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78화
난 놀라서 강현성을 바라봤다.
너무 놀랐다 보니 표정관리 할 틈을 놓쳤다.
아마 내 어벙한 표정이 방송을 탔을 텐데…….
‘하아…….’
사람들이 그에 대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뭐…… 하는 거야 대체.’
그간 연훈이 형이랑 강현성은 별로 친목 활동을 하진 않았다.
둘 다 친해질 기회는 여러 번이나 있었지만 이상하게 본격적인 관계 형성을 하진 않았으니까.
연훈이 형의 경우 내가 이런 유명한 사람과 친구를 해도 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있던 거 같고.
강현성은,
‘……그냥 친구 하기 싫어 보이던데.’
딱히 연훈이 형과 친구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물론 말로는 반말하자, 친구 하자, 이렇게 사근사근하게 했지만 실제로 친목 형성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전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기 위해 주둥이만 털었던 거라 보면 된다.
한데,
‘……이 미친놈이…… 진짜…….’
지금은 연훈이 형과 친해져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 이렇게 전략적으로 다가간 거다.
해서,
“무슨 얘기 하고 있어요?”
난 강현성이 연훈이 형에게 너무 치근덕대지 않도록 중간에서 컷 할 생각이었다.
물론 방송에 강현성과 연훈이 형이 함께 잡힌 컷이 나간다면 도움은 될 거다.
온리원과 우리가 사이 좋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컷이 될 테니 말이다.
그래도 강현성의 전략에 연훈이 형이 희생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다.
연훈이 형을 내 쪽으로 데려오려 했는데,
“우리?”
“그냥…… 뭐 별거 아니야.”
“……?”
대체 그 짧은 순간에 무슨 짓을 한 걸까.
연훈이 형과 강현성은 벌써부터 어떤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별거 아니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연훈이 형과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는 강현성.
이건 누가 봐도 나한테 뭐 숨기는 게 있는 거다.
“그냥 연훈이랑 리더로서의 고충들 좀 나누고 있었어요.”
“나도 현성이랑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고민 상담 하고 있었어.”
그러곤 ‘리더’라는 공통분모로 묶인 자신들끼리의 이야기를 했다고 어물쩍 넘어가려 했다.
한데,
‘연훈이…… 현성이……?’
지금 나를 두고 누군가가 몰카라도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아니, 대체 어떻게 하면 그 짧은 시간에 서로 말까지 놓게 될 수 있단 말인가.
그간 꼬박꼬박 서로 존댓말 하던 사람들이 말이다.
이게 연훈이 형이 친화력이 좋은 건지 강현성이 미친놈인 건지 전혀 감이 안 온다.
그때 강현성이 시선은 날 바라보면서 입은 연훈이 형에게로 가더니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닥거리기 시작한다.
연훈이 형은 그 말을 듣고는 날 한 번 쳐다보더니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저건 정말 나 보란 듯이 지금 친한 척을 하는 거다.
네가 알기는 더 오래 알았을지언정 지금은 나랑 더 친하다고 자랑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지만 일단은 감정의 온도를 낮췄다.
뭐라고 한 마디 붙여보려 했는데,
“이번 주 1위는 바로!”
“제이의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1위 발표가 나왔다.
지금부턴 입 다물고 정면 주시해야 한다.
가요계 선배의 1위 순간인데.
여기서부터는 우리가 주인공이 아니라 저 선배가 주인공이다.
우린 입을 꾹 다물고 일제히 정면을 바라보며 박수를 쳤다.
하늘에서 꽃가루가 터지고 1위 한 곡의 반주가 흘러나온다.
우린 그 타이밍에 맞춰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연훈이 형과 강현성에게 붙어서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한데,
“봉태윤! 일로와.”
도승이 형이 자신이 있는 쪽으로 날 끌어당겼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 있다 보니 누구랑 부딪힐까 봐 일부러 그런 거 같았다.
다만,
‘하아. 멀어졌네.’
연훈이 형과 강현성에게선 필연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다음 주엔 1위 할 수 있을라나?”
“진짜 나 1위 하면 울지도 몰라.”
“운이 형은 울 거 같아요.”
이런 내 속도 모르고 형들은 다음 주 1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난 점점 더 거리가 벌어지는 연훈이 형과 강현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냥 걸음을 옮겼다.
