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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80화 (180/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80화

통찰을 사용해 샌드백을 바라봤다.

샌드백을 넘어뜨리라 했으니 어떻게 하면 넘어뜨릴 수 있을지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샌드백이 가진 강성부터 어느 지점을 타격해야 가장 효과적일지.

어떤 방식으로 주먹을 뻗어야 할지까지.

일목요연하게 머릿속에 정리되었다.

정리가 끝난 후 통찰을 종료했다.

“태윤아?”

“저거 진짜 넘어뜨릴라고?”

“스탠딩 샌드백 어지간하면 안 넘어지는 건데.”

“복싱 배운 적 없지 않아?”

내가 진지하게 앞으로 나서니까 형들이 괜히 무리하는 거 아니냐며 날 말린다.

하지만 난 별 대답은 안 하고 PD만 잠깐 바라봤다.

왜 우리를 고깝게 생각하는지 대충 예상은 가지만 그래도 이런 건 좀 유치하다.

나름 PD에게 날리는 경고장 같은 느낌으로, 샌드백 미션은 결코 그냥 놔줄 수 없었다.

“한번 그냥 해볼게요.”

난 샌드백 옆에 놓여 있는 글러브를 손에 장착한 후 통찰에서 보고 온 시뮬레이션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펀치를 날릴 땐 냅다 힘을 싣는 게 아닌 타격지점을 생각하며 임팩트를 준단 생각으로 해야 한다.

가볍게 어깨를 회전시키며 주먹을 앞으로 뻗은 후.

‘여기.’

샌드백에 닿기 전 허리를 회전시켜 힘을 더하면,

퍼엉!

듣기 좋은 찰진 타격음이 터진다.

“……엥?”

“태윤아……?”

지금 내가 타격한 부위는 샌드백의 중간에서 살짝 아래.

사람으로 치자면 골반 정도이다.

난 지금 이 샌드백을 넘어뜨리는 게 목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스탠딩 샌드백이든 간에 무너뜨리기 위해선 무게 중심을 흔들어야 한다.

무게 중심을 흔들려면 상체보다는 하체 쪽을 건드려야 한다.

난 샌드백이 흔들리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같은 부위를 한 번 더 타격했다.

퍼엉!

이런 건 괜히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때리면 될 것도 안 된다.

다시 한번.

퍼엉!

또 한 번.

퍼엉!

마지막은 킥으로.

퍼어엉!

정확한 동작으로 같은 지점에 같은 임팩트를 계속 준다면,

“어어어어?”

“와악!”

쿵.

스탠딩 샌드백도 피곤하다며 몸져눕게 되는 법이다.

“스탠딩 샌드백 눕혔습니다.”

난 글러브를 벗으며 말했다.

“복싱을 배웠어, 태윤아?”

“아뇨.”

“근데 이걸 이렇게 찰지게 때렸다고?”

“재능 있나 보네요.”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야?”

“얜 굳이 아이돌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형들은 내가 샌드백을 넘어뜨린 게 어지간히도 놀라운 모양이다.

특히 도승이 형은 눈을 반짝이며 날 바라본다.

저 운동광인은 내게서 운동에 대한 천부적 재능이라도 본 것 같다.

“태윤아. 나랑 같이 헬스 할까?”

“아뇨. 쇠 냄새 난다고요.”

“이 정도 재능이면 웨이트 트레이닝도 금방 감 잡을 거 같은데.”

그렇게 우리끼리 왁자지껄 떠드는 동안, 제작진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난 PD 얼굴을 확인했다.

처음엔 골탕 좀 먹어보란 표정이었다가 지금은 황당한 표정이다.

한 방 먹인 것 같아 조금은 통쾌한데,

‘……?’

이내 PD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더니 눈가가 호선을 그리며 휘어진다.

이내 마이크를 들더니 멘트를 치기 시작한다.

-세이렌. 파워 테스트 종료. 최종 등급은 모든 검사 종료 후에 제공됩니다.

-순발력 테스트 시작.

저 사람은 눈 하나 깜빡 않고 기계 말투를 잘만 따라 한다.

이 포인트에서 저 PD도 결코 정상인은 아님을 체감했다.

눈동자에 은은한 광기가 흐르는 게 보였으니 말이다.

이내,

쾅!

“으아악!”

“뭐야!”

투두둑.

갑자기 천장이 열리며 하늘에서 뭔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떨어진 건 헤드기어와 각반, 가슴 보호대였다.

태권도 겨루기 같은 거 할 때면 한 번쯤 차본다는 바로 그 보호구 세트였다.

그게 인수에 맞춰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3개?’

딱 3인분만 떨어졌다.

-30초 뒤 무차별 폭격이 시작됩니다. 보호구를 차지하시오.

