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69화 (169/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69화

-태윤아????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티저 보고 더 컨셉이 뭔지 모르겠음 뭐지?

-와…… 아니 티저 스케일 봐 ㅠㅠㅠㅠ 세이렌 꽃길 드디어 걷는다 ㅠㅠㅠ

세이렌의 티저가 올라온 저녁.

세이렌 덕질을 하는 사람들의 피드에는 수많은 반응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공통된 반응은 물음표가 섞인 반응이었다.

티저라는 홍보 수단이 본편을 기대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니 이러한 반응은 분명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이렌의 티저는 그 물음표의 정도가 꽤 심했는데,

-아니 어떻게 30초짜리 영상에서 장르가 세 번 바뀜;;

어떤 컨셉일지 예상이 가는 순간마다 예상을 깨는 장면이 붙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와 진짜 태윤이 청량 개찰떡임;;

└우리 봉떤남자 섹시 다이너마트인데 뭔소리세요

└아ㅋㅋ봉떤남자 세계관 최강자인데 뭔 소리임

└ㅋㅋㅋㅋㅋㅅㅂ대혼돈임ㅋㅋㅋㅋㅋㅋ

└이게 어떻게 다 한 티저로 나올 일임?

사람들 사이에선 티저 영상의 이미지들을 가지고 오며 마치 그 이미지들이 각각 다른 활동 사진인 척하는 놀이가 시작될 정도였다.

이런저런 반응들이 쏟아지긴 하나 그 모든 것들을 모아보자면 긍정적이라 할 수 있었다.

컨셉이 여러 개가 나오긴 했으나 각 컨셉들의 비주얼적 완성도가 높았으며, 무엇보다 티저 자체에 공을 들였다는 게 체감됐기 때문이다.

-ㅅㅇㄹ 좋고 말고를 떠나서 비트 ㅈㄴ 돈 냄새 나는 듯

└비트 잘 찍은 듯ㅇㅇ

└이번에도 강도승이 찍었음?

└ㅇㅇㅇㅇ맞음

└우리 천재만재 까만고양이 강도승의 비트가 마음에 드시는 군요…… 6월 20일 세이렌 데뷔 많관부……

하물며 세이렌에게 크게 관심이 없는 층에게까지 어필이 되는 정도의 티저였다.

긍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지는 것 또한 아이돌판에서는 좋은 홍보 수단이 된다.

-아 그래서 대체 컨셉이 뭐라는 거임?

-ㅋㅋㅋㅋ궁금하긴 하네

-아 ㄱㄷ 보고 옴

아직 유입되지 않은 층이 하나둘 세이렌의 티저를 보기 위해 이동했다.

그리고 돌아온 이들의 공통된 반응은,

-아 ㅅㅂ 진짜 그래서 얘네 컨셉 뭐냐고;;

여전히 세이렌의 데뷔 컨셉이 특정되어지지 않는단 거였다.

* * *

사람들이 컨셉을 특정 짓지 못하는 세이렌의 티저는 이러했다.

오프닝씬은 교실 뒤편에 앉아 있는 봉태윤이었다.

-얜 19살 같이 안 느껴지다가 교복만 입으면 딱 그 감성으로 돌아가는 거 같음

-약간 나한테만 다정한 우리 학교 일진짱 같음

└ㅋㅋㅋㅋㅋㅋ뭔지 알 거 같음

봉태윤은 교실에 앉아 턱을 괴고 창밖 너머를 바라봤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반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며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순간.

콰아아앙!

난데없이 폭발음과 함께 화면이 암전.

앨범 타이틀곡으로 예상되는 비트가 밑으로 깔리기 시작한다.

미니멀한 베이스 소스들을 간헐적으로 찍어 고급스럽고 묵직한 느낌이 드는 미디움 템포의 비트였다.

그 위로 다시 영상이 흘러가는데.

-????

-ㅅㅂ 반 애들 다 어디 갔어??

학교가 불타오르고.

불타오르는 학교를 배경으로 피가 튄 교복을 입은 봉태윤이 저벅저벅 걸어간다.

마치 막 전투라도 치르고 온 사람마냥 숨을 헐떡이듯이 걷는 게 포인트다.

아포칼립스인지, 아니면 하이틴에 액션을 섞은 느낌의 스릴러 감성인지 헷갈리는 와중.

끼에에에엑!

갑자기 괴물의 비명이 들린다.

이후 다시 한번 화면은 암전.

폐허가 된 도시 속.

정확한 형체는 나오지 않으나 괴생명체로 추정되는 덩어리를 깔아뭉개고 봉태윤이 앉아 있다.

