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63화 (16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3화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27번째 회귀자가 누구일지 감조차도 안 온다.

내가 몇 번째 회귀자일지도 전혀 모르겠고.

더 나아가 이 시스템의 정체조차 이젠 가늠이 안 된다.

이전엔 시스템의 정체가 신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극한으로 몰아세우고 동료 죽음이라는 끔찍한 리스크를 걸고 있으니 악마인가 싶었으나, 가만히 결과물들을 보니 우리가 잘 되길 바라는 신적인 존재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7번째 회귀자란 말을 듣자.

또 방금 전 날 죽이려 했던 도승이 형을 보자.

‘그냥 무한히 반복되는 현상일지도 몰라.’

생각이 다시금 바뀐다.

이 일엔 신이나 악마 같은 의지를 가진 존재는 개입하고 있지 않고 오직 같은 일을 계속 반복시키는 기계적 존재만이 개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이 시스템은 ‘시스템’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말 그대로 하나의 규약에 지나지 않을지도 몰랐다.

‘세이렌의 멤버들을 회귀라는 루프에 가둬 무한히 반복적인 고통을 겪게 한다.’라는 명령어가 깔린 기계가 우릴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 거다.

그간 시스템이 우릴 위한 조력자라 생각했는데,

‘아닌 건가……?’

우릴 몰아붙이는 최종 빌런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태윤아. 지금 내 말 듣고는 있지……?”

그때 연훈이 형이 내게 이리 물었다.

“아……. 네?”

난 시스템과 회귀자에 대해 생각하느라 현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 보니 형들이 다들 내 쪽으로 바짝 붙어 날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내가 물어보니,

“왜 그러냐니. 물어도 답도 안 하고, 갑자기 앉아서 식은땀만 흘리고. 가까이 다가가도 오는 줄도 모른 채 멍하니 책상만 쳐다보잖아.”

연훈이 형이 답답하단 듯 쏘아붙인다.

“태윤아…… 어디 안 좋아? 병원 갈까?”

운이 형은 내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리며 물었다.

“배고파? 뭐 먹으러 갈까?”

동준이 형은 내 손을 잡아채며 말했다.

“뭐 어디 열나나.”

이내 도승이 형이 손을 내밀어 내 이마에 가져다 대려는 순간,

탁.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도승이 형의 손길을 거칠게 뿌리쳐 버렸다.

“……?”

“……태윤아?”

“아……. 죄송해요.”

당황한 도승이 형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고.

운이 형과 동준이 형도 놀란 얼굴로 날 쳐다본다.

“그냥…… 땀이 많이 났으니까……. 괜히 누가 만지는 게 싫어서 그랬어요.”

말을 붙여보긴 했으나 싸해진 분위기가 나아지진 않았다.

“아……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도승이 형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지만 내가 너무 격하게 자신의 손을 뿌리친 것에 나름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 다들 괜찮으시죠……?”

“태윤 씨, 병원 알아볼까요……?”

회의실엔 우리만이 아니라 승연 씨와 현아 씨도 있었다.

두 사람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 괜찮습니다.”

난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화장실만…… 잠깐 다녀올게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의자에서 일어난 후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내가 따라갈게.”

화장실에 가는 나를 연훈이 형이 따라왔다.

따라오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으니 형들 마음도 이해가 가니 그냥 뒀다.

이내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하…… 참나…….”

형들이 걱정할 만하다.

그 짧은 순간에 식은땀이 어찌나 많이 난 건지.

얼굴이 축축하다.

누가 봐도 안색이 창백하고.

난 찬물을 틀고 얼굴에 끼얹었다.

페이퍼 타월로 물기를 닦아내며 다시 거울을 바라봤다.

연훈이 형은 화장실 뒤쪽에 서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거울을 통해 보니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미안해요. 저도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데뷔를 진짜 한다고 하니까…… 긴장돼서 그랬나 봐요.”

난 저 걱정스러운 얼굴을 조금이라도 펴주기 위해 아무 말이나 지어서 해댔다.

그 순간,

“두 번째 회귀자는 잘 만나고 왔어?”

“……네?”

거울 속 연훈이 형이 내게 두 번째 회귀자에 대해 물었다.

놀라서 고개를 뒤로 돌리니,

화아아악!

사방이 검게 물들더니 연훈이 형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았다.

애초에 지금 이곳은 화장실도 아니었다.

하늘도 없고 땅도 없고 오직 검은색만 가득한 공간에 나 홀로 떨어져 있었다.

‘이게 뭐야……!’

어디 갇히기라도 한 거라면 출구를 찾기 위해 몸이라도 부딪혀 볼 텐데 여긴 그저 암흑뿐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도 모르겠는 상황 속.

