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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85화 (18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85화

세계선이 붕괴한다는 알림이 들렸다.

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사방을 둘러봤다.

15번째 회귀자는 도승이 형인 것을 안다.

도승이 형 주위에 연결돼 있던 15개의 불투명한 형체들이 있었으니까.

난 그중 가장 마지막에 있는 도승이 형을 부른 셈이다.

다만 27번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운이 형일지.

동준이 형일지.

연훈이 형일지.

그때,

끼익.

문이 열렸다.

먼저 다가온 것은,

“……봉태윤……?”

이번에도 도승이 형이었다.

난 프라이팬을 꼭 쥐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도승이 형은 말없이 날 바라보고, 난 그런 도승이 형을 경계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우리 둘 사이 적막이 흐른다.

먼저 입을 뗀 건 도승이 형이었다.

“봉태윤.”

“……왜요?”

“이리로 와봐.”

“……?”

“……한 번만 안아보자.”

“……네?”

도승이 형이 나보고 한 번만 안아보자는 말을 한다.

저 무뚝뚝한 형이.

뭔가 싶어 머뭇거리는데,

“안 오면 내가 갈게.”

형이 다가온다.

이게 도승이 형이라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단단히 꼬인 건지.

저 폼은 날 안아주러 오는 게 아니라 한 대 때리려고 오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봉태윤 이 개자식아!”

깡!

“……!”

난데없이 주먹을 휘두른다.

가까스로 프라이팬을 들어 방어하는 데에 성공했다.

딱딱한 프라이팬을 가격한 것에 꽤 큰 데미지를 받았나 보다.

“스읍…… 아아…… 이거 진짜 아픈데…….”

도승이 형이 주먹을 꽉 쥔 채로 고통스러워했다.

아무래도 전에 만났던 2번째 회귀자처럼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회귀자인가 보다.

프라이팬으로 제압을 해보려 했는데…….

“프라이팬으로 나 때리기만 해봐라.”

도승이 형이 먼저 내 속셈을 알고 이리 말한다.

“미안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후두부를 강하게 한 대 치려 했는데,

꽈악.

그 짧은 사이에 도승이 형이 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

이대로 땅바닥에 꽂아버린 후 타격기가 들어오려나 싶었는데,

“보고 싶었다, 태윤아.”

“……뭐라고요?”

이건 난투전으로 끌고 가기 위한 포석이 아닌 진짜 포옹이었다.

“아까 때리려 한 건 미안해. 근데 네가 워낙 속을 썩였어야지……. 그래서 딱 한 대만 쥐어박으려 한 거였어.”

난 어안이 벙벙해서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15번째 회귀자는 내가 아는 도승이 형보다 표현력이 좋은 사람 같았다.

그때,

끼익.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다음 사람이 나타났다.

“여기가…… 어디야……? 아니,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드디어 나타난 27번째 회귀자였다.

난 목소리를 듣자마자 알 수 있었다.

“운이 형?”

27번째 회귀자는 운이 형이란 걸 말이다.

운이 형이 날 바라본다.

동시에 날 끌어안고 있는 도승이 형을 바라본다.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야……?”

뭔가 운이 형이 이상한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난 도승이 형을 일단 떼어냈다.

그때 도승이 형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 회귀자인 거 숨겨야 하냐 지금?”

아마 운이 형이 회귀자인 줄 모르는 모양이다.

일단 교통정리를 한 번 하고 가야겠다.

* * *

난 교통정리를 하고 갔다.

도승이 형이 15번째 회귀자이고 운이 형은 27번째 회귀자라고 말해줬다.

서로가 회귀자인 걸 알아설까.

두 사람 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촉촉함이 더해졌다.

“야…… 운아.”

“응…….”

“괜찮았냐……?”

“아니…….”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내 세계에서도 관계가 돈독한 둘이다.

오랜 시간 연습생 생활도 같이했고 서로의 유년시절을 공유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고생을 더 절절하게 느끼는 모양이었다.

“고생 많았다.”

“아냐. 네가 더 고생 많았어.”

“아니야…… 네가 고생한 게 어쩌면 내 탓일지도…….”

“잠깐만요, 형들.”

난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의 대화를 중간에서 끊었다.

“지금 형들 대화도 중요하긴 한데. 일단 저도 물어볼 게 몇 개 있어서요.”

나도 가능하면 두 사람이 하루 종일 대화하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건 세계선이 일시적으로 붕괴된 상태.

영원히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니 한정된 시간 안에 내가 듣고 싶은 정보들을 들어야 한다.

“그래. 물어봐, 태윤아.”

“내가 아는 선에서 답해볼게. 해봐.”

“일단 도승이 형한테 물어볼게요.”

난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가장 중요한 거 한 가지.

“형. 두 번째 회귀했을 때 기억 다 가지고 있어요?”

“어. 모든 회귀의 기억들 다 가지고 있지.”

