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6화
난 강현성에게서 오는 전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세 번째 옵션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받으려 하니 그래도 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강현성과 최근 부쩍 이런저런 대화를 자주 나누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허물없이 대할 수 있을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다.
한데 내가 잠깐 미쳤던 걸까.
아니면 오늘 워낙 큰 사건들을 연달아 겪어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걸까.
강현성의 전화를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정서적으로 구석에 몰리면 판단력과 사고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하던데. 어쩌면 내가 그 상태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해서 거의 반쯤은 충동적으로…….
“여보세요.”
강현성의 전화를 받아버렸다,
-아, 오늘은 한 번에 받았네요.
내가 한 번에 전화를 받을 거란 생각을 못 한 건지, 강현성은 다소 당황한 눈치였다.
-늘 며칠은 전화를 씹어서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군요.
“안 바쁘면 받습니다.”
-안 바빠요? 지금 가장 바빠야 할 시간 아닙니까?
“……산책 중이었습니다.”
뼈 때리는 맞는 말이라 변명이 궁색하다.
지금 제일 바빠야 할 시기이긴 하지.
6월 3째 주 데뷔를 같이하기로 결정지었으니까.
-6월 3째 주 데뷔 가능한 거죠?
“네. 회사에 말했고 지금 최종 컨펌도 났습니다. 그쪽은요?”
-저희도 6월 3째 주 데뷔 확정입니다. 아마 이번 주 중으로 티저 공개할 거 같고요.
“……저희도 아마 이번 주 주말 중으로 티저 공개할 거예요.”
-티저부터 겹치겠네요.
“네.”
뭔가 의미 없는 대화만 이어진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서로 데뷔로 간 보는 게 아니다.
그건 이미 저번 통화에서 질릴 만큼 하지 않았는가.
한데 강현성은 이런 대화를 하려고 전화를 한 걸까.
-컨셉은 나왔습니까?
자꾸 뭘 떠보려고 한다.
-스튜디오랑 티저 촬영 감독은 구했나요?
아니 이따위 걸 물어서 어디다가 쓰려나 싶다.
우리가 하는 업체랑 같은 데로 맞추려고 그러나.
무슨 시험 기간에 전교 1등이랑 2등이 은근히 공부량 견제하면서 주고받는 대화 같다.
이렇게 빙빙 돌릴 순 없기에,
“그…… 제가 산책을 조금 멀리까지 나와서 그런데요…….”
난 강현성의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내 할 말만 냅다 시작해 버렸다.
-……뭐라고요?
“산책을 좀 멀리까지…… 나왔다고요…….”
-……어쩌라고요?
그렇지.
어쩌라는 답이 나오는 게 맞지.
저건 뭐 비아냥대는 어쩌라고요 가 아니라 진짜 어쩌라는 거냐고 묻는 느낌의 질문이다.
“혹시…… 데리러 올 생각 있습니까?”
-……뭐라고요?
나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강현성이라고 알까 싶었다.
이 대화의 주제와 흐름을 전혀 못 잡고 있을 거다.
데뷔 앨범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산책 멀리까지 나왔으니 데리러 오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나도 내가 정상이 아닌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전화 받기 전부터 이미 내 판단력과 사고력은 한참 바닥이었다.
오늘은 내게 너무 힘든 날이었고, 몸과 마음이 이미 완전 지쳐 버린 상태였으니 말이다.
현재 내 입은 자기 혼자 충동적으로 아무 말이나 막 지껄이고 있었다.
-뭐 술이라도 마셨습니까? 미성년자 아니에요?
강현성은 진지하게 내가 취했다고 생각하나 보다.
“술 안 마셨습니다.”
-근데 대화 주제가 왜 이렇게 흘러갑니까?
“……그만큼 산책을 멀리 나온 거라 생각해 주면 안 될까요?”
-……지금 본인이 얼마나 맥락 없이 떠들고 있는지 전혀 감이 안 오죠?
“아뇨…….”
-……아는데 그런다고요?
누가 보면 나랑 강현성이 콩트라도 찍는 줄 알 거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침묵하자 강현성은 져줄 생각이라도 든 건지 한풀 너그러워진 목소리로 묻는다.
-하아…… 그래서 어딘데요.
“속초요.”
-……?
“속초까진 아니고…… 서울양양고속도로 사이의 한 야산입니다. 오신다면 네비로 주소 찍고 오셔야 할 거예요.”
-……뭐 지금 방송 촬영 중입니까?
“아뇨.”
-……말이…… 안 되는데…….
강현성이 이렇게까지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내는 걸 처음 본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타들어 갈 거 같다.
누가 들어도 지금 이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조금 멀리 산책을 나왔다면서 속초까지 와달라 하는 미친놈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못 옵니까?”
-……갈 수 있겠어요, 제가?
“……그쵸.”
