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59화 (159/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59화

라이브 방송이 끝났다.

원래 1시간 30분 정도를 기획했던 방송이었는데 예상보다 조금 더 길어져서 2시간 정도를 한 후 종료되었다.

첫 1시간까지는 어떤 방송을 했는지 분명히 기억을 했지만 나머지 1시간부터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형들이 마구잡이로 말을 막 던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유를 들자면 운이 형의 그 멈칫거림을 사람들 뇌리에서 잊게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었는데,

‘별 효과는 없었던 거 같은데.’

사실 의미 있는 행동은 아니었던 거 같다.

“후우. 고생 많았어, 애들아.”

“고생 많았어요, 다들.”

“오늘 방송은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대기실에 돌아온 후 다들 서로의 멘탈을 위해서인지 덕담을 한마디씩 건넸다.

다만 끝까지 운이 형은 아무 말이 없었는데,

“운아?”

“운이 형?”

“이운.”

연훈이 형, 동준이 형, 도승이 형이 각각 이름을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를 꺼내지 않았다.

저게 방송 중 올라온 채팅에 아직도 멘탈이 털린 건지.

아니면 단순히 먹금하기로 한 기조를 지키지 못해 미안해서 저러는 건지.

아마 운이 형 성격이라면 후자에 가까우리라.

“형.”

난 운이 형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운이 형의 무릎을 손으로 잡으며, 소파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운이 형의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머리카락에 얼굴이 가려져 어떤 표정인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있었는데,

‘울고 있었네……?’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다는 거다.

저건 기뻐서 우는 것도, 슬퍼서 우는 것도 아니다.

두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고, 입꼬리가 잔뜩 경직되어 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터져 나오는 눈물이다.

운이 형의 무릎에 올려둔 손에 힘이 더해졌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알 것 같았다.

이미 다 끝난 일이고, 지나간 일이라 생각했을 거다.

황준결이 자신을 데뷔하지 못하게 하려고 바닥에 왁스칠을 해둔 것.

그 탓에 다리를 다쳐 끝내 데뷔하지 못한 것.

억울하고 화나는 일이었겠지만 운이 형 성격이라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이겨냈을 터다.

하지만 이미 이겨냈다 생각했던 일이.

더 나아가 이미 다 끝이 났다고 생각했던 일이.

다시 한번 꾸역꾸역 눈앞에 튀어나오니 얼마나 분하고 거슬릴지 알 것 같았다.

다만 지금 내가 운이 형에게 형 마음 다 알아요,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스며들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지금 운이 형 마음에 함부로 공감하는 것은 형의 마음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찰나.

“운아.”

도승이 형이 나와 똑같은 자세로 운이 형 앞에 쪼그려 앉았다.

도승이 형의 물음에 운이 형이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두 눈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다.

도승이 형은 그런 운이 형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도승이 형이 저런 눈으로 누구를 바라보는 일이 있던가.

이제야 이 일에 내가 끼어들 틈은 없단 걸 자각했다.

난 알아서 자리를 잠깐 피해줬다.

“우리 그때 기억나냐? YM한테서 같이 연습생 종료 통보 받은 날?”

도승이 형은 우리는 모르는, 운이 형과 본인만 아는 둘만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내가 비상계단 구석에 앉아서 질질 짜고 있었잖아. 이건 너무 억울하다면서. 그때 네가 와서 뭐라 해줬는지 기억나?”

운이 형은 가만히 도승이 형을 내려다봤다.

입가가 여전히 경직되어 있긴 하지만 아까보단 분명 표정이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

“우리가 더 잘 될 거라고. 딱 5년만 우리 기다려보자고 했잖아.”

운이 형은 도승이 형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걔네는 어차피 자기들끼리 못된 짓 하다가 망할 애들이니까 너무 걱정 말라고.”

이런 말 하기 뭣하지만 어린 시절 운이 형은 신기라도 있었나 보다.

저걸 저렇게 정확하게 맞추다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봐봐. 아직 데뷔는 안 했지만…… 솔직히 비션보다 우리가 더 상황이 좋잖아.”

