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79화 (179/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79화

채팅방 화면에 떠오른 초동 집계량을 확인했다.

난 오늘까지 해서 잘 나오면 40만 장이 나올 거라 생각했다.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말이다.

한데 사진에 떠오른 수치는 기대를 한참 뛰어넘는 수치였다.

-469,833장

“……?”

대략 47만 장.

예상도 못 했던 수치다.

내가 우리 팀의 저력을 얕잡아 봤던 걸까?

아니면 현재 아이돌판이 냈다 하면 무조건 터지는 판이 되어버린 걸까.

그런 거야 중요하지 않았다.

“이거…… 진짜죠?”

“네……!

“어제부터 심상치 않아서 회사에서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진짜 하프 밀리언 가능할 거 같아요, 우리!”

뭐가 됐든 일단 47만 장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찍어내 버렸고, 이건 우리가 크게 잘못만 안 한다면 초동 50만 장은 무리 없이 찍을 수 있다는 말이다.

“와아악!”

“미쳤어, 진짜!”

“하프 밀리언? 데뷔만에?”

“으아아아아!”

형들은 단체로 고함을 지르며 기쁨을 마구 표출하기 시작했다.

승연 씨와 현아 씨도 표정만 봐선 당장에라도 차에서 뛰어내려 춤이라도 추지 않을까 싶은 얼굴들이었다.

“수고 많았어요, 진짜.”

“다들 그동안 고생한 덕이에요 진짜.”

“승연 씨랑 현아 씨 케어 없었으면 진짜 안 됐을 거예요.”

“너무 감사해요, 두 분.”

“에이, 세이렌이 잘한 거죠.”

“에이~ 두 분이 너무 잘해주신 거죠~”

형들과 승연 씨, 현아 씨는 공을 서로에게 돌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나도 그 흐름에 동참해 웃고 떠들고 싶었으나,

‘이게 말이 돼?’

사실 마냥 웃고 떠들기엔 납득이 가질 않아 머리가 복잡하다.

물론 나도 좋다.

운이 형의 사망에서 거의 확실히 벗어난 셈이니까.

이젠 하루에 만 장씩만 팔려도 초동 50만 달성이다.

다만,

‘어떻게 이렇게 팔린 거냐.’

과정을 역추적해 볼 생각이었다.

일단 1일 차를 보면,

‘이때 이미 수치가 말이 안 됐네.’

사전 주문량 30만 장에 현장 구매 10만 장이 찍혔다.

즉 첫날에 이미 40만 장이었다.

난 잘 팔려봐야 35만 장인 줄 알았는데 내 예상이 빗나간 거다.

‘오늘은 지금 이 시간까지 해서 7만 장이 더 팔린 거고.’

이 구매량을 첫날부터 알았다면 맘 졸이는 시간이 조금 줄었을 거 같은데.

일일이 초동량 찾아보고 그러면 될 일도 안 될 것 같아 내일 즈음 확인해 보려고 하고 있었다.

뭐 그거야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난 파랑새나 그 외 커뮤니티 등을 돌아다녔다.

몇 개의 글을 보고.

내가 그간 놓치고 있던 반응들도 보고.

조금 더 손품을 팔아서 잘 보이지 않는 물밑 반응들도 한번 쭉 훑어봤다.

나온 결론은 하나.

‘온리원이랑 라이벌 구도가 진짜 잘 먹혔네.’

이 애증의 라이벌 구도 덕이었다.

첫날 사전주문량보다 10만 장을 더 팔아낼 수 있었던 건 온리원에게 단 하나의 지표도 져선 안 된다는 팬덤 내의 여론이 형성되어 있어서 그런 거였다.

특히 강현성이 있는 온리원이 세이렌보다 초동이 잘 나올 가능성이 높다며 더욱 불타올라서 앨범 구매를 이어간 덕도 있었다.

강현성의 경우 유어스 활동을 하며 해외 인지도도 꽤 올린 멤버이고, 실제로 중국에서 인기가 엄청났다고 했으니까.

즉 라이벌이라는 구도와 앨범 초동에 있어선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포지션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난 이쯤 해서 온리원의 초동도 확인해 봤다.

온리원도 우리와 라이벌이라는 특수를 톡톡히 누린 듯했다.

-481,009장

우리보다 근소하게 높은 수치의 초동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전 생에서 보고 왔던 온리원의 초동보다도 한참 높은 수치였고.

내심 우리 탓에 온리원이 더 잘 될 수도 있던 것이 안 되는 거면 어쩌나 하는 죄책감이 있었는데,

‘이젠 떳떳해져도 되겠네.’

