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1화
알고 있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볼 때마다 놀라게 되는 게 있다.
특히나 그 대상의 평소 이미지와 상반되는 일이라면 매번 볼 때마다 놀라게 되곤 한다.
라이브 방송 중 시작된 연훈이 형의 노래 커버는 듣는 동안 순수하게 감탄하게 되는 구석이 있었다.
-깊은 밤 빛은 흐려지고
-고요히 흐르는 달빛에
-그대 뒷모습 한 번을
-끝내 잡지 못해 보내고
연훈이 형은 드라마 광인답게 주로 드라마 OST를 골라서 불렀다.
사람들이 온갖 트렌디한 곡을 다 추천해 주고 있었지만 아주 뚝심 있게 드라마 OST만 연달아서 부르는 중이었다.
알고 보면 웃긴 대목이지만 사실 웃음이 나오거나 할 여유가 없었다.
‘진짜 잘 부르네.’
그간 우리가 무대 위에서 불렀던 곡들은 가창력을 뽐내기엔 부족한 곡들이긴 했다.
아이돌의 무대는 퍼포먼스가 우선인 무대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놓고 노래 부를 판이 깔리니 연훈이 형은 신나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연훈아ㅠㅠㅠ
-말랑 복숭아가 노래를 이렇게 잘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나가야 함
-와 진짜 미쳤는데……
-이 노래 진짜 추억이다
-이 드라마 진짜 ㄹㅇ 오열하면서 봤었는데
사람들도 연훈이 형 노래에 과몰입한 건지 온갖 주접채팅을 올리고 있었다.
개중엔 진짜 감상에 취해 곡에 얽힌 추억을 파는 사람들도 있었고 말이다.
난 한눈으론 채팅을 훑으며 다시 연훈이 형을 바라봤다.
연훈이 형 음색은 사람을 집중시키는 힘이 있었다.
맑고 고운 미성인데 툭 치면 부러질 것 같은 음색이 아니라 속이 단단한 음색이었다.
동시에 이런 식의 미성이면 밝고 희망찬 정서가 느껴져야 하는데 어딘가 구슬픈 느낌이 들기도 하는 음색이었다.
이런 목소리는 가요계 자체에 굉장히 드문 목소리였고, 연훈이 형의 숨겨진 강점이기도 했다.
아니지, 다른 아이돌이었다면 숨겨진 강점이 아니라 메인 무기였을 테지만 연훈이 형은 비주얼이 더 눈에 띄다 보니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게 된 거다.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이 아직 한창 감상에 빠져서 채팅을 마구 올리는 동안.
“어때요? 노래 좋았어요? 저도 이 드라마 보면서 진짜 막 눈물 광광 쏟고 그랬거든요.”
연훈이 형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잡았던 감정을 순식간에 털어버리곤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방긋방긋 웃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엔 멋있어 보이는데 지금 모습은 발랄 그 자체였다.
“어땠어, 태윤아? 나 잘 불렀어?”
형의 물음에 난 가만히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진짜 대박이었어요.”
내가 인자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우자 연훈이 형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여러분! 보셨어요? 태윤이가 대박이래요! 얘가 이런 성격이 아닌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훈 진신남 태윤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멤버들 넘 귀여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이렇게 순수하게 누군가를 칭찬한 게 신기한가 보다.
말을 안 할 뿐이지 늘 속으로 대단하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괜히 머쓱하다.
-얘들아! 지금 실트야!
-실트라니 우리 아가들 파급력 최고……
그때 실트 관련한 채팅이 갑자기 확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른 지 시간이 꽤 지나긴 했으나 벌써 실트에 올랐다니.
“지금 우리가 실트에요?”
“오.”
나랑 연훈이 형은 동시에 핸드폰을 확인했다.
찾아보니 진짜 실트였다.
연훈이 형 노래가 확실히 힘이 있긴 있나 보다.
“실트 올라간 김에 우리 막냉이 노래도 한번 듣고 갈까요?”
그때 연훈이 형이 선동을 시작한다.
“아. 형.”
난 원래가 노래를 그렇게 잘 부르는 멤버가 아니다.
통찰의 힘을 빌려 가끔 치트키를 쓸 뿐이지.
일단 한번 빼볼 생각이었는데,
“실트 올라간 기념인데 한번 불러줘야지~”
연훈이 형은 포기할 생각이 없나 보다.
실시간으로 채팅이 마구 올라가며 추천곡이 쌓이기 시작한다.
어차피 황준결, 윤동혁 사고로 생긴 불쌍하단 이미지를 탈피하려고 켠 라이브 방송이다.
‘통찰을 여기다가 쓰자.’
어차피 매일 리셋되는 게 통찰인데.
아낄 필요는 없었다.
“그럼 딱 한 곡만 부를게요.”
난 수 없이 올라오는 신청곡 중 내가 그나마 자주 들어봤던 곡 하나를 골랐다.
“반주 찾아줄게.”
연훈이 형이 핸드폰으로 반주를 찾아 들려주고.
지이잉.
난 타이밍에 맞춰 통찰을 사용했다.