이 시간에 속초까지 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생각해보니 당연히 안 되는 건데.
난 강현성을 뭐로 생각했던 거지.
난 멍한 정신을 억지로라도 수습하려 했다.
이제야 조금씩 냉정함을 되찾게 된다.
‘진짜…… 하아…… 미쳤네.’
냉정함을 되찾으니 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건지 체감된다.
연훈이 형에게 전화하기엔 두려운 게 많고 승연 씨와 현아 씨에게 전화하기엔 미안한 게 많다 보니 나도 모르게 최악의 선택을 해버린 거 같다.
사실 이런 건 초조하게 생각할수록 더 안 좋은 선택만 하게 되는 건데 말이다.
“그…… 사실 다 거짓말이었습니다.”
해서 수습이라도 하겠다고 아무 말이나 지껄였는데,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네요.
강현성은 내게 무슨 일이 있단 걸 눈치는 챈 모양이다.
-제가 속초까지 올라갈 순 없어요. 뭐, 사실 미안할 건 없지만…… 미안해요.
“미안할 건 없는데 뭐가 미안합니까.”
-근데 보통 그러면 콜택시 부르지 않습니까?
“아……!”
콜택시라는 말에 잠깐 멍해졌다.
세상에.
내가 이걸 못 떠올리다니.
오늘 정말로 정신적인 충격을 많이 받았나 보다.
아니면 트럭 기사랑 싸우다가 머리라도 부딪혔던가.
-제가 가끔 부르는 기사님 번호 드릴게요. 돈만 준다 하면 장거리든 단거리든 주소가 안 찍히는 곳이든 가주는 기사님입니다. 이쪽 사람들 많이 태우는 분이라 비밀 유지도 철저하고요.
“……네.”
-서울 조심히 올라와요. 끊습니다.
강현성은 그리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강현성에게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시크릿콜 : 010-xxxx-xxxx
콜택시 기사 번호다.
난 그 번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하아…….”
쪽팔려 죽을 것 같다.
이 방법을 못 떠올리다니…….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불쑥 솟는다.
일단 5분 전의 나는 나중에 실컷 욕해주는 걸로 하고,
지금은 이 택시 기사에게 전화 거는 게 먼저다.
* * *
콜이 왔다.
전화할 때부터 범상치 않은 사람 같단 생각은 했다.
현재 위치와 목적지를 말해주니 소요 시간과 필요 경비만 건조하게 답해주고 끊었다.
나와 개인적 사담은 조금도 나누지 않겠다는 의지가 아주 강력하게 엿보이는 대화법이었다.
당연히 만족도는 아주 높은 대화였고.
약 1시간가량을 기다리니 택시가 정말 왔다.
선글라스를 쓰고 마스크까지 쓴 택시 기사다.
나보다 더 개인 정보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 같다.
차에 올라타니 목적지를 한 번 더 묻고는 그대로 출발한다.
‘왜 강현성이 가끔 쓰는 기사님인지 알겠네.’
연예인으로 살다 보면 말 못 할 순간들이 종종 있을 거다.
직업 특성상 얼굴이 쉽게 팔리다 보니 함부로 행동할 수 없으니까.
그럴 때 종종 써먹을 수 있을 법한 택시다.
문제는,
“백만 원. 현금으로 지금 뽑아오시면 됩니다.”
“네…….”
가격이 아주 더럽게 비싸다는 것뿐이다.
택시 기사는 서울 진입과 동시에 가장 근처에 있는 ATM 기기를 검색하더니 날 내려줬다.
집 근처 ATM 기기에 내려줬다간 지불 안 하고 튈까 봐 그러는 것 같았다.
해서 이렇게 엄한 곳에 내려줘서 함부로 튈 생각도 못 하게 하려는 듯싶었다.
불신당하는 느낌이라 썩 유쾌하진 않으나,
‘시스템 잘 짜뒀네.’
택시 기사가 합리적인 사람 같아서 묘하게 마음에 들기도 했다.
난 카드를 꽂은 후 백만 원을 뽑았다.
이제 넥스트 웨이브와 계약하며 받았던 보너스를 절반 넘게 사용했다.
뭐 따로 사치를 부리는 편은 아니니 아직 그래도 여유롭다 생각하긴 하지만,
‘아깝긴 아깝네.’
택시 한 번에 백만 원을 태우니 아찔하긴 하다.
택시로 돌아와 현찰 백만 원을 건네주니 기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출발했다.
가는 동안 형들에게서 연락이 쏟아졌다.
동준이 형은 봉태윤 괜찮? 이라는 문자를 한 번 보내고 말았으나 운이 형이나 도승이 형은 어디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와 같은 문자들을 반복적으로 보냈다.
특히 연훈이 형은 계속 전화를 걸어댔다.
대충 돈도 뽑고 상황도 정리된 것 같아 전화를 받으니,
-어디야 태윤아? 너 저녁 전까진 들어와야지! 지금 우리가 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어디 아프다거나 누구 만났다거나 그런 거 아니지?
