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8화
다시 한번 통찰을 사용했다.
지이잉-!
아마 시스템도 이쯤이면 슬슬 질려 하지 않을까 싶다.
급해 보여서 통찰의 전권을 줬건만 이렇게까지 질리도록 사용할 줄은 몰랐겠지.
나도 이렇게까지 사용할 일이 많을 줄 몰랐다.
하지만 쓰다 보니 또 쓰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자꾸만 늘어가는 느낌이다.
똑, 딱, 똑…….
시계 초침 지나가는 소리가 한없이 느려지고.
수백 배 늘어난 1초 속에 난 가만히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지금 하려는 짓은 어쩌면 꽤 무모할지도 모른다.
시스템의 권한에 도전하려는 짓이니까 말이다.
난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미션을 떠올렸다.
그러자 귓가에 미션이 ‘울리기’ 시작한다.
예전부터 사실 이게 불만이었다.
보통 미션 같은 건 귀에서 ‘울리지’ 않는다.
두 눈에 ‘보여야’ 정상이다.
물론 정상이냐 비정상이냐를 운운하기엔 난 이번 회귀가 처음이긴 하다만, 어찌 됐든 귀에 미션이 울리는 건 직관적인 방식이 아니란 거다.
해서,
‘보이게 만들어야지.’
난 지금 저 미션들을 내 두 눈에 상태창의 느낌으로 띄워볼 생각이다.
그래서 쉽지 않은 일이 될 것 같다 말한 거다.
이건 시스템의 권한에 접근하는 일이 될 테니 말이다.
난 통찰을 사용한 채로 허공의 한 지점을 응시했다.
통찰은 본질을 꿰뚫는 힘이다.
그리고 몇 번 사용해 보며 느낀 건데, 어디를 집중해서 바라보냐에 따라 내 머릿속에 흘러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달라진단 거다.
예컨대 티브이를 뚫어져라 바라보면 티브이에 대한 정보가 좀 더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거다.
지금 내가 관조하는 건 허공.
전달하고 말고 할 정보 따위가 없는 허공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시스템이 안 걸까.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이런 식의 알림이 울린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계속 허공을 바라봤다.
허공을 바라보는 통찰이 깊어질수록 난 눈에 보이는 외견적인 정보 이상의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나라고 이런 게 익숙한 일은 아니다.
대체 누가 세계의 본질을 바라보려 하겠는가.
먼 옛날 그리스 철학자들이 아닌 이상에야.
하지만 바라보고 바라봤으며, 적어도 허공의 한 공간. 딱 A4용지 정도 되는 그 자그마한 공간만큼의 내외부를 난 전부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 위에 미션의 내용을 하나씩 옮겨적기 시작했다.
찌이잉-!
통찰을 너무 많이 써서일까.
머리가 또다시 아파 온다.
하지만 무시하고 계속 안력을 높여갔다.
치지직-!
허공 위로 글자가 하나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이미 글자가 떠오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시스템은 내게 접근 권한이 없단 소리를 한다.
[접근 권한이 없…….]
시스템도 이제 슬슬 뭐가 뭔지 모르는 지경에 온 건지, 말을 하다가 다운되어 버린다.
‘진짜 말 그대로 시스템이었나 보네.’
어떤 입출력 값이 적용된 컴퓨터 코드 같다는 생각이 조금 더 강해진다.
일단 그건 그거고.
‘집중하자.’
난 미션을 새기는 일에 집중했다.
사실 맘 같아선 지금 이 위에 운이 형의 사망 미션을 새겨놓고 사망 리스크를 수정해 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건 주기적으로 주어지는 이른바 ‘메인’ 미션에 가까운 거였고, 그만큼 시스템이 강력하게 보호하는 것 같았다.
그걸 허공에 새겨넣으려는 순간 마치 통찰이 벗겨져 나갈 것처럼 강하게 반발했으니 말이다.
해서 ‘돌발 미션’으로 주어졌던 뮤직비디오 조회 수 미션에 접근했고, 운이 형 사망 미션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 A4용지만 한 허공 위에 가져올 수 있었다.
이건 마치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파일 하나를 끌어오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이내,
[일주일 안에 데뷔앨범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를 1,000만 회 이상 달성하시오.]
[성공 시, 27번째 회귀자와의 만남]
[실패 시, 미래시 회수]
‘……됐다!’
눈앞에 떠올랐다.