“그러면 그때 나 죽이려 한 건 기억해요?”

“……뭐?”

회귀자들의 기억이 과연 어디까지 연결이 되는가였다.

지금 도승이 형 반응을 보니 2번째 회귀자였던 시절에 날 죽이려 했던 기억이 없나 보다.

“죽이고 싶을 만큼 화가 난 적은 분명 있었는데…… 실제로 내가 널 때린 적은 없었어.”

“제가 이렇게 형의 회귀가 끝난 후에 따로 불렀던 기억도 없고요?”

“오늘이 처음이 아니야? 이전에도 날 부른 적이 있었다고?”

“……흐음. 네.”

“……소름 돋는데.”

이걸로 한 가지 확인할 수 있었다.

회귀자들 간에 회귀하는 동안의 기억은 공유된다.

아니, 공유고 자시고 애초에 본인의 기억인데 당연히 연결되는 거지.

하지만 회귀 이후에 내가 따로 불러낸 기억은 연결되지 않는다.

조금 의아한 대목이긴 하다.

기억이 부분적으로만 연결된단 거니까.

일단 이건 이렇게 넘어가고.

두 번째 질문.

“형은 15번째 회귀자잖아요.”

“어.”

“그 이상의 다른 회귀는 안 했잖아요.”

“……그렇지.”

“그러면 한 사람당 회귀하는 횟수가 정해져 있는 거예요?”

“…….”

과연 회귀의 횟수가 정해져 있는가.

도승이 형은 내 질문을 받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민감한 질문을 던진 모양이었다.

그때,

“……횟수는 안 정해져 있어.”

“그럼 뭐예요?”

“본인이 정할 수 있어. 미션을 계속 실패해서 멤버들을 한 명도 못 지켜내게 되면 시스템이 물어봐.”

“회귀 그만할지를요?”

“아니. 다른 사람을 지정해서 그 사람을 회귀시킬지. 아니면 내가 한 번 더 할지를. 그만한다는 선택지는 없어.”

그 말에 난 반사적으로 운이 형을 바라봤다.

운이 형은 도승이 형을 바라봤고.

도승이 형은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미안하다, 운아……. 근데 그때 내가 생각하기에 이 미션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 같았어.”

운이 형은 다소 충격을 받은 눈치였다.

다만 도승이 형을 바라보는 운이 형의 눈빛이 점점 부드러워진다.

“……괜찮아…….”

이내 도승이 형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이해할 수 있어. 우린 이 미션을 끝내야 하잖아. 그러니까 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운이 형이 도승이 형을 끌어안았다.

도승이 형은 운이 형에게 안긴 채 얼굴을 파묻었다.

잠깐 적막한 시간이 지나갔다.

나랑 운이 형은 도승이 형이 감정을 정리할 수 있을 때까지 잠시 기다려줬다.

이후 도승이 형의 감정이 정리가 됐을 때.

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졌다.

“……이건 두 사람한테 모두 드리는 질문인데요. 미션은 어디까지 이어지는 거예요?”

사실상 이게 메인 질문이라 할 수도 있다.

“일단 태윤아, 지금 이 세계는 어떤 상태야?”

운이 형이 먼저 내 상태를 물었다.

“지금 데뷔한 지 1주차요.”

“초동 50만 장 미션 너희도 받았어?”

“네.”

“클리어했고?”

“네. 했어요.”

“흐음……. 그럼 한참 남았는데…….”

“……네?”

난 운이 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일단 미션의 끝이 있는지는 난 몰라.”

운이 형은 그리 말한 후 날 똑바로 바라봤다.

“그래도 나는 빌보드 HOT100 1위까지 미션이 이어졌었어. 그 이후 미션들은 전부 실패해서 결국 멤버들 모두 잃긴 했지만 말야.”

빌보드?

핫백 1위?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난 당연히 뭐 대상이나 밀리언 셀러 정도에서 이 미션이 끝날 줄 알았다.

더 놀라운 건,

“그걸…… 했다고요?”

“응. 했어.”

운이 형은 그걸 해냈다고 한다.

난 도승이 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도승이 형은 15번째 회귀자다.

회귀 횟수로 치자면 가장 많이 회귀를 했다.

“도승이 형은 미션이 어디까지 이어졌어요?”

형은 잠깐 기억을 뒤지는가 싶더니 입을 뗐다.

“난 그래미 올해의 아티스트까지는 받았어.”

“…….”

핫백 1위에서 한발을 더 나간다.

어처구니가 없다.

“거기까지 갔는데도 미션이 끝이 안 났다고요?”

“응. 안 나.”

“안 끝나더라.”

빌보드를 정복하고 그래미를 들어 올려도 미션은 끝나지 않는다니.

