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82화
세이렌이 올린 의미심장한 게시물에 파랑새를 비롯한 SNS 등에서는 한 차례 추측글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백하러 가기???
-우리 와기들이…… 대체 무슨 꿍꿍인거지?
-하아…… 벌써 맛도리의 냄새가……
-와중에 태윤이 교복 찰떡임
-박동준 교복 입고 저런 눈빛은 너무 고자극임;;;
-우연훈 교복 입고 저런 눈으로 쳐다보면 어캄?ㅠㅠ
-누가 우리 깜고 교복 한 치수 작은 걸로 줬습니까? 압도적 감사드립니다…….
-운이만 목 끝까지 단추 채운 거 킬포임ㅋㅋㅋ
사람들은 고백하러 가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 세이렌이 올려준 교복 셀카들을 물고 뜯고 맛봤다.
언제나 깜짝 시작되는 이벤트는 팬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아니 이거 지금까지 풀린 미공포에도 이 착장 없었고, 앨범 포카나 포토북에 없었던 것 같으면 오늘 이벤트하려고 입은 거 맞는듯
-ㅇㅇ 맞는 거 같음. 오늘 애들 사녹때 메이크업이랑 똑같음.
-뭐임 진짜??
처음엔 단순히 물고 뜯고 맛보기만 하던 것을 사람들은 차차 퍼즐을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일단 내일 무대에서 교복을 입을 거란 추측은 자동으로 탈락 처리 되었다.
내일 무대에서 입을 거였다면 이렇게 오늘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후보는 두 가지 정도가 남는다.
하나는 교복을 입고 하는 방송 촬영이 있을 수 있단 것.
다른 하나는 팬사인회에서 입을 의상이라는 것.
이 중 어느 것이든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이상하리만치 팬들의 의견은 팬사인회로 몰렸다.
-아 이거 팬싸 의상 같음
-ㅇㅇㅇ100퍼 팬싸의상인 듯
-하아…… 교복 입고 팬사……
-왜 나 오늘 팬싸 못감? 나 왜 거지임? X팔것……
-오늘 데이터 양도 꼭 구해야겠다…… X펄…… 가진 못하더라도 소장은 해야겠음 진짜
이렇게 잠정적으로 팬사 의상인 것으로 판명이 나는 듯한 분위기 속.
종지부를 찍는 증거가 나왔으니.
-이거 뭐임???
-ㅁㅊ 이거 하려고 빌드업 한 거였음?
저녁 시간.
세이렌의 팬사인회가 시작될 한 라이브 홀의 입구에 안내판이 서 있었다.
안내판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듣고 싶은 고백 멘트가 뭐야?
오후에 세이렌이 올렸던 오늘 할 일이라는 게시물과 연결되는 안내판이었다.
이쯤 되니 사람들은 눈치를 챌 수밖에 없었다.
-교복 입고 팬사에서 고백하겠다는 거임?
-아 ㅅㅂ ㅠㅠㅠ 진짜 다음에는 큐팡 알바 뛰어서라도 감 진짜 배아파뒤짐
-저거 진짜임? 찐임?
-찐임ㅇㅇ 인증도 함
-우리 와기들…… 인소남인 것을 다시 한번 이렇게 증명하네
-내 남자친구이자 강도승의 남자친구인 공녀님 고백을 듣는다고요……?
└대체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 거임?
세이렌이 준비한 이벤트는 고백 멘트 이벤트였다.
굉장히 노골적인 유사 연애 감정을 자극하는 이벤트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는데,
-저거 추첨이 아니라 전원임
└???
-고백멘트 한두 개 해주고 끝나는 거 아니었음??
└물어보니까 포스트잇에 적어서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함. 갖고 올라가면 멘트 해주는 거 같음.
└ㅅㅂ……. 나 못 갔을 때 이런 이벤트 하지 말라고요 진짜……
박스 안에 넣고 몇 번 해주고 끝내는 이벤트가 아닌 팬사에 참석하는 전원을 위한 이벤트였다.
팬덤은 고백 멘트 정하기 건으로 한 차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두근거리는 멘트를 듣고 싶어서 적는 사람도 있었으나 웃긴 걸 보고 싶어서 적는 사람도 있었다.
-나랑 밥 먹을래 죽을래? 나랑 사귈래 죽을래? 이거 도승이 보고 해달라 하고 싶다…….
└근데 애기들이…… 그 드라마를 알까?
└ㅅㅂ 할미 가슴에 대못 박지 마세요
-클래식 하게 나 너 좋아하냐 적었음ㅋㅋ
└꼭 후기 들려주세요 ㅈㅂㅈㅂ
-누나 회식 가지 마요 부장님도 남자잖아 어떰
└ㅋㅋㅋㅋㅋ진짜 미쳤나봐
그렇게 세이렌의 첫 팬사인회 시작 전.
