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90화
넥스트 웨이브의 사장실.
유원동은 김 비서가 가져온 자료를 보며 박동준 인성 논란 사태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있었다.
다만 브리핑을 홍보팀이나 매니지먼트팀에게 시키지 않고 본인 비서에게 시켰다는 점.
더 나아가 이 브리핑을 듣는 자세가 굉장히 편안하다는 점.
브리핑을 듣는 내내 유원동 얼굴에 한 줌 긴장감조차 없다는 점.
기타 등등등.
유원동이 이 사안에 크게 관심이 없음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넘쳐났다.
브리핑 또한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받는 게 아닌 본인 회사에 벌어진 일이니 도의상 알려고 듣는 느낌이었다.
“현재 박동준 씨 동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네이스판에 인성 폭로글을 올린 상태입니다. 이게 폭로글 전문이고 축약하자면 박동준 씨가 그들을 집중적으로 따돌리고 모욕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흐음.”
“그리고 현재 파랑새 쪽 반응들 모니터링한 것들은…….”
“으음. 괜찮아요. 그 정도는 내가 서치해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김 비서가 보기에 지금 이 상황이 심각해요?”
“아…… 그게…….”
“아니지. 이걸 내가 김 비서한테 물을 게 아니지. 홍보팀한테 물어봐야겠구나. 하하하. 미안해요. 가서 일 봐요.”
“네. 알겠습니다.”
김 비서를 물린 후 유원동은 다시 컴퓨터 화면을 바라봤다.
나름 이쪽 일을 하면서 그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진짜 반응은 파랑새에서 나온다는 점.
그곳에 비공개 계정들이 많다는 점.
진짜 반응을 보려면 그 비공계 계정들과 팔로우를 맺거나 서치방지를 잘 찾아내야 한다는 점 등등.
이런 아이돌판 문화를 알기엔 나이가 꽤 많은 편이지만 유원동도 나름 자료조사와 학습을 하긴 했다.
다만 이제 그런 열의가 없을 뿐이었지.
“심각하네.”
유원동은 파랑새 몇 번 서치한 것으로 분위기를 슬쩍 살폈다.
마치 쏟아져 나오듯 박동준 관련글이 나오고 있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한 줄기 빛은 보이는 것이 여론은 완전 기울지 않았다는 거다.
저 글의 진정성에 대한 판단이 아직 확실히 서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유원동은 이쯤에서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오늘 중으로 홍보팀에 진상 파악한 후 사과글 올리고, 그래도 여론이 잠잠해지지 않으면 활동 중지 혹은 방출까지 고려하면 된다.
절차상으로 보자면 간단한 일이다.
선례도 충분히 있는 일이고.
그러니 별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었다.
유원동은 언제나 그렇듯 밑에서 올라오는 기안서를 확인한 뒤 결재 사인을 해주기 시작했다.
언제나와 같은 한적한 오후였다.
* * *
운이 형과 화장실에 도착한 나는 화장실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대학생들도 사용하는 화장실이기에 변기칸에 누가 없는지도 일일이 확인해 봤다.
다행히도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구석진 화장실이라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준비를 마친 후 형을 바라봤다.
운이 형은 내 손을 덥석 잡더니,
“태윤아……!”
“……?”
“이거 진짜로…… 되는구나!”
“……네?”
“네가 말했던 우리 기억만 옮겨온다는 거 말이야!”
“아…… 그렇죠. 어떻게 잘 연결이 되긴 됐,”
“그냥 된 정도가 아니야. 모든 기억들이 다 정리된 채 들어와 있어. 심지어 이 세계의 나한테 아무 영향도 안 미친 채로.”
“오.”
운이 형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그때 내가 했던 그 작업이 꽤 훌륭하게 잘 수행됐나 보다.
그냥 통찰을 있는 힘껏 사용한 정도일 뿐인데.
이런 것도 상상력과 관련된 건가.
이미지를 그려낸다라는 느낌으로 한 게 꽤 정확한 통찰의 사용법이었나 보다.
“그러면 이렇게 튀어나오는 건 어떻게 가능한 거예요?”
“아, 이건 그냥 되던데?”
“그냥 된다고요?”
“응. 다른 세계의 나라고는 해도 일단 기본적으로 나는 나니까. 그냥 내가 말하고 싶으면 자연스럽게 스위칭 되는 거 같아.”
이건 꽤 놀랍다.
난 무슨 자아분열 같은 고통이라도 느끼는 줄 알았다.
한데 자연스럽게 스위칭 된다니.
