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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73화 (17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73화

강도승이 가슴이 파인 브이넥 형태의 니트를 입고 올라왔다.

과한 노출까지는 아니었다.

실제로 살갗이 보이는 부분보단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다.

하지만 강도승의 몸이 좋아서일까.

아니면 노출한 듯 아닌 듯 묘한 의상 때문일까.

대놓고 노출한 것보다 훨씬 눈길을 끄는 느낌이었다.

강도승이 최애가 아닌 사람들조차 순간적으로 시선을 빼앗길 정도였으니 말이다.

강도승이 애지중지 키운 대흉근의 우람함에 1차 압도를 당한 지금.

-이 깊은 밤, 주윌 둘러봐도 온통 까맣지

-그런 날, 단번에 찾아준 건 분명 너였지

-이 순간, 난 너에게로 다시 또다시,

-Ooh── Ooh── Oh

봉태윤이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시작했다.

오버사이즈 셔츠에 슬랙스를 입은 봉태윤은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강한 인상에 실제 나이보다 연상 같은 느낌이었는데, 오늘 스타일링은 봉태윤에게 연하남 같다는 이미지를 더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들어봐, 지금 이 노래가 누굴 향한지

-너와 난, 결코 헤어질 수 없는 사이지

-두고 봐, 누가 뭐래도 난 끝까지

-Ooh── Ooh── Oh

두 번째는 박동준이었다.

곱슬거리는 머리칼이 박동준 특유의 발랄함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반팔 셔츠에 멜빵 반바지.

막내는 봉태윤이었지만 비주얼적인 막내는 박동준임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Oh You and I 넌 나에게 포근한 품

-오랜 밤 기다려온 유일한 꿈

-그런 널 향해 가는 길은

-언제나 꿈결같이 빛나는 곳

이운이 마이크를 들고 앞으로 한 발 나아오며 노래를 불렀다.

이운 특유의 간질간질한 가성이 공연장에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니트 반팔에 브라운 색상의 와이드핏 슬랙스를 입은 이운은 특유의 여리여리한 몸선이 옷 위로 드러나는 듯했다.

-So I will sailing for you!

-이 깊은 바다 끝에

-sailing for you

-높은 파도와 풍랑을 헤치고

-sailing for you

-네가 있는 그곳으로

-나의 품, 나의 꿈을 향해

그 순간 누가 스피커 볼륨이라도 키운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쨍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렸다.

새하얀 앙고라 니트를 입은 우연훈은 조명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온몸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You are my compass

-길 잃은 항해 끝에

-I will never give up

-네가 있다면

-keep sailing

-네게 닿을 때까지.

마지막.

가슴이 파인 브이넥 니트를 입은 강도승의 차례였다.

단단한 몸에 어울리는 묵직한 음색이 공연장에 울려 퍼지고.

“와…… 아.”

“허어…….”

“이야…….”

“……좋네.”

비명도 탄성도 아닌 나지막한 감탄이 들려왔다.

* * *

라이브로 중계되던 세이렌의 데뷔쇼는 당연하게도 SNS상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데뷔쇼가 시작되기 전에도 실트를 장악하고 있었건만 시작하고 나니 더한 화제성을 불러일으켰다.

-1위. 강도승 가슴 (34,710 트윗)

적나라한 실트 순위는 사람들의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ㅅㅂ 아기까망고양이가 가슴으로 나를 유혹한다

-대체 저런 맛도리 니트를 입힐 생각을 한 코디분은 누구신가요? 일단 절 받으세요;;

-사랑한다 도승아

-아 ㅅㅂ 강도승 진짜 미치겠네;;

-강도승 우리 집 지하실로

강도승이 운동 이야기도 많이 하고 방송에서 몸이 좋다는 언급을 꽤 했으므로 다들 강도승 몸이 좋단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훌륭할 줄은 기대하지 않았을 거다.

세이렌이란 그룹의 색이 섹시보다는 청량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한데 막상 노출이 들어간 옷을 입으니 강도승의 몸은 일견에 봐도 아주 훌륭하게 밸런스가 잡힌 몸이었다.

기대 않던 그룹에서 기대 이상의 섹시함을 봐서일까.

파랑새를 비롯한 SNS 등은 평소보다 훨씬 더 불타올랐다.

특히 요즘 남돌판에 이런 두꺼운 몸을 가진 멤버가 없었다는 것이 주요한 요인이었다.

-오늘부터 이 가슴빵빵고양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자고로 설레는 남성이란 두툼한 가슴이 결정한다고 중요하다고 배워왔습니다…….