도승이 형의 말에 운이 형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때에도 그렇게 단단했잖아. 그러니까 지금도 금방 이겨낼 수 있을 거야.”

도승이 형의 한마디에 운이 형의 입꼬리가 순식간에 흐물흐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곤 이내 도승이 형의 머리를 끌어안더니,

“맞아……. 금방 이겨낼 수 있어……. 우리가 더 잘 될 거니까.”

이리 중얼거리더니 고여 있던 눈물을 시원하게 터뜨렸다.

대기실엔 한동안 운이 형의 우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 울음이 슬프거나 안타깝게 들리진 않았다.

묵었던 감정의 해소처럼.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는 것처럼.

어딘가 시원한 구석이 있었다.

이내 운이 형의 감정이 조금 정리되었을 때.

“하아……. 나 휴지 좀.”

“아, 응.”

운이 형은 너무 크게 울어서인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분위기 다 망했다.”

형은 그리 말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에이~ 뭐 어때요~”

그런 운이 형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걸까.

동준이 형이 평소보다 더 밝은 척하며 운이 형 옆에 풀썩 앉았다.

“그래, 운아. 괜찮아. 진짜 진짜로 수고 많았어.”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운이 형 옆에 자리를 잡았다.

한데,

“이번엔 형이 울어요?”

“……아냐. 안 울어. 나 진짜 안 울어…….”

아까 그 운이 형의 눈물샤워에 연훈이 형까지 휩쓸린 걸까.

어딘가 눈가가 촉촉하다.

“그냥…… 너희 둘이 너무 멋있고 기특하니까아……. 흐으음.”

연훈이 형은 당장 눈물이 터질까 고개를 하늘로 쳐들었다.

그런 연훈이 형의 얼굴을 보며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 왜 웃어……!”

“아니에요. 그냥 형이 너무 귀여워서요.”

“나 안 귀여워……! 나 지금 슬퍼…….”

“여기 휴지 써요.”

“……고마워.”

연훈이 형은 도승이 형이 건네준 휴지로 눈가에 고인 눈물을 콕콕 찍어냈다.

황준결 관련 댓글 나온 걸로 팀 분위기가 와장창 깨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됐다.’

역시.

고작 이따위 일로 깨질 분위기도, 팀도 아니다.

난 소파 구석에 가서 앉은 뒤 핸드폰을 꺼냈다.

“승연 씨랑 현아 씨 어디시지?”

“아마 곧 오시지 않을까요?”

“한 10분 뒤에도 안 오시면 내가 따로 전화해 볼게!”

우린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오시길 기다리며 각자 시간을 조금 보내기로 했다.

내가 지금 당장 궁금한 건,

‘어떻게 됐으려나.’

라이브 방송에서 나온 운이 형의 그 멈칫거림 한 번이 어떤 파장을 몰고 왔는지를 확인하는 거였다.

한데,

‘……?’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훨씬 더 많은 일이 일어난 상태였다.

“잠시만…….”

어찌나 놀랐는지 내가 육성으로 이런 말을 내뱉을 정도였다.

이미 인터넷에선 운이 형과 황준결에 대해.

또 도승이 형과 윤동혁에 대해 온갖 이야기가 다 나오고 있었다.

더 나아가,

‘상황이…… 이미 종료됐는데……?’

우리가 라이브 방송 하고 대기실로 돌아와 서로 울고 불며 지지고 볶는 동안 이미 인터넷에선 모든 상황이 종료되어 있었다.

네이스판에 인증글이 올라오며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가 된 거다.

지금 이 돌아가는 판을 운이 형과 도승이 형도 확인을 한 걸까.

“어……? 이게…… 뭐야……?”

운이 형이 이리 말했고,

“쌤이…… 왜 갑자기 나한테 연락을 했지……?”

도승이 형이 이리 말했다.

두 사람은 인터넷 서치 몇 번으로 돌아가는 판을 완전히 파악한 건지.

“허어억……! 세상에……!”

운이 형은 폰을 보다가 기함을 할 정도였다.