의사가 어려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완벽하게 회복된 환자를 보는 게 이런 기분이려나.
뿌듯하다.
“아, 그러면 지금 이렇게 나온 이유가 있겠네요?”
“맞아.”
운이 형은 얼굴색을 바꾸곤 아까보다 진지한 어조로 입을 뗐다.
“지금 동준이 사건. 그거 나도 열두 번째쯤 회귀에서 겪어본 적 있는 일이거든.”
“진짜요?”
이건 엄청난 정보다.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되어줄지도 모를…….
“그때 해결 못 하고 미션 실패해서 동준이 방출되고 팀 하락세 걷기 시작했어.”
희망보다 절망에 가까운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내 열두 번째 회귀도 끝이 났고.”
“그러면 해결을 못 한 거잖아요.”
내 미래가 저렇게 될지도 모르니 경고해 주려 나온 건가.
“해결하려고 노력하며 얻은 정보는 있으니까 공유해 주려고 하는 거지. 무엇보다 얘네가 당하는 꼴을 보고 싶기도 해서. 어쨌든…… 걔네들 때문에 한 번은 우리 팀이 망했던 거니까.”
그렇게 말하는 운이 형의 눈은 은은한 분노가 일렁이는 듯했다.
운이 형은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봤다.
혹여나 누군가가 우리 대화를 들을까 우려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까도 확인해 봤듯이 이곳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일단 내가 확인해 본 바로는 그 폭로글 쓴 사람들 전부 거짓말 친 거야. 동준이 인성에 대해서는 걱정 안 해도 괜찮아.”
여기까진 나도 얼추 예상하고 있던 바다.
난 가만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다만 고소가 쉽게 가능하진 않더라고. 동준이 실명을 적시한 게 아니었어서.”
“아쉽네요.”
“근데…… 방법이 없던 건 아니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라고요?”
“일단 첫 번째 방법인데 동준이 다른 동창들에게 연락하는 거. 이게 내 12번째 회귀 때에는 꽤 늦게 등장했거든. 친구들이 증거 모아서 저 사람들이 거짓말한 거다라는 입장문을 너무 늦게 내는 바람에 이미 동준이 방출이 결정 난 후였어. 게다가 여론이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고.”
“그러면 그 동창들이 빨리 입장문 써주는 게 중요하겠네요?”
“맞아. 근데 거기에도 문제가 있긴 해.”
“문제요?”
“동준이 친구들 대부분이 군대에 가 있거나 유학 중이거든.”
“……하아.”
“심지어 이때면 아마 다들 훈련소에 있는 상태라서 연락도 잘 안 될 거야. 유학 중이던 친구는 현지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린 바람에 한국 소식을 늦게 들었고.”
“……그 난관들을 뚫고 입장문을 올려야 하는 거네요.”
“맞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는 증거를 보다 분명하게 만드는 거.”
“분명하게요?”
“간단해. 저 게시글에 실명 적게 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진짜 분명한 증거니까.”
“그게 될 리가 없잖아요.”
“왜 없어. 너 그 능력 있잖아. 통찰로 명령할 수 있는 능력.”
“그것도 실제로 만나야 쓸 수 있는,”
“주소는 내가 알아.”
“……!”
이거라면 문제가 훨씬 더 쉬워질 수 있다.
근데 주소지를 안다면 더 쉬운 일이 있다.
“그냥 글을 내리라고 명령하는 게 더 쉽지 않아요?”
“…….”
“아니면 그쪽한테 사죄글을 올리게 하거나.”
“……맞아.”
“근데 왜…… 아.”
난 말을 하다가 깨달았다.
운이 형은 걔네가 망하는 꼴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운이 형이 누군가가 망하는 걸 보고 싶어 하다니.
회귀를 반복하게 되면 사람의 근본적인 성격도 조금은 바뀌는 모양이었다.
“그럼 둘 다 하죠, 뭐.”
“둘 다?”
“이름 적시하게 해서 보다 확실한 증거로 만들고, 그 뒤에 바로 사죄글 올리게 만들면 되잖아요.”
“그 후에 고소하게?”
“네.”
“……나쁘네, 태윤이.”
“제가 뭐가 나빠요. 형이 다 시킨 거면서. 뭣보다 이런 글 쓴 그 사람들이 나쁜 거죠.”
운이 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때 이 사람들 탓에 미션을 실패하는 걸 무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던 기억 같은 게 떠올랐나 보다.