형들은 멍한 표정이 되어 PD를 바라봤다.

‘미친놈이네, 이 인간.’

<아이돌 대백과> PD가 정상이 아니라는 소문은 예전에 한 번 들었던 거 같은데 이걸 이렇게 체감하게 될 줄은 몰랐다.

난 얼빠진 채 있는 형들에게 헤드기어와 가슴 보호대, 각반을 채웠다.

당연히 연훈이 형과 운이 형과 동준이 형에게만 채운 상태다.

“뭐야. 나는?”

“형은 그냥 맞아요.”

“……뭐 임마?”

도승이 형에게는 아무 보호대도 채워주지 않았다.

이내,

-폭격 시작.

검은색 쫄쫄이를 입은 스태프들이 뿅망치를 들고 오더니 나와 도승이 형을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뾱!

뾱!

뾱!

뾱!

“아아아악!”

“……하아.”

오늘 촬영…… 분명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 *

장철수 피디는 샌드백을 넘어뜨리는 봉태윤을 보자마자 확신했다.

저놈은 분명 멀쩡한 놈이 아니라고 말이다.

보통 이런 미션을 던져주면 대부분의 아이돌들은 뭐야? 진짜? 와 이걸 어떻게 해요 PD님! 이라며 멘트부터 치고 본다.

그게 나쁘단 건 아니다.

오히려 방송적인 재미를 충실하게 잘 따라가는 거니 PD 입장에선 기특하다.

하지만 요즘 애들은 어렸을 때부터 미디어에 대한 학습이 너무 잘 되어 있다.

너튜브, OTT, 케이블 예능, 기타 등등등.

볼거리가 넘쳐나는 유년기를 보내왔으니 말이다.

해서 카메라 앞에 서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어떤 멘트를 쳐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아는 아이들이 많다.

장철수는 그게 별로 맘에 안 들었다.

어쩜 10명한테 똑같은 미션을 던져주면 10명 다 같은 반응인지.

뭔가 색다른 누군가를 늘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기 있었네?’

뜻밖의 곳에서 예능 원석을 발견해 버렸다.

당연히 와아! 피디님~ 너무해요!

으아아악! 이게 뭐야!

정도를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보였다.

무심하게 앞으로 나가 잠시 샌드백을 관찰하더니 글러브를 낀 후 정확한 폼으로 샌드백을 타격한다.

이미 그 지점에서 장철수는 봉태윤에게 반쯤 반해 버렸다.

한데 그다음.

순발력 테스트라고 명명 지은 뿅망치 테러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에선 마음을 완전히 굳혔다.

‘저놈 진짜 물건이다!’

한 치 망설임 없이 맞아도 될 인원과 맞으면 안 될 인원을 구분해 낸다.

이런 재능은 아포칼립스에서 더욱 빛을 발할 거 같은 재능인데.

저 한 치 망설임 없는 칼 같은 모습이 장철수 눈엔 여태 없던 예능 캐릭터로 보였다.

“으아아악! 봉태윤! 봉태유우운!”

보호대를 차지 못한 강도승이 비명을 지르며 봉태윤을 원망할 때도,

“안 죽어요, 형. 좀만…… 참아요.”

차분하게 자기 할 말만 하는 저 성격마저도.

‘……미친놈이네, 저거.’

장철수 입가에 미소가 마르지 않았다.

* * *

이후 아이돌 대백과 촬영은 미친놈처럼 진행되었다.

뿅망치 테러 후에 이어진 미션은 랜던 플레이 댄스.

아이돌 대백과의 시그니쳐와도 같은 미션이었다.

하지만 이 미션을 수행함에 있어 두 가지 장애물이 있었는데,

“잠시만요! 저희 아직 헤드기어도 못 벗었어요, 피디님!”

“하아…… 하아아. 으아아악!”

“아니…….”

순발력 테스트가 끝나고 1초의 딜레이도 없이 냅다 음악부터 갈겨 버리는 저 미친 반응속도와.

-뽕잎 따러 가는~ 아낙네여~

“…….”

“저희 노래로 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중간중간 섞여 있는 말도 안 되는 플레이 리스트까지.

작정하고 우릴 멕이려고 만든 게임이었다.

랜덤플레이댄스에서 다른 아이돌들 노래를 블러핑용으로 섞어두는 경우는 자주 있지만 7, 80년대 노래를 섞어놓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우리 노래는 몇 번 등장하지도 않았다.

이후 나온 게임은 웃지 않기 챌린지였다.

그나마 정적인 게임이라 다들 숨이라도 돌릴 수 있겠다 싶었는데,

-태블릿 화면을 정확히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읍?”

“으음!”

“푸하하학!”

문제는 태블릿에 나온 영상이었다.