내가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연훈이 형……?”

이 상황을 만든 건 시스템이 아닌, 방금 전 내게 말을 걸었던 거울 속 연훈이 형뿐이라고 말이다.

애초에 시스템은 날 이런 식의 검은색뿐인 공간에 가둔 적이 없다.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전에 연훈이 형의 몸에 다른 존재가 빙의해 들어왔을 때엔 완전히 다른 인격체인 줄 알고 경계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 일을 겪고 나니, 나름 짚이는 바가 있었다.

“형은 몇 번째 회귀자야……?”

가끔씩 연훈이 형 몸에 들어오는 존재는, 그리고 지금 이 검은색뿐인 공간에 날 가둔 존재는, 어쩌면 다른 누가 아닌 수십 번의 회귀를 거친 연훈이 형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연훈이 형이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

몇 번째 회귀인지가 중요하지 않다니.

난 눈앞의 존재를 바라봤다.

분명 연훈이 형의 외형을 하고 있다.

말하는 것도, 눈빛도, 목소리도.

하지만 동시에 연훈이 형 같지 않았다.

같은 듯 다른 두 개의 인격체를 보는 것만 같다.

“잘 들어, 태윤아. 미션 성공이 중요한 게 아니야.”

“네……?”

“누군가가 주는 미션으로는, 원하는 걸 얻을 수 없어.”

“무슨 말이에요 그게.”

“처음으로 돌아가.”

“네?”

눈앞의 연훈이 형은 알 수 없는 말만 남기고 있었다.

의문이 해소되긴커녕 오히려 더 커지기만 하는데,

수우우우욱!

검은색의 공간이 수축하는가 싶더니 하나의 점처럼 변했고,

“흐읍!”

난 다시 화장실로 돌아와 있었다.

현기증이 핑 하고 돌았다.

급히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휘청거리는 몸을 지탱했다.

“태윤아!”

뒤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연훈이 형이 다가온다.

“괜찮은 거 맞아? 병원 가자! 나 진짜 걱정돼서 그래…….”

연훈이 형이 내 팔짱을 끼며 말한다.

난 그런 형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방금 전 어두운 공간 속에서 날 바라봤던 연훈이 형과는 분명 분위기가 다르다.

난 연훈이 형에게 손을 뻗어봤다.

내가 닿을 수 있고, 내가 만질 수 있는 형이 눈앞에 있다.

“왜…… 왜 그래 태윤아……?”

“아니에요.”

손을 거뒀다.

“가요.”

다시 회의를 하러 가야 한다.

데뷔까지 고삐를 짧게 잡고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겼다.

한데,

“병원부터 가.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연훈이 형이 완강하다.

“너 지금 회의실에선 식은땀 잔뜩 흘리고 화장실에선 휘청거리고 있어. 이런 모습 보여놓고 병원 안 가는 건 우리를 너무 배려해 주지 않는 거야.”

“아니…… 그게,”

“변명 듣고 싶지도 않다고! 그냥 가자면 가!”

연훈이 형이 잔뜩 화를 내며 내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왔다.

형이 이런 식으로 완강하게 구는 일은 거의 없는데.

지금 진짜 화가 난 모양이었다.

결국,

“네…….”

난 하는 수 없이 병원을 갈 수밖에 없었다.

* * *

당연한 말이겠지만 병원에선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볼 수도 있겠지만 기본 검사에서 이 정도로 모든 수치가 정상일 시엔 크게 의미가 없다는 말도 덧붙여줬고.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난 진짜로 아픈 게 아니라 시스템 탓에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몸이 살짝 이상해진 거였으니 말이다.

병원에 갔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오니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 운이 형은 여전히 회의실에 앉아 청음회를 하고 있었다.

“병원에선 뭐래요? 이상 없대요?”

도승이 형이 제일 먼저 묻는다.

“응. 건강하대! 살짝 저체중이니까 밥만 잘 먹으라고 하더라.”

“아…… 다행이네요.”

“걱정시켜서 죄송했습니다.”

난 형들에게 사과했다.

데뷔일이 결정된 중요한 날에 나 때문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것 같았다.

“아냐.”

“문제없으면 됐어.”

“이제 다 같이 모였으니까 우리 타이틀곡이랑 수록곡 픽스 하자.”

나와 연훈이 형은 회의실 의자에 앉았다.

다만 그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었는데,

“아까 손 뿌리친 거 죄송했어요, 형. 당황해서 그랬나 봐요.”

“어? 손 뭐? 아 그거. 됐어. 이미 다 잊었어.”

도승이 형은 내가 손 뿌리친 거에 대해 사과하니 멋쩍게 웃고는 넘어갔다.

분명 그때 반응을 보면 조금은 상처를 받은 거 같았는데.

