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64화 (164/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4화

처음으로 돌아가라.

이 모든 사건의 처음은 속초에서 다 같이 여행을 한 후 돌아오는 길에 음주운전 하는 트럭 기사와 만난 거였다.

전생에서 트럭 기사는 끝까지 자기 과실만은 아니라며 박박 우기던 추한 인간이었다.

물론 실제 우리 과실은 없었으니 그 인간은 실형을 살 수밖에 없긴 했지만.

암튼 전생에서 그 인간의 말로는 그러했는데,

‘이번엔……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지?’

갑자기 이런 의문이 생겼다.

물론 이 트럭 기사의 행방이 시스템과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찜찜한 건 짚고 넘어가야지.’

그냥 넘어가기엔 찜찜하다.

그때 교통사고가 크게 났으니 분명 기사 한 줄은 나왔을 거다.

트럭 기사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싶은데,

“그럼 일단 이 세 곡 중 타이틀을 뭘로 할지는 레코딩까지 끝내두고 생각할까?”

“그렇게 해요”

“좋아.”

“네~”

연훈이 형이 선곡 회의의 끝을 알렸다.

“태윤이는 여기서 좀 더 가사 작업 하다 갈래? 회의실 하루 종일 빌렸다고 듣긴 했거든.”

“아…… 그래요?”

잘됐구나 싶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우리 여기 아래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있을게. 막히는 거 있으면 언제든 불러!”

“네. 알겠어요.”

“방금 메일로 반주 파일 보내뒀으니까 가사 작업하면서 들어봐.”

“고마워요.”

“화이팅!”

“우린 내려가서 안무 작업 하고 있을게!”

“봉 작사가님 잘 부탁드려요~”

형들이 내게 가사를 부탁한단 말을 하며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적막해진 회의실 안.

난 회의록 정리용으로 비치되어 있는 노트북을 켰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신문 기사면에 들어갔다.

기사 검색에 들어간 후 날짜를 사고가 났던 그 날로 설정하고 기사들을 서치했다.

한데,

‘……뭐?’

서치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너무 쉽게 원하던 자료들이 나왔다.

문제는 헤드라인이 심각한 거였는데,

[서울양양고속도로에서 덤프트럭 중앙선 침범…… 운전자 실종]

팩트만 주르륵 나열한 아주 간단명료한 헤드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강렬한 문장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중앙선 침범한 건 놀랍지 않다.

‘운전자 실종’이란 문장이 믿기지 않는 거였다.

관련 기사를 더 검색해 본 후 내용을 종합해 봤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내용들이었다.

늦은 밤 트럭 한 대가 중앙선을 침범해 혼자 벽에 돌진했다는 것.

문제는,

‘트럭 기사 새끼는 어디 간 거야?’

형들을 죽였던 그놈이 사라졌단 거다.

처음부터 운전자가 사라졌던 건 아닌 모양이다.

당시에 사고 난 트럭에서 운전자를 끄집어낸 사람들이 존재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공통된 증언이 있었는데,

[술에 취한 건지 아니면 뭐 약을 한 건지…… 막 으아아아악! 소리 지르면서 고속도로 너머로 마구 도망을 가더라고요.]

[잡을라 캤는데 잡을 턱이 있나…… 머리에 막 피를 흘리면서도 죽자사자 도망가는데…….]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해 뛰어가더라고요. 방향은 저쪽 야산이 있는 방향이었습니다.]

그 트럭 기사가 마치 뭐에 취한 것마냥 미친 놈처럼 뛰어갔다는 거다.

“하아아…….”

머리가 복잡해진다.

연훈이 형이 말해줬던 그것.

처음으로 돌아가란 말.

그 비밀이 어찌 됐든 속초에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트럭 기사를 찾아봐야겠는데.’

이 실종된 인간을 찾아봐야 한단 거다.

다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가 막막하다.

그럼에도,

‘……해봐야지.’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가사 작업부터 하자.’

물론 할 일을 안 하고 갈 순 없다.

도승이 형이 보내준 반주 파일을 들으며 가사를 적어갔다.

* * *

가사 작업을 마친 후 홀로 나왔다.

형들에게는 가사 작업이 잘 안 돼서 환기도 할 겸 좀 멀리 돌아다니다가 오겠다고 말했다.

연훈이 형이 위험하니 따라오겠다고 했지만 내가 5살 애인 줄 아냐는 말로 우려를 일축시켰다.

사실 오늘 당장 이 트럭 기사를 찾으러 갈 필요는 없다.

속초까지 가는 길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하지만 불안한 건 참을 수 없다.

내 목숨이 걸린 게 아니라 형들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인데.

