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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92화 (19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92화

음악방송 생방송까지 마친 후.

우린 숙소로 돌아와 적막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이날 음악방송 생방송에 동준이 형은 그냥 올라갔다.

처음엔 동준이 형도 올라갈지 말지 고민을 수천 번도 넘게 하는가 싶더니 끝내 용기를 내어 올라가는 선택을 했다.

다만 그 선택이 옳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동준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오늘 복도 돌아다니면서 자신에 대해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모양이었다.

대기실에서 무대 기다리는 동안에는 나름 멀쩡하더니 화장실 다녀온 이후부터 조금 넋이 나간 얼굴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무대는 큰 탈 없이 마치긴 하였으나 무대 외엔 모든 상황에서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지금 저녁 식사 시간에도 표정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거 반찬 좀 더 꺼내올까?”

오늘 형들은 동준이 형을 위해 다이어트식이 아닌 일반식 저녁상을 준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준이 형은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이내 밥을 절반가량 남긴 후.

“들어가서 쉬고 있을게요, 괜히 눈치 주는 거 같아서 미안해요. 금방 괜찮아질 거예요.”

동준이 형은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식탁에 남은 우리 넷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과연 이 사안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를 의논해 보자는 묵언의 사인이었다.

“……내가 내일 회사 사장실에 가서 강하게 어필하고 올게.”

“저도 같이 갈게요. 이건 이제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맞아. 나도 같이 갈래. 이건 이제 회사에서 법적인 조치를 취해야 해결될 문제 같아.”

형들은 모두 유원동에게 찾아가 이 사안을 해결해 달라 부탁할 생각이었다.

이게 가장 일반적인 해결방안이었다.

“저도 내일 유원동 사장님 찾아가 볼게요.”

해서 나도 이렇게 말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형들과 같이 찾아가 보진 않을 거란 말이다.

어쨌든 유원동이랑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려면 혼자 찾아가 봐야 한다.

해서 오늘 밤에 일을 마치고, 내일 아침이 되자마자 유원동에게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일단 밥마저 먹자.”

형들은 다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한데 동준이 형이 걱정돼서 그런 걸까.

확실히 형들의 식사도 제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식사를 마치고 각자 식기류를 개수대에 가져간 후 저녁 시간을 정리했다.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다들 9시 넘어서까지 푹 자. 이럴 때 조금이라도 체력 비축해 둬야지.”

“네.”

“그리고 내일 일어나서 점심 즈음에 다 같이 회사 찾아가 보자.”

“알겠어요.”

“잘 자요.”

“내일 봐요.”

형들과 나는 내일 회사에 가자는 약속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 * *

밤 11시가 되었다.

운이 형은 이미 잠든 상태였다.

난 이부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여기에서 동준이 형 폭로글을 올린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는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었다.

아주 가깝진 않지만 그렇다고 갈 수 없을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었다.

난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도 착용한 뒤 숙소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최대한 아파트 단지를 돌아서 밖으로 나간 뒤 택시를 불렀다.

운이 형이 말해준 해당 편의점을 지도상에서 미리 찾아둔 상태였다.

그 편의점 한 블록 뒤를 도착지점으로 설정한 후 택시를 부른 거였다.

택시 어플에선 약 5분 후 도착이라고 말했다.

혹시나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고개를 더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알 없는 뿔테 안경을 하나 꺼내 썼다.

밤에 선글라스를 쓰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하니 나름 임시방편으로 구해온 거였다.

오늘 일은 누구에게도 들키면 안 되는 일이었다.

최대한 나를 특정 지을 수 있을 만한 증거는 안 남길 생각이었는데,

“확실히 그렇게 해놓으니까 못 알아보긴 하겠다.”

“깜짝이야.”

내 뒤에 덩치 큰 남성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도승이 형?”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나를 따라 나온 걸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하지?

다만 이런 내 고민을 끝내주는 한마디가 있었으니.

“걱정 마. 나 도승이 아니야. 아니, 그러니까 강도승은 맞지. 근데 이 세계의 강도승 아니라고.”

“아.”

오늘 운이 형이 스위칭을 한 것처럼 도승이 형도 스위칭을 한 모양이었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는 도승이 몸 안에서 다 들었어. 따로 설명 안 해줘도 돼.”

