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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87화 (187/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87화

형들이 예상보다 일찍 일어났다.

난 두 사람을 멍하니 내려다볼 뿐이었다.

수습하기에는 이미 두 사람이 눈을 뜬 상태다.

“뭐냐……?”

“태윤아……?”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설명이 필요한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이 상황 자체가 당연히 이해가 안 갈 거다.

“아…….”

당황하면 안 된다.

어떻게든 임기응변으로 이야기를 짜내야 한다.

두 사람이 오밤중에 거실에 나와서 쓰러져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내려 했는데,

“나 설마 또 몽유병 증상 나온 거냐?”

도승이 형은 본인이 스스로 이유를 찾아냈다.

“아…… 네. 맞아요.”

난 이때다 싶어 맞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진짜 스트레스 많이 받았나 보네. 근데 최근에 행복한 기억밖에 없었는데…… 뭐지?”

도승이 형은 홀로 고민에 들어갔지만 일단 위기는 넘겼다.

남은 건 운이 형.

운이 형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거나 나한테 이유라도 물어보면 나으련만.

운이 형은 아무 말도 않고 허공만 응시했다.

“형?”

혹시 어디 문제라도 생긴 걸까 하는 마음에 운이 형을 불러봤다.

“…….”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순간 섬찟한 생각이 들었다.

불투명한 형체들을 이어붙이는 과정 중에 문제가 생긴 걸까.

그래서 운이 형에게 기억들이 넘어오긴커녕 정보의 과다로 인해 머리가 망가져 버린 걸까.

혹시나 싶어 무릎을 꿇고 형과 눈높이를 맞췄는데,

“……나 기억났어.”

“뭐라고요?”

운이 형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기억을 연결시켜 둔 게 벌써 효과가 있는 건가?

근데 효과가 있다면 왜 도승이 형은 없고 운이 형에게만 있는 거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화장실 가려고 나왔다가…… 갑자기 졸려서 그냥 소파에서 잤던 거 같아. 맞지?”

다만 걱정들이 무색하게 운이 형은 본인 혼자서 소설을 써내려 나간 거 같다.

‘전혀 아닌데요…….’

화장실 가려고 나온 것도 아니고 소파에서 잔 것도 아닌데 본인 혼자서 이야기를 짜맞춰 버린다.

본인이 스스로 이렇게 말해주니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

“맞아요.”

“나 엄청 어렸을 때 이랬는데……. 성인 되고 나서는 처음이다.”

“형도 요즘 무리해서 그런가 봐요.”

“그러니까.”

어떻게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의 새벽 거실 취침 사건은 해결이 되는 듯 보였다.

“내일 스케줄도 가야 하는데 얼른 가서 자자.”

“괜히 수면시간 손해 본 느낌이네.”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운이 형과 같은 방을 쓰므로 같이 들어가서 누웠다.

“잘 자, 태윤아.”

“네 잘 자요, 형.”

운이 형과 나는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긴 하루가 된 거 같지만 어쨌든 끝이 났다.

‘복작복작했네.’

두 명의 회귀자를 동시에 만나니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필요한 정보들은 모두 모았으니 됐다.

다만 마음속에 걸리는 것은,

‘시스템의 반격 같은 게 있으려나.’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해준 경고가 마음에 남았다.

난 지금 통찰의 전권을 갖고 시스템에게 많은 것을 도전하고 있었다.

미션 내용도 내 마음대로 바꾸고.

다른 우주의 회귀자들을 이 세계와 연결시키고.

이 모든 방향은 시스템이 바라던 방향은 아니었을 거다.

그렇다면 분명 내가 예상치 못했던 미션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어떤 미션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준비라도 하고 있어야겠네.’

패닉에 빠지지 않으려면 마음이라도 단단히 준비하고 있어야 할 거 같았다.

* * *

야심한 새벽 시간.

원룸 빌라들이 즐비한 언덕 쪽의 주택가에 24시간 불을 밝히는 편의점이 있었다.

주택가 편의점답게 야간 시간에는 사람이 덜한 편이었다.

그에 반해 시급은 낮 시간보다 훨씬 세고 말이다.

