁니다!”

연훈이 형은 거기까지 말한 후 스케치북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인어 왕자들은 오늘도 힘차게 세일러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걸어갑니다!”

“와아아아!”

“호오오오!”

“인어왕자 파이팅!”

우린 이야기가 끝나는 타이밍에 맞춰 환호했고, 연훈이 형은 능숙한 구연동화 선생님처럼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그러자 멍하니 앉아 있던 MC가,

“아, 아하하! 와! 이런 거군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더니 앞으로 나왔다.

아마 이쯤이면 다들 눈치챘을 거다.

“저희의 팬덤명은 세일러입니다! 세일러 여러분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우린 다 같이 스케치북을 뒤에 둔 채 한 발 앞으로 나와 인사했다.

세이렌의 공식 팬덤명 ‘세일러’.

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사란 뜻도 있으나, 이제부턴 세이렌 팬덤을 뜻하는 말도 겸하게 됐다.

우린 반응을 살피기 위해 세트 구석에 설치된 모니터를 확인했다.

-안녕하세요 평세, 평생 세일러입니다

-ㅋㅋㅋㅋㅋㅋ오늘 애들 너무 귀여움ㅋㅋㅋㅋ

-오 공식 팬덤명 예쁘다ㅠㅠ

-이런 식으로 팬덤명 발표하는 건 처음 보네ㅋㅋㅋㅋ

-연훈이 신났어ㅠㅠㅠㅠ

-소속사 웬일로 일 잘함?

-팬덤명 너무 예쁨ㅠㅠㅜㅠ

영상 송출 딜레이가 있는 탓인지 연훈이 형 구연동화 채팅과 팬덤 이름 채팅이 뒤섞인 채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나쁘진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같네.’

난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후 다시 방송에 집중했다.

“아, 하하하! 이런 식으로 팬덤명을 발표할 줄은 몰랐어서 그런가. 혼이 쏙 빠졌네요. 다시 정신 차려서 방송 진행해 보죠. 흐음.”

MC는 팬덤명 발표로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바로잡고는 다시 방송을 진행했다.

“이 그림은 세이렌분들이 직접 그리신 건가요? 인어왕자들 그리는 솜씨가 심상치 않았는데요?”

“그건 저희 멤버이자 다재다능의 아이콘 강도승 씨가 그려줬습니다!”

“오, 도승 씨가요?”

“아…… 네……. 제가 어렸을 때 미술 공부를 조금 했어서…… 그나마 제가 가장 낫길래 제가 그렸습니다…….”

도승이 형은 자신이 그림을 그렸단 것이 밝혀지자 또 한 번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저 가오 깜고가 그렸다기엔 그림이 너무 앙증맞긴 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렇게 더쇼케2 라이브 방송은 안정적으로 잘 흘러갔다.

* * *

비션의 황준결은 자신의 방에 앉아 더쇼케2 라이브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션의 공식 라이브 방송보다 훨씬 많은 수의 시청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홍보를 며칠간 때렸으니 그런 거라며 정신승리를 했다.

때마침,

띵-동

숙소 현관문 차임벨이 울렸다.

“어? 배달 왔나 보다.”

황준결은 급히 방에서 빠져나온 뒤 배달음식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치킨과 피자 세트인 음식이었다.

사실 점심을 거하게 먹은 터라 크게 배가 고픈 상태는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였을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걸로 풀기 시작했고, 과식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스스로도 관리를 해야 한단 걸 알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슬슬 아랫배가 나오는 게 느껴지고 턱선이 두꺼워지는 게 보였으나 당장의 쾌락에 늘 이성이 넘어가는 지경이었다.

“하아……. 진짜 재계약 꼭 돼야 할 텐데.”

그는 그리 중얼거리며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밀어 넣었고.

“진짜 먹으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치킨 다리를 뜯었다.

그 와중에도 세이렌의 라이브 방송은 계속 이어졌다.

-저희의 팬덤명은 세일러입니다! 세일러 여러분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팬덤명이 세일러라는 것도 듣고.

-아…… 네…… 제가 그렸습니다…….

그림을 강도승이 그렸다는 것도 들었다.

“하아……. 개오글거리네.”

한참 피자와 치킨을 먹으면서도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은 이운이었다.

그는 이운의 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저 새낀 살도 안 찌나. 진짜 개부럽다. 날 때부터 마른 체형.”

이운이 살찐 걸 그는 본 적이 없었다.

입맛이 뚝 떨어졌으나 먹는 걸 멈출 순 없었다.

