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7화
난 통찰을 사용하여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도승이 형이 과연 내가 아는 그 도승이 형이 맞는지를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두 번째 회귀자의 기억이 도승이 형에게 있는 걸로 보아, 어쩌면 두 번째 회귀자의 인격까지도 도승이 형에게 조금 흡수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단 우려가 들었으니 말이다.
두 번째 회귀자는 어쨌든 날 죽이려고 했던 회귀자고, 그런 회귀자의 인격이 도승이 형에게 흡수되어 있다면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거 같았으니까.
만일 도승이 형에게 다른 인격이 흘러 들어가지 않았다면 지금 통찰을 통해 보이는 인격도 하나뿐일 거다.
다른 인격이 흘러 들어가 있다면 인격이 하나가 아닐 테고.
한데,
‘……미친…….’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두 번째 회귀자의 인격이 조금 흘러 들어가 있는 정도일 줄 알았건만,
‘……몇 개야……?’
한 개도, 두 개도 아닌 십수 개의 인격이 도승이 형 뒤에 겹쳐져 있다.
도승이 형 뒤로 반투명한 다른 형상들이 겹겹이 붙어 있는 모양이었다.
저 중 유독 도승이 형과 더 가깝게 달라붙어 있는 인격이 있었는데,
‘저게 두 번째 회귀자인 거야?’
예상컨대 그러지 않을까 싶다.
난 손을 뻗어봤다.
지금 내가 물리적으로 저 인격을 도승이 형과 떼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될 리가 없지.’
내가 손으로 떼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난 하나하나 도승이 형 뒤에 붙어있는 인격들을 세어봤다.
하나, 둘, 셋, 넷……. 총 15개.
15개의 인격이 붙어 있단 건,
‘설마 회귀를 15번 했단 거야……?’
지금 한 번의 회귀조차 벅차고 힘든데.
도승이 형은 열다섯 번을 했다니.
저 가장 끝에 있는 15번째 회귀자의 정신이 온전히 남아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다만 이리 주르륵 늘어서 있는 인격들을 보고 있자니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다른 세계의 회귀자의 정신이 빙의해 오는 거 아니었어?’
분명 시스템은 세계선이 붕괴한다는 말 따위를 해왔다.
마치 다른 세계의 회귀자가 빙의해 온다는 듯이 말이다.
한데 지금 이건 세계선이 붕괴할 필요 없이 전부 도승이 형에게 붙어 있는 인격들이다.
그렇다면 붕괴할 세계선이 없는데 왜 세계선이 붕괴한다는 말 따위를 하는 걸까.
생각이 이어지다 보니 순간 스쳐 지나가는 깨달음이 있었다.
이 세계선이 붕괴한다는 말이 다른 회귀자가 있던 세계와의 선이 붕괴한다는 말이 아닐지도 몰랐다.
시스템이 있는 상위의 차원과 내가 있는 하위의 차원의 경계선이 붕괴되며, 시스템이 직접적으로 봉인되어 있는 인격을 잠시 깨워낸다는 것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난 도승이 형 뒤에 묶여 있는 수많은 인격들을 바라봤다.
저 하나하나의 형상들이 모두 도승이 형이었다.
생각이 깊어지려는 찰나,
찌잉-!
‘……흡.’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통찰의 부작용이 나타난 거다.
급히 능력을 해제했다.
도승이 형의 내부를 관조하던 통찰의 눈이 벗겨지고.
세계가 원래의 속도로 돌아온다.
너무 무리해서일까.
“어? 야! 봉태윤!”
“아.”
코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근데,
“어……?”
이 주르륵이 주르륵에서 멈추지 않는다.
“미친! 야! 코 막아!”
손으로 코를 막았음에도 손가락 사이사이로 피가 흘러나온다.
정신은 분명 멀쩡하다.
현기증이 나지도 않는다.
다만,
“왜…… 왜 이러죠……?”
