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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86화 (18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86화

“네?”

형들의 반대는 예상치 못한 거였다.

원래 세계를 이 세계에 덮어씌운다는 건데.

그 말은 폐기된 모든 세계의 기억들이 지금 이 세계에서 다시 살아난단 거다.

회귀자로서의 미션은 수행하지 않고 수십 번의 회귀 경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이건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고, 형들 입장에서도 손해 볼 건 없다.

다만,

“시스템이 그걸 가만둘까?”

운이 형은 시스템이 과연 그걸 그냥 둘 것인지 궁금해한다.

“뭐…… 애초에 우리를 여기에 불러낸 걸 보면 나보다는 태윤이가 시스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거 같긴 해. 난 사실 미션 클리어하는 데에만 급급해서 시스템의 정체 같은 건 알아볼 생각을 못 했거든.”

운이 형은 몇 번이 회귀를 반복하면서도 시스템의 정체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았단다.

“그래도 여러 번 반복해서 회귀하면서 나름 깨달은 건…… 시스템은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거야. 내가 반발하려 하면 그 반발보다 더 큰 힘으로.”

시스템에게 당한 게 많은 걸까.

운이 형 얼굴 위로 수심이 깊어진다.

내가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도 운이랑 비슷한 생각이야. 함부로 우리 기억을 여기에 돌려놓았다간 시스템이 어떤 미션을 던져줄지 몰라.”

“흐음…….”

난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형들의 우려가 뭔지 알 것도 같다.

나도 시스템의 악독함에 대해서라면 뼈저리게 느껴봤다.

하지만,

“형들.”

“응?”

“왜?”

“혹시 시스템이랑 드잡이질해 보셨어요?”

“……응?”

“……애초에 그런 게 가능은 해……?”

회귀의 횟수는 형들이 분명 많겠지만, 시스템에 대한 경험치는 아마 내가 더 높은 거 같다.

어째서 내가 형들보다 더 시스템에 더 깊이 다가가 본 것인지는 모르겠다.

중간중간 튀어나온 연훈이 형 덕분이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누구에게 조종당하는 느낌을 싫어하기 때문이기도 할 거다.

어쨌든 난 운이 형과 도승이 형보다 회귀 횟수는 적지만 시스템에 대해선 좀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목숨 걸고 시스템이랑 내기하면 한 번쯤은 이겨 먹을 수 있어요.”

“목숨을 걸어?”

“죽을 각오로 미션을 수행한단 거야?”

“아뇨. 진짜 목숨이요. 내가 죽을 위기에 처하면 시스템이 갑이 아니라 을이 되더라고요. 물론 특정 누군가에게 죽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긴 한데…… 어쨌든요.”

“…….”

“……미쳤어?”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걱정 어린 시선으로 날 바라봤다.

“안 미쳤어요.”

난 아주 맨정신이다.

“내가 안 죽으면 멤버들이 죽는 판이잖아요. 원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게임인데 이상할 건 없잖아요.”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아무 말이 없어졌다.

그저 조금 질린 눈으로 날 쳐다볼 뿐.

“어쨌든 형들이 원하면 이 세계에 기억을 덧씌우는 건 아마 가능할 거 같아요.”

“대체 어떤 회귀자 라이프를 살고 있는 거냐 넌…….”

“좀 무섭다, 태윤아.”

“그래서 할까요? 아니면 말까요?”

“흐음…….”

“음…….”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고민에 들어갔다.

사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덧씌워 달라 말할 것을 기대했다.

그게 어느 방향으로 보든 이득이니까.

나로서는 마르지 않는 정보의 샘이자 어려운 상황마다 자문을 구할 수 있는 든든한 조력자의 등장이다.

형들도 이대로 자신들의 세계가 끝난 것에 아쉬워하기보단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이 세계에서 나와 함께 시스템을 상대할 수 있을 테고 말이다.

다만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 다른 법이다.

사고하는 방법도 다른 법이고.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아니.”

“덧씌우지 마.”

이런 결론을 내렸다.

“아니…… 왜요?”

나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선택이었다.

다만 형들 입장에서는 나름의 이유가 분명했다.

“만일 우리 기억을 덧씌우면…… 이 세계의 강도승과 이운은 난데없이 몸을 강탈당한 느낌일 거 같아.”

“나도 도승이랑 같은 생각이야.”

몸을 강탈하는 느낌이라.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근데 어차피 형들이잖아요. 형들 몸이고 형들 얼굴인데…….”