이후 방송은 더쇼케2의 레전드 클립을 보는 걸로 이어지고.

그에 대해 멤버들이 코멘트하는 걸로 이어진 후.

간단한 토크를 하는 구성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 지금이 기회입니다! 세이렌분들에게 궁금한 거 있으면 마구마구 채팅을 올려주세요!

그때 MC가 이리 말했고.

너무 많은 음식을 먹은 탓에 슈가 하이라도 온 걸까.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켜며 멍한 눈으로 방송을 보던 황준결은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그러곤 본인도 모르게 이런 댓글을 쓰고야 말았다.

-비션 황준결님이랑 같이 연습해서 친하다면서요! 썰 같은 거 좀 풀어주세요! 둘이서 콜라보 같은 거 하는 것도 보고 싶어요~

본인이 평소에 쓰는 계정과는 전혀 다른 부계정이니 이런 댓글쯤이야 달아도 될 것 같았다.

뭐 채팅이 실시간으로 수천 개가 쏟아지니 이런 댓글쯤이야 묻힐 줄 알았고.

하지만

“……어?”

그가 쓴 댓글을 세이렌이 봤고, 그 순간 분명하게 그들 얼굴 위에 금이 갔다.

* * *

한창 라이브 방송을 잘 진행하던 중이었다.

대본에 나와 있던 구성 그대로 알차게 방송 분량을 뽑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구성이라 할 수 있는 무작위 질문 시간이었다.

온갖 질문들이 모니터 위로 쏟아지고, 그중 하나를 잡아서 읽으면 되는 시간이었다.

“이 방송을 보고 계신 분들! 지금이 기회입니다! 세이렌분들에게 궁금한 거 있으면 마구마구 채팅을 올려주세요!”

아침밥으론 뭘 먹냐.

하루 루틴이 뭐냐.

각자 취미가 있냐.

평상이 사건에 대한 해명은 하지 않느냐.

이런 질문들이 올라왔고, 눈에 보이는 대로 하나씩 답을 해줬다.

그 순간,

‘어?’

채팅이 너무 많이 올라와서일까.

채팅창에 렉이 걸리는 현상이 있었고.

그 덕에 약 3초간 채팅창이 굳어서 멈춰 있었다.

한데 하필 그때 정중앙에 박혀 있던 댓글이 있었는데,

-비션 황준결 님이랑 같이 연습해서 친하다면서요! 썰 같은 거 좀 풀어주세요! 둘이서 콜라보 같은 거 하는 것도 보고 싶어요~

‘미친.’

황준결과 관련된 거였다.

난 보고도 못 본 척하려 했다.

일단 우리의 기조는 먹금이니까.

한데 막상 먹금을 해야 할 타이밍이 되니, 운이 형 멘탈이 흔들렸나 보다.

운이 형은 그 댓글을 보며 멍해지더니,

“황준결과의…… 추억이요……?”

본인도 모르게 그 댓글을 소리 내 읽어버렸다.

그러자 도승이 형이 먼저 놀라서 운이 형을 바라봤고.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이 일제히 그런 도승이 형을 쳐다봤다.

먹금을 하기로 한 기조가 한순간의 실수로 깨져버린 거다.

이 순간의 불편한 공기를 나뿐만이 아닌 모두가 느낀 걸까.

“아, 하하하! 다른 그룹분들과의 추억도 좋지만~ 우리 세이렌들끼리의 추억도 좋지 않아요?”

MC가 급히 나서며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하지만,

-???

-??? 뭐임?

-운이 표정 왜 그럼

아이돌 팬들이 얼마나 예리한데.

이 짧은 순간을 놓칠 리가 없었다.

형들은 단체로 아뿔싸, 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급히 얼굴색을 바꾸곤,

“아, 저희끼리의 추억이요?”

“우리 그 얘기 할까? 밤에 청평호 가서 막 수다 떨었던 거?”

일상적인 주제로 돌아왔다.

방송 자체는 다시 안정권에 들어왔다.

하지만,

‘끝나고 모니터링을 해봐야겠네.’

방금 그 짧은 한순간이 궁예질이 일상인 사람들에게 어떤 떡밥을 던져준 건지 확인해 봐야겠다.

동시에,

‘돌파구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우리가 ‘먹금’을 기조로 잡긴 했으나, 사실 난 그게 최선은 아닐 거라 생각하던 사람이다.

지금 이 짧은 해프닝이 나쁜 쪽으로만 작용할까?

‘일단 지켜보자.’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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