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77화 (177/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77화

화요일 음악방송 일정은 순탄하게 흘러갔다.

사전녹화에서 이미 타이틀곡을 몇 번이나 따두었기 때문에 생방송에선 큰 부담이 없었다.

이번 주 데뷔한 신인팀답게 누구 한 사람이 MC들과 만나서 오글거리는 멘트를 쳐야 하는 시간이 있기도 했다.

이걸 폭탄 돌리기 하듯이 우리끼리 정해야 하는 거면 어쩌나 싶었는데,

“연훈 씨, 지금 올라가야 해요!”

“넵! 갔다 올게, 얘들아.”

“잘하고 와요.”

“쫄지 마요.”

아예 방송국에서 연훈이 형을 콕 집어서 해달라고 부탁했다.

연훈이 형은 내심 하고 싶었던 거였는지 자신이 지목됐을 때 조금 기쁜 얼굴이었다.

우린 연훈이 형을 보내고 대기실에 연결된 모니터로 연훈이 형의 활약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형이 맡은 코너는 신인팀들이 나와서 포인트 안무들을 선보이는 코너였다.

그 주에 데뷔한 신인 중에 가장 인지도 있는 사람들만 모아서 하는 코너인데,

“어? 형 나왔다!”

“현성 선배님도 나오셨네.”

이번 주는 온리원과 우리가 동시에 데뷔를 하는 탓에 두 팀이 같이 나오는 형식이 되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방송국에서 라이벌 키워드를 놓칠 리가 없었다.

-이번 주 데뷔한 정말 핫! 그 자체인 두 팀의 리더분들을 모셨습니다! 호오오!

왼쪽에는 연훈이 형을, 오른쪽에는 강현성을 세워두고 서로를 살짝 바라볼 수 있게 세팅을 해뒀다.

이런 화면 구도 같은 게 별거 아닌 거 같으면서도 은은하게 라이벌 구도 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 코너 진행도 라이벌이란 것에 초점을 맞춰서 이뤄졌는데,

-세이렌과 온리원 두 팀 모두 더쇼케이스2를 통해 데뷔한 팀이잖아요. 오랜 시간 라이벌로 묶이고 있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아예 노골적으로 라이벌 구도에 대해 물어본다.

-저희야 이렇게 멋진 분들과 라이벌로 묶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세이렌처럼 멋있고 실력 있는 그룹과 라이벌로 묶이니 저희도 더 자극받아서 열심히 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연훈이 형과 강현성은 마치 공손함으로 대결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로를 띄워주는 멘트를 일삼았다.

사실 다 구성작가가 짜주는 거긴 한데,

‘이렇게 가긴 해야지.’

라이벌 구도 강화하겠다고 괜한 도발 멘트 넣었다가 분위기만 싸해진다.

-그럼 두 팀의 포인트 안무 하나씩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어서 포인트 안무 설명 시간이 나왔다.

-저희 포인트 안무는 이렇게 손바닥을 살랑살랑하면서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는 거예요.

-아, 이렇게요?

-네네! 간단하죠?

-하하! 네. 간단하고 귀여운 동작이네요.

이번 우리 팀 안무는 최대한 따라 하기 좋고 한눈에 보기 편한 안무로 구성됐다.

물론 그렇다고 쉬운 안무는 아니다.

이 쉬워 보이는 안무를 최대한 멋있게 무대용으로 만들기 위해 운이 형이 뼈를 깎는 노력을 했으니까.

연훈이 형이 보여준 안무에서 한 5단계쯤 어렵게 기술들을 넣은 게 우리 실제 안무였다.

-온리원의 포인트 안무는 어떤 건가요?

-저희 안무는 이렇게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후 발로 쿵 찍고, 옆으로 슬금슬금 움직이는 겁니다.

-오, 이건 간단한데 되게 멋진 안무네요.

강현성도 본인들 안무의 쉬운 버전을 선보였다.

-그럼 더 멋진 안무는 잠시 후 무대에서 보도록 하고, 두 리더분들은 이만 보내드려야겠습니다. 그럼 두 분이서 다음 무대 소개해 주시겠어요?

이제 이 코너의 대망의 하이라이트.

무대 소개가 다가온다.

연훈이 형이 애교 부리는 건 볼 수 있지만 난 차마 강현성이 애교 부리는 건 볼 자신이 없다.

속이 울렁거려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는데,

“어허! 봉태윤! 동료의 죽음에 고개를 돌리지 말아라!”

“……아니.”

동준이 형이 내 고개를 잡아채더니 전방에 고정시켰다.

-아 더워~ 현성 씨! 너무 더운데 저희 어디 시원한 곳 들어갈까요?

-전 안 더운데요?

-네?

-안 덥다고요.

-왜요?

-해피니스의 가 있으니까요.

-시원청량한 노래로 우리들의 귀를 시원하게 해주는 무대!