시스템의 비밀에 한발 다가갈 수 있다면 속초가 아니라 미국이라도 날아갔을 거다.

터미널 근처의 택시 승강장으로 간 후 가장 앞에 있는 택시의 문을 열었다.

“장거리 가시나요?”

“어딘데요?”

“속초 올라가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요.”

“……뭐요?”

“안 되면 다른 분 찾겠습니다.”

“그…… 요금이 꽤 나올 건데…….”

“드릴게요.”

“30?”

“왕복 50.”

“타요.”

다행히 택시 기사는 날 모르는 사람이었고, 아이돌인 걸 들킬 걱정은 없었다.

별로 수다스러운 사람도 아니었던지라 이동하는 내내 질문을 하는 경우도 피할 수 있었다.

난 택시에 몸을 실은 채로 핸드폰으로 가사 작업의 마무리 작업을 이어갔다.

멜로디에 맞춰 문장들을 다듬고, 단어를 깎고, 다시 재배치한다.

사실 이게 트럭 기사 찾으러 가는 길에 할 만한 작업은 아니긴 하다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냐.’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데뷔도, 시스템의 비밀을 찾는 것도.

밍기적거리다가 나중에 후회하기엔 걸린 리스크가 너무 크다.

“후우우.”

밀려오는 두통에 미간을 꾹꾹 누른 후 차창 밖을 바라봤다.

사고 후 가능한 속초 쪽으로는 가지 않으려 했다.

그 근방만 가도 안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니까.

하지만 진실이 거기에 있다면,

‘가야지.’

내 트라우마쯤이야 묻어둘 수 있었다.

* * *

점심 즈음부터 이동한 덕에 원했던 장소에는 오후 3시쯤 도착할 수 있었다.

트럭 추돌 사고가 난 지점 근처에 택시가 멈춰섰다.

가능한 일생에 두 번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던 곳이다.

하지만 상처는 외면하려 할수록 깊이 새겨진다고.

이 장면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단 한 순간도 잊어본 적도 없었다.

택시 기사에게 고속도로 한복판에 있는 사고 지점을 말해줄 때 너무도 쉽게 네비에 그 지점을 찍어주는 내 모습에 스스로도 모순됨을 느꼈다.

“젊은 사람이 이런 데 뭔 사연이 있대? 허허.”

운전하러 오는 동안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이던 사람이 막상 도착하니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다.

난 마스크와 모자를 좀 더 얼굴에 밀착시켰다.

“찾을 게 있어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2시간만 기다려주세요. 30만 원은 지금 드리고, 나머지는 돌아와서 마저 드리겠습니다.”

“그려~”

택시 기사는 내가 더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눈치챈 건지 다른 걸 묻진 않았다.

난 택시 기사를 뒤로한 채 야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긴…… 아직도 보수 공사가 안 됐네.’

트럭이 침범한 중앙선은 복구됐으나 움푹 파인 벽은 아직 보수되지 않았다.

그때 액셀을 밟지 않았다면 저 움푹 파인 게 벽이 아니라 우리가 타던 차량이었을 거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아찔해진다.

난 가드레일을 넘어 황무지로 들어섰다.

저기 보이는 야산까지는 어림짐작으로 약 30분 정도 걸릴 것 같다.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 * *

온리원의 숙소.

강현성은 최근 며칠간 이뤄진 황준결, 윤동혁 사건을 쭉 훑어봤다.

사실 이전부터 의문이긴 했었다.

그가 아는 봉태윤이라면 자기 형들이 이렇게 처맞는 걸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계속 황준결, 윤동혁의 쎄한 멘트들이 이어지면 본인이 직접 말을 해줘야 하나 생각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된 걸 보니 나름 생각이 있어서 가만있었던 거구나 싶었다.

“와. 형. 진짜 지금 목 완전 칼칼해요. 저 내일 노래 못 부르는 거 아니에요?”

“엄살떨지 마.”

“아, 진짠데.”

온리원의 김주현이 장난치듯 말한다.

지금 온리원은 데뷔 앨범 레코딩 중이었다.

5곡짜리 미니앨범이고, 이미 곡 수집과 프로듀서 선정은 끝났으며, 본격적인 레코딩에 들어갔다.

오늘은 그 첫날이었고.

“인후통엔 아이스크림인데. 오늘은 인정이죠?”

“금요일 티저 촬영에 혼자 굼떠 보이고 싶으면 먹어.”

“……얼음만 꺼내 먹을게요.”

“잘 생각했어.”

김주현이 얼음으로 퉁퉁 부은 목을 달래는 동안, 다음 멤버들이 하나둘 거실로 들어왔다.

“흐아아. 힘들다.”

“우리 곡 레코딩 한다 하니까 더 긴장되는 거 같아요.”