어쨌든 우리 덕에 걔네도 조금 더 잘 되는 중이었다.

“초동 보니까 진짜 잠이 확 달아난다.”

“가서 파이팅 있게 하고 오자.”

형들은 초동을 보고 힘이 난 모양이다.

이제 곧 이어질 촬영에 힘을 내자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나도 속으로 의지를 다지며 차창 너머를 바라봤다.

‘운이 형 사망 미션 클리어가 코앞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뮤직비디오 천만 회와 안무 영상 백만 회.

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시스템을 어떻게 이겨낼지.

어떻게 해야 형들을 구해낼 수 있을지.

비단 이 세계의 형들만이 아닌, 다른 세계의 형들까지도 말이다.

좋은 소식을 들었지만 머리는 무거워지는 저녁이었다.

* * *

세이렌이 촬영을 하러 오는 강남의 한 스튜디오.

아이돌들이 활동을 할 때마다 마치 하나의 관문처럼 꼭 거쳐 가는 웹예능이었다.

물론 모든 아이돌들을 다 해주진 않는다.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아이돌이 되어야 출연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렇다고 아주 깐깐한 것은 아니고 적당히 회사나 업계 관계자들과의 관계성을 생각해 출연진들을 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세이렌은 참 골치 아픈 팀이었다.

“하아……. 진짜 스케줄 조정한다고 이렇게까지 똥줄 타본 팀은 또 처음이네.”

“얘네들 잘못은 아니잖아요. 회사가 데뷔일을 거지 같이 잡은 거지.”

“그렇다고 하필이면 온리원이랑 겹치냐, 왜.”

“피디님도 지나간 일로 너무 짜증 내고 그러지 마세요.”

“……그래.”

온리원의 어나더원과 세이렌의 넥스트 웨이브.

두 회사 다 현재 업계에서 가장 핫한 회사였다.

어나더원의 경우 덩치 자체는 넥스트 웨이브보다 작으나 업계에서 내는 입김과 힘이 강력했다.

반대로 넥스트 웨이브의 경우 아이돌이라는 업계에서 한정해 보면 힘이 크다 할 순 없지만 그 배경인 제일 그룹은 이 나라의 문화계를 좌지우지하는 그룹이었다.

어나더원을 안 챙겨주면 몇몇 이 바닥 고인물들과 관계가 어색해질 수 있고.

넥스트 웨이브를 안 챙겨주면 이 바닥보다 큰 바닥의 어르신들 눈 밖에 날 수도 있다.

어쨌든 누구 하나 무시할 수 없는 판이었다.

이런 상황 속, 피디가 결정한 중립외교이되 어나더원을 조금 더 챙겨주는 그림이었다.

그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인 <아이돌 대백과>는 보통 활동 시작 전 주에 촬영을 해서 활동하는 주에 맞춰서 편성되어 나가는 프로그램이다.

해서 저번 주에 온리원을 촬영하고 세이렌을 뒤로 미뤘다.

다만 이때 너무 뒤로 미뤄 버리면 제일 그룹 어른들 눈 밖에 날 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 스태프들에게 읍소하고 사정하고 무릎 꿇고 싹싹 빌며 추가 촬영일을 만들어서 세이렌을 불렀다.

이렇게 되면 어나더원에게는 내가 너희 챙겨줬잖아~ 라는 말을 할 수 있고 넥스트 웨이브에게는 진짜 저희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단점은,

“다들 뭐 오늘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제가 오늘 법카로 시원하게 긁겠습니다!”

“저는 퇴근을 먹고 싶습니다, 피디님.”

“스튜디오 밖에 퇴근 맛집 있던데 그거 하나 사주시죠.”

“직장에서 먹는 진수성찬보다 집에서 먹는 사발면이 맛있습니다, 피디님.”

팀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는 것뿐이다.

<아이돌 대백과>의 메인 피디 장철수는 애써 미소 지으며 상전 대하듯 팀원들을 달랬다.

그러곤 세이렌이 언제쯤 도착할지를 가늠하며 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어린 애들한테 복수를 하기엔 자신이 너무 추한 어른이 될 거 같아 하지 않으려 했는데,

“오늘 진짜 방송 재밌게 뽑자. 이렇게 추가촬영까지 하는데 재미없는 거 나오면 너무 억울하잖아.”

“하아…….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요.”

“무슨 짓은 무슨 짓이야. 방송 잘 되면 애들도 좋은 거잖아. 그냥 좀 더 난이도 높여서 가보자는 거지.”