-여리여리한 애들 사이에서 저러고 있으니까 강도승 혼자 몸 2배 같음ㅋㅋㅋㅋ

그간 세이렌에게 크게 관심이 없던 부류의 사람들까지 대거 끌어오는 계기가 되고 있었다.

이젠 과거 강도승의 사진들까지 하나씩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강도승 무대 개극락좌표 찍고 감ㅇㅇ

└지우면 고소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개극락임;;

└골반…… 골반…… 날 변태라고 하지 마 당신들도 다 이 부분 보고 그 생각 했잖아

다소 변태적일 수 있으나 사람들은 나노단위로 강도승의 매력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강도승의 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 와중에도 세이렌의 데뷔쇼는 착착 진행되어 갔다.

데뷔쇼 오프닝 무대 이후 시작된 것은 데뷔쇼 단독 공개 리얼리티 예능이었다.

60분짜리 실제 방송용 예능은 아니고, 20분짜리 단편적인 예능이었다.

제목은 <세이렌, 서로에게 진심을 보여라.> 라는 거였는데 풀어서 말하자면 서로의 레전드 무대를 보고 눈앞에서 주접을 떨어보란 거였다.

사람들은 데뷔쇼에 공개하는 소소한 리얼리티이니 크게 재미있을 만한 포인트를 기대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결코 무난한 영상은 아니었는데,

-봉막내 씨의 ‘나 뽑아줘요, 누나’를 보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무대 영상이라면서요. 이건 무대 영상 아니잖아요.

-무대 위에 서 있긴 하잖아, 태윤아.

-아니, 이건 아니잖아요. 왜 저한테만 기준이 다른 건데요.

-여기 나 뽑아줘요 누나 파트만 루프 걸어서 반복시킬까요, 형들?

-오 좋다

-…….

서로에게 좋은 말을 해주라는 취지와는 달리 공개처형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그중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봉태윤이다.

노트북 앞에서 안간힘을 쓰며 루프를 막으려 했지만 장정 네 명이 힘으로 막으니 봉태윤도 어쩔 수 없었다.

세이렌의 연습실에는 나 뽑아줘요 누나라는 봉태윤의 외마디 음성이 무한 반복되어 울려 퍼질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봉태윤의 귀는 실시간으로 붉게 물들어 갔다.

이후 우연훈, 이운, 강도승, 박동준의 무대 영상들이 나왔으나 봉태윤의 나 뽑아줘요 누나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다.

-봉태윤 씨 왜 이렇게 부끄러워해? ……오히려 좋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ㅁㅊㄴ

-근데 저거…… 내 입덕 모먼트라 개 좋음

-저거 현장에서 들었을 때 진짜 개 극락이었는데

-저거 루프 건 거 그거 아님? 나 뽑아줘요 누나. 드르륵 탁. 나 뽑아줘요 누나. 드르륵 탁. 나 뽑아줘요 누나. 드르륵 탁.

└ㅋㅋㅋㅋㅋㅋㅋㅋ그만해요ㅋㅋㅋ

봉태윤의 반응이 워낙 재밌어서일까.

SNS 등의 반응에서도 봉태윤에 관한 반응들이 주를 이뤘다.

이후 타이틀곡의 무대가 공개되고.

수록곡 중 하나인 의 무대도 최초 공개되었다.

무난하게 좋은 무대들이었기에 SNS에서도 호평 위주의 반응들이 나왔다.

다만 여전히 이번 방송에서의 하이라이트는 강도승이 입었던 그 브이넥 니트였다.

때마침 세이렌이 아닌 온리원의 데뷔쇼도 시작되었다.

세이렌의 데뷔쇼를 위해 W넷에서 시간대를 빼줬다면 온리원의 데뷔쇼는 국내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했다.

인터넷 포털에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온리원 데뷔쇼 라이브 방송 홍보 배너에 사람들은 홀린 듯 클릭하곤 했다.

-온리원도 데뷔쇼 시작했음

-진짜 난리다ㅋㅋㅋㅋ

-온리원 뮤비 어떰?

-보고 오셈. 개좋음

온리원의 데뷔쇼 시작에 세이렌의 데뷔쇼를 보던 시청자들 중 많은 수가 그쪽으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실트 1위를 유지하던 강도승 바로 아래에 온리원이 올라오기도 했고 말이다.

시작은 좋았으나 끝까지 그 화제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가운데.

데뷔쇼는 마지막 엔딩을 향해 달려갔다.

* * *

형들과 나는 무대 위에 설치된 스툴형 의자에 일렬로 앉았다.

데뷔쇼의 마지막 코너가 시작됐다.

채팅 읽기 식으로 진행되는 Q&A였다.