“주소지 알려주세요. 근데 글 쓴 거 보면 한 사람이 아니라 두 명이던데…… 그러면 다 같이 모여 있을 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네이스판 아이디 주인은 한 사람이니까 걔가 일하는 편의점으로 가면 될 거야.”
“그러면 그 편의점 어딘지만 알려주세요.”
운이 형은 내게 편의점이 어느 쪽에 있는지 알려줬다.
정확한 지번 주소까지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편의점을 특정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숙소에서 별로 멀지도 않다.
지하철 타고 혼자 갈 수 있을 정도니까.
“야간 알바니까 밤에 다녀와.”
“오늘도 잠은 못 자겠네요.”
“이런 일 생겼는데 어차피 밤에 잠 안 올 거 아니야?”
“그것도 맞긴 하죠.”
난 운이 형을 잠시 바라봤다.
형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아무래도 회귀의 기억들을 연결시켜 두길 잘한 것 같다.
“아, 그리고 이건 마지막 조언인데.”
“네.”
“고소할 때 유원동 사장 찾아가 봐.”
“유원동이요?”
“응. 아마 지금쯤 일거리를 안 주면…….”
“네.”
“……삐뚤어질 거야.”
“……네?”
“유원동이 나중에 완전히 적으로 돌아서면 그것만큼 피곤해지는 일 없어. 보니까 지금은 적당히 잠재워 둔 거 같은데, 이런 상태면 금방 적대적인 포지션으로 바뀔 거야.”
“아니……. 그 인간 나이 50 넘은 아저씬데…… 삐뚤어진다뇨…….”
“원래 나이 들수록 조금씩 어려지기도 해. 정신이.”
“……하아.”
“그리고 고소 건에 한해서는 유원동 도움받는 게 좋아.”
“왜요?”
“아, 유원동 프로필 확인 안 해봤어?”
“네?”
“그 사람 법대 출신이야.”
“……미친.”
“사법고시 떨어져서 회사 입사한 케이스거든. 동기 중에 판사, 검사, 변호사 수두룩해.”
법대 나온 사람이 넥스트 웨이브 사장이 되다니.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었다.
“암튼 내가 전해줄 정보는 여기서 끝. 더 할 말 있어?”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해요.”
“그럼 이제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자. 나도 현장으로 가서 다시 스위칭할게.”
“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얻었다.
이제 이 사건을 해결 못 하면 그건 내가 바보인 거다.
관건은 해결을 할 수 있냐 없냐가 아닌,
‘얼마나 깔끔하게 처리하냐겠네.’
저 둘을 얼마나 나락까지 처박을 수 있을지다.
* * *
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MC와 주요 스태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급기야,
“오늘 촬영 취소됐습니다.”
“아……!”
“네.”
<동네맛집> 촬영의 취소.
“정말 죄송해요. 다음에 꼭 다시 촬영 잡을게요.”
“자세한 내용은 매니저분에게 전달드렸으니 그쪽에서 들으시면 될 겁니다.”
“죄송해요.”
제작진들은 우리에게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다만 죄송할 것까지는 아니다.
어쨌든 이쪽도 사업이고, 사업에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
괜히 촬영했다가 촬영분만 날릴 바에야 지금에라도 빠르게 섭외 가능한 다른 팀 찾아서 방송 메꾸는 게 나을 거다.
“근데 동준이는 어딨어?”
“그러니까.”
형들과 나는 동준이 형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승연 씨와 현아 씨가 다가왔다.
“동준 씨는 지금 먼저 숙소로 보낸 상태에요.”
“네?”
“정말요?”
동준이 형을 따로 숙소로 보냈단다.
“그…… 상태가 심각해서.”
“…….”
“일단 출발하죠, 저희도.”
승연 씨와 현아 씨의 인솔에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차를 타고 대학교 캠퍼스를 빠져나왔다.
보통 스케줄 끝나고 난 후에도 한참 수다를 떠느라 시끌벅적한 게 우리 분위긴데.
“…….”
“하아…….”
“동준이 괜찮겠지?”
“…….”
오늘은 유독 적막하기만 했다.
이내 승연 씨가 방송국으로 차를 돌리려던 걸 내가 붙잡았다.
“승연 님.”
“네?”
“저희 숙소로 가죠.”
“예?”
“숙소요.”
“지금 가면 동준 씨가…….”
“그러니까 가겠다는 거예요.”
사람이 상처받았을 때 홀로 있어야 하는 타입도 있다.
다만 홀로 있어도 더 힘들어지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다.
난 도저히 동준이 형을 혼자 둘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