“꼭 얼굴과 몸이 같다 해서 같은 사람은 아닌 거잖아.”

“그 사람이 가진 기억과 경험이 다르면 같은 사람이라 볼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본질적으로 같잖아요. 지금 이 몸이 강도승과 이운이지, 다른 이름의 무언가는 아닌 거잖아요.”

“본질적으론 같지. 같지만…….”

“몰라. 그냥 좀 그래.”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이야기가 철학적으로 흘러가려 하니 말을 더 잇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몸에 자신들의 기억을 덧씌운다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이런 결정에 있어서는 내 의견을 고집할 수 없다.

한 번 설득했는데 실패했다면, 이 이상의 설득은 강요가 된다.

“……알았어요.”

“미안하다. 원하는 대답 못 들려줘서.”

“언젠간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형들은 그리 말하며 슬슬 이별을 준비하려 했다.

“만나서 반가웠어, 태윤아.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 있는 걸 보니까 더 반갑기도 했고.”

“이 세계에선 네가 회귀자라 다행이다. 진짜 네가 얼마나 내 속을 썩였는지…… 에휴…….”

막상 이렇게 보내려 하니까 아쉽다.

회귀에 대한 이야기를 형들이랑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할 기회가 내겐 정말 귀하다.

가장 의지하고 싶은 존재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을 말하지 못해왔으니까.

해서 정말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말해봤다.

“형들. 이 몸에 기억을 덧씌우는 건 싫으시다고 했죠.”

“응.”

“왜?”

아까와 같은 말로 또 설득을 시키면 안 된다.

그건 형들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다른 제안이라면 어떨까.

“그러면 덧씌운다기보단, 조금 연결시키는 정도는 어때요?”

“응?”

“연결?”

“네.”

전에 두 번째 회귀자와의 만남 후 도승이 형이 두 번째 회귀자의 기억을 일부 가지고 있게 되었다.

이 세계에서의 자아는 유지한 채 그때의 기억을 본인의 기억처럼 소유하는 거다.

이후 통찰을 통해 도승이 형을 바라봤을 때 도승이 형의 몸에 두 번째 회귀자의 형체가 가깝게 달라붙어 있었고.

그때는 어떤 오류로 인해 그런 일이 생겼던 거 같다.

아니면 두 번째 회귀자와 나 사이에 있었던 주먹다짐 탓에 그런 일이 벌어졌던 것도 같고.

어쨌든 이전 회귀자들의 기억을 일부나마 현재의 몸에 연결시키는 일은 가능한 거 같다.

과연 그 연결이 어떤 방식으로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볼래요?”

시도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생각한다.

“어떻게 하는 건데?”

“……할 수 있는 게 맞긴 해?”

형들도 덧씌운다는 게 아닌 연결시킨다는 것에는 호기심이 동하나 보다.

자신들의 기억과 세계가 그저 폐기된 채로 사라지는 것은 당연히 싫을 테니 말이다.

난 형들에게 내가 가진 능력을 일부 설명해 줬다.

“예전에 목숨 걸고 시스템이랑 맞짱 떠서 통찰의 전권을 가져왔거든요.”

아주 축약해서 말하긴 했지만 중요한 정보는 전부 들어간 문장이었다.

“……오…….”

“……넌 여기서도 정상은 아니구나, 태윤아. 어떻게 통찰 전권을 가져올 생각을 하냐.”

형들은 다소 놀란 눈치긴 했으나 추가적으로 태클을 걸진 않았다.

“그 통찰을 통하면 어느 정도 시스템에게 대드는 것도 가능한 거 같더라고요. 조금은 초월적인 짓거리도 가능하고요.”

“초월적인 짓거리?”

“예를 들면 이런 거?

난 운이 형에게 통찰을 사용해서 명령을 내렸다.

“뒤로 물러나.”

그러자 운이 형은 뒤로 세 발자국 물러났다.

운이 형은 뜨악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고 그걸 지켜보던 도승이 형은 거의 충격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나 회귀 헛했네. 이런 것도 할 줄 모르고.”

“……얘가 웹소설 맨날 보더니 이런 초능력도 하게 되는구나.”

“……제가 형들 세계에서도 웹소설 봤어요?”

“매일.”

“나중에 은퇴하면 작가 하겠다고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어.”

“……우주가 달라져도 한결같은 게 있긴 있네요.”

형들은 이제 내 능력이 본인들의 능력과는 꽤 다르단 걸 인지한 모양이었다.

“그 통찰을 통해서 우리들의 기억을 이쪽 세계에 연결시키겠단 거지?”