물류가 많이 들어오긴 하지만 편의점 일 중 사람 상대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란 것을 감안한다면 이점이 많은 시간대였다.

야간 알바생 김원중은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매대 앞에 앉아 있었다.

끼익.

편의점 문이 열리며 손님이 들어온다.

김원중은 눈으로만 슬쩍 손님을 쳐다본 후, 다시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화면 위에 떠 있는 것은 모바일 RPG 게임.

그는 주변에 떨어진 아이템들을 수집하며 손님 쪽엔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계산이요.”

“…….”

“계산이요.”

“…….”

“저기요. 계산해 달라고요.”

“……아.”

손님이 한참 앞에 서서 계산을 부탁하는 데에도 모를 정도였다.

“만이천오백 원입니다. 카드 앞쪽 꽂아주시면 됩니다.”

손님이 계산을 하고 나간 후.

“하아…… X발 별 걸로 보채고 지랄이야. 물류 정리 끝내고 이제 막 시작했는데.”

김원중은 손님이 나간 방향을 보며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다시 핸드폰을 집은 후 게임을 이어 나가려는데,

끼익.

“하아…….”

또다시 편의점 문이 열린다.

2연속 손님이라니.

표정이 썩어가려던 찰나,

“이 새끼 손님인 줄 알고 표정 개썩네.”

“아 뭐야.”

“심심해서 와봤다.”

중학교 동창인 김중연임을 알고 표정을 풀었다.

“뭐 하냐?”

“걍 던전 돌리는 중인데.”

“현질 얼마 했냐?”

“많이 안 했어. 한 삼사십 정도 했나.”

“와 그 돈이면 나였음 그냥 난텐도 샀다.”

“내 맘이야.”

김원중과 김중연은 게임에 대한 걸로 시시콜콜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김중연이 오늘 대화의 핵심 소재를 꺼내 들었다.

“야. 너 걔 근황 봤냐?”

“걔?”

“그 재수 없는 금수저 새끼 있잖아.”

“……아. 박동준?”

“어어어.”

“와 걔 이름 오랜만에 듣네. 그 새끼 근황이 왜? 몸 어디 고장이라도 났대?”

“아니, X발 그런 거였으면 말해주러 여기까지 안 오지.”

“뭔데 그럼. 뭐 페라리라도 뽑아서 강남에서 질주라도 한다냐?”

“아니. 좀 들어봐.”

김중연이 김원중의 헛소리를 끊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새끼 아이돌 한다더라.”

“……진짜?”

“세이렌인가 하는 그룹이던데.”

“세이렌?”

“몰라?”

“아니, 들어는 봤는데…….”

“지금 니네 편의점에서 나오는 노래도 걔네 노래잖아, 등신아.”

“그냥 차트 전곡 재생 누른 건데……?”

김원중은 박동준을 검색해 봤다.

그러자 수천 개의 사진들과 수백 개의 기사.

온갖 좋은 글들이 마구 쏟아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새끼 귀엽다고 난리 치는 글들 왤케 많냐?”

“생긴 건 옛날부터 곱상하게 생겼잖아.”

“아 근데 솔까 이 정돈 아니었잖아. 성형한 거 같은데.”

“뭐 연예인인데 어디 만졌을 수도 있지. 아님 얘네 아빠가 돈이 좀 많냐. 아빠가 고쳐줬을 수도 있고.”

“와, 근데…… 아이돌이라고?”

“어.”

“얘네 걸그룹이랑 같은 무대에서 방송한 거임, 지금?”

“챌린지도 같이 찍어 올렸다더라.”

“……X나 부럽다 진짜.”

김원중은 멍하니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 새끼 인성 파탄 난 거 사람들은 모르겠지?”

“알겠냐. 방송에서 귀여운 척하고 다니는데. SNS에 올리는 글들 봐. 팬들이 보기엔 무슨 천사임 천사.”

그들의 시선은 화면 위 박동준에게로 향했다.

둘 다 박동준에게 좋은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여,

“누가 이 새끼 나락 안 보내주나.”

“그니까.”

“우리 말고도 나락 보낼 사람 있지 않을까?”