“지금 그게 중요하냐!”
코피가 멈출 생각을 않는다.
이 와중에 엘리베이터는 숙소가 있는 층에 도착했다.
“바로 병원으로 가자.”
도승이 형이 1층 버튼을 누른 후 닫힘 버튼을 연타한다.
“지금 이 시간이면 구급차 부르는 것보다 내가 업고 뛰는 게 더 빠를 거야.”
“그…… 형.”
“뭐 임마.”
“다른 형들한테…… 비밀로 해줘요.”
“…….”
“제발요.”
“……그래.”
엘리베이터가 다시 1층에 도착하고, 우린 바로 병원으로 뛰었다.
분명 엘리베이터에 있을 때엔 몸에는 큰 문제가 없다 생각했는데,
‘몸이…… 안 움직여…….’
막상 내려서 움직이려 하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런 나를 도승이 형이 업은 후 바로 밖으로 달려나갔다.
성인 남성을 업고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었으나.
‘일단…… 생각은 그만하자.’
생각할수록 두통이 점점 더 심해진다.
* * *
강도승은 병원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봉태윤을 내려다봤다.
방금 전 엘리베이터에서 봉태윤이 코피를 쏟는 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사람이 눈앞에서 그토록 많은 피를 쏟는 걸 처음 보는 거였으니 말이다.
들쳐업고 병원에 도착하니 의사들도 꽤 놀란 듯 보였다.
급히 접수하고 몇 번의 검사를 하고 난 후 지금은 수액을 맞고 잠든 상태였다.
“환자분 보호자 되시죠?”
“아, 네.”
때마침 의사가 와서 봉태윤의 검사 결과에 대해 브리핑해줬다.
“일단 검사 결과로서는 크게 신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네? 코피를 그렇게 쏟았는데요?”
“지금 수치로 보면 피로 누적이 가장 가능성 높은 일로 보입니다. 외상 없이 코피가 나는 경우는 보통이 피로 누적이거든요. 최근 환자분께 피곤할 만한 일이 많았나요?”
“아…… 네. 확실히 이런저런 일이 많긴 했죠.”
“그렇다면 피로 때문인 탓이 크니, 일단은 수액 맞고 돌아가신 후 하루 이틀쯤은 안정을 취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가끔 보호자분들이 코피가 너무 많이 난다며 걱정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크게 걱정하실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의사가 돌아간 후 강도승은 다시 봉태윤을 바라봤다.
아이돌 준비한다고 밥도 제때 못 챙겨 먹으면서 이런저런 고민들로 몸을 혹사시켰던 게 문제이지 않나 싶다.
강도승 본인이야 식단 관리를 하며 운동을 제때제때 하니 건강적인 부분에선 문제가 없으나,
‘박동준 제외하면 다들 냅다 굶는 편이긴 하네.’
돌이켜 생각해 보니 멤버들 모두 다이어트의 방식이 꽤 건강하지 않은 축에 속했다.
‘한번…… 다 끌고 운동을 시작해보든가 해야겠네.’
그간 운동 권유를 반쯤은 장난식으로 해왔지만, 이젠 정말 팀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반강제로 헬스장에 데리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다만 그건 그거고.
‘뭘까.’
엘리베이터에서 봉태윤이 냅다 코피를 쏟는 바람에 제대로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으나, 한 가지 걸리는 일이 있었다.
봉태윤이 자신의 손을 잡은 순간, 꿈처럼만 느껴졌던 일부 기억들이 마치 본인이 겪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으니까 말이다.
데뷔일에 봉태윤이 갑자기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던 기억.
그 탓에 봉태윤을 원망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기억.
그리고 다시 만난 봉태윤과 치고받고 싸우던 기억까지.
조각조각 난 기억의 잔상들이긴 했으나 분명 ‘꿈’보다는 ‘기억’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갑자기 흘러 들어온 낯선 기억에 몸을 흠칫 떨었으나, 그걸 정리할 틈 따윈 없었다.
