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60화 (160/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0화

탁.

난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소리 나게 내려놨다.

지금은 토요일 늦은 저녁 시간.

어제 라이브 방송이 있은 후 딱 24시간 정도가 지났다.

24시간 동안 일어났던 일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다.

‘하루 만에 나락이 펼쳐질 수 있구나.’

세이렌으로 활동하며 겪은 일 중 가장 스케일이 크고 속도가 빠른 일이었다는 거다.

윤동혁과 황준결을 정리하는 데 2주까지는 예상하고 있던 나였다.

애초에 내 계획은 훨씬 길었던 계획이니 말이다.

형들이 먹금을 하겠다는 기조를 어지간하면 풀지 않을 것 같아 저 자식들이 라방에서 말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에 대한 열등감은 해소하기 쉽지 않은 감정이기에 저 둘이라면 본인들 라방에서 분명 어떤 말실수를 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 둘에게 피해를 받았던, 혹은 그 둘이 싫어 YM엔터를 떠났던 누군가가 인증글을 올리지 않을까 싶었다.

해서 2주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던 거다.

2주가 지나도 변화가 없다면 따로 움직여볼 생각이었고.

한데 어제 한 라이브 방송에서의 그 짧은 멈칫거림이 이만한 파장을 가져오다니.

‘이번에도 손 안 대고 코 푼 격이네.’

얼떨떨하면서도 두려웠다.

인터넷이라는 공간과 방송이라는 매체가 얼마나 힘이 세고 파급력 있는지를 단적으로 체감한 거 같아서 말이다.

윤동혁과 황준결은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락을 가고 있었다.

그 둘을 싸잡아서 욕하는 영상, 글, 사진 등이 마구잡이로 생성되고 있었다.

거슬리던 두 사람을 치웠으니 속은 시원하다.

하지만,

“이걸 어쩌냐.”

이 사건이 너무 큰 임팩트를 준 것 같다.

황준결과 윤동혁만 나락을 가고 끝난 게 아닌, 우리들에 대한 동정 여론까지 잡혀 버렸다.

가해자를 정의구현 하는 건 좋으나,

‘흐음…….’

우리의 이미지가 너무 안타깝게만 포장되는 건 좋지 않다.

아이돌은 안타깝다거나, 불쌍하다거나, 짠내가 나는 존재가 아니니 말이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초반 부스트를 줄 때는 유효하다.

실제로 더쇼케2 초반부엔 우리가 직접 나서서 짠내 나는 이미지를 가져가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데뷔를 앞에 두고 있고, 아이돌판에서의 인지도를 어느 정도 갖춘 우리가 이런 짠내 나는 이미지가 된다면,

‘큰일 날 수도 있어.’

장기적으로 갔을 시 그룹의 수명을 단축시킬지도 모른다.

“하아아.”

난 한숨을 내쉬며 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9시.

이젠 저녁이 아닌 밤을 향해 가는 시간이다.

주말 저녁인지라 형들은 각각 본가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온다거나 개인 생활을 하러 밖에 나간 상황.

이 집엔 나밖에 없었다.

심란한 마음이 커서인지 저녁도 거른 상태였다.

난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올려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만 봤다.

‘어떻게 해야 하냐.’

일단 냉정하게 생각해 봤다.

다음 주면 아마 데뷔앨범 곡 수집은 다 끝날 거다.

내가 가사 작업만 빠르게 끝내면 레코딩도 순식간일 거고.

다음 주 안으로 트랙리스트는 완전 픽스가 가능하다.

더 나아가,

‘티저 공개도 다음 주에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원래는 다다음 주 월요일에 공개할 예정이었던 티저를 다음 주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 공개해도 괜찮을 거다.

물론 아직 촬영도 안 하긴 했다만…… 그거야 돈이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다.

그렇다면,

‘일단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도 몰라.’

전 국민적 인지도가 올라갔을 때 바로 아이돌스러운 떡밥 하나가 나온다면 동정여론이 사그라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좀 더 뭔가 있으면 좋겠는데.’

티저 공개 전이나 후에 다른 한 방이 있으면 좋겠다.

고민을 거듭하는데,

띠띠띠띠-

갑자기 현관 도어락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

다들 밤늦은 시각이나 내일쯤 들어온다고 했는데.

순간적으로,

‘설마…… 사생?’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구두주걱이라도 손에 들고 문이 열리길 기다렸는데,

“태윤아, 태윤아! 도와줘어억!”

문을 열고 등장한 것은 연훈이 형이었다.

한데 그냥 연훈이 형은 아니고, 커다란 들통을 든 연훈이 형이었다.

“……네?”

“들어줘! 들어줘! 나 팔 빠져어억!”

“아니, 내려놓으면 되잖아요.”

“……아!”

연훈이 형은 손에 들고 있던 그 커다란 들통을 거실 바닥에 툭 내려놨다.

그러자 잠시 머쓱한 표정으로 들통을 쳐다보더니 괜히 딴 곳을 쳐다봤다.

“형, 지금 쪽팔리죠?”

