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89화
촬영이 중단되고 동준이 형이 불려 나가자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잠시만요. 문제 생긴 겁니까 지금? 브리핑 좀 해주실 수 있어요?”
MC는 제작진에게 다가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브리핑해 달라는 요구를 했고, 제작진들은 우리를 슬쩍 한 번 쳐다보더니 MC만 데리고 구석으로 이동했다.
결국 학생식당 앞에 남은 것은 동준이 형을 제외한 우리 넷뿐이었다.
당연히 심상치 않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인 거야?”
“……뭐가 터졌나?”
“동준이 괜찮을까?”
형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곤 걱정스러운 눈길로 동준이 형이 불려간 곳을 바라봤다.
동준이 형은 제작진들 대기 공간으로 대여해 뒀다는 한 강의실 쪽으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 뒷모습이 어딘가 위축되고 처량해 보여 괜히 더 눈에 밟혔다.
“……대체 무슨 일인 거야…….”
이렇게 우리만 빼고 자기들끼리만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니 더 속이 타들어 갈 거다.
“잠시만요.”
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빼냈다.
“지금 문제가 생긴 거면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형들은 그런 나를 보며 잠깐 주변 눈치를 봤다.
촬영 중에 핸드폰 하는 건 암묵적 금기 같은 거다.
보통은 촬영 들어가기 전 매니저에게 핸드폰을 맡기는 경우도 잦고 말이다.
카메라에 출연진들이 촬영에 집중 안 하고 핸드폰 하는 장면이 나오면 그림상 예쁘지 않으니 당연한 거다.
“핸드폰 해도 괜찮아?”
“어차피 지금 잠깐 중단됐잖아요.”
“……그렇긴 한데.”
형들은 아직 카메라가 철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핸드폰을 하는 게 부담스럽나 보다.
근데 어차피 이 씬이 방송에 나갈 일은 없다.
현장 통제도 어느 정도는 되고 있어서 우릴 쳐다보는 사람들도 아까보다는 훨씬 적고 말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핸드폰을 써야만 한다.
“적어도 무슨 일이 터진 건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제가 대표로 확인해 볼게요.”
동준이 형에게 터진 일.
난 그게 무슨 일인지 알고 있기에 더더욱 핸드폰을 놓을 수 없었다.
우선은 파랑새부터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실트 1위네…….’
박동준 인성이 1위다.
그렇다면 파랑새 더 볼 필요는 없다.
여기서 여과 안 된 날것의 반응들을 봤다간 모니터링 시작도 전에 멘탈 터질지도 모른다.
대신 좀 더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 네이스판에 들어갔다.
역시나 여기에서 인성 논란이 시작된 모양이었다.
동준이 형에 대한 게시물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ㅅㅇㄹ ㅂㄷㅈ 인성 고발합니다. (중학교 동창입니다. 졸업 앨범이랑 학생증 인증할 수 있습니다)
제목부터 나 좀 눌러달라며 어그로를 끄는 제목이었다.
고소라도 당할까 겁먹은 건지 절대 실명으로 동준이 형을 거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초성이 더 어그로를 끌게 된 요인인 거 같았다.
이 글은 오늘 하루 중 가장 핫한 토픽으로서 네이스판에서 타오르고 있는 글이었다.
게시물을 클릭해 내용을 확인해 보니,
-이 글을 쓰기까지 정말 많은 고뇌가 있었습니다. 이미 너무 오래전의 일이고 저희가 오히려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희의 학창시절을 짓밟은 사람이 방송에 나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것에 용기를 내어 글을 올립니다.
저희는 ㅂㄷㅈ과 같은 중학교 졸업생입니다. 3학년 때 같은 반에서 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그 친구 탓에 저희의 중학교 마지막 1년은 엉망으로 무너져 내릴 수밖에…….
아주 전형적인 폭로글의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런 폭로글이 나쁘단 건 아니다.
폭로글을 통해 죗값을 받아야 할 인물들이 적합한 죗값을 받을 수 있으니 익명의 인터넷 공간은 순기능을 갖고 있다 볼 수 있다.
다만,
‘흐음…….’
죄를 짓지 않은 사람조차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죄인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게 역기능이다.
난 이야기를 쭉 내려봤다.
일견 디테일하고 현실감 있어 보이는 이야기였다.
축약해 보자면 이러했다.
동준이 형은 반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던 학생이었다.