머릿속의 낯선 기억보다 눈앞의 피 흘리는 봉태윤이 그에겐 훨씬 중요한 사안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봉태윤이 수액을 맞고 잠든 지금은 그 낯선 기억들에 대해 다시 고심해 볼 필요가 있었다.
‘뭘까, 그건.’
분명 그에게 일어난 적 없는 일이건만, 그의 머릿속에 있다.
이런 것도 데자뷔 현상 같은 걸까?
아니면 꿈속 장면이 너무 강렬해 본인이 지금 착각을 하는 걸까?
생각이 더 깊어지려는데,
“……도승아.”
“아.”
멤버들이 하나둘 응급실에 도착했다.
이곳이 응급실이고 이제 본인들이 공인인 걸 얼추 자각하고 있어설까.
크게 소리를 내며 등장하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봉태윤이 있는 병상으로 다가왔다.
봉태윤은 다른 멤버들에게 알리지 말아달라 했으나, 미안하게도 그건 지켜줄 수 없는 약속이었다.
너무 늦은 시간까지 안 들어가면 멤버들이 걱정하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 데뷔일이 근처까지 온 지금 이건 다 같이 상의해 봐야 하는 사안일 테니 말이다.
“왔어?”
“응.”
“태윤이는 자요?”
“어. 자고 있어.”
“하아아. 우리 태윤이……. 후우우.”
우연훈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봉태윤을 내려다봤고, 박동준과 이운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봉태윤을 바라봤다.
“의사 선생님이 뭐라셔?”
“아마 피로 누적일 거래.”
“다른 말씀은 없으셨고?”
“하루 이틀쯤은 안정을 취하라 하시더라고.”
“우리…… 데뷔일 미루는 게 나으려나?”
이운의 한마디에 다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6월 셋째 주가 가장 좋을 것 같으나 그것보다 중요한 건 봉태윤의 건강이었다.
“내일 회사랑 이야기해서 아예 7월이나 8월 중으로 미루자.”
“맞아요.”
“이렇게 급하게 해서 될 일은 또 아니니까…….”
다들 데뷔일을 미루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중.
“……안 돼요…….”
봉태윤이 천천히 눈을 뜨더니 안 된다고 한다.
“뭐야.”
“얘 언제 일어났어.”
“태윤아, 괜찮아?”
“야, 근데 이렇게 아플 정도면 데뷔일 미뤄야지. 꼭 그때 해야 한단 법은 없잖아.”
봉태윤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앉은 채로 형들을 바라봤다.
“제가 바보같이 무리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제발 6월 3째 주 데뷔해요.”
“너 오늘 병원만 두 번 왔어. 이런 몸 상태로 뭘 하겠다는 거야.”
“이제부턴 진짜 컨디션 관리 잘할게요. 그러니까…….”
봉태윤은 우연훈과 강도승의 손을 각각 붙잡으며 말했다.
봉태윤이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간절하게 부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막내라고는 하지만 그룹에서 가장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겼으니 말이다.
막내의 막내 같은 어리광에 강도승과 우연훈은 차차 마음이 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완강하게 거부하는 쪽도 분명했는데,
“봉태윤. 지금 몸 상태 봐가면서 해야지. 무턱대고 할 게 아니잖아.”
박동준은 완강하게 6월 3째 주 데뷔를 미루자는 쪽이었고.
“맞아. 태윤아. 지금은 건강 먼저 생각하자. 19살부터 벌써 이러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그래.”
이운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봉태윤은 그런 의견들에 쉽게 굴하지 않았다.
방금 막 잠에서 깨어났다고 보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화술로 형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지금 회사 내에서도 그 일정에 맞춰 보도자료랑 홍보용 이미지들 제작하고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다 스탑시켜요.”
“어쩔 수 없지, 건강이 먼저잖아.”
