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72화 (17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72화

우리들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다.

데뷔쇼에 올라가기 전 우린 대기실에서 앉아 뮤직비디오를 확인하고 있었다.

기다려온 데뷔가 이제 실감이 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뮤직비디오에 좋은 반응들이 많아서 그런 걸까.

“하아…… 흡.”

연훈이 형이 눈시울을 붉혔다.

다만 억지로 꾹 눈물을 참아내더니 약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뮤직비디오 반응 너무 좋다, 얘들아.”

다들 연훈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일 한번 내겠는데요?”

동준이 형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며 연훈이 형에게 가서 말했다.

“뮤직비디오 밤 새워가며 찍은 보람이 있네. 영상 진짜 잘 나왔다.”

운이 형은 뮤직비디오 썸네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했다.

두 눈에 애정과 사랑이 아주 잔뜩 묻어 있었다.

“감독님이랑 스태프분들이 엄청 고생하셨겠네……. 어후…… 이 철야의 흔적들이…….”

도승이 형은 다른 의미로 뮤직비디오의 퀄리티에 놀란 모양이다.

대중들과 팬분들의 반응도 좋고, 우리 팀 내부적인 반응도 좋다.

“우리 이제 데뷔쇼만 잘하고 오자.”

“할 수 있다.”

“호오오!”

“손 모아, 손 모아!”

잠시 후 데뷔쇼에 올라간다.

W넷에서 뮤비와 음원 공개일 저녁에 시간대를 잡아줬다.

W넷 너튜브 채널로도 동시 송출되는 라이브 방송이었다.

“할 수 있다, 세이렌!”

“할 수 있다!”

“가서 연습한 거 다 쏟아내고 오자.”

“할 수 있드아아아!”

우린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기합을 줬다.

한데 왜일까.

분명 더쇼케2를 하며 무대에 대한 공포증은 다 극복했는데,

‘심장이 떨리네.’

가슴이 간지럽다.

“긴장되냐?”

도승이 형이 지나가며 묻는다.

긴장이라.

그건 아니고.

“설레요.”

이건 다가올 무대가 기대되는 거였다.

아직 무대 전까지 시간은 조금 남았다.

메이크업은 끝냈고 이제 의상을 픽스할 때였다.

“의상 들어왔습니다!”

“늦어서 죄송해요! 협찬사가 갑자기 변덕을 부려서……!”

때마침 의상팀이 의상들을 들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 * *

데뷔쇼에 당첨된 세이렌의 한 팬은 방송국 앞에서 나눠준 형광봉의 전원을 켰다.

역시 W넷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한 대기업의 아들들답게 데뷔쇼도 W넷에서 시간대를 빼줬다.

설마 당첨되겠어 하고 신청했는데 덜컥 당첨이 됐다.

원래 예상 못 한 선물이 더 감격스러운 거라고.

처음 당첨됐을 땐 회사에서 소리라도 지를 뻔했다.

그리고 지금은 혹시나 늦을까 아예 오후 반차를 써놓고 W넷 방송국의 라이브 홀 앞에 서 있었다.

‘형광봉 발광은 나쁘지 않네.’

그녀는 만족스럽게 형광봉을 흔들어봤다.

사실 이런 형광봉 말고 이제 세이렌 공식 응원봉을 갖고 싶다.

보통 빠르면 데뷔와 동시에 발표도 하는 거 같던데.

‘일해라 넥스트 웨이브…….’

이제 직장인이라 눈치 안 보고 소비가 가능하건만 망할 회사는 돈 쓸 기회를 안 준다.

뭐 아직 데뷔 초기고, 데뷔 후 한참 지나야 응원봉이 나오는 아이돌들도 종종 있긴 하니.

‘좀만 더 기다려 보자.’

당장 급할 건 아니었다.

“입장하겠습니다~”

때마침 데뷔쇼 입장을 시작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 곧 세이렌을 만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들의 데뷔쇼 무대를 직관할 수 있다니.

‘진짜…… 어디에 계신지 모르겠지만 당첨 뽑아주신 분 꼭 절 받으세요.’

이건 그녀의 덕질 인생에 있어 손에 꼽히는 행운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홀 안으로 들어갔다.

* * *

이제 곧 무대 위로 올라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상 픽스만 끝이 나면 말이다.

오늘 데뷔쇼에선 의상을 총 3번 갈아입는다.

오프닝 무대에 한 번, 중간 무대에 한 번, 마지막 무대에 한 번.

2번째와 마지막 무대 의상은 정해졌지만 오프닝 무대 의상은 협찬사 이슈로 인해 지금까지 딜레이가 있던 상태다.