“……아니.”

“무거운 걸 왜 굳이 들고 있어요. 내려놓으면 되지.”

“……알고 있었어.”

“몰랐던 거 같은데.”

“……아닌데.”

연훈이 형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이 이상 놀리면 화낼 거 같아서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도 연훈이 형이 들어오니 우려만 가득했던 마음이 한결 밝아진다.

다만,

“이 커다란 들통은 뭐예요, 형.”

“아, 맞다! 태윤아! 지금 집에 밥 있어?”

“네?”

“이거 소갈비찜이야! 진짜 짱맛있어!”

“소갈비찜을…… 이렇게 들통으로요……?”

“엄마가 우리 다 같이 먹으라고 해주셨어!”

난 들통의 뚜껑을 열어봤다.

업소에서 쓰는 커다란 들통보다는 작은 사이즈이긴 하나, 가정에서 쓰기에는 꽤 큰 사이즈의 들통이다.

설마 이 들통에 소갈비가 한가득이겠어 싶었다가,

“……?”

“……우리 엄마가 손이 좀 커.”

“아…….”

정말 소갈비찜이 한가득이라 당황스러웠다.

‘이거 고깃값만 해도…….’

잠깐 계산을 해보려 했다가 섣불리 계산하기 무서운 금액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곧 데뷔라 하니까 그럴 때일수록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면서 해주시더라고.”

“너무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냄새 너무 좋네요.”

“밥부터 먹자 얼른!”

연훈이 형은 그리 말하며 밥통에서 밥을 꺼내 한가득 펐다.

“……저 그거 다 못 먹는데.”

“같이 먹자, 같이!”

형은 한가득 푼 밥을 두 그릇에 나누곤 식탁에 앉았다.

“소갈비만 조금 퍼올 수 있어?”

“네.”

난 그릇에 소갈비를 조금 던 후 내왔다.

“먹자~”

“형, 밥 먹고 온 거 아니에요?”

“나 안 먹었어. 너 우리 없으면 밥 잘 안 먹잖아. 그래서 갈비만 들고 왔는데?”

“……오.”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온 감동에 잠깐 고장 날 뻔했지만 잘 참아냈다.

“데뷔 때 오동통해져서 나가면 안 되니까 적당히 먹자.”

“네.”

연훈이 형 어머니가 해줬다는 갈비를 흰쌀밥 위에 얹어서 한입 가득 넣었다.

고기가 입천장에 닿자마자 결대로 부서지며 밥알 사이사이로 스며들었고, 갈비양념을 흡수한 쌀밥이 입안을 기분 좋게 굴러다녔다.

“……와.”

절로 탄성이 나는 맛이었다.

“으음! 맛있어!”

연훈이 형도 진심으로 감탄한 듯했고.

“애들이랑 내일 아침에도 먹자.”

“그러니까요. 꼭 다들 먹어봐야 할 거 같아요.”

내일 아침 다시 한번 먹을 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다.

“동준이 형이 진짜 좋아하겠는데요?”

“그러니까. 동준이가 너무 많이 먹지 않게 조절 좀 해야겠다.”

“이러니까 무슨 강아지 식단 해주는 느낌인데.”

“그런가?”

연훈이 형과 나는 동시에 빵 하고 터졌다.

둘밖에 없는 식탁이건만 나름 시끌시끌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마친 후 다시 소파에 앉았다.

연훈이 형은 샤워를 하고 나온 후 내 옆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난 다시 핸드폰을 들어 여러 가지 정보들을 서치했다.

그때,

“왜 그걸 그렇게 찾아보고 있어?”

“아. 이거요?”

“뭐 좋은 거라고 자꾸 봐. 봐봤자 멘탈만 흔들리잖아.”

“……그렇긴 하죠.”

연훈이 형이 내가 핸드폰으로 황준결 윤동혁 검색하던 걸 보곤 한 소리를 했다.

다만,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번 꺼내볼까.’

이걸 모니터링 안 하고 넘어갈 순 없다.

그러니 형에게 자문을 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근데…… 지금 저희 이미지가 이러다가 짠내돌, 뭐 이런 걸로 굳어버릴까 봐 걱정돼서요.”

형에게 말해보니,

“흐음……. 그치.”

형도 얼추 상황 돌아가는 걸 알고는 있었나 보다.

“사실 걱정스럽긴 했어. 워낙……안 좋은 말들이 많고……. 우리 이미지가 불쌍한 애들로만 굳어지는 거 같아서.”

일단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단 것부터 긍정적이다.

“뭐 할 만한 거 없을까요?”

“이제 곧 우리 티저 풀지 않아?”

“맞아요.”

“그거 풀면 좀 잠잠해지지 않을까?”

“근데 그것만 기다리고 있기엔 찜찜하잖아요. 이미지라는 게 한번 고착화되면 복구하기 어렵기도 하잖아요.”

“맞아…….”

연훈이 형이 턱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말 하기 뭣 하지만 약간 꼬마 박사님 느낌이 나는 포즈라 웃음이 나올 뻔했다.