-해피니스의 무대 시작합니다~

두 사람의 혼신의 힘을 다한 무대 소개가 끝나고,

“……와.”

난 진심으로 감탄했다.

연훈이 형의 경우 조금의 부끄러움이나 주저함이 엿보였는데,

‘강현성은…… 진짜구나…….’

저 자식은 한 치 부끄러움도, 주저함도, 심지어는 어색함도 없었다.

진짜 에어컨 대신 해피니스의 쿨썸머 들을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었다.

난 강현성의 뻔뻔함에 놀랐건만,

“하하하!”

“연훈이 형……. 얼굴 터지려고 해…….”

“이따가 오면 놀려야겠다.”

우리 형들은 연훈이 형이 고통받는 걸 보며 즐거워하고만 있었다.

난 이 즈음해서 파랑새에 들어가 모니터링을 해봤다.

그리고,

‘……음?’

생각보다 거친 반응에 다소 놀랐다.

* * *

라이벌 구도를 예상하고 같이 데뷔한 것이니 과몰입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 예상은 했다.

다만 그건 극소수이고, 물밑에서만 이뤄지는 일일 거라 믿었다.

어떤 활동이든 좋은 반응과 나쁜 반응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모든 걸 다 감안하고 움직일 순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니 조금 있는 정도의 안 좋은 반응에는 너무 신경 쓰지 말자는 생각이었다.

한데,

‘왜 이렇게 양지로 올라왔지……?’

안 좋은 반응이 ‘조금’ 있는 정도가 아니었나 보다.

어쩌면 이건 우리 실수일 수 있다.

당연히 같이 데뷔하면 이런 거친 반응이 많이 나올 수도 있단 걸 예상했어야 하니까.

하지만 이만큼 본격적으로 자리 잡을 줄은 미처 예상 못 했다.

-ㅅㅂ 방송국은 왜 우리 애들이랑 같이 붙여놓는 거임?

-아니 지금 분위기 안 좋은 거 알면 당연히 같이 안 불러야 하는 거 아님?

-강현섷이랑 멘트하는 거 웃기지도 않고 개정색하면서 봄;;

물론 이건 주류 반응이라 할 순 없다.

피드에 떠오른 양 자체로만 보자면 극소수의 의견이니까.

하지만 문제는 이게 내 눈에 ‘보인다’라는 거다.

난 거친 반응을 쏟아내는 계정들은 일부러 팔로우하지 않고 있었다.

너무 거친 반응은 오히려 실제 현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이니 말이다.

일반적인 아이돌 소비층들의 심리를 잘 대변하고 있는 사람들을 주로 팔로우해 왔는데,

‘여기서 이 정도라는 건 비공개 계정이나 거친 사람들 계정 가면 난리 났단 거 아니야?’

이쯤 되니 문제의 심각성이 인지됐다.

이건 명백한 내 실수였다.

이렇게까지 거친 반응은 당장의 파괴력은 있을지언정 팬들의 피로감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냥 다음부턴 온리원이랑 같이 활동 안 했으면 좋겠음……

-회사에서도 다 생각이 있었겠지만…… 솔직히 조금 피곤한 듯

-왜 내가 온리원 보면서 스트레스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음

역시나.

이런 글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라이벌 구도로 데뷔 전부터 화제를 모으며 그 주 모든 버즈량을 우리랑 온리원이 먹어치운 건 맞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강현성과 내 계획이 먹혀들었던 거다.

한데,

‘……실수했네.’

긍정적인 면만 보다 보니 부정적인 부분을 축소해서 생각했다.

팬들에 대한 미안함이 올라오고, 나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올라온다.

그때,

“이제 슬슬 우리 무대다. 몸 풀고 있자.”

도승이 형이 날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난 복잡한 머릿속을 대충 정리하며 일어났다.

일단은 방송이 먼저긴 했다.

* * *

생방송 무대를 끝냈다.

엔딩 요정은 연훈이 형이 맡았는데 나름 파급력이 있었던 걸까.

카메라에 연훈이 형이 잡히자 현장에서 환호성이 순간 커지는 현상이 있기도 했다.

나중에 대기실에 가서 확인해 보니 확실히 환호하게 될 만한 영상이긴 했다.

화면을 보며 청초한 얼굴로 숨을 헐떡이더니 환하게 웃어주는 영상이었으니까.

사람들의 환상 속에만 있는 여름 느낌 낭낭한 하이틴 로맨스 남자 주인공 같은 생김새였다.

“연훈이 형 지금 또 실튼데요?”

“진짜?”

“와아.”

“아, 근데 실트 단어가 좀 과격한데.”

실제로 연훈이 형은 ‘우연훈 미친’이라는 말로 실트에 타기까지 했다.