일진까지는 아니었지만 분명 반에서 가장 목소리를 크게 내던 친구였다.
집에 돈이 많다는 말을 직접 하진 않았지만 늘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가방을 메고 좋은 신발을 신었기에 다들 돈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특히 친구들에게 돈을 잘 써서 동준이 형 주변엔 늘 친구들이 바글바글댔다.
동준이 형과 친해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의 운동화가 바뀌어 있었고,
어떤 경우엔 가방이.
정말 친한 경우엔 새 패딩을 입고 등교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당연히 중학생들에게 이는 엄청난 선물이었고 자연히 동준이 형 주변엔 친구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무슨 동준이 형이 돈으로 친구들 사고 다닌 것처럼 적어뒀네.’
읽다 보니 동준이 형이 재수 없는 졸부처럼 묘사되어 있었다.
내가 아는 동준이 형이라면 돈 쓴 티 내려고 억지로 좋은 거 입고 다녔을 리는 없다.
친구들 매수하려고 비싼 선물 줬을 리는 더더욱 없을 테고 말이다.
아마 별생각 없이 부모님이 사준 옷 입고 다닌 것일 테고.
별생각 없이 친구들이 갖고 싶다고 해서 사준 것일 거다.
이전 생에서 내가 보고 온 동준이 형네 집안은 정말 ‘별생각 없이’ 돈을 써도 될 정도로 돈이 많았으니 말이다.
일단 글을 마저 더 읽어봤다.
이 글을 쓴 당사자들은 자신들은 그런 것과 관계없이 동준이 형 성격이 좋아 보여서 친하게 지냈었단다.
남들은 동준이 형에게 비싼 걸 얻어내려 했지만 본인들은 진짜 친구였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만 동준이 형과 이들 사이엔 큰 차이가 있었는데, 바로 부의 정도였다.
-그 친구와 달리 저희들은 다소 불우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입고 있는 옷이나 매고 다니는 가방, 신던 신발들도 그 친구와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죠.
동준이 형은 잘사는 부자. 이 고발글을 쓴 사람들은 가난한 집안.
읽다 보니 이 글이 어떤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서서히 보인다.
-저희가 가난하다는 것을 그 친구도 눈치챘고, 그때부터 은근한 무시와 하대가 이어졌습니다. 친구들을 사용해 저희들을 조직적으로 따돌리고, 거지냐고 비아냥대며, 저희 부모님들에 대한 비방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동준이 형은 자신이 가진 부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가난한 집안의 두 사람을 일방적으로 괴롭히고 따돌렸다고 말한다.
특히 친구들을 ‘사용해’ 본인들을 따돌렸다고 하니 이 글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지 보다 자명했다.
돈으로 모든 것을 구매하는 동준이 형과 돈이 없어 아무것도 갖지 못해 구석으로 내몰린 글쓴이들.
구조를 파헤칠수록 구도가 명확해졌다.
-밑에 저희 졸업 앨범과 졸업증, 학생증 첨부합니다. 자료를 더 찾으면 찾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글은 자신들이 동준이 형과 정말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걸 한 번 더 강조하며 마무리되었다.
그 아래 댓글창 여론은 들끓는 중이었다.
동준이 형을 옹호하는 댓글들.
그럴 줄 알았다며 비난하는 댓글들.
중립을 지키자는 댓글들.
졸업 앨범과 졸업증까지 인증한 마당에 무슨 중립이냐고 말하는 댓글들.
여러 의견과 주장들이 한데 섞여 어지러운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일단,
“형들.”
“응?”
“……좀 심각한 일이 터진 거야?”
“……하아. ……걱정되네.”
난 형들에게 내 핸드폰을 건네줬다.
내가 말로 하는 것보다 형들이 눈으로 보는 게 훨씬 빠를 거다.
핸드폰을 받아든 형들은 얼굴색이 서서히 어두워져 갔다.
“아니, 이게.”
연훈이 형은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고.
“동준이……. 어떻게 하지.”
운이 형은 동준이 형을 걱정했으며.
“하아…….”
도승이 형은 속이 복잡한 건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뱉었다.
“왜 촬영 중단된 건지 알겠다.”
“지금 이거 엄청 퍼졌구나.”
“벌써 만 단위 공유도 되고 있어.”
“이 정도면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 봐야겠네.”
형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모양이었다.