의상 또한 교복에서 다른 의상으로 바뀌었는데, 위아래로 깔맞춤한 검은색 전투복에 입에는 오버 테크놀로지 감성이 물씬 풍기는 마스크를 쓸고 있었다.

당장 손에서 불이라도 뿜으며 괴물들과 전투라도 치를 것 같은 기세다.

-ㅅㅂ 이번엔 에스퍼물임??

-우리 봉떤이 s급 각성자?!

-ㅋㅋㅋㅋㅋㅋㅋㅋ아닠ㅋㅋㅋㅋ장르가 몇 번 바뀌냐고요ㅋㅋㅋㅋ

한가롭게 교실 뒤편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던 티저가 마지막엔 괴물을 때려잡고 우수에 잠긴 각성자를 잡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한 줄 정리로 담으려 하면 할수록 더더욱 미궁에 빠지는 티저인 셈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남고생이던 태윤이는 알고 보니 학교를 박살 낼 정도의 각성자였고 미래엔 저 징그러운 괴물까지 혼자 때려잡는 강자가 된다는 뭐 그런 거인 듯 물론 이거 그냥 내 뇌피셜

└ㅋㅋㅋㅋㅋㅋ웹소설 한편 뚝딱이네

사람들은 이 맥락 없는 이미지 덩어리들 사이에서도 연결지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직접 중간부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 과정 중에 온갖 소스들이 튀어나왔고, 몇몇 능력자들은 아예 완성도 있는 하나의 소설을 써내려가기도 했다.

이건 또 다른 홍보 수단이 되어 다시 또 유입을 긁어모으는 트리거로서 작용하기 시작했다.

분명 이제 막 데뷔하는 그룹의 데뷔 티저건만 워낙 돈을 많이 쓴 게 보여설까, 확실히 화제성을 긁어모으며 돌판에서 소비되고 있었다.

-근데 돈 냄새 나는 건 팩트임

-진짜 돈 엄청 갖다 바른 거 같음

-이런 건 솔직히 가성비로 가면 짜칠 거 같은데 걍 시원하게 들이부은 거 같아서 보기 좋음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바라보는 세이렌의 봉떤 남자 봉태윤은 가만히 핸드폰을 껐다.

봉태윤은 심란한 표정을 지은 채 이리 중얼거렸다.

‘애매하네.’

다들 돈 쓴 티가 난다, 좋다, 재밌다는 반응들을 보이고 있으나,

‘왜 순위를 빨리 못 뺐지?’

아쉽게도 파랑새의 실트 1위는 봉태윤이 아니었다.

-1위. 강현성 티저 (65,819)

-2위. 봉태윤 티저 (65,575)

아주 근소한 차이이긴 하나 강현성의 1위를 넘어서질 못하고 있었다.

* * *

형들과 나는 티저 공개까지 잠도 제대로 안 자고 달려왔다.

고작 일주일 안에 모든 작업을 마무리해야만 했기에 잠을 자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당연히 2시간 이상 잘 수 없었고, 그 2시간마저도 대부분 샵이나 차에서 해결하곤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린 우리가 원하는 퀄리티 수준의 티저를 뽑아낼 수 있었다.

난 티저가 올라간 걸 보고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티저는 분명 잘 뽑았다.

퀄리티도 좋았고.

팬들 반응도 좋다.

하지만,

‘1위 탈환이 잘 안 되네.’

파랑새 실트로 강현성에게 계속 근소하게 뒤처지고 있었다.

물론 다행인 점은 실트로만 2위일뿐 티저 조회 수는 우리가 2배가량 높단 거였다.

아마 이건 썸네일의 힘이 꽤 큰 것 같은데, 내가 괴물을 깔아뭉개고 앉아 있는 SF 아포칼립스 느낌의 샷을 썸네일로 써서인 거 같다.

비단 아이돌을 좋아하는 팬들만이 아닌 서브컬처를 사랑하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어필이 가능한 이미지였으니 말이다.

다만 티저 영상의 경우 조회 수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건 오히려 파랑새 반응이다.

이쪽이 훨씬 더 시장 반응에 가까울 테니까.

한데 그 반응이,

‘강현성에게 근소하게 밀리네.’

완전 뒤처진다는 건 절대 아닌데, 아주 근소하게 모자른 느낌이 들고 있었다.

물론 내가 강현성을 이기는 것도 언감생심이긴 하다.

우리 팀에서 그나마 강현성 팬덤을 이길 만한 팬덤은 연훈이 형뿐이니까.