사람들은 벌써부터 해당 떡밥을 한껏 즐기기 시작했다.
* * *
이제 잠시 후면 팬사인회가 시작된다.
음악방송을 끝낸 후 우린 곧장 팬사인회가 이뤄질 라이브홀로 이동했다.
“으아아아. 나 왜 이렇게 떨리지?”
연훈이 형이 오들오들 떨며 내게 달라붙었다.
무대에선 안 떠는 형이 이런 자리에선 유독 긴장한다.
“내가 너무 과한 컨셉 잡자고 했나? 막상 하려니까 너무 떨려.”
“아니에요. 왜 떨어요. 솔직히 막상 올라가면 형이 제일 잘할 거 같은데.”
“……그래?”
“네.”
연훈이 형은 내 칭찬에 긴장을 조금 푼 모양이다.
사람이 이렇게도 단순할 수 있단 게 놀랍다.
“하아……. 근데 이거 진짜 팬들이 좋아하는 거죠? 그냥 의미 없이 우리 흑역사만 만들고 끝나는 거 아니죠?”
도승이 형이 미간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한다.
교복을 입고 사인회장으로 올라가기 전까지 이런 말 하는 걸 보면 진심으로 걱정되나 보다.
“좋아하시긴 할 거 같은데…… 우리가 잘만 하면.”
그런 도승이 형의 우려는 운이 형이 일축해 줬다.
“대신 우리가 부끄러워하면서 제대로 못 하면 그때 흑역사가 될 거 같아. 결국 이게 흑역사가 될지 아닐지는 우리 역량 아닐까?”
“그렇게 말하면…… 뭐라 할 말은 없네…….”
운이 형 말이 맞다.
결국 우리가 과몰입해서 제대로 하면 되는 거다.
“빨리 올라가고 싶은데. 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거 재미없잖아요. 다들 놀란 얼굴 빨리 보고 싶어요.”
동준이 형은 이런 행사가 전혀 긴장되지 않는지 아까부터 빨리 올라가고 싶단 말만 했다.
동준이 형 성격상 이런 거에 일일이 긴장할 거 같은 타입은 아니긴 했다.
때마침,
“지금 번호표 맞춰서 착석 끝났어요. 이제 올라가서 인사하고 사인회 시작하면 됩니다.”
행사 진행 요원이 다가와서 이리 말했다.
세팅이 끝났으니 올라가란 거다.
“가서 팬분들한테 실수하지 말고, 이야기한 대로 잘하고 오자!”
“네!”
“호오!”
“가요 빨리!”
난 형들과 함께 라이브홀 무대 위로 올라갔다.
* * *
세이렌의 팬들은 팬사인회 객석에 앉아 무대 위로 올라오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우연훈부터 강도승, 이운, 박동준, 봉태윤 순으로 나왔다.
“허억!”
“미친.”
“와…… 연훈이 얼굴…….”
“아니 태윤이 비율 무슨 일이야……?”
세이렌을 무대가 아닌 팬사인회장에서 보는 건 처음이기에 곳곳에서 탄성이 나왔다.
특히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교복으로 세팅하고 나온 것이 반응이 좋았다.
무대용 교복이 아닌 정말 학생들이 학교에서 입을 법한 쌩교복 그대로였다.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바로 그 의상이기도 했고 말이다.
원래 잘생기고 예쁜 건 화려한 의상을 입었을 때보다 평범한 의상을 입었을 때 더욱 분명하게 티가 나는 법이었다.
주변에서 늘 보는 옷을 입고도 얼굴과 비율이 눈에 띄게 다르면 더욱 시선이 가는 법이니 말이다.
거기에 교복이란 의상 자체는 평범함에 어딘가 아련함과 풋풋함도 가지고 있는 의상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돌들 의상으로 자주 선택되는 것이기도 했고 말이다.
“정식으로 인사부터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때마침 우연훈이 마이크를 들고 멘트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를 더욱 가열차게 누르며 말하는 우연훈을 카메라에 담았다.
“Say yes! 안녕하세요, 세이렌입니다!”
세이렌의 공식 인사가 지나고 나자 자연스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가 아닌 곳에서의 환호성은 낯선 걸까.
세이렌 멤버들 모두 부끄럽단 듯 미소를 지었다.
봉태윤만이 표정 변화 없이 꼿꼿하게 서서 팬들과 아이컨택을 하고 있을 뿐이었지.
“팬사인회 진행하기 앞서 먼저 세일러들에게 공지할 게 하나 있습니다.”