“그런 것도 돼요……?”

“네가 한 거잖아. 새삼 놀랍냐?”

대체 내가 무슨 일을 해낸 건지 감이 잘 안 온다.

“암튼 누가 봐도 네가 수상한 짓 벌일 거 같아서 밤까지 기다렸다가 따라 나온 거야.”

“……진짜요?”

“밥 먹을 때부터 생각이 혼자 다른 곳에 가 있는 게 꿍꿍이가 있겠다 싶더라.”

“티 나요?”

“너 생각 많아지면 밥 먹을 때 젓가락으로 밥알 세면서 먹어. 몰랐냐?”

“……그런 걸 왜 알고 있는 거예요. 기분 나쁘게.”

“회귀를 열다섯 번 하면 너네들 내장 기관 상태까지 알아.”

“미친.”

“너 아침마다 명치 쪽이 꽉 눌린 느낌 들지? 그거 역류성 식도염이다. 아침부터 빈속에 커피 때려넣는 짓 그만해라.”

이번엔 진심으로 소름 돋았다.

내가 남들한테 말 못 하고 혼자 앓던 작은 지병까지 꿰뚫어 보다니.

대체 열다섯 번의 회귀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온 것인지 감도 안 온다.

“그래서 왜 나온 거야, 오늘?”

도승이 형은 내가 무슨 짓을 벌일 거란 건 눈치챘지만 어떤 짓을 할지 구체적으로 눈치채진 못한 것 같았다.

하긴 그걸 눈치채면 도승이 형이 신이지.

“가서 얘네한테 통찰로 명령해서 사과글 올리게 하려고요. 동시에 본명 적시해서 명예훼손 고소 성립도 좀 더 쉽게 할 생각이고요.”

“나쁘지 않네. 깔끔하기도 하고.”

“내일 바로 상황 역전될 수 있게 밑밥만 깔아두는 거죠.”

난 도승이 형에게 오늘 운이 형과 나눴던 계획을 그대로 이야기해 줬다.

그러자니 드는 궁금증이 하나 있었는데

“형도 이런 미션 있었어요? 회귀 중에?”

운이 형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는 이 미션이 도승이 형에게도 있었는가다.

“아니. 난 없었지.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야.”

도승이 형은 15번이나 회귀를 하면서도 동준이 형 폭로글은 안 터졌다고 한다.

그 말은 모든 회귀자들 간에 사건이 늘 공통적인 것은 아니란 말이다.

‘신기하네.’

그래도 15번이나 했으면 한 번쯤은 겹칠 줄 알았는데.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역시 없는 모양이었다.

“저거 택시 네가 부른 거냐?”

“네.”

“타자.”

도승이 형과 나는 때맞춰 도착한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내가 미리 설정해 둔 곳으로 바로 출발했다.

이동하는 동안 도승이 형과 나는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그에 관해서만 생각할 따름이었다.

* * *

김원중은 박동준을 욕하는 글들을 하나씩 음미하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다.

“계산이요.”

“…….”

“계산해 달라고요.”

“아 X발.”

“……뭐요?”

김원중은 본인도 모르게 X발이란 말을 뱉어버렸다.

다만 못 할 것도 없지라는 생각을 했다가,

“방금 X발이라 그랬습니까.”

“아…… 아뇨, 그게 친구랑 대화하다가…… 저도 모르게. 그 문자 하다가…….”

눈앞의 남자가 덩치 큰 사람임을 깨닫고는 빠르게 태세 전환을 했다.

김원중은 어서 계산을 마친 후 손님을 보냈다.

그제야 다시 김원중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X발 개새끼 가오 X나 잡네. X도 아닌 새끼가 덩치 좀 크다고…….”

그는 잠시간 분을 삭인 후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도 본인이 쓴 글에 이렇게까지 박동준이 비난받게 될 줄은 몰랐다.

한참 위에 서서 본인을 늘 내려다볼 것만 같은 존재였는데 그가 쓴 거짓말 하나에 자신과 같은 급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다.

아니, 지금 이 기분만 놓고 보자면 마치 박동준이 자신의 발밑에 있는 것만 같았다.

늘 올려다보기만 했던 존재를 내려다보는 순간의 쾌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실시간으로 불어나는 박동준에 관한 비난 여론을 보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가 쓴 글에 대한 비난 여론도 박동준에 관한 비난 여론 못지않게 많은 상태였다.