물론 큰 문제까진 아니고, 대략적인 코디는 있으니 이제 옷만 고르고 올라가면 된다.

“전 이거랑 이거랑 이거요!”

“코디 짜준 대로 입네요?”

“제가 아무리 조합 고민해 봐야 의상 쌤들이 더 잘 알 테니까요.”

연훈이 형은 짜여진 옷대로 입는 선택을 했다.

“저도 그냥 짜준 대로 주세요,”

나도 마찬가지였고.

“어? 저 이거 바지 끝단 조금 접어도 돼요?”

“네네. 괜찮아요!”

“그럼 저 이거 좀만 접을게요.”

동준이 형은 아주 약간의 변주를 줬고.

“저 이거 브로치 하나 달고 싶은데.”

“흐음. 이쯤?”

“네네.”

“오! 예쁘다!”

운이 형은 작은 액세서리를 더했다.

우리들의 의상은 순식간에 픽스가 됐다.

다만 마지막까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아…… 왜 나만 두벌이 들어온 거야.”

도승이 형이다.

우리들의 경우 대부분 옷이 한 벌이었다.

여기서 뭐 추가할 소품이나 액세서리들 정도만 있는 거였지.

한데 도승이 형은 상의가 두 벌이나 들어왔다.

두 벌 중 한 벌을 선택해 입으란다.

한데,

‘옷이 왜 저래.’

두 벌의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오늘 우리의 오프닝 무대는 일전에 팬송으로 올린 적 있던 <항해>의 무대다.

해서 의상도 너무 과한 의상보다는 캐주얼한 의상으로 세팅이 됐다.

한데,

‘한 벌은 그냥 셔츠고 한 벌은 무슨 가슴이 브이넥처럼 파인 니트네.’

대체 의상팀의 도승이 형 캐릭터 해석이 뭔지를 모르겠다.

한 벌은 아주 평범한 하얀 셔츠다.

지금 입고 있는 청바지에 매치하면 깔끔하고 단정할 거 같다.

다른 한 벌은 베이지색의 패턴 없는 니트인데 가슴이 브이넥처럼 파인 니트였다.

당연히 저것도 명품 의상이고 옷 자체가 안 예쁜 옷은 아니다.

아마 저 의상을 만든 회사에선 저걸 단독으로 입으라기보다는 레이어드 해서 입으라고 내놨겠지.

처음엔 도승이 형도 이게 레이어드인 줄 알고 두 벌을 같이 입으려 했으나.

“도승 씨! 그거 아니에요! 둘 중 하나만 입어요! 지금 여름인데 누가 니트에 셔츠까지 같이 입어요.”

“……에?”

의상팀의 극구 만류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네가 보기엔 뭐가 낫냐?”

도승이 형이 나와 동준이 형에게 묻는다.

“뭐야. 왜 우리한텐 안 물어봐.”

“맞아. 섭섭하다.”

운이 형과 연훈이 형이 왜 자기들한텐 안 물어보냐 항의한다.

“두 사람은 좋은 말만 해주잖아요.”

도승이 형은 나름 이유가 있었다.

한데 좋은 말만 해줄까 봐 나랑 동준이 형을 골랐다는 건 우린 나쁜 말만 하는 사람들이란 소린데.

‘뭐야.’

미묘하게 기분이 나쁘다.

“뭐가 나을 거 같냐?”

두 의상을 유심히 바라봤다.

사실 무난한 건 하얀 셔츠다.

우리들의 의상들과 전반적으로 톤도 비슷하고.

그러니 상식적이라면 하얀 셔츠를 골라야 한다.

“셔츠 골라요. 셔츠 예쁘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건지 동준이 형은 셔츠를 고른다.

나도 셔츠를 입으라고 하려다가 생각을 고쳤다.

초동 50만은 지금부터 풀악셀을 밟아도 닿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애매한 목표다.

그렇다면 모든 선택에서 평범을 택하면 안 된다.

무엇보다,

‘도승이 형이라면……!’

이 의상을 의상팀에서 픽해준 이유가 분명 있을 거다.

“전 니트요.”

가슴이 푹 파인 니트를 골랐다.

“……진짜?”

“네.”

“이거 노출이 있잖아.”

“노출하라고 준 의상이잖아요.”

“진짜…… 이거 입으라고?”

“형도 솔직히 이거 입고 싶어서 우리한테 물어본 거 아니에요?”

“…….”

도승이 형이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문다.

정곡을 찔렸나 보다.

하긴, 만일 셔츠가 입고 싶었으면 그냥 별말 않고 셔츠를 입었을 거다.