이후 온리원의 무대가 이어지며 실트 순위가 다시 한번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온리원 무대는 강현성이 엔딩 요정이었고, 화면을 그저 멍하니 바라만 봤음에도 불구하고 실트에 올라갔다.

강현성 실트 단어는 ‘강현성 얼굴’이었다.

난 아직도 강현성이 잘생긴지 모르겠건만 늘 얼굴로 입덕 팬들을 모으는 놈이었다.

뭐…… 사람마다 취향은 다양한 거니 더 생각은 않기로 했다.

이후 다른 선배님들의 무대가 더 이어지고, 엔딩으로는 연차가 꽤 있는 걸그룹 선배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이제 이번 주 1위 선정을 위해 오늘 출연한 모든 가수들이 무대 위로 올라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와…… 이제 우리 맨날 방송으로만 보던 거기 서는 거야?”

“이상하게 떨린다.”

“우리 화면에 안 잡아주지 않을까요? 1등은 다른 사람들이 할 텐데.”

“뭐…… 그래도 어쩌다 걸릴 수는 있지 않을까.”

형들은 이런 대화를 하며 스테이지로 올라갔다.

나도 형들을 따라 대기실 밖으로 이동했고.

한데 이게 모든 그룹들이 다 나와서 그럴까.

복도가 붐비며 교통체증과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결국 복도에서 멍하니 대기하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그리고,

“무대 잘하던데요.”

“깜짝이야.”

별로 반갑지 않은 얼굴이 말을 걸었다.

강현성이 귀에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무대에 못 올라가고 복도에 대기하다 보니 이런 식의 만남도 생긴다.

맘 같아선 기분 나쁘니까 함부로 속삭이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싸가지없는 신인으로 찍힐까 봐 무섭다.

아마 이 자식 내가 맘대로 못 행동할 걸 알고 귀에다가 속삭인 거 같다.

난 그저 경멸의 표정을 조금 담아 강현성을 쳐다볼 뿐이었다.

“어? 이동한다.”

때마침 정체 현상이 풀리고 하나둘 메인 스테이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 발소리가 사방을 메운 그때.

“확인했죠?”

강현성이 핵심 단어 다 빼고 확인했냐고만 묻는다.

뭘 확인했냐는 건지는 자명하다.

우리의 라이벌 구도의 역기능이 발생하기 시작한 걸 확인했냐는 거다.

난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확인은 했다만 당장 할 만한 게 있나 싶었다.

나도 어떻게든 행동을 해야 할 거 같긴 했다만 그러려면 음방부터 끝내고 의논을 해볼 생각이었다.

한데,

“걱정 마요.”

“……?”

이 자식이 갑자기 멋있는 척을 한다.

뭘 걱정 말라는 건지.

자기는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

아까보다 살짝 더 경멸의 표정을 담아 강현성을 쳐다봤으나,

“올라가죠.”

강현성은 내 시선을 피하며 앞서서 무대 위로 올라갔다.

* * *

이번 주 1위 후보는 이제 솔로 활동을 시작한 전 걸그룹 출신 선배의 여름 저격 시즌송과 데뷔 4년 차쯤 된 걸그룹 선배의 시즌송이었다.

두 후보 다 음원 성적도 준수하고 솔로치고 초동량도 나쁘지 않았던 앨범으로 기억한다.

누구든 음악방송 1위 하기에는 충분한 수치였다.

아직 1위가 누구인지 발표되기 전.

무대 위는 적당히 소란스러우며 적당히 정신없었다.

그때 옆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져 살짝 돌아보니,

“……?”

예상 못 했던 광경이 펼쳐지고 있어서 잠깐 뇌 정지가 왔다.

무대에 올라오기 전 강현성이 나한테 했던 말이 잠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걱정 말라는 말.

그 말은 자기가 과도하게 끓어오른 라이벌 구도를 희석시킬 수 있다는 말이었다.

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걸 희석시킬 수 있다는 건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는데…….

‘……?’

1위 발표 직전의 무대.

카메라가 무대 전체를 두루 비추는 지금.

강현성은 연훈이 형과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세상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연훈이 형은 그런 강현성을 보며 눈동자를 빛내고 있었고.

‘……뭐?’

저 자식은 지금 명백하게 연훈이 형에게 친한 척을 하는 중이었다.

마치 남들 보란 듯이 말이다.

걱정 말라길래 뚜렷한 방안을 생각해놓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 새끼가……?’

연훈이 형한테 치근덕대는 게 방법이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다.

난 놀란 표정으로 그 둘을 바라봤다.

뇌정지를 넘어 조금의 현실부정까지도 찾아온다.

그때 허공에서 강현성과 시선이 맞았는데,

‘……죽여 버릴까.’

오만하고 방자하게 날 내려다보더니 다시 연훈이 형을 보며 미소 짓는다.

‘하아…….’

진짜 딱 한 대만 아주 세게 때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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