통찰을 사용하는 동안만큼은 아주 일시적이긴 하나 웬만한 그룹들 메인보컬 수준으로 부를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라이브 방송 시청자들이 듣기에도 그랬던 걸까.
-봉태윤 ㅁㅊ
-우리 막냉이가 노래를 이렇게 잘했다고요……?
-ㅁㅊ 봉떤남자 무슨 일이야;; 당장 내일 서초구청 앞에서 봐
곁눈질로 보긴 했으나 꽤 긍정적인 채팅들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 * *
우연훈과 봉태윤이 라이브 방송을 하는 동안.
두 사람이 부르는 곡은 단순히 파랑새에서만 소비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니었다.
기간 한정이긴 하나 황준결과 윤동혁 사건으로 전 국민적 관심을 받는 세이렌이었다.
지금은 어떤 행보를 하든 사람들의 눈과 귀가 몰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라이브 방송에서 부른 노래는 자연스레 너튜브와 틱택톡 등의 메이저한 플랫폼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황준결과 윤동혁 사건으로 세이렌에 대한 영상을 몇 개 접하게 된 대중들은 자연스레 우연훈과 봉태윤의 라이브 방송 노래 영상도 접할 수밖에 없었다.
흔히들 말하는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한창 황준결과 윤동혁 사건의 불길이 타오르는 중, 급작스레 끼어든 세이렌의 노래 커버 영상은 꽤 큰 파급력을 낳기 시작했다.
-와 이게 그 세이렌인가 하는 애들이 부른 거임?
-미친 노래 개 잘 부르네;;
-ㅅㅂ 첫소절에서부터 이미 X나 잘 부름ㅋㅋㅋ
그간 세이렌에게 크게 관심은 없었으나 논란과 사건 사고에는 관심이 많았던 계층에게 영상이 하나둘 퍼지고 있었다.
세이렌을 불쌍하다거나 안타까운 그룹으로만 알고 있었던 대중들의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거였다.
-와 얘네 노래 처음 듣는데 원래 일케 잘함?
-걍 잔잔한 노래라 잘하는 거임ㅋㅋㅋ
└? 고음도 ㅈㄴ 잘함
-내가 들어본 아이돌들 중에 노래 제일 잘하는 거 같은디
우연훈과 봉태윤의 노래를 들은 후 사람들은 역으로 세이렌의 다른 무대 영상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돌 팬들에게만 유명했던 영상들이 클립으로 만들어져 퍼지기 시작하고.
그 클립들이 다시 알고리즘을 타서 더 많은 사람들의 재생목록에 떠오르기 시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세이렌을 알게 되는 만큼 다시 한번 황준결과 윤동혁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그만큼 들어온 유입들이 또다시 세이렌의 라이브 커버 영상과 레전드 무대 영상으로 흘러가는 커다란 흐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너튜브 등에서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사라지는 숏폼 형태의 영상을 만드는 기업들은 이런 핫키워드를 놓치지 않았다.
마치 기다렸단 듯 이미 있던 영상들을 퍼와서 본인들의 채널에 재배포하는 형식을 취하며 세이렌 홍보에 스스로 앞장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
라이브 방송 후 그 라이브 방송 영상들을 퍼오는 영상만 수십 개가 만들어졌고.
그 수십 개의 영상의 조회 수가 올라가는 걸 보고 후발대로 다른 무대 영상을 잘라와서 만들어낸 영상이 수십 개였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수십 개의 영상들을 여러 플랫폼에 동시에 풀기 시작하자 사람들 재생목록 키워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작 주말 동안에 세이렌 관련 빅데이터는 불쌍한, 안타까운이 아닌 노래 개 잘하는, 라이브 개쩌는, 과 같은 것으로 바뀌어 버렸다.
한순간의 선택이 그 분기의 실적을 바꿔 버리는 엔터판에서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엔터판이 아닌 세이렌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본인들이 한 라이브 방송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버린 걸 알아설까.
“이거…… 대체 무슨 일이죠……?”
“주말 동안 집 좀 갔다 왔을 뿐인데 대체 무슨 짓을 해둔 거예요.”
“와……. 태윤이랑 연훈이 형 반응 장난 아닌데요?”
주말 동안 집에 갔던 강도승, 이운, 박동준은 예상 못 한 화제에 잠시 당황하는가 싶더니.
“당장 곡부터 찍어야겠네.”
이 흐름을 그대로 타고 데뷔까지 화제성을 쭉 끌어갈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 * *
연훈이 형과 내가 주말 밤에 켰던 라이브 방송이 속된 말로 초대박을 터뜨리며 우리의 일정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승연 씨와 현아 씨는 출근과 동시에 우리를 회사로 호출했다.
당연히 꾸지람을 하려는 건 아니고,
“지금 진짜 대박이에요!”
“아직 정확한 지표는 안 나왔는데 세이렌 키워드 동영상들 조회 수가 기본적으로 다 2배 뛴 상태에요!”
“지금 흐름이 진짜 심상치가 않아요.”