돌발 미션의 ‘창’이 말이다.
난 그 창을 손을 들어 만져봤다.
만지기만 하겠는가.
‘고치자.’
내용을 직접 다시 쓸 수도 있었다.
지금 이 미션의 성공 보상을 수정하는 게 내 목표다.
다만 성공 보상을 수정하려면 미션 내용도 수정이 되어야 할 거다.
통찰을 썼다고는 하나 모든 미션을 내 맘대로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해서 미션부터 바꾸려 했는데.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다운된 줄 알았던 시스템이 다시 등장하더니.
‘어?’
사아아악-
내가 허공 위에 띄워두었던 미션 창을 삭제해 버린다.
난 힘겨루기라도 하려는 건가 싶어 다시 한번 허공을 바라봤다.
다만,
찌이잉-!
통찰의 한계에 봉착했다.
코피가 쏟아질 것 같다.
아니, 이번엔 코피가 문제가 아니다.
‘……두통이……!’
이러다 쓰러질지도 몰랐다.
코피 쏟고 응급실 갔는데 소파에 기절까지 한 게 들통나면 이번엔 진짜로 6월 3째 주 데뷔에 실패한다.
결국,
후우웅!
“허어억!”
통찰을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조금 무리하긴 한 걸까.
주르륵.
코피가 한 줄기 흐른다.
아까처럼 막 콸콸 쏟아지는 건 아니긴 하였으나,
‘후우우.’
짜증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난 휴지를 뽑아 코피를 닦아냈다.
머리가 웅웅 울려서 앉아 있기 어렵다.
소파 위에 대자로 뻗은 후 천장을 바라봤다.
미션 수정까지 거의 다 왔는데.
마지막에 실패했다는 건,
‘역시…… 죽을 각오로 날 위기에 몰아넣지 않으면 안 되는 건가.’
죽음에 필적할 사건이 아니면 시스템은 내기에 응하지 않는단 거다.
오늘 시스템과 처음으로 딜을 성공했단 생각에 오만해졌나 보다.
다만 매번 시스템과 내기를 하려고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진짜 단명할 거 같은데.’
아마 이번 생에 무병장수는 포기해야 할 거 같다.
두통이 차차 나아지는 걸 느낀 후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하려던 것을 실패하긴 했으나, 이미 실패한 걸 계속 붙잡고 있을 순 없다.
‘다음 기회를 노리자.’
당장은 데뷔 준비가 급선무다.
난 착잡한 마음을 정리한 후 방으로 돌아갔다.
* * *
다음날부터는 데뷔를 위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내가 보내준 가사지는 별다른 피드백 없이 바로 A&R 팀에게까지 통과를 받았다.
손댈 부분 없이 그대로 써도 될 것 같다는 총평이 전달됐을 정도였다.
사실,
‘이래도 되나.’
이 가사들 너무 정신없이 쓰긴 했다.
물론 대충 썼단 건 아니지만.
해서 몇 번 수정할 생각으로 보냈는데,
‘가사도 쓰다 보니 늘었나 보네.’
내 생각보다 내 작사 능력이 좋아졌나 보다.
데뷔 준비를 이어가는 중 사건 사고가 없던 것은 아니다.
“얌마! 박동준! 여기서 내가 너 그 말할 때마다 물결표 넣는 쪼 죽이라고 했잖아!”
“사람이 어떻게 말할 때마다 물결표를 넣어요~”
“봐봐! 지금도! 제발 녹음할 땐 이상한 쿠세 좀 버리라고!”
“아, 진짜 말 되게 많아.”
“뭐 임마?”
“그렇게 잘하면 네가 와서 해봐!”
“이 자식이!”
“아아아악!”
녹음을 하는 중 도승이 형과 동준이 형이 한 번 심하게 마찰을 일으켰다.
물론 두 사람 성격상 진짜 사이가 나빠질 정도의 마찰은 아니었다.
다만,
“와아아! 진짜 때렸어! 강도승이 진짜 사람 팬다아아악!”
“네가 치라고 대가리 먼저 막 들이밀었잖아. 그리고 안 때렸어. 그냥 민 거라고!”
“아아아아! 몰라몰라몰라!”
“어후, 열 받아. 어후우!”
늘 동준이 형이 저러다 진짜 한 대 처맞지 않을까 싶었는데, 드디어 도승이 형에게 처맞고야 말았다.