내 상태가 워낙 안 좋아 보였던 건지 이해해 준 모양이다.

“자, 그럼 다시 청음회 할게요~”

동준이 형이 노트북을 조작해 음악을 틀었다.

“여기에 지금 도승이 형이 쓴 곡도 있는 거죠?”

내가 물어보니,

“어. 내가 쓴 곡도 이 중에 있어. 그래서 나는 투표 안 하고 너희끼리 하는 거 지켜볼 거야.”

도승이 형은 투표를 안 하고 관망만 한단다.

이거 나름 잔인한 방식이지 않나 싶다.

자기 곡이 떨어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한다니.

한데 도승이 형은 자신이 있는 걸까.

“내 곡이 뽑힐 테니까 별걱정 안 해.”

이리 말하며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난다.

“오~ 자신감~ 이러니까 억지로라도 떨구고 싶은데요?”

“얌마!”

“넝담~”

동준이 형과 도승이 형은 오늘도 만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간의 미운 정을 한 스택씩 쌓아 올린다.

수집해서 들어온 곡은 총 10곡.

이 중 3곡을 추려야 하며.

그 3곡 중에 타이틀곡 하나를 골라야 한다.

“너랑 연훈이 형이 병원 다녀오는 길에 우리끼리 한 번씩 더 듣긴 했어. 그래도 최종적으로 한 번만 다시 들어보고 투표하려고.”

운이 형은 친절히 설명해 주며 내 옆에 와서 앉았다.

“그럼 이제 진짜 틀게요~”

동준이 형은 노트북 스페이스바를 누르며 음악을 재생시켰다.

아침에도 잠깐 들었던 플레이리스트이지만, 최종투표를 위해 듣는다 하니 좀 더 긴장이 된다.

이내 수집되어 들어온 곡을 모두 듣고.

마지막 거수 투표를 할 때.

“4번 곡이 제일 좋았다 거수.”

“오케이. 내려. 이제 5번 곡이 제일 좋았다 거수.”

“흐음. 알겠어. 6번 곡이 제일 좋았다…….”

우린 모두 고개를 숙이고 도승이 형의 안내 멘트에 맞춰 손을 들었다.

그 결과 가장 많은 표를 받은 곡은,

“3번 곡이 만장일치였고, 3표씩 받은 곡은 6번 곡이랑 7번 곡이었어.”

3번, 6번, 7번이었고.

“셋 다 내 곡이야.”

그 세 개가 싹 다 도승이 형 곡이었다.

“와.”

“미친.”

“어우, 나 소름 돋았어.”

운이 형과 연훈이 형과 나는 가장 좋았던 세 곡이 다 도승이 형 곡이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소름을 느꼈다.

우리 귀가 도승이 형 음악에 맞춰진 건진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사람이 재능이 대단한 사람이란 게 체감됐으니 말이다.

다만 동준이 형만 딴지를 걸었는데,

“이거 조작이다! 강도승이 조작했다!”

“내가 미쳤다고 이걸로 조작을 하겠냐!”

“아니, 곡 세 개가 싹 다 형 곡일 리가 없잖아요!”

“박동준 너 혼자서 내 곡 세 개에 다 손 들었는데 뭔 소리야.”

“아, 암튼 조작!”

동준이 형은 조작무새마냥 조작을 외쳤고, 도승이 형은 그런 동준이 형을 보며 나중엔 한숨만 쉬었다.

이제 데뷔곡도 다 픽스 됐겠다.

“가사 작업 바로 할 수 있지?”

“네.”

내가 가사를 쓸 차례다.

“오늘 저녁까지 초안 쓰고 내일 아침까지 세 곡 다 완성해 볼게요.”

“너무 무리하진 말고.”

“원래 빨리 쓰는 거 알잖아요.”

난 도승이 형에게 내 메일로 곡 파일을 보내달라 했다.

다만 지금 난 가사 작업보다 다른 게 더 걸렸다.

‘남이 주는 미션으론 원하는 걸 얻을 수 없다.’

검은 공간에서 연훈이 형이 내게 해줬던 말들이다.

‘남이 주는 미션이란 게…… 설마 시스템이 주는 미션인 건가……?’

후보군을 따지자면 이것밖에 없다.

즉 그 말은,

‘미션을 따라가지 말란 거야?’

이렇게 정의가 된다.

다만 미션을 따라가지 않을 시엔 운이 형이 죽는다.

‘흐음.’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가운데.

‘처음으로 돌아가라고 했었던 거 같은데.’

연훈이 형이 했던 다른 말도 떠올랐고.

‘아. 설마.’

그 순간.

마치 소름이라도 돋듯 한 가지 떠오르는 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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