연훈이 형이 오래 참았던 말들을 다다다 쏟아냈다.
“아니에요. 미안해요. 가사 작업하다가 일이 잘 안 풀려서 산책 좀 나간다는 게…… 어쩌다 보니 좀 길어져서…….”
-산책을 하루 종일을 나가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니까요……. 얼른 들어갈게요.”
-지금 어딘데?
“어…… 음…… 그 서울?”
-그니까 서울 어디?
“그…… 거의 다 왔어요! 그럼 끊을게요.”
-태윤아! 태윤…….
난 연훈이 형의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어차피 1시간 내로 도착할 테니 괜찮을 거 같았다.
난 차창 너머를 바라보며 심호흡을 했다.
지금 형들이랑 통화도 하고 택시까지 타고 있으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지만,
‘쉽지 않네.’
사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몹시 피로하다.
난 잠깐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오늘 일어난 일들에 대해 차분하게 정리를 해볼 시간이 지금의 내겐 간절히 필요했다.
* * *
잠깐 눈 좀 붙였다 생각하니 금세 숙소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시각은 오후 11시 30분.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 정도 오바 되었으나 이 정도면 선방한 거다.
하루를 넘기지는 않았으니까.
여기서부턴 보는 눈이 많으니 모자와 마스크를 다시 착용했다.
“감사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택시 기사님과 건조한 인사를 나누고 차량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입구까지만 왔기에 숙소가 있는 곳까지는 걸어가야 했다.
우리 숙소가 있는 동으로 이동하니,
“어……?”
“뭐야. 봉태윤 왔네.”
“형?”
아파트 동 현관 앞에 도승이 형이 서 있었다.
“아니…… 왜 여기 서 있어요?”
설마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린 건가 싶었는데,
“아, 헬스 하고 왔어. 이젠 밤에 가야 사람이 없더라고.”
“아하.”
운동하고 왔단다.
“어떻게, 좀 긴 방황을 한 만큼 가사는 잘 나왔냐?”
도승이 형은 내 어깨에 팔을 올리며 묻는다.
가사 작업은 사실 출발하기 전에 끝내둔 상태다.
“네. 잘 끝냈어요.”
다만 그걸 말할 순 없으니 긴 산책 끝에 가사가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기대할게, 걱정시킨 만큼 좋은 가사여야 할 거야.”
“기대하세요. 나쁘지 않으니까.”
형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숙소가 있는 층을 누르고 잠시 기다리니 문이 닫혔다.
“아 맞다. 나 오늘 점심 먹고 잠깐 낮잠 잤는데, 이상한 꿈 꿨다.”
“네? 뭐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도승이 형이 말했다.
왜 갑자기 꿈 얘기인가 싶었는데,
“꿈에서 우리가 데뷔 무대 준비 중이었는데, 네가 갑자기 사라졌더라고.”
“……네?”
그 내용이 어딘가 익숙한 내용이었다.
“왜 사라진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없어졌어. 암튼 갑자기 데뷔일에 사라지니까 황당한 거지. 억울하고 화나고. 근데 갑자기 연훈이 형이랑 운이랑 동준이가 픽픽 쓰러지더라니까.”
난 놀란 눈으로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그리고 정신 차려 보니까…… 주변에 아무도 없더라고.”
“……형?”
“응?”
데뷔일에 내가 사라졌단 말.
그건 오늘 만난 두 번째 회귀자가 내게 했던 말이다.
한데 그걸 어째서 도승이 형이 알고 있단 건가.
난 도승이 형의 손을 잡아챘다.
“……뭐야?”
형이 당황하건 말건,
지이잉-!
통찰을 사용했다.
세상이 일순 정지하고.
내 사고만 가속한다.
이 공간 속에 있는 모든 정보들이 하나하나 실시간으로 내 머릿속에 쏟아져 들어온다.
이 엘리베이터가 어느 정도의 장력으로 우릴 지탱하고 있는지.
이 공간의 소재는 무엇이고, 지금 어느 높이에 있는지.
또한,
-얘가 갑자기 내 손을 왜 잡는 거야……. 뭔 일 있나…….
도승이 형의 속마음이 들린다.
이런 걸 들으려고 난 통찰을 쓴 게 아니다.
통찰을 수 회차 사용해 보고 나니 이 힘의 근본에 대해 조금 깨닫게 된 바가 있다.
이 능력의 근본은 말 그대로 꿰뚫어 보는 힘이다.
외견을 넘어 본질을 볼 수 있는 힘.
내가 지금 보려는 건 바로 그 본질이다.
내 앞에 있는 도승이 형의 본질이 과연 무엇인지.
어째서 두 번째 회귀자의 기억이 도승이 형에게 있는 건지.
그 과정을 역추적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