거실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제 마지막 질문인데요. 형들은 그러면 뭐 하다가 여기로 넘어오는 거예요? 둘 다 미션을 실패한 상태인 거잖아요. 그러면 미션 실패 이후에 어떻게 되는 건지 말해줄 수 있어요? 그냥 실패한 채로 계속 살아가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지.”

난 미션에 대한 걱정은 일단은 뒤로 미루고 다음 질문을 했다.

이건 시스템의 작동원리에 대한 호기심이다.

미션 실패 이후에 그 세계는 과연 어떻게 되는 건지.

한데,

“아……!”

“……그러네……?”

형들 모두 어디 한 대 맞은 듯한 얼굴들이었다.

그러곤,

“마지막에 대한…… 기억이 없어…….”

“나도…… 그냥 눈 감았다가 뜨니까 여기였어……. 세계선이 붕괴한다고 하더니, 태윤이를 만나고 오라 해서 온 거거든…….”

운이 형과 도승이 형 둘 다 미션 실패 이후에 대한 기억이 없단다.

그러자 무거운 가정 하나가 머릿속에 번득였다.

아마 이 가정은 운이 형과 도승이 형 머리에도 동시에 떠올랐을 것이다.

그건 바로,

“……우리 세계 ……폐기된 건가?”

본인들이 살았던 세계가 폐기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었다.

“마지막 미션까지 실패 후에 추가적인 기억 있어, 운아?”

“……없어.”

“나도 다음 회귀자로 운이 지목하고 난 후부터 아무 기억이 없어.”

“…….”

“…….”

“……폐기가 맞구나.”

결론은 간단했다.

다음 회귀자를 지정하든, 한 번 더 회귀를 결정하든.

어쨌든 최종 미션이 실패한 그 시점에서 그 세계는 폐기.

마지막 그 순간에서 시간선이 멈춰 버린다.

자신들의 세계가 폐기된 것에 대한 충격이 있나 보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러면 몇 번이나 회귀를 반복하는 동안 그 모든 순간에 난 한 번씩은 죽었던 거겠네.”

그때 도승이 형이 간단하게 본인의 감상을 밝혔다.

하나의 세계가 끝나고 다음 세계가 시작되는 것.

지금껏 형들은 기억이 이어지니 자신이 죽지 않고 다음 세계로 넘어간다 생각했겠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 모든 세계 속에서 형들은 과거의 자신을 죽이고 새로운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셈이었던 거다.

“……우린 그러면 폐기된 메모리 같은 거겠구나.”

“꼭 그렇게 표현하진 말자 도승아…….”

“근데 그게 아니라면 우리를 표현할 방법이 뭐가 있는데.”

“……그건 그렇지만.”

도승이 형의 말이 맞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형들은 시스템 입장에서 보자면 영구삭제 버튼을 클릭하지 않은 휴지통 속 폐기 파일들인 셈이다.

“흐음.”

난 형들을 바라봤다.

사실,

‘맞구나. 폐기되는 거.’

100프로 예상은 못 했지만 어렴풋이 알아차리고는 있었던 사실이다.

회귀를 한다 해서 ‘나’라는 존재가 무한히 이어지는 게 아니라, 이전의 우주에 나를 묻어둔 채 메모리만 옮겨가는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비유하자면 하나의 파일을 수정하기 위해 복사본을 만든 후, 그 복사본 위에 수정 내용들을 이어가는 것과 비슷한 거다.

복사본에서 수정이 이뤄지니 당연히 원본 파일은 쓸모없어지게 될 거다.

자연스레 원본 파일은 휴지통으로 가게 될 테고.

지금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의 사정이 바로 그 폐기될 원본 파일인 거다.

자신들의 세계가 미션이 실패하는 순간 폐기처분 되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충격일 거다.

“그러면…… 난 대체…… 몇 번이나 세계를 버린 거야…….”

당연히 이전 세계들을 ‘버렸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 그곳에서 만난 인연들, 그곳에 만든 추억들까지 전부.

다만,

“형들.”

“……응?”

“……왜?”

난 폐기된 세계를 다시 복구해 볼 생각이었다.

“형들 기억을 지금 세계로 덮어씌우면, 이제 더 이상 폐기가 아니잖아요.”

“덮어씌운다고?”

“우리 기억을?”

“네.”

수많은 우주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팀을 지켰을 형들의 기억.

그 기억들이 단순히 쓸데없는 정보로 취급되어 폐기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내가 구하려는 것은 우리 형들이다.

그 형들에는 당연히 모든 우주의 형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어느 기억 하나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구체적 방법은 아직 모른다.

그래도 통찰을 통해 두 사람 주변에 붙어 있는 불투명한 형체들을 보았으니, 거기서 뭐든 해보면 가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 지금처럼 세계선이 붕괴된 상태에서라면 더더욱 무언가를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그게 과연 도움이 되는 일일까, 태윤아……?”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봉태윤.”

나랑은 생각이 조금 다른 걸까.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반론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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