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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94화 (194/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94화

난 속으로 욕을 삼키며 미션 내용을 들었다.

돌발 미션이라고 하지 않은 걸 보니 사망이 걸린 사망 미션이다.

[3개월 안에 트리플 크라운과 음원 1위를 달성하시오.]

[성공 시, 다음 미션으로 진행.]

[실패 시, 박동준 사망.]

방금 막 동준이 형 미션 끝낸 사람한테 바로 동준이 형 사망 미션을 던져준다니.

“지독하네.”

시스템에 인간적인 감정이 없을 거란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건 조금 너무했다.

하지만 불평한다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망이 걸린 미션의 경우엔 그 패널티를 내가 손도 댈 수 없으니 말이다.

‘추가하는 건 가능하려나?’

대충 이런 생각은 해봤지만 어차피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이 이상 통찰을 썼다간 진심으로 코마 상태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시스템이 던져준 미션에 대해 생각했다.

‘트리플 크라운.’

방송사에서 3주 연속으로 1등을 하는 것.

혹은 세 개 방송사에서 한 주에 세 번 1등 하는 것.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

스포츠계에서의 트리플 혹은 쿼드러플 등은 그 의미가 보다 명백하지만 아이돌판에서의 트리플 크라운은 시기마다 조금씩 의미가 달랐다.

한때는 특정 음악방송 세 곳에서 1등을 해야 트리플 크라운이었으나 요즘은 3주 연속으로 1등을 해야 트리플 크라운이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시스템에게 기준을 묻고 싶으나.

‘말해줄 리가 없지.’

그렇게 친절할 리가 없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가장 일반적인 두 개의 기준에 모두 부합하도록 움직이는 거다.

한 방송사에서 3주 연속으로도 1등을 하고.

한 주에 3개 방송사에서 연달아 1등도 해야 한다.

다른 말로는 그냥 트리플 크라운이 아닌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달성해야 가장 안전하게 미션을 끝낼 수 있단 거다.

‘빡세네.’

조금 인지도 있고 팬덤 있다 싶은 아이돌들은 음악방송 1등을 곧잘 하니 트리플 크라운이 쉬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의외로 까다로운 구석이 많은 미션이다.

일단 3주 연속이든 3번 연속이든 해당 컴백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그룹이 되어야 가능하다.

가장 눈에 띄지 않고서야 절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곡들은 꼭 아이돌 팬이 아니더라도 대중들 대부분도 아는 곡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데 여기서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달성해야 하는 거라면 이야기가 조금 더 어려워진다.

‘거의 그해의 노래가 되어야 할 텐데.’

그냥 인기 있는 수준이 아니라 그해에 가장 히트한 곡이 되어야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해낸 가수 혹은 그룹은 10개가 채 안 되는 실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즉 이번 초동 50만 미션과 얼추 결이 비슷하나 훨씬 난이도가 높아진 거라 봐야 한다.

‘일단 이번 활동에선 트리플 크라운은 불가능하겠네.’

지금 우리 곡이 음원 순위도 좋고 초동도 좋다고는 하나 트리플 크라운은 어렵다.

아마 온리원과 1등을 갈라 먹을 테니 사이좋게 트리플 크라운은 못 하고 활동 마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개월 안에 올해에 가장 히트할 대중픽의 곡을 가지고 와서 음악방송을 싹 다 휩쓸어 버리라는 건데…….