오히려 내가 혼자서 강현성 티저의 턱 끝까지 추격이라도 한 게 대단한 거다.

“우리…… 온리원분들 티저도 다 같이 볼까?”

그때 연훈이 형이 이리 말했다.

거실에 앉아 있던 형들과 나는 테이블 앞으로 모여 앉았다.

사실 다들 말은 안 하고 있었을 뿐이지 온리원이 어떤 티저를 냈는지 꽤 궁금해하고 있었을 거다.

난 분명 퀄리티는 우리가 높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

‘돈을…… 그냥 찍어 바른 게 아니니까.’

우리 티저는 VFX가 많이 들어간 영상인데, 그 짧은 시간에 저만한 VFX를 넣으려면 인력을 미친 듯 사용하며 그 수많은 인원들 전체를 철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VFX 인건비만 해도 아마 어지간한 아이돌들 뮤직비디오 제작비는 나왔을 거다.

“틀게?”

“네.”

우린 강현성이 나오는 온리원 데뷔 티저를 재생했다.

한데,

‘……?’

분명 난 돈으로 찍어 바르는 건 우리 회사가 최고일 거라 판단했다.

대기업에서 만들어낸 합작회사로서 자본금의 차이가 아마 수십 배는 날 테니까.

한데,

‘이 새끼들 뭐야……?’

난 온리원의 소속사인 어나더원에 대한 평가를 달리해야 했다.

일당백 느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이 100인분의 역량을 발휘하는 회사라 생각했는데,

‘돈도 많았어, 얘네?’

이제 보니 능력 있는 애들이 돈까지 많았나 보다.

제발 할 거면 둘 중 하나만 하던가.

갑자기 유원동 사장이 너무 쓸모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 * *

온리원의 티저는 강현성이 단독으로 나오는 티저였다.

어두운 배경 속.

횃불에 불이 붙으며 회백색의 커다란 공동에 빛이 들어온다.

넘실거리는 불꽃 사이 모습을 드러낸 건 황금빛 옥좌.

외국 판타지 드라마의 배경으로 써도 될 만큼 완성도가 높은 세트였다.

그 순간,

탁. 탁.

구두가 지면과 닿는 소리가 공동에 청아하게 울려 퍼진다.

이후 검은색 슈트를 입은 강현성이 왕관을 손에 쥔 채로 터벅터벅 걸어온다.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걸음걸이였으나, 동시에 위험해 보이는 실루엣이기까지 했다.

넘실거리는 횃불 위 불꽃이 강현성의 얼굴 위에 음영을 드리우고.

강현성은 결연한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한다.

그는 손가락에 왕관을 걸쳐놓은 채 옥좌에 천천히 몸을 묻는다.

권태롭고 나태한 사람처럼.

아니면 이미 모든 불꽃을 태워 버려 삶의 기쁨을 잃은 사람처럼.

나른하고 오만하게 화면을 응시하더니,

쾅!

폭발음과 함께 성벽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후 화면은 암전.

-22.06.20

-First one

날짜와 곡명이 동시에 등장하며 티저가 종료된다.

세이렌의 티저가 30초 안에 최대한 많은 이미지들을 집어넣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폭발시키는 전략이었다면,

-아 강현성 개 미친새끼 같음;;;

-ㅠㅠㅠㅠㅠ진짜 와 보자마자 고함 지름

-아니 우리 천재아이돌은 날마다 리즈 갱신하시는듯 ㅠㅠㅠ

온리원의 전략은 하나의 장면을 최대한의 완성도로 뽑아내어 다가올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는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런 강현성의 티저를 본 세이렌의 멤버들은 아무 말 없이 화면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대박이네.”

“……돈 많구나……. 저곳도…….”

“고급스럽다…….”

그들 모두 하나의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애써 무시하며 뒤로 넘기려 했다.

다만 봉태윤은 본인도 모르게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 버렸는데,

“……이러다 음방 1등 한 번을 못하진 않겠지……?”

그 한마디에,

“야!”

“에베베베베! 나 아무것도 안 들었어~”

“부정 타니까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하아……. 봉태윤 이 자식을 진짜…….”

활동 내내 온리원에게 끌려다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다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성이 형 지금 세이렌 분들 티저 보셨어요?”

“어.”

“그……. 음……. 좀 불안하지…… 않아요?”

“흐음.”

세이렌이 온리원 티저에 불안함을 느낀 것처럼,

“불안하긴 하네. 예상 이상으로 퀄리티가 좋아서.”

온리원도 세이렌의 티저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