분위기 깰까 봐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형의 답변을 기다렸다.

이내,

“우리 둘이 깜짝 라방 할까?”

“네?”

“티저 공개 전에 뭐라도 하고 싶다며. 근데 당장 할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잖아.”

“그렇긴…… 하죠?”

“내가 승연 씨한테 한번 물어볼게!”

연훈이 형이 깜짝 라방이라도 해보자고 의견을 낸다.

라이브 방송이 가장 무난하게 할 수 있을 만한 거긴 하지.

근데,

‘이게 임팩트가 있나?’

짠내돌, 불쌍한 아이돌, 이런 이미지를 벗게 하려면 꽤 임팩트 있는 사건이어야 한다.

하지만 라방은 일상적인 느낌이지 않는가.

내가 생각을 이어가는 사이,

“승연 님이 된대! 대신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말하고 라이브 방송인 거 인지하고 조심스럽게 하라고 하시네.”

“그래요?”

연훈이 형이 허락을 받아왔다.

“우리…… 라이브용 핸드폰이……. 여깄다!”

형은 티브이장 아래에서 라이브용 핸드폰을 꺼냈다.

그전에,

“형. 우리 쌩얼로 가요?”

“응!”

“진짜요……?”

“어차피…… 방송에서 쌩얼 다 팔렸잖아.”

“아……. 맞네요.”

더쇼케2에서 우리 쌩얼은 수도 없이 나왔다.

이제 와 새삼스레 가릴 필욘 없다.

그렇다면 더 중요한 것.

“우리 뭐 해요, 라방에서?”

대체 라이브 켜놓고 뭘 하냐는 거다.

물론 단순 수다를 위해 켤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단 좀 더 콘텐츠가 있어야 할 거 같다.

연훈이 형은 잠시 고민하더니,

“노래 커버 할까?”

이런 아이디어를 냈고,

“……!”

그 순간 느낌이 왔다.

‘이거였네.’

짠내돌 느낌을 희석할 소스를 찾았다고.

* * *

밤 10시 30분.

야심하다기엔 애매하고 이르다기엔 그것도 아닌 모호한 시간대.

세이렌의 깜짝 라이브 방송이 시작됐다.

-막내랑 맏내 왔어요~

막내와 맏내.

저 두 단어로 떠오르는 인물은 당연히 둘뿐이었다.

봉태윤과 우연훈.

주말 저녁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던 세이렌의 팬들은 재빨리 라이브 방송에 들어갔다.

어제부터 이어진 황준결과 윤동혁 사건으로 돌판이 시끌시끌한 현재.

이 둘의 라이브 방송에는 세이렌 팬이 아닌 일반인들부터 물타기를 하러 오는 분탕종자들까지.

온갖 다양한 군상의 인간들이 죄다 모여들고 있었다.

당연히 채팅창에는 이운과 강도승이 괜찮은지 묻는 사람도 있었고.

황준결과 윤동혁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 시기에 라이브 켠 거는 무슨 의미냐며 묻는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봉태윤과 우연훈은 그 모든 댓글들은 무시하며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실제 세이렌 팬들도 그런 이상한 댓글들을 날려 버리기 위해 더 공격적으로 다른 방향의 채팅들을 올렸고 말이다.

-아 저녁 어떤 거 먹었냐고……. 저희 오늘 소갈비찜 먹었습니다.

-저희 엄마가 해줬어요! 진짜 진짜 짱맛!

-맞아요. 맛있었어요.

이렇듯 일상적 주제들로 수다를 떨며 봉태윤과 우연훈은 방송을 진행했다.

-아 진짜 얼굴합 극락;;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 태윤.

-ㅠㅠㅠㅠ와기들 쌩얼이라 뽀둥이네 완죠니

-막맏즈 개조아ㅠㅠ

봉태윤과 우연훈이 황준결, 윤동혁 소스엔 일괄적으로 대꾸하지 않으니 채팅창도 서서히 물타기꾼과 어그로꾼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노래 좀 가볍게 불러드리고 싶은데, 신청곡 받을까요, 여러분?

우연훈이 신청곡을 받는다 했고,

-헉!

-미친

사람들은 이때를 기다렸단 듯 신청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중 한 곡.

-어? 나 이 노래 좋아하는데.

우연훈은 본인이 좋아하는 곡을 골라서 즉석에서 부르기 시작했다.

우연훈이 잘생긴 것은 알지만 노래를 잘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았다.

하지만 우연훈은 기존 아이돌판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보컬리스트였다.

비주얼이 좋은 탓에 잠깐 그 빛을 잃었을 뿐이지.

해서 늦은 밤.

우연훈이 감정을 제대로 잡고 진지하게 부르는 노래들에,

-????

-연훈아?

-와 미친

-……???

채팅창이 일순 멈추는 현상이 일어났으며.

-9위. 연훈이 노래 개미친 (7,534 트윗)

더 나아가 노래 한번 불렀을 뿐인데 우연훈은 실트에 올라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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