“게다가 한 번 이런 식으로 일정 미루기 시작하면 회사와 우리 간의 신뢰는 또 어떻게 되겠어요. 첫 시작부터 안하무인처럼 굴고 싶진 않아요.”
“다음부터 다시 차차 신뢰를 쌓으면 되는 거지.”
“결정적으로 지금 우리 흐름 좋잖아요. 이거 한번 놓치면…… 언제 다시 이런 흐름 찾아올지 모르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우리 그간 데뷔까지 멀고 험한 길 왔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만 더 나 믿어줘요. 진짜 진짜 컨디션 관리 잘할게요, 이제.”
봉태윤의 화술에 이운과 박동준도 서서히 넘어가는 중이었다.
“하아. 그래.”
“일단 퇴원부터 하자.”
결국 당장은 한 걸음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이후 세이렌 멤버들은 다 같이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우연훈이 끌고 온 차량에 올라탄 후 숙소로 복귀했다.
“내일 다시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 당장은 자자.”
“컨디션 보고 또 이야기합시다.”
“잘 자요.”
세이렌 멤버들은 밤 인사를 주고받은 후 방으로 들어갔다.
* * *
[미션 성공.]
[6월 3째 주 데뷔일을 지켜냈습니다.]
[성공 보상 없음.]
형들이 다 잠든 밤.
난 홀로 시스템이 띄워주는 알림을 들으며 깨어 있었다.
방금 전 응급실에서도 이 시스템 덕분에 잠에서 깰 수 있었다.
형들이 날 사이에 두고 데뷔일을 미루자는 대화를 하고 있을 때, 이 시스템이 마치 당장 일어나서 이 상황을 말리라는 듯 뇌에 대고 알림을 쏴줬으니 말이다.
“하아아.”
난 한숨을 푹 내쉬며 천장을 바라봤다.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한숨 잔 덕분에 지금 당장 잠이 오진 않았다.
도승이 형한테 제발 다른 형들에게 말하지 말아달라 했건만, 역시 이런 문제에 있어선 지켜질 수 없는 부탁이었나 보다.
난 운이 형이 혹시라도 깰까 싶어 조심스레 이불을 빠져나왔다.
그러곤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통찰을 많이 쓰면 뇌에 과부하가 오는구나.’
오늘 응급실에 실려 가며 알게 된 사실이다.
전권을 위임받은 통찰은 분명 강력한 힘인 것은 맞으나 맘 놓고 쓰기엔 리스크가 너무 강한 능력인 것도 맞았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도 한참이나 넘어서는 능력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난 지금 내가 수행하고 있는 미션 두 가지를 생각했다.
[2022년 안에 앨범 초동 50만 장을 기록하시오.]
[성공 시, 다음 미션으로 진행]
[실패 시, 멤버 이운의 사망]
운이 형의 사망을 걸고 하는 미션이 하나.
[일주일 안에 데뷔앨범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를 1,000만 회 이상 달성하시오.]
[성공 시, 27번째 회귀자와의 만남]
[실패 시, 미래시 회수]
그리고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걸고 하는 돌발 미션이 하나 있다.
난 소파 끝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고심을 이어갔다.
도승이 형 뒤에 있던 그 15개의 인격…….
그리고 현재 도승이 형 옆에 좀 더 깊게 달라붙어 있는 두 번째 회귀자의 기억…….
더 나아가 세계선이 붕괴한다는 그 시스템 로그까지…….
여러 증거들을 머릿속에 넣고 조합을 굴려본다.
시스템의 허점이 있을지, 시스템의 비밀은 뭘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지.
이제 나는 시스템에게 끌려다니는 게임을 해선 안 된다.
쌍방으로 한 대씩 주고받는 게임을 해야 한다.
그러려면,
‘이 미션 중 하나를, 조금 손 봐야겠네.’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 미션 중 하나를 내 입맛대로 바꿔볼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