“네.”

“할 수 있겠어?”

“해내 볼게요.”

“흐음.”

“으음.”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또 한 번 고심한다.

그러곤,

“그래.”

“그거라면…… 해보자.”

형들이 이번에는 오케이 해준다.

“대신 이쪽 세계의 강도승과 이운의 자아는 무조건 유지해야 해.”

“우리 기억은 정말 아주 조금 연결만 되는 정도로 해라.”

“알겠어요.”

난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앞쪽에 나란히 앉혔다.

두 사람을 시야 안에 담은 채로 통찰을 발동시켰다.

지이이잉-!

세계가 일순 정지하는 느낌이 들며 정신이 고양한다.

이 아찔한 부유감은 역시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질 않는다.

난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두 사람 뒤에 붙은 불투명한 형체들이 다수 보인다.

도승이 형 뒤에 15개의 불투명한 형체.

도승이 형은 15번 회귀를 했단 거다.

운이 형 뒤에 붙은 17개의 형체.

운이 형은 17번 회귀를 했단 뜻이다.

그러면 32번째 회귀자까지 운이 형이었으리라.

지금이 27번째이니 현 상태에서 5번이나 회귀를 더 하게 되는 셈이 된다.

뭐 지금 당장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난 형들 뒤에 붙어 있는 그 불투명한 형체들에 접근했다.

실제 손을 댄 것은 아니고 통찰을 더욱 깊이 사용하여 그 형체들에게 다가간 거였다.

총 32개의 불투명한 형체들이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한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시스템 알림.

[허가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난 무시하고 일을 진행했다.

형체들의 진동이 점점 더 심해진다.

이내 몇 개는 그 윤곽선이 점점 더 흐려진다.

난 윤곽선이 흐려지는 형체들을 조금씩 형들의 몸으로 이어붙였다.

밝게 빛나는 새하얀 실이 형들에게 날아가 달라붙는 형태였다.

첫 번째 연결 작업 이후부터는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두 번째 형체도, 세 번째 형체도.

스무 번째도.

서른 번째도.

마지막 서른두 번째도.

그럴 때마다 시스템은 경고 알림을 울렸다.

[허가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

허가되지 않은 접근인 거 안다.

이런 걸 시스템이 허가해 줄 리가 없잖은가.

다만 할 수 있어 보이니까 해보는 거다.

이제 연결은 끝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봐야 한다.

통찰을 끝내니,

“……끝났어?”

“……뭐 달라진 건 없는데?”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별 차이점을 못 느끼나 보다.

“아직 붕괴된 세계선이 안 돌아왔잖아요.”

다만 진짜 차이점은 이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세계선이 돌아온 후 원래의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깨어났을 때 느끼겠지.

“아. 그렇지”

“맞네. 우리는 느낄 수가 없겠네.”

때마침,

[세계선이 복구됩니다.]

[충격에 주의하세요.]

세계선이 이제 복구된다는 알림이 들렸다.

아마 이 목소리는 형들에게도 들리나 보다.

“이제 작별이네.”

“만나서 반가웠어, 태윤아.”

형들이 작별인사를 한다.

“완전 작별은 아닐 거예요. 어쨌든 연결은 시켜뒀잖아요.”

난 또 다른 만남이 있을 거라 믿고 있다.

“그래. 그렇지.”

“그럼…… 또 보자라는 말로 인사할게.”

“다음에 보자, 태윤아.”

“몸조리 잘하고 있어.”

형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중.

“아. 그리고 어쨌든 시스템의 권한에 도전한 거잖아, 태윤아. 그러니까…… 어떤 시련이 찾아올지 몰라. 마음의 준비 잘하고 있어.”

“지금까지는 시스템이 크게 제재하지 않았다 해도 계속 이런 도발적인 짓을 가만둘 리는 없는 거니까.”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마지막까지 내게 경고를 남겼다.

“알았어요. 마음의 준비 하고 있을게요.”

난 시스템과 있을 또 다른 전면전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럼 잘 있어.”

“또 보자.”

이윽고,

지이이잉-!

세계선이 복구되더니,

쿵.

“어이쿠.”

형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쓰러졌다.

빙의 후 수면 상태에 돌입하는 건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이제 형들을 다시 방으로 옮겨야 한다.

옮기지 않으면 또 어떤 말로 형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 말이다.

깨지 않게 조심히 방으로 옮기려 했는데,

“으음…….”

“끄으윽…….”

“뭐야.”

형들이 내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잠에서 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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