두 사람 다 주말 동안 계속 모니터링을 한 모양이었다.
“일단 회사에서도 이거 흐름 맞춰서 보도자료 만들어서 뿌릴 예정이래요.”
“잘만 하면 데뷔 때 기대 이상의 성적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어쩐지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우리보다 더 흥분한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일단 좋은 게 좋은 거니 태클을 걸진 않았다.
대신 우리는 주말 동안 논의했던 것들에 대해 승연 씨와 현아 씨에게 공유를 해줬다.
“어젯밤에 저희끼리 이야기해 본 건데요, 지금 저희 흐름 좋으니까 차라리 이 화제성 끊기기 전에 좀 더 확 몰아쳐도 좋을 거 같긴 하거든요.”
“몰아치는 거요? 어떻게요?”
“어제 이야기를 해본 건데…….”
우리가 어젯밤 논의한 건 크게 보자면 두 개였다.
“다음 주에 촬영하고 풀 예정이었던 티저들을 이번 주 주말까지 푸는 게 어떨까 싶어요.”
이번 주 안에 좀 더 대세 여론을 장악하기 위해 떡밥을 끊임없이 공급하자는 것.
“그리고 데뷔를 6월 3째 주로 고정하고 좀 더 빠르게 모든 일정들 당겨오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두 번째론 아직까지 뚜렷한 날짜를 정하지 않았던 데뷔일을 6월 3째 주로 고정하잔 거였다.
6월 3째 주로 데뷔일을 고정하잔 건 사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게 아니었다.
연훈이 형이 어제 회의 중에 6월 3째 주에 데뷔를 같이 하자고 먼저 말을 꺼내 버렸다.
다음 주에 티저를 풀 거라면 한 달 안으로 데뷔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6월 3째 주 월요일이 가장 적당하다면서 말이다.
강현성과 전에 통화로 6월 3째 주 데뷔를 하자고 말을 맞춘 상태였기에 눈치 봐서 슬슬 말해야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걸 연훈이 형이 먼저 말을 꺼내 버릴 줄은 몰랐다.
이때 그냥 지나가듯이 얹혀서 6월 3째 주 좋네요~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형들을 속이는 느낌이 들 것 같아 일단 정보를 공유하긴 했다.
전에 강현성 선배에게 들으니 온리원도 그때 데뷔할 거 같다고 말이다.
전부 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날로 데뷔일을 맞추자고 전화로 이야기했다고 해야겠지만, 그거까지 말했다간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될 것까지 알리는 느낌일 거 같아 대충 이렇게만 말했다.
물론 같이 데뷔할 시 좋은 점도 있다고 내 사견인 척 강현성과 합의했던 이야기를 얹어서 말하긴 했다.
난 형들이 극렬히 반대하면 어쩌나 싶어서 나름 머리를 짜내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좋지!’
‘어차피 한 번 만나야 할 거 같은데 차라리 우리 흐름 좋을 때 만나는 게 나을 거 같아.’
‘준비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형들은 오히려 온리원과 데뷔가 겹치는 게 낫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 결과 6월 3째 주 월요일이 우리가 합의한 최종 데뷔일이 되었다.
물론 이를 회사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행히도 승연 씨와 현아 씨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티저 촬영 이번 주에 전부 다 끝내기랑 6월 3째 주 데뷔가 세이렌 분들 요구사항인 거죠?”
“회사에 말은 해봐야 하겠지만 지금 회사 기조가 세이렌이 하고자 하는 것들 최대한 들어주자는 쪽이라, 아마 실현 가능할 거 같아요.”
알고 보니 회사 쪽에서도 지금 우리 행보를 조금 더 밀어주려는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본인들이 아무것도 안 할수록 실적이 올라가니 아예 화력 지원 쪽으로만 가닥을 잡고 일하는 게 나아 보일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럼 저희는 윗선에 보고부터 하고 다시 올게요!”
“저희 올 때까지 A&R 팀에서 수집해온 곡들 몇 개 듣고 계세요!”
그렇게 승연 씨와 현아 씨가 떠나고.
우린 회의실에 앉아 A&R 팀이 수집해 왔다는 타이틀곡과 수록곡 후보들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한데,
“후우우.”
“하아아.”
“이제 진짜 실감 난다.”
“뭔가, 데뷔일 딱 정하고 나니까 정신이 바짝 드네요.”
우리 중 아무도 수집해 온 곡을 듣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데뷔에 대한 현실감이 느껴져 정신이 없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수집해 온 곡들이 끝나고.
트랙이 반복재생 되려던 그때.
“회사에서 6월 3째 주 데뷔 컨펌 났어요!”
“지금 바로 예산 집행해서 배정할 테니 바로 작업 들어가면 된대요!”
승연 씨와 현아 씨가 다시 회의실에 등장했고, 우리의 데뷔일이 최종 확정됐다.
그리고 이걸 시스템도 안 걸까.
[미션 성공]
[온리원과 같은 주에 데뷔하는 것을 확정 지었습니다.]
[두 번째 회귀자와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뭐? 지금?’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갑자기 보상을 수령하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