하지만 김원중에게 그런 것 따위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글이 박동준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에만 집중한 채 그에 관한 글만 계속해서 탐닉하듯 읽었기 때문이다.

사이버 렉카들이 나와서 박동준을 비난하는 영상을 돌려보는 것으로 자신의 추한 열등감을 위로하는 와중에.

“박동준 폭로 글 쓴 당사자 되시나 봐요?”

“……네?”

갑자기 눈앞에 큰 그림자 두 개가 드리워졌다.

김원중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 자신의 눈앞에 선 덩치 큰 두 남성을 올려다봤다.

모자에 마스크에 안경까지.

얼굴에 덕지덕지 무언가를 많이 붙여두었음에도,

“……아? 미친.”

못 알아볼 수는 없었다.

오늘 하루 종일 찾아본 박동준.

그런 박동준이 속한 그룹인 세이렌.

그 세이렌의 멤버 둘이었으니 말이다.

어째서 이 둘이 찾아온 것인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아무것도 감이 안 잡히는 와중.

지이이이잉-!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

시야가 아득하리만치 멀어지고 몸이 깊은 무저갱으로 빨려들어 가는 것 같은 추락감에 빠진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 속.

-폭로글 초성을 실명으로 바꿔.

한 가지 명령이 온몸을 터뜨릴 기세로 강렬하게 울려 퍼졌다.

다른 생각 따위 들지 않았다.

그는 정해진 명령을 그대로 수행할 뿐이었다.

* * *

통찰을 통해 명령하는 작업을 이토록 길게, 세부적으로 사용해 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운이 형의 말대로 이 편의점에 찾아오니 폭로글의 당사자가 있었다.

저 사람이 당사자임을 특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동준이 형 관련 글을 한참 보고 있었으니까.

심지어는 악의적인 사이버 렉카 영상까지 보며 키득거리고 있었고.

그럼에도 확실한 게 좋으나 통찰을 써서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X발 이 새끼 좀 더 확실하게 조질 수 있는 방법 없으려나. 좀만 더 바닥에 처박히면 좋을 텐데. 좀만 더, 조금만 더. 진짜 인생 X나 찌질해질 때까지…….

누군가가 갖는 그 순수한 악의를 날것으로 마주한 거였다.

듣자마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그대로 이 새끼의 뒤통수를 내려찍을 뻔했다.

간신히 화를 누그러뜨린 후 말했다.

“박동준 폭로글 쓴 당사자 되시나 봐요?”

당신이 그 글 쓴 거 맞냐고.

사실 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남자가 날 올려다본 순간.

그 얼굴엔 묘한 두려움이 실려 있었다.

고작 얼굴 맞대는 걸로도 쫄아버리는 사람에게 동준이 형이 그토록 고통받고 있단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체 없이 통찰을 걸었고, 명령을 내렸다.

폭로글의 초성을 실명으로 싹 다 바꿔버리는 것.

여기까진 쉽다.

이다음부터가 내 정신력을 많이 갉아먹는 거였는데 진실만을 적은 사과문을 작성해서 올리도록 명령하는 거였다.

이건 글을 쓰는 시간도 소요되고, 대상자가 직접 문장을 적어내야 하는 거다 보니 많은 두뇌활동이 필요한 행위였다.

이날 새로운 걸 하나 깨달았다.

내가 명령을 내릴 때 그 명령이 높은 두뇌활동을 요구하는 명령일수록 내게 오는 반작용이 크단 거다.

“괜찮아? 얌마 너 지금 코피가……!”

명령을 다 내린 후 코피가 쏟아졌다.

손으로 대충 막고 있으니 도승이 형이 편의점 테이블에서 휴지를 뽑아와서 건네줬다.

다만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저 새끼가 사과문 작성을 마치고 게시까지 마쳤을 때.

난 마지막으로 통찰을 썼다.

“우리 본 기억 전부 다 잊고 CCTV 기록 지워.”

여기까지 명령을 내리고 나자,

지이이이잉-!

내가 멈추려고 하지도 않았건만 통찰이 절로 끊어졌다.

동시에,

“미친. 봉태윤!”

나도 함께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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