“이거…… 현중이가 올린 글이지……?”

“이 글은 성준쌤이 올린 글인 거 같은데……?”

두 사람은 저 인증글의 장본인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이제 보니 왜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이 자리에 없는지 알겠다.

아마,

‘지금 전화로 회사에 보고 중인 거 같은데.’

지금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 보고 및 대처 방향을 수립하고 있나 보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쾅!

소리 나게 문을 열어젖히더니,

“다들 돌아왔네요?”

“방송하느라 너무너무 고생 많았어요!”

“근데…… 그 우리가 지금 빠르게 공유해야 할 사안들이 있거든요……?”

“브리핑을 해도 괜찮을까요?”

승연 씨와 현아 씨가 등장했다.

나와 운이 형, 도승이 형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서치를 통해 알아챘으나,

“……엥?”

“저희…… 뭐 어디 팔려가요……?”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은 전혀 예상조차 못 하고 있었던 걸까.

꽤 당황스러운 표정들이었다.

* * *

황준결과 윤동혁이 실시간으로 몰락하는 사이.

이건 연예계뿐만이 아닌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키는 사건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린 것들이. 못된 짓만.배우고.있군요……

-ㅋㅋㅋㅋㅋㅋㅋㄹㅇ 나락이네ㅋㅋ

-그래서 쟤네가 누구임?

-와 근데 연습생들끼리 저 지랄하는 거 드라마가 아니라 리얼이었구나

과거에 있었던 진실이 드러나게 된 거라는 점.

한국인들이 민감해하는 표절 이슈였다는 점.

더 나아가 선과 악이 분명했다는 점과 강자였던 자가 약자가, 약자였던 자가 강자가 되었다는 그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

-와 진짜 큰 거 하나 터졌네ㅋㅋㅋ

황준결 윤동혁 사건은 빠르게 사람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그 소수의 인원들 사이에만 퍼지는 이야기가 아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이야기였다.

이로 인해 황준결과 윤동혁만 피해를 본 것은 아니었다.

비션이라는 그룹 자체의 명운이 바람 앞의 촛불이 되었다.

이를 빠르게 파악한 걸까.

YM엔터는 전후 사정을 파악한다는 공지를 올린 후,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두 아티스트에 대한 처분을 회사 내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공지를 올렸다.

처음엔 살짝 간이라도 보려고 사정 파악 먼저 할게요~를 시전했다가 여론이 너무 안 좋으니 꼬리 자르기를 하는 거였다.

하지만 이런다 해서 비션이라는 그룹과 YM엔터의 이미지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는데,

-ㅋㅋㅋㅋㅋ꼬리 자르려다 실패했쥬?

-어른들의……이 비 도덕적 행태……부끄럽지 않읍니까……?

대중들은 똑똑해졌고 얕은수에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일의 가장 큰 악은 황준결, 윤동혁이지만 이를 묵인하고 넘어간 회사의 잘못도 분명했기에 비션과 YM엔터는 당분간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 국민에게 뚜드려 맞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낙수효과인지,

-세이렌이 누구임?

-와 근데 나 같으면 저 지랄 나고 개빡쳐서 때려쳤을 텐데 ㄹㅇ 인간 승리네

-ㅋㅋㅋㅋㅋ이건 리스펙이지

그간 아이돌판 내에서만 인지도를 불려가던 세이렌이 순식간에 전 국민적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노이즈 마케팅이 아주 크고 확실하게 이뤄진 거였다.

그리고 지금.

‘이거…… 위험한데…….’

노이즈 마케팅은 좋으나, 동시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세이렌의 막내 봉태윤은 숙소 거실에 홀로 앉아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봤다.

세이렌에 대한 기사가.

너튜브 영상이.

틱택톡 영상이.

SNS 글들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기라도 하는 듯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 붙은 수식어는 죄다 불쌍한, 피해자인, 안타까운, 이제야 빛을 보는, 슬픈, 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룹이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지금.

이건 아주 큰 기회임과 동시에,

“이쯤에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거 같은데…….”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