* * *
우연훈은 저 멀리 앞서가는 본인 팀 멤버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애들이랑 벌써 이만큼 멀어졌다.”
“쫓아가야 하지 않겠어?”
“사람 많은 곳에서 어떻게 움직여. 어차피 애들이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우연훈은 강현성을 잠시 올려다봤다.
그간 반말을 하자, 말을 놓자, 친하게 지내자 등등등.
강현성이 우연훈에게 먼저 친분을 만들자는 의사는 자주 표현했다.
다만 딱히 큰 진전은 없다가 오늘 갑자기 확 친해졌다.
이유는 별게 없었는데,
“아무튼 태윤이는 내가 잘 챙길게! 걱정 마.”
1위 무대 발표식에서 강현성이 대뜸 태윤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첫 대화의 주제는 그쪽 막내는 요즘 잘 지내요? 라는 거였다.
들어보니 본인 팀 막내가 데뷔 앞두고 긴장을 많이 한 건지 소화불량에 시달리고 있단 거였다.
온리원의 막내는 박영호였는데 어쩐지 이전에 봤을 때보다 야윈 것 같긴 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화는 막내들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강현성은 봉태윤이 잠은 잘 자는지를 물었고, 연습에 무리는 없는지를 물었으며, 스스로 너무 몰아붙이는 성향은 완화가 되고 있는지를 물었다.
생각보다 디테일하게 봉태윤을 알고 있어 우연훈이 놀라서 물으니 더쇼케2 촬영 중 연합 미션 때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는 답을 받았다.
이후 두 사람은 봉태윤의 사소한 습관들에 대한 걸 공유했다.
강현성이 발견한 습관은 봉태윤이 언짢은 일이 있을 때면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앞으로 튀어나오며 움찔거린다는 거였다.
다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가 안 날 정도였기에 아주 자세히 봐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 무대에서 정말로 그 움찔거리는 입술을 볼 수 있었다.
강현성의 말을 듣고 보니 분명하게 보이는 습관이었다.
“태윤이가 너무 혼자서만 짐 지지 않게 나도 많이 도와줘야겠다.”
“그래.”
“그럼 또 연락할게!”
“어.”
우연훈은 강현성과 대기실 복도에서 헤어진 뒤 자신의 팀이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다른 팀의 리더가 어째 봉태윤을 더 잘 아는 거 같아 조금 찜찜하긴 했지만,
‘내가 좀 더 세심해져야겠어.’
마냥 낙담하기보다는 좀 더 분발해서 팀을 챙겨야겠단 파이팅을 다졌다.
* * *
화요일 음악 방송인 뮤직 챔피언의 방송이 끝난 후.
파랑새를 비롯한 SNS는 다른 의미로 세이렌과 온리원을 엮기 시작했다.
-강현성 태윤이랑 친분 있는 건 알았는데 연훈이랑 친분 있는 건 전혀 몰랐음 의외네
-둘이 얼굴합 미쳤음
-아니 근데 얘네 사이 그닥인 거 아니었음?
└좋은 거 같은디?
└근데 더쇼케도 같이 했고 활동도 겹치니까 안 친해지기가 더 어려운 구조긴 한 듯ㅇㅇ
과한 라이벌 구도가 양지로 올라오며 피로감을 부추기려는 찰나에 터진 친목 장면이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고 그 덕에 라이벌 관련 게시물들이 하나둘 피드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둘이 있는 거 나만 좀 그럼?
여전히 온리원과 세이렌의 라이벌 구도에 과몰입하여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만,
└둘이 친하다잖아요…… 그냥 친목하게 둡시다
라이벌 구도에 심취해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과몰입을 끝내고 원래의 텐션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라이벌 구도로서의 열기가 식자 다른 방향으로의 화제성이 뜨기 시작했는데,
-아니 근데 우연훈이랑 강현성 얼굴합 미친 거 같음;;;
-냉미남과 온미남(귓속말하는 강현성과 우연훈.gif)
└와 선생님 저 죽어요
우연훈과 강현성의 얼굴합에 대한 게 피드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둘이 귓속말하는 거 보고 나 혼자 봉태윤 표정 됨ㅋㅋㅋ(엔딩 무대에 서서 놀라서 우연훈 바라보는 봉태윤.jpg)
-아니 근뎈ㅋㅋㅋ태윤이 연훈이랑 현성이가 귓속말하는 거 보고 찐으로 놀란 표정 지은 거 개웃김ㅋㅋㅋ
└아가 늑대 자기 남자친구 질투하네 ㅈㄴ ㄱㅇㅇ ㅠㅠㅠ
더 나아가 두 사람이 귓속말하는 걸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은 봉태윤의 사진도 덩달아 화제가 됐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여러 반응이 있었다.