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일단은 말을 아꼈다.
이곳은 공개된 자리이고 촬영이 중단되었을 뿐 아직 취소된 것은 아니니 말이다.
다만,
‘글에 주장만 있고 증거나 근거가 너무 빈약한데.’
사실 그 게시글을 읽고 난 후 난 조금 더 의견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동준이 형이 억울한 짓을 당하고 있다고 말이다.
심지어는 이걸 나만 눈치챈 것이 아니었다.
댓글들 중에서도 적지 않은 비율로 글 자체가 조금 비틀려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이들은 동준이 형이 자신들을 괴롭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도 엄청난 부를 무기로 하여서 말이다.
그 부라는 무기에 가난한 본인들은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그 구조가 너무 노골적이라 절로 작위적인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정말 괴롭혔는지, 어떤 방식으로 괴롭힌 건지, 구체적인 정황과 증거가 없었다.
아니, 증거는 없더라도 최소한 디테일한 정황쯤은 제시가 되어야 한다.
한데 그저 따돌렸다, 부모님 욕을 했다, 무시하고 하대했다, 와 같은 두루뭉술한 말로만 모든 것을 대신할 뿐이었다.
그들이 든 증거라고는 청형 중학교 학생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들뿐이고.
청형 중학교 학생이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인 거 같으나.
‘그게 곧 폭력의 증거는 아니니까.’
원래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방법은 이거다.
수많은 거짓 사이 진짜를 섞어두는 것.
그 하나뿐인 진짜로 인해 나머지 거짓들은 전부 감춰지는 방식이다.
다만,
‘흐음.’
그렇기엔 이 글을 쓴 사람들은 너무 허술했다.
-아니 이런 글 쓸 거면 다른 증거도 올려야 하는 거 아님? 그냥 주장만 있고 나 이 학교 학생 맞으니 믿어주세요 라고 호소하는 거랑 뭐가 다름?
실제로 위와 같은 댓글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최악까진 가지 않을 거 같네.’
난 속으로만 이렇게 생각했다.
다만 문제는 최악만 아니다 뿐이지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일단 감이 잘 안 온다는 거다.
이 글을 쓴 사람들을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으로 고소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고소 전에 주소지를 찾아서 내용증명이라도 보내나.
어떻게든 온라인에 숨어 있는 이 둘을 오프라인으로 데리고 나와야 할 거 같은데…….
‘머리 아프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태윤아.”
“네?”
운이 형이 나를 불렀다.
“여기 핸드폰.”
“아, 네.”
내가 줬던 핸드폰을 다시 돌려주려던 모양이다.
난 운이 형이 건네주는 핸드폰을 받은 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곤,
“잠깐 화장실 갈래?”
운이 형이 대뜸 나에게 화장실을 같이 가잔다.
뭐 화장실 같이 가자는 거야 당연히 그럴 수 있다.
한데,
“어때?”
지금 말하는 그 말투가.
아니, 그 분위기가.
뭐랄까…….
“……형?”
평소와 분명 달랐다.
“얼른 가자.”
그 순간 확신했다.
‘회귀자다.’
지금 내게 말을 건 것은 회귀자의 기억을 가진 운이 형이란 걸 말이다.
* * *
세이렌의 소속사이자 제일그룹 100% 자회사로 완전 편입된 넥스트 웨이브는 오늘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았다.
이전 WD엔터가 갖고 있던 지분을 반쯤 협박하여 전부 다 회수하는 작업을 끝낸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건만 또 한 번 묵직한 사건이 터진 거다.
“아, 기자님. 다름이 아니라 지금 해당 신문사에서 올라간…….”
“아직 당사자 의견 확인 중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입장문 게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동준의 인성 논란.
사람으로 장사하는 엔터사에서 이는 가장 큰 폭탄이 터진 거라 봐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는 한 남자.
넥스트 웨이브의 사장인 유원동은 별생각 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넥스트 웨이브 사장으로 취임한 지 몇 개월 지나지 않은 지금.
그는 어느덧 완벽한 기안서 결재 머신으로 탈태한 상태였다.
주도적인 리더라면 이 사안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처리하기 위해 직접 뛰었겠지만,
“김 비서~ 지금 들어와서 상황 브리핑만 간단하게, 아주 간략하게만 해줘요~”
올라오는 서류들 결재 도장만 찍어주는 기계에게는 직접 뛸 발 따위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