“진짜 이럴 때 보면 피디님 너무 치사하고 쪼잔해 보이는 거 알아요?”

“뭐 임마?”

“어? 세이렌분들 오셨나 봐요. 매니저한테 전화 왔어요. 주차장 안내해 주고 올게요.”

장철수 피디는 메인 작가의 자연스러운 이탈에 혀를 쯧 하고 찰 뿐이었다.

딱히 세이렌을 괴롭히거나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하는 미션을 조금만 더 까다롭고 어렵게만 할 생각이었다.

이 정도야 뭐.

어차피 남들도 다 하는 건데.

장철수는 곧 찾아올 세이렌을 기다렸다.

* * *

이제 곧 형들과 함께 들어가게 될 프로그램은 <아이돌 대백과>다.

대백과라는 말에 어울리게 거기에서 우리에 대한 정보들을 모아서 사전에 등록하는 거다.

다만 아무 정보나 사전에 등록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곳에서 ‘정밀 검사’라는 표현을 빌린 여러 예능식 게임들을 하며 나온 결과들을 토대로 우리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여 올리는 거다.

매년 연말 결산 느낌으로 대백과사전을 발간하기도 하고 말이다.

나중에 실물로 뽑아볼 수 있는 굿즈가 나온다는 데에서 팬들에게 꽤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이었다.

“가서 잘하고 오자.”

“우리 싹 다 S랭크 받고 오자.”

“가즈아.”

우린 차에서 내려 <아이돌 대백과>가 촬영될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딱히 MC는 없고 미리 녹음되어 있는 기계음을 활용해 PD가 직접 지시를 내리는 형태의 방송이었다.

“무슨 게임 먼저 할까?”

“보통 고요 속의 외침 같은 거 먼저 하지 않아요?”

“이런 건 태윤이가 전문인데.”

이내 스튜디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삐이이이-

“어?”

“뭐야?”

“어어?”

우린 예상 밖의 전개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난데없이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한 거다.

보통 들어가면 기계음으로 변조된 PD의 음성이 들려오며 <검사체는 정해진 자리에 가서 서시오> 라는 말이 나오는 게 정석이다.

처음엔 정말로 건물 경보가 울린 건가 싶었는데,

‘다들 너무 태평하네?’

우릴 제외한 모든 스태프들이 평온한 것을 보고 이게 방송 상황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경고! 경고! 허락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경고! 경고! 신속히 대피하십시오.

형들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으나, 나는 이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원래 오늘은 촬영을 하는 날이 아니다.

우리랑 온리원 데뷔일이 겹치며 스케줄이 애매해지다 보니 억지로 만들어낸 추가 촬영일이다.

편성도 정해진 날에 편성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빠른 일자에 편성해 주기로 했었고.

즉 제작진 측에서는 이걸 정규 방송식의 포맷으로 가져가기보단 아예 다른 포맷으로 가져가기로 한 것 같다.

다른 아이돌들은 정보를 등록하기 위해 연구실에 직접 찾아온 거라면, 우린 그 연구실에 허락 없이 습격한 침입자들인 거다.

머릿속에서 정리가 끝나니 행동은 순식간이었다.

-경고. 경고. 물러나십시오. 본 연구실은 곧 폭발합니다.

“폭발?”

“아니, 이게 뭐야?”

“재밌다~”

우왕좌왕하는 형들 사이.

내내 울리던 시끄러운 사이렌이 뚝 하고 끊긴다.

이내,

-본 연구실의 폭발을 막으려면, 세이렌이라는 아이돌의 정보를 등록하셔야 합니다.

원래의 그 평범한 플롯으로 들어가려 했다.

형들은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건지 얼굴색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한 번 삐딱선을 탄 구성이 원래의 속도로 돌아올 리는 없는 법이다.

-파워 테스트입니다. 중앙에 설치된 스탠딩 샌드백을 글러브로 타격하여 넘어뜨리십시오. 몸통박치기와 같은 행위는 미션 클리어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

“……네?”

사이렌 울릴 때부터 알아봤는데, 지금 이 방송 PD는 우리를 어딘가 고깝게 생각하는 거 같다.

난데없이 샌드백이라니.

난 저 구석에 서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우릴 쳐다보는 PD를 바라봤다.

그러곤,

지이이잉-

통찰을 사용했다.

샌드백을 넘어뜨리라 했으니,

‘넘어뜨려 주지 뭐.’

예상 밖의 이벤트를 준비해 줬으니 우리도 예상 밖의 데이터를 남겨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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