-연훈이랑 현성이랑 원래 친했던 거면 태윤이가 저렇게 놀랄 거 없지 않음?
-친한 척하는 거였나……
꽤 예리한 의문이었으나 사람들은 다른 방향으로 이 사진을 해석하고 싶어 했다.
-봉떤…… 질투하는 봉떤…….
-말랑 복숭아(My baby)의 남자친구인 봉떤남자(My boyfriend) 질투하는 거 왜이렇게 ㅈㄴ 맛도리임
-아기 늑대가 감당하기엔 너무도 큰 세상의 시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봉태윤 진심으로 놀라서 질투하는 거 같아서 개웃김
사람들의 입맛은 대체로 질투하는 봉태윤과 해맑은 우연훈, 능글맞은 강현성이라는 조합에 더 맞춰져 있었고 봉태윤의 놀란 표정에 대한 추측성 글들은 금세 사라졌다.
-솔까 재미 없는 라이벌 말고 이런 친목이나 더 해줬으면 좋겠음
-애들 사이 좋은 거 보니까 보기 난 오히려 좋음
-원래 잘생긴 애들끼리 친목하는게 복지인 거 ㅇㅇ 난 오히려 좋음
그러곤 전반적인 정서가 이제 라이벌은 그만하고 훈훈한 모습을 더 보여달라는 거였다.
엔딩 무대에서의 친목 한 번에 드라마틱하게 변한 SNS의 여론에 봉태윤은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봤다.
* * *
이번엔 분명 강현성에게 빚을 진 거 같다.
우리 욕심으로 만든 라이벌 구도에 대한 문제점들을 단번에 해결했으니 말이다.
과열된 라이벌 구도를 가라앉혔고, 라이벌 구도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의 화제성을 끌어오기까지 했다,
물론 다른 방향으로의 화제성은 예상 못 한 방향이었을 거 같긴 한데,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어쨌든 강현성 덕에 한시름 놓은 건 맞다.
난 파랑새 어플을 끈 후 생각에 잠겼다.
강현성이 의도한 대로 파랑새에서의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고, 파랑새 여론이 뒤집혔으니 팬덤 전반의 여론이 뒤집히는 것도 이젠 시간문제일 터였다.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다시 남아 있는 스케줄에 집중하면 된다.
오늘 남은 스케줄은 웹예능 촬영이다.
아이돌들이 컴백을 하거나 데뷔를 하면 반드시 출연하곤 하는 예능들이었는데, 온리원과 데뷔일이 겹치다 보니 이런 예능 촬영 스케줄이 꽤 빡빡해졌다.
프로그램 측에선 온리원 촬영도 하고 우리 촬영도 해야 하니 억지로 촬영 시간을 빼와야 했으니 말이다.
난 오늘 텐션 관리를 잘하기 위해 잠깐이라도 눈을 붙일 생각이었다.
그때,
“어? 헉! 여러분!”
조수석에 앉아서 핸드폰을 하고 있던 현아 씨가 호들갑을 떨며 우리를 불렀다.
“네?”
“왜요?”
“무슨 일 터졌어요?”
설마 뭐 논란이나 그런 게 터진 건가 싶어서 물어보니,
“방금 저희 현재 누적 초동 들었는데……! 이건…… 공유를 해야 할 거 같아서요.”
“……네?”
“……왜요……?”
“문제 생겼나요……?”
“일단 단체 채팅방에 올릴 테니까 사진으로 봐요.”
이내 현아 씨는 단체 채팅방에 누적 앨범 판매량이라는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그리고 화면에 떠오른 사진에,
“……?”
“……진짜예요, 이거……?”
차량 안의 대화가 순식간에 뚝,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