“근데 아직까지 안 터진 거 보면 없는 거 아닌가?”

“그럼 우리밖에 모르는 거임? 이 새끼 인성 터진 걸?”

“아직까지 무난하게 활동하는 거 보면 그런 거 같은데.”

김원중과 김중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후 야심한 편의점에서 은밀한 약속이 오고 가게 되었다.

* * *

15번째와 27번째 회귀자를 만나고 난 다음 날.

다시 아침부터 같은 스케줄의 반복이었다.

샵에 가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사녹 가서 녹화하고.

이젠 음악 방송 출근길이 나름 익숙해지기도 했다.

고작 일주일인데 벌써 한 달쯤은 다닌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오늘은 사전 녹화가 끝난 후에 짧게 미니 팬미팅도 했다.

“연훈아아아!”

“태윤아! 봉태윤!”

“동준아!”

“운아!”

“강도스응!”

팬들과 방송국 뒤쪽 작은 공터에서 진행한 미니 팬미팅이었다.

무대나 팬사인회장에서만 봐왔지 이런 장소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짧게나마 대화도 나누고 이런저런 게임들도 같이한 시간이었다.

이런 팬서비스에 가까운 활동들을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한 적 없었다.

아이돌로서 해야 하는 당연한 직업의식이라 생각할 줄 알았지.

한데 막상 해보니까.

‘……재밌네.’

이 시간이 즐거웠다.

바쁘고 각박한 방송가 생활 중 한 줄기 빛 같달까.

그래도 이런 팬들과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행사를 하고 나면 조금은 힘이 나긴 한다.

방송국 뒤쪽 공터에서 진행한 미니 팬미팅도 끝나고.

오후에 있을 음악방송 생방송 전에 짧게 스케줄을 진행하기 위해 여의도로 이동할 시간이었다.

“지금 저희 점심 시간 맞춰서 가서 방송 진행해야 해서 빨리 이동해야 해요.”

“으아아아! 정신없다, 정신없어!”

“급할수록 천천히~ 안전하게~”

우린 방송용 의상을 벗고 화장도 조금 덜어낸 후 차량에 올라탔다.

요즘 늘 이런 식이었다.

사녹이 끝나고 차량에 쫓기듯 올라탄 후 다음 스케줄 하고 다시 스튜디오로 돌아오는 식.

하루에 방송 하나만 있는 날은 거의 없고 매일이 2개 이상이었다.

“지금 가는 방송 내용 이미 메일로 전달받았죠?”

“네.”

“가서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시민들이랑 인터뷰한 다음에 동네 맛집 가는 포맷이니까 너무 긴장하진 마요. 가서 맛있는 밥 한 끼 먹는다 생각하면 되니까요.”

“넵!”

“알겠습니다!”

“박동준, 입꼬리 내려라.”

“……제 입꼬리는 늘 이 정도 올라간 상태입니다만?”

“아주 맛집 간다고 입이 귀에 걸리겠네.”

오늘 점심에 있는 촬영은 맛집 탐방 촬영이었다.

<동네맛집>이란 제목의 프로그램으로 요즘 공중파에서 잘나가는 방송이었다.

나름 화제성도 잘 몰아주는 방송이라 길거리 촬영샷이 본방송 방영도 전에 자주 돌아다니곤 한다.

‘가서 너무 맛없게 먹는다고 욕먹진 않겠지?’

난 이때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걱정만 하고 있었다.

원래도 복스럽게 먹는다는 것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니 말이다.

동준이 형 먹는 걸 복기해 보며 최대한 그와 비슷하게 먹어보려고 노력해 보자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

[돌발 미션 발발]

“음?”

시스템이 아주 오랜만에 돌발 미션을 던졌다.

난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는데, 돌발 미션 발발이란 말을 듣고 곧장 머리를 뗐다.

뭔 말이 나오려나 하고 기다려보니,

[박동준 인성 논란을 잠재우시오.]

[성공 시, 보상 없음]

[실패 시, 박동준의 활동 중지]

“……망할.”

“응?”

“뭐라고, 태윤아?”

“밥알?”

시스템이 반격을 할 수도 있단 형들의 말.

그 말이 현실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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