물론 진짜 때린 건 아니었다.
동준이 형이 쳐보라며 머리를 막 들이밀자 도승이 형이 짜증 난단 듯 그 머리를 옆으로 밀었을 뿐이니까.
다만 힘이 워낙 좋은 사람인지라 그 미는 동작만으로도 누군가가 때리는 것 같은 충격을 줬을 뿐이다.
이건 데뷔 과정 중 일어난 자그마한 갈등이고.
조금 사이즈가 큰 갈등은 나에게 있었는데,
“태윤아. 지금 너 응급실 갔던 거 봤던 사람들 있던데, 확인했어?”
“아, 네.”
내가 응급실에 실려 갔던 게 팬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며 논란으로 확산될 조짐이 보였다.
물론 진짜 논란이라 하기엔 그 사이즈가 크진 않기에 데뷔 전 마지막 화제성 낳을 소스로 사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팬들 마음 졸이게 하는 방식으로 화제성 장사하고 싶진 않았다.
“방금 녹음실 들어오기 전에 홍보팀 분들한테 SNS에 올릴 글 검토받고 왔어요. 거기서 문제 될 거 같은 문장만 한번 확인하고 바로 올려주겠대요.”
“아, 그래? 다행이다.”
운이 형은 이제야 안심이란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SNS 알림이 올라왔다.
내가 쓴 공식 입장문이 SNS에 올라갔다.
내용은 간단하다.
내가 컨디션 조절을 잘못해서 잠깐 응급실에 가서 피로 회복을 위한 수액을 맞고 왔다. 건강에 문제는 전혀 없고 앞으로 세일러 분들에게 더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를 더 잘 관리하겠다. 걱정시켜서 너무 죄송하고 더 프로다운 세이렌의 봉태윤이 되겠다.
라는 말을 좀 더 쿠션을 많이 깔고 좀 더 정중하고 공적인 언어로 만들어서 쓴 입장문이다.
“오, 잘 썼다!”
“그러면 다행이네요.”
입장문이 오해 없이 잘 받아들여진 걸까.
회사와 팀에 대한 억측과 추측이 난무하던 판이 빠르게 사그라들며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동준이 형이 나온 후 내가 들어가서 레코딩을 하고.
운이 형이 들어가서 레코딩을 하고.
마지막으로 연훈이 형까지 들어가서 레코딩을 했다.
한데 너무한 것이,
“와 도승아, 너 그렇게 웃을 수도 있었어?”
“아, 뭐.”
“우우우, 강도승 편애쟁이…….”
“조용히 해.”
연훈이 형이 노래를 시작하자마자 도승이 형 입꼬리가 귓가에 걸린다.
이내 녹음이 끝나자마자 형은 토크백 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형, 나와요. 완벽했어요.”
“아, 진짜?”
“네.”
“예에!”
그렇게 데뷔 레코딩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우리들의 데뷔 준비는 오랜 기간 기다리고 기대해온 만큼 빠르지만 안정적으로 진행되어 갔다.
* * *
일요일 주말 오후.
파랑새에서 세이렌과 온리원을 잡고 있는 사람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다들 오늘 세이렌과 온리원이 첫 번째 티저를 공개한단 걸 알았기 때문이다.
더쇼케2 하면서도 그렇게 부딪혔건만 하필이면 티저 공개까지 겹친다는 것에 다들 불만이 많았으나, 그덕에 아이돌판 자체에서도 이번 데뷔가 유명해지며 역으로 유입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아 현기증 날 거 같음;;
-ㅅㅂ 원동아!! 얘들 티저 좀 빨리 풀어라!
-오늘은…… 세이렌의 티저가 나오는 날…… 많관부…….
세이렌 팬들은 굳이 온리원과 같은 날 티저 공개라는 걸 의식하지 않고 본인들 덕질에만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번 티저의 컨셉이 무엇일지.
멤버당 개인 티저일지 단체 티저일지.
어떤 비트를 들고 왔을지.
착장은 무엇일지.
등등등.
대부분 세이렌 본체에 관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팬들끼리 데뷔 컨셉에 대한 궁예질을 하며 시시덕거리며 놀던 저녁 시간.
드디어 세이렌의 공식 SNS를 통해 티저가 공개되었다.
동시에,
-????
-태윤아……?
티저 공개 후 컨셉이 좀 더 분명해질 거란 예상과 달리, 팬들은 오히려 더 혼란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