근데 본인도 이 니트를 입으면 반응이 좋을 걸 알고 있으니 지금 우리한테 괜히 떠본 거다.

그냥 냅다 니트를 고르기엔 너무 파격적인 의상 같으니까.

“섹시한 멤버도 한 명쯤 무대에 있어야죠.”

해서 내가 도승이 형의 그 안전장치를 뽑아주려 했다.

“확실히…… 이 의상이 좀 더…….”

도승이 형이 니트 쪽으로 마음이 기우려는데,

“근데 다 가린 게 은근히 더 섹시하지 않나?”

동준이 형이 태클을 들어온다.

동준이 형 보기엔 하얀 셔츠가 더 섹시해 보이는 거다.

“아…… 또 그런가?”

이 인간은 음악 할 땐 의견이 그렇게 대쪽 같더니 왜 옷에는 이리 팔랑귀인가 싶다.

콜라 화채 만들던 열정으로 저 니트를 선택해야지.

왜 하얀 셔츠에 다시 눈길을 주는 건지.

“형. 다 가리면 안 되죠. 아니, 왜 다 가려요? 운동을 그렇게 했는데.”

해서 난 형의 헬스인으로서의 긍지를 건드렸다.

“하긴, 그것도 맞긴 해.”

도승이 형이 다시 날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근데 그러기엔 이건 너무 파이지 않았나?”

동준이 형이 다시 한번 반격한다.

“아, 또 그렇긴…….”

“형.”

도승이 형이 다시 한번 하얀 셔츠 쪽으로 눈길을 주기 전.

난 형의 손을 잡았다.

설득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닌 비언어적 수단도 동원해야 하는 법이다.

형과 눈을 맞추고.

손에 온기를 더하며.

“셔츠 입을 거면 어제 벤치 프레스는 왜 했어요.”

“……!”

“저렇게 단추로 꽉 막힌 옷 입을 거면 매일 가슴 운동 상 하부 나눠서 5세트씩 왜 수행했냐고요.”

“…….”

“형 요즘 벤치 몇 쳐요?”

“나 요즘 1RM 100 정도 치지.”

“형이 셔츠 입으면 벤치 100을 치든 1,000을 치든 사람들은 몰라요. 나랑 비슷한 줄 알지.”

“너랑 내가?”

도승이 형 트리거를 아주 제대로 건드렸나 보다.

나랑 비슷해 보일 거란 말에 열이 받은 모양이다.

“셔츠 말고 니트 입을게요. 의상 이걸로 픽스하겠습니다.”

한 치 망설임 없이 셔츠를 내려놓더니 니트를 입는다.

“와, 이걸 넘어가네.”

동준이 형은 어이없단 듯 날 바라봤다.

도승이 형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난 동준이 형에게 물어봤다.

“진짜 셔츠가 더 나아 보였어요, 형?”

“엥? 아니? 그냥 재밌어서 셔츠 우긴 건데? 누가 봐도 저 니트 입고 싶어서 드릉드릉대니까 더 말해주기 싫었던 거야.”

“……와.”

역시.

우리 팀에서 인성은 동준이 형 담당이었다.

이내 의상이 완성된 도승이 형이 나왔다.

가슴이 깊게 파인 니트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는데,

“와…….”

“어우…… 도승아.”

“세상에.”

“하하하하!”

우리 모두 이런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이게 바로 헬스인인 걸까.

그간 도승이 형 가슴 볼 일이 딱히 없어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형, 진짜 운동 열심히 했네요.”

“너랑 나랑은 근질부터가 다르다, 태윤아.”

“알았어요. 쇠 냄새 나니까 저리 가요.”

역시.

운동한 사람은 보여주는 걸 제일 좋아한다.

* * *

데뷔쇼가 진행될 라이브홀.

그곳은 이제 곧 등장할 세이렌을 기다리며 은근한 흥분감에 휩싸여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언제 세이렌이 나오려나 무대를 바라보는 가운데.

지잉-

앰프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어?”

팬들에게 익숙한 노래의 반주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리얼리티 촬영 후 공개했던 곡이자, 이번 데뷔 앨범에도 수록된 곡.

세이렌이 처음으로 공식화하여 만든 팬송, <항해>였다.

반주가 시작된단 건 데뷔쇼가 시작된단 거다.

이내 무대 위로 세이렌이 하나둘 올라왔는데,

“……어?”

“……미친.”

“도승아아아!”

“와. 잠만 아니,”

강도승이 최애건 아니건.

그 자리에 있는 모든 팬들의 눈은 강도승에게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