“그래도 기대되긴 해.”

강현성은 온리원의 멤버들을 하나씩 쭉 훑어봤다.

더쇼케2를 하며 서로 간에 동료애가 생겼고, 회사를 옮기며 소송을 하느니 마느니 실랑이를 함께 벌이다 보니 훨씬 더 끈끈한 관계가 됐다.

“형! 이번 주에 같이 교회 가는 거죠?

“그래.”

“아빠한테 말해둬도 되죠?”

“대신 뒷자리에서 예배만 드리고 가야 해.”

“당연하죠~ 어차피 형이 앞쪽에 앉으면 예배에 지장 생겨서 안 돼요.”

“그래. 주말에 교회 같이 가자.”

파워 크리스찬인 박영호는 몇 번이나 강현성을 전도하려 애쓰고 있었는데, 강현성은 그 노력이 가상해 한두 번쯤은 교회에 같이 나가주기로 했다.

온리원이라는 팀은 이제 내부적으로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누구 하나 한눈파는 인원도 없었고.

모든 스케줄들도 강현성의 시야권 안에 있었다.

팀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니 강현성의 시선은 슬슬 팀 밖으로도 향하고 있었다.

온리원과 필연적으로 겹치지 않을 수 없는 포지션의 그룹.

세이렌.

동시에 그곳의 막내인 봉태윤.

그들을 생각하는 강현성의 마음은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잘하고 있으려나.’

그의 근황은 늘 강현성의 관심사란 거였다.

* * *

야산에 올라온 지 3시간이 지났다.

시간은 오후 6시를 훌쩍 넘었고, 해는 벌써 뉘엿뉘엿 질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기온은 떨어지고 있었다.

다행인 점은 아직 5월인지라 기온이 떨어져도 많이 춥진 않단 거다.

진짜 문제는 다른 거였는데,

‘역시 갔네.’

야산 중턱에 올라타 바라본 고속도로 갓길,

그곳에 세워져 있던 택시가 이미 사라져 있었다.

약속했던 2시간이 이미 지나 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긴 했다.

1시간 전에 간 건지 아니면 방금 전 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차는 떠났다.

‘면허를…… 따둘걸.’

이 연고 없는 야산에 꼼짝없이 고립됐다.

사실 무턱대고 올라오긴 했지만 정말 그 실종된 트럭 기사를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가 이 야산에 있으리란 법도 없고.

이쪽 방향으로 도망쳤다고 한 거지, 진짜 이곳에 터를 잡고 숨었다고 말한 이는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나도 오늘 당장 이 트럭 기사를 찾아내리란 기대를 품고 온 건 아니었다.

‘단서라도 하나 찾아야 하는데.’

실종된 그 트럭 기사가 흘린 단서.

그거 하나만이라도 잡아볼 생각이었다.

그 단서를 통해 이 트럭 기사가 어느 방향으로 이동한 건지라도 유추해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그 도망친 방향 중 가장 몸을 숨기기 좋을 것으로 보이는 거점들 몇 군데를 특정한 후, 나중에 시간이 될 때 그곳으로 가서 기사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대책 없는 방법이긴 하지만,

‘통찰을 써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몇 군데 장소만 더 잡아서 증거 몇 개만 더 잡으면, 결정적인 마지막 조각은 통찰을 통해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즉 오늘 이 산에 온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 기사가 흘렸을 단서만 하나 잡으면 되는데,

‘몇 개월이 지났는데 너무 늦게 온 건가.’

상식적으로 아직까지 단서가 남아 있을 리는 없긴 했다.

그간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눈도 왔는데.

어디로 어떻게 쓸려갔을지 알 수 없을 터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려 했는데,

“……뭐?”

시야 한구석에 낯선 구조물 하나가 들어왔다.

이 야산을 3시간 둘러본 결과 누군가 관리하는 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 아예 없던 곳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저건 분명하게 사람이 만든 인공 구조물이다.

“……덫인데?”

동물을 잡기 위한 덫.

그 트럭 기사가 아직 이곳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아니, 적어도 한동안은 이곳에 몸을 숨기고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 찰나.

사악-

등 뒤에서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미친.”

산발로 기른 머리에 낡고 헤진 옷차림.

잔뜩 겁먹은 듯한 눈동자.

노숙인으로 오해할 법한 비주얼이지만, 저 얼굴 생김새만큼은 결코 잊지 못한다.

형들의 죽음에 우리 쪽 과실이 있다며 박박 우기며 심장에 칼을 찌르던 얼굴을 어찌 잊겠는가.

이 사람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감이 안 왔는데,

“……찾았다.”

제 발로 내 앞에 굴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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