실제 실시간 채팅을 읽는 것은 아니고 미리 받아두었던 질문 중 몇 가지를 엄선하여 답하는 거다.

당연히 그에 대한 답도 정해져 있었고 말이다.

물론 딱딱하게 정해진 답만 할 필요는 없고 더 좋은 답이 떠오르면 자유롭게 해도 된다고 전달받긴 했지만,

‘그래도 짜둔 대로 하는 게 안전하지.’

굳이 모험을 할 필요는 없었다.

멍하니 스툴에 앉아 정해진 대본대로 흘러가는 상황을 보다 보니, 갑자기 전에 봐뒀던 온리원의 데뷔쇼 일정이 생각났다.

‘이제 슬슬 온리원 데뷔쇼도 시작하지 않았을라나?’

기억상으론 우리랑 시간대가 애매하게 겹쳤던 걸로 기억한다.

걔네 데뷔쇼가 어떻게 진행될진 모르겠으나, 우리 데뷔쇼는 일단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적이다.

도승이 형 가슴으로 한 차례 실트를 타고.

내 흑역사 개방으로 인해 한 번 더 버즈량을 뽑아냈으니까.

다만,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뮤비 조회 수가 70만 정도였나?’

조회 수 수치가 아슬아슬하다.

무난하게 좋은 정도의 화제성으로는 만족하면 안 된다.

좀 더 확 눈에 띌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흐음…….’

아쉽게도 이번 데뷔쇼로는 추가적인 화제성을 뽑아내긴 어려울 거 같았다.

“이제 데뷔를 하는 팀이니만큼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더 멀리, 더 높게 가보겠습니다!”

우린 몇 가지 미리 짜두었던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하는 것으로 슬슬 데뷔쇼를 마무리 지을 준비를 했다.

지금쯤 온리원 데뷔쇼가 시작했으니 그쪽으로 사람들이 확 몰렸을 거다.

우리들을 좋아하는 코어 팬층은 이탈하지 않았겠으나 완전히 우리 팬으로 굳지 않은 사람들은 온리원의 데뷔쇼도 궁금할 테니 말이다.

자칫 잘못하면 도승이 형이 가슴 파인 니트를 입고 내가 흑역사까지 팔았는데도 불구하고 온리원에게 데뷔쇼 화제성을 빼앗길지도 모른다.

연예계는 늘 상대평가고, 우리가 아무리 잘했다 한들 우리보다 잘한 쪽이 있다면 스포트라이트는 그쪽이 다 가져가는 셈이니 말이다.

그 때문일까.

“태윤 씨는 오늘 데뷔쇼 지켜봐 준 세일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없으신가요?”

데뷔쇼를 위해 섭외해 온 아나운서 출신 MC가 내게 물었을 때, 난 한 가지 최악의 수를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아…… 제가 세일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지금 분명 그 말을 하는 것은 최악일 거다.

팀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인간의 존엄은 바닥에 처박힐 테니.

무엇보다 그렇게까지 해서 얻을 수 있는 화제성은 생각보다 미미할 거 같고.

손익계산을 하면 무조건 마이너스.

하지만 나의 존엄을 조금 빼놓고, 세이렌의 조회 수에 1이라는 숫자라도 더할 수 있냐라는 물음에 답을 하자면,

‘한 천 명은 더 볼라나.’

이 정도의 긍정적 답변은 가능하다.

온리원 데뷔쇼도 겹치고, 조회 수 수치도 조금 애매한 지금.

뭐라도 하나 더 보여줘야 할 거 같은 조급함이 생겼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최악의 수’를 할까 말까 고민이 깊어지는데,

“태윤 씨? 세일러들에게 딱 한 마디만 한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가요?”

MC의 재촉이 들어왔다.

현장에 있는 세일러들이 기대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형들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보는 중이다.

뭐든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순간.

“……그…… 나…… 데뷔했어, 누나……?”

“……?”

“!”

“……뭐라고 태윤아?”

“하하하하학!”

“꺄아아아아!”

난 내 존엄과 스스로의 가치를 잠시 내려놓았다.

“태운아아아!”

“하하학! 아니, 우리가 뭐라 할 땐 그렇게 싫어하더니!”

“와…… 진짜…… 봉누나는 프로다……! 데뷔한 봉누나는 뭔가 다르다……!”

“……봉태윤…… 이 자식…….”

형들이 난리가 난다.

현장 분위기도 범상치 않다.

이전에도 느꼈고 지금도 동일하게 느끼는 건 단 하나다.

‘아…… 죽을까…….’

역시 할까 말까 고민되는 건 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진짜 이걸 왜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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