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83화 (183/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83화

눈앞이 하얗게 번지고 정신이 아찔해진다.

사람이 어떻게 맨정신으로 이런 멘트를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니 형들은 더 내용이 궁금한 모양이다.

“아니, 진짜 뭔데 그래!”

“얼마나 센 거야?”

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동준이 형이 내용을 흘깃 훔쳐본다.

이내 포스트잇에 적혀 있던 그 충격적인 센텐스를 읽어내리더니,

“하하하하학!”

“뭐야?”

“진짜 뭐길래 그러는 거야아!”

아주 대차게 웃어 젖혔다.

그 반응에 다른 형들은 더더욱 궁금해했고.

“……너무 무리한 멘트일까요?”

그때 눈앞의 팬이 묻는다.

난 차마 무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뇨.”

“……!”

내 의지 결연함을 본 걸까.

팬분도 사뭇 진지한 얼굴이 된다.

난 포스트잇을 꼭 쥐었다.

그리곤 이 문장을 어떻게 소화해야 할지 고심했다.

대충 뭉개듯이 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할 거라면 아주 제대로.

한번 창피할 거 제대로 창피한 게 낫다.

괜히 빼다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끝날지 모른다.

하여,

“하아…… 미치겠다.”

난 행동지시문에 맞춰 고개를 살짝 꺾으며 최대한 치명적인 척을 해봤다.

“누나…… 내가 그렇게 좋아요……?”

결국 뱉고야 말았다.

그 문제의 센텐스를.

‘죽을까…….’

이대로 하늘에서 운석 같은 게 떨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신종 자해가 아닌가 싶을 정도의 타격이다.

“…….”

“와…….”

“세다……!”

내가 너무 진지하게 소화한 건지 라이브 홀에는 약 1초간 정적이 이어졌다.

이내,

“하하하하학!”

“진짜 미치겠다, 태윤아…….”

“와, 대단하네. 진심으로.”

형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객석 반응도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태윤아아아!”

“꺄아아아!”

“하하하하학!”

팬들은 환호하기도 하고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어쨌든 격한 반응은 맞다.

카메라 셔터음이 미친 듯 빨라지고 있었다.

“푸흡! 고마워요……!”

눈앞의 팬은 입을 틀어막고 말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웃음을 참는 얼굴이다.

이런 반응을 보니 만족한 모양이다.

“……아니에요.”

이후 다음 팬이 다가왔고, 내게 사회적 매장을 선물해 준 팬은 동준이 형에게로 넘어갔다.

이제는 조금은 수위가 낮은 멘트들이 나오기를 바랐건만,

-안녕 현아야. 나야. OO이. 오늘따라 밤하늘의 별이 아름다워서 전화를 걸었어. 저 하늘의 별을 이으면 마치 너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 같더라고. 맞아. 나 지금 너에게 고백……

……역시 고난의 순간은 쉽게 끝나지 않는 법이었다.

* * *

세이렌의 팬사인회는 성공적인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고백 멘트를 사인회장에서 해준다는 아이디어는 세이렌 팬덤뿐만 아닌 다양한 아이돌 팬덤에 소문이 났고, 그날 사인회가 끝난 후 세이렌의 각종 키워드들이 실트 순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봉태윤 진짜 죽고 싶은 얼굴로 앉아있다가 팬 오면 갑자기 웃어주는거 진짜 미친놈임

└진짜 봉떤남자 다운 면모라고 생각함

-저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어린 표정이 날 꽤 자극시킴

└나 이런 거 좋아했네…… 내 취향 어캄?

세이렌 멤버들이 오글거리는 멘트를 내뱉는 영상들은 하루 종일 파랑새를 돌아다녔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공유를 탄 것은 대부분 봉태윤 관련된 영상들이었고.

가장 이런 걸 안 좋아하게 생겨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내는 그 갭 덕분이었다.

-아 나 진짜 봉태윤 아무 생각 없었는데 지금 봉떤 왜 좋아하는지 알게 됐음……츤데레 연하 맛있네……

└봉떤남자를 이제야 맛보다니 인생 절반 손해보셨네요

└하루 세끼 식사대신 섭취할 예정임ㅇㅇ

팬사인회에서 가장 빛을 발할 것이라 예상되던 멤버는 우연훈이었지만 멘트의 힘인 건지 오히려 봉태윤의 주가가 빠르게 치솟고 있었다.