우연훈의 이어지는 멘트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였다.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오늘 사인회에서 저희가 컨셉을 정한 게 있거든요. 바로 교복 입고 팬사인회 하기 였는데…….”
우연훈은 그리 말하며 살짝 멘트 끝을 흐렸다.
“앞에서 고백 멘트도 적고 왔잖아요……! 그걸 저희가 하나씩 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올라오실 때 꼭 포스트잇 들고 올라와 주세요.”
우연훈은 그리 말하며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하얀 얼굴이 홍당무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미친……!”
“와…… 너무 귀여운데…….”
“연훈아아!”
그 모습에 우연훈의 팬들은 환호와 탄성을 지르며 우연훈을 바라봤다,
카메라 셔터음이 한층 더 격해진 것은 기분 탓은 아니었다.
우연훈은 그 반응들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짧은 시간에 얼굴은 아까보다 더 붉어져 있었다.
객석에선 기분 좋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우연훈은 잠시 얼굴색을 정리하더니,
“……이제 팬사인회 시작하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세이렌의 팬사인회의 시작을 알렸다.
* * *
팬사인회는 왜인지 모르겠으나 나부터 시작되었다.
형들이랑 의논해서 순서를 짜긴 했으나 형들은 내가 첫 타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이유는 자명하긴 했는데,
‘첫 타자가 연훈이 형이 되면 그 뒤가 다 죽을 거 같아서 라고 했었지…….’
나름 자극의 강도를 조절한 거다.
난 실제로 리액션이 그렇게 크지 못하다.
마음이 작단 게 아니라 천성적으로 표현을 잘 못한다.
연훈이 형은 나와 달리 표현이 아주 큼직큼직한 사람이기도 하고.
해서 나로 시작해서 연훈이 형으로 끝낸다는 순서가 나왔다.
다만 점진적으로 리액션이 강해지는 순서는 아니고
1. 나. 2. 동준이 형. 3. 도승이 형.
4. 운이 형. 5. 연훈이 형.
이 순서다.
약 – 강 – 약 – 강 – 최강
굳이 따지자면 이런 느낌이다.
단짠단짠 같은 순서랄까.
난 일렬로 쭉 늘어선 형들을 잠깐 쳐다봤다.
그래.
이리 늘어놓고 보니 꽤 과학적으로 잘 짠 순서 같았다.
때마침,
‘……오셨다……!’
첫 팬이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난 조금은 떨리는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떨리는 마음도 잠시.
“태윤이는 오늘 저녁 뭐 먹었어요?”
“요즘 자주 듣는 노래 있어요?”
“이번 앨범 중에 원픽인 노래는?”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팬의 자연스러운 질문 유도에 긴장됐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팬사가 너무 능숙한 것에 나도 모르게 의아한 감정이 들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주도해서 질문을 풀어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난 내 얼굴이 있는 포토북 페이지에 사인을 하며 그 질문들에 하나씩 답을 해줬다.
“오늘 저녁은 참치김밥 먹었어요. 누나는요?”
“요즘 자주 듣는 노래는 아무래도 우리 타이틀곡이지만, 그거 외에 평소에 자주 듣는 노래는 트로이 이에요.”
“이번 앨범 중에 원픽인 노래는 개인적으론 이요. 연훈이 형 목소리가 굉장히 맑게 잘 담겨있는 노래 같아요.”
“좋아하는 음식은…… 음…… 이것저것 다 잘 먹는데…… 주로 고기찜류?”
그렇게 질문들을 해주고 나도 역질문을 했다.
“오는데 안 멀었어요?”
“밥은 먹었어요?”
“이번 앨범에서 맘에 드는 부분이 어디에요?”
사실 이렇게 말이 많아질 줄은 나도 몰랐다.
한데 실제로 세일러를 눈앞에 마주하니 질문이 자꾸 생겨났다.
때마침 행사 진행 요원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사인을 줬다.
“그…… 멘트…… 이제 줄 수 있어요?”
난 떨리는 마음으로 멘트를 받았다.
“아…… 이거……! 보고 놀라지 마! 알겠죠?”
“……네!”
난 팬이 주는 멘트를 받아봤다.
동시에.
“……!”
놀라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표정이 이상했던 걸까.
“하하하학!”
팬분이 가장 먼저 웃음이 터졌고,
“하하하하하!”
“뭐야?”
“태윤이 표정 왜 저래?”
옆에 앉아 있던 형들이 그다음.
마지막은 관객석에 있는 다른 세일러들이 터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난 포스트잇에 적혀 있는 멘트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이걸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터였는데,
-하아…… 미치겠다, 누나…… 내가 그렇게 좋아요……? (치명적인 눈빛으로 고개를 살짝 꺾으면서 해주기)
이건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매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