틱택톡이라는 어플의 필터를 랜덤으로 씌워주는 기능을 활성화시킨 거였는데, 이게 정말 저항 없이 웃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연훈이 형의 입가가 갑자기 뽀동뽀동 해지며 축 늘어지기도 하고.

동준이 형 얼굴이 대뜸 말로 변해 버리는가 싶더니.

무섭게 앉아 있는 도승이 형 위로 귀여운 고양이 필터가 덧씌워졌다.

“캬하하학!”

“…….”

“아니…… 도승아…….”

“제발 그만 좀 웃어요! 이거 안 웃어야 끝난다잖아요!”

“이걸 어떻게 안 웃어요!”

“차라리 울어!”

결국 안전하게 끝나리라 생각했던 웃음 참기 게임조차 누군가의 복직근이 뻐근해져 올 때까지 반복되었다.

이때 알게 된 건데 웃음도 도가 지나치면 고통이란 거였다.

하지만 이 피디는 우리 인내심의 한계라도 체험해 볼 생각인 건지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단합력 테스트입니다. 인간 피라미드를 만드십시오.

-신뢰 테스트입니다. 뛰어내리십시오.

-유머 테스트입니다. PD를 웃겨보십시오.

마치 휘몰아치듯 게임이 끝나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세이렌의 등급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우리의 등급 측정표가 제공되었다.

이게 나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걸까,

-최종 등급은 세이렌 전원 S급입니다. 축하합니다.

우리보고 S급이란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다만 그거에 대해 기쁨을 표출하기엔 형들이고 나고 모두 다 너무 지쳐 버렸다.

우린 스튜디오 바닥에 주저앉은 채 스태프가 건네주는 등급표를 받아들었다.

-이런 식으로 앉아서 엔딩을 찍은 팀은 여태 존재한 적 없습니다. 일어서주시길 바랍니다.

우릴 주저앉힌 게 누군데 일어나라고 강요까지 한다.

“흣챠…….”

“일어납시다…….”

형들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가 풀려 좀처럼 일어날 수 없었다.

-최종 미션 시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때 피디가 이런 말을 했다.

최종 미션.

사실 아이돌 대백과에서 가장 중요한 미션이라 할 수 있는 거다.

이 방송을 출연하는 이유기도 하고 말이다.

“시작하겠습니다……!”

“후우……!”

형들과 나는 의지를 다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최종 미션 시작합니다.

아이돌 대백과의 최종 미션이라 함은 별게 없다.

-생방송 시작.

아이돌 대백과의 너튜브 채널로 기습 라이브를 켜는 것.

기습 라이브를 켠 후 우리의 타이틀곡 무대를 빠르게 보여준 후 방송 종료를 하는 거다.

이게 나름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콘텐츠다.

이 콘텐츠로 인지도가 2배가 되는 그룹들도 간혹 등장하고 말이다.

우린 이 빅 이벤트를 놓칠 수 없단 생각에 아무 생각도 않고 냅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연달아 이어지는 미션에 우리도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걸까.

우리 상태를 확인하지 못하고 방송에 나가 버렸다.

옷은 거의 늘어져서 거적때기 수준이었고, 헤어 세팅도 다 풀려 있었으며, 무엇보다 체력이 엉망이었다.

더 나아가,

-세이렌의 최종 미션은 유머 영상 모음집을 시청하며 이어집니다.

이 악마 피디는 우리가 춤에만 집중할 수 없게 스튜디오 정면에 모니터를 끌고 오더니 유머 영상 모음집을 재생시켰다.

“푸훕!”

“크하하하학!”

“으아아악! 제발요! 피디니이임!”

“끄아아아악!”

생방송은 시작되었고, 우리의 타이틀곡인 가 흘러나온다.

극한의 상황 속.

-우리 둘의 새로운 스토리

-너와 내가 써갈 이야기

-So good- 느낌이 와

난 내 파트를 정확히 수행하며 최대한 담담한 척했지만,

-대체 할 수 없는 순간

-다신 보지 못할 드라마

-지금, 우리 둘……푸하하학!

“끄아악!

“박동준!”

역시…… 유머 영상 앞에 무너지는 인원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세이렌이 <아이돌 대백과> 라이브 방송에서 망가진 몰골로 타이틀곡 무대를 하는 동안.

넥스트 웨이브의 사옥에는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

회사가 시킨 야근은 아니고 A&R 직원들 몇몇이 자발적으로 남은 거였다.

치킨과 피자 같은 야식도 세팅하고 한 가지 소식을 기다렸다.

그들이 예상컨대 아마 오늘이면 하프 밀리언을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태블릿 한쪽에는 세이렌의 라이브 방송을.

다른 한쪽에는 집계량을 볼 수 있는 관리자 페이지를 켜뒀다.

이내.

“……어?”

“어어……?”

누군가 화면을 가리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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