-애들 팬싸템 차고 무대 한 거 졸귀야ㅠㅠㅠ

-도승이한테 까만 고양이 귀만 대체 몇 개가 간 거임? (머리와 양쪽 팔뚝에 머리띠를 찬 강도승.jpg)

└깜고 대장 너무 귀여움ㅋㅋㅋㅋ

└아니 근데 아기 팬들 준거 다 하겠다고 팔에 다 찬거 보임?? 팬사랑 미쳤다 ㅠㅠㅠㅠㅠㅠㅠ

-옆에 동준이 강아지 귀도 댕귀여움ㅋㅋㅋ

-이날 진심 애들 단체로 ㅈㄴ예뻤음

-연훈이 이날 리얼 요정 그 잡채임;;

-제발 우리 공녀님 청순한 것 좀 보고 가주세요ㅠㅠ(사인하며 아이컨택 하는 이운.gif)

└아 ㅅㅂ 미쳤네 이거;;

팬사인회에서 나온 수많은 자료들에 세이렌 팬덤들의 피드는 밤새 식을 줄 몰랐다.

전날 진행되었던 온리원의 팬사인회와 비견해 보아도 눈에 띄게 많은 버즈량을 차지하는 중이었다.

-이번에 고백 멘트 정하기 컨셉 진짜 좋았던 거 같음. 제발 다음에도 해줬으면……ㅠㅠ

-꼭 똑같은 거 아니어도 되니까 컨셉 정하고 팬싸 한 번만 더 해줬으면 좋겠음

-교복 했으니까 다음은 테크웨어 안 됨?

└테크웨어 입은 애들한테 에스퍼 멘트 부탁하고 싶음

└아 벌써 맛도리네;;

이번 팬사에 가지 못한 사람들은 아쉬움을 토로했고, 다녀온 사람들은 다음 팬사를 기대하며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우연훈이 즉석에서 뽑아낸 아이디어였던 컨셉질 팬사인회는 그렇게 팬들 사이에서 좋은 평을 받으며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 * *

팬사인회가 끝난 날 밤.

숙소로 돌아온 형들은 쉽게 방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이야기들을 한참 나누었다.

“오늘 지이인짜 즐거웠던 거 같아요. 특히 나 진짜 태윤이가 첫 멘트 칠 때 배 찢어지는 줄 알았다니까요.”

“아니 근데 팬분들이 진짜 뻔뻔하게 그런 멘트 들고 와줘서 더 웃겼던 거 같아.”

“포스트잇 보면 정신이 멍해지는데 앞에서 막 기대 잔뜩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으면 안 해줄 수가 없더라고요.”

“컨셉으로 팬사인회 하자는 아이디어 진짜 좋았던 거 같아요, 형.”

“그치? 나 잘했지? 근데 해놓고서도 진짜 잘한 거 같아서 나 좀 뿌듯해!”

형들은 오늘 팬싸에서 재밌었던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난 왁자지껄 떠드는 형들을 하나하나 관찰했고 말이다.

팬사인회 한 번에 이렇게 들떠서 쉽게 잠 못 이루고 있다니.

이런 사람들이 역시 아이돌을 해야 하는 거구나 싶었다.

다른 사람들과 아이돌을 했다면 아마 이런 기분 못 느꼈을 거 같은데,

‘좋네. 팬사인회.’

형들이랑 함께 팬사인회를 했기에 오늘 팬들과의 추억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더 팬사인회에 대해 떠들고.

앞으로 남은 팬사에선 또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며.

우리가 좀 더 보완해야 할 팬서비스가 무엇이 있을지를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넘어버렸다.

“와 너무 늦었다.”

“이제 자야겠는데?”

“내일 새벽 기상인데 큰일이네.”

“후우우…… 지금 자도 한 3, 4시간밖에 못 자겠네…….”

11시라면 이 나이대 남성들에게 한창 활동할 시간이겠지만 새벽 사녹을 가야 하는 우리에겐 한참 늦은 시간이었다.

이제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지잉.

“응? 잠시만 애들아.”

연훈이 형 핸드폰이 울렸다.

형은 자리를 정리하다 말고 우뚝 멈춰 섰다.

뭔가 싶어 보니,

“얘들아!”

“……네?”

“왜……요?”

형이 대뜸 소리치며 우리를 부른다.

뭔 일이 터진 건가 싶었는데,

“우리 뮤직비디오 천만 회 방금 넘었대!”

“진짜요?”

“와악!”

“대박!”

호재 중의 호재였다.

형들은 마치 짠 것처럼 핸드폰을 들더니 너튜브에 들어갔다.

나도 형들을 따라 확인해 보니 우리 뮤직비디오의 총 조회 수가 1,000만을 넘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세이렌 MV

-조회수 : 10,000,507회

“으아아아악! 천만이다!”

“와 이 정도면 진짜 엄청 빠른 거 아니야?”

“대박…….”

“우리 해외 팬덤이 생각보다 꽤 있구나……? 댓글 중에 영어가 되게 많아.”

형들은 천만 회를 넘은 걸 보며 한마디씩 감상을 내뱉었다.

그중 동준이 형은 마치 뭐에 씌기라도 한 사람 마냥 화면 캡쳐 버튼을 미친 듯 연타했다.

“동준아……?”

“이런 건 증거로 수백 장은 남겨야죠! 천만 회잖아요!”

지금 저 광기만 보자면 메모리를 천만 회 캡쳐 사진으로 전부 채워 버릴 것 같은 기세다.

내일 즈음해서 천만을 넘길 줄 알았는데 내 생각보다 근소하게 빨랐다.

‘오늘 우리 팬사한 게 혹시 영향을 미친 건가.’

이번 활동 내내 모든 지표가 내 생각보다 근소하게 빠르다.

아마 내가 우리 팀의 저력을 얕봤던 거 같기도 하고.

내가 모든 일에 있어 계획을 너무 보수적으로 잡는 것 같기도 했다.

“하아아. 뭔가 천만 회 딱 찍으니까 그래도 안심이 된다.”

“그러니까요. 물론 초동 하프 밀리언도 엄청 체감되긴 했지만…… 이 동영상 천만 회는 또 다른 느낌인 거 같아요.”

“이것도…… 저작권 잡히겠지……?”

“우우우 강도승 돈귀신.”

“이 자식이.”

형들은 천만 회에 대해 떠드느라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하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마도 오늘은 신이 우리에게 쉽게 잠들지 말고 성공에 대해 더 떠들라고 만들어준 날 같았다.

그러자니,

‘흐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괜히 지금 의논해 보고 싶어졌다.

현재 운이 형의 사망 미션은 클리어했지만 다른 미션 하나는 클리어하지 못했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 천만 회와 안무영상 백만 회 미션.

천만 회가 내 예상보다 빨리 클리어됐으니 백만 회도 내 예상보다 빨리 클리어될지 모른다.

어쩌면 데뷔 직후 뽕이 빠지기 전인 지금 올려야지 더 빠르게 백만 회를 찍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다만 그냥 올리면 불안하고.

일주일 안에 백만 회를 찍을 수 있을 만한 분명한 한 방을 준비해서 찍어야 한다.

“형들. 혹시 우리 안무영상 언제 찍는지 들은 거 있어요?”

“안무영상?”

“아니? 딱히 들은 거 없는데?”

“근데 안무영상 슬슬 찍어서 올릴 때 되긴 했는데.”

“보통 활동 첫 주차나 둘째 주에 올리지 않나.”

형들에게 물어보니 딱히 안무영상에 크게 생각이 없나 보다.

그러면 내 의견을 조금 강하게 밀고 나가도 될 거 같았다.

“그럼 우리 안무영상 이거 어때요?”

“뭔데?”

형들이 내 핸드폰 앞에 몰려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처음엔 내 의견에 강하게 반발한다.

“아니, 야 이건 그래도 좀…….”

“우리 첫 안무영상인데 이건 심하지 않아, 태윤아?”

“하하하학! 난 웃긴데요?”

“……흐음. ……조금 무리수 같은데.”

하지만 여기서 굴복했으면 더쇼케2 우승도 못 했을 거다.

“잠깐만 들어봐요, 형들.”

난 묘한 기시감을 느끼며 형들을 설득시키기 시작했다.

우리 형들의 장점이자 단점이라 한다면 귀가 얇은 거다.

그냥 이유만 조금 그럴듯하게 만들었는데…….

“흐음…….”

“그렇고 보니 그렇긴 하네.”

“……취지는 뭐…….”

“봉태윤이 약 파네~”

너무 쉽게 수긍한다.

동준이 형 빼고.

다만

“근데 재밌긴 하겠다. 난 찬성!”

동준이 형은 늘 내 편이라 언제나 설득은 쉬운 편이다.

동준이 형의 찬성을 시작으로 형들은 하나둘 내 의견에 동조했다.

“그래. 태윤이 말 들어서 손해 본 적 없으니까.”

“한번 해보자.”

“내일 승연 씨랑 현아 씨한테 안무영상 찍게 스케줄 체크 좀 해달라고 해야겠다.”

안무영상 백만 회가 멀지 않은 듯싶었다.

* * *

다음 날.

세이렌의 팬들은 세이렌 공식 너튜브를 통해 올라온 영상 하나를 마주하게 됐다.

다들 이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든 생각은 하나였는데…….

-세이렌 너튜브 해킹 당했어???

이걸 정말 세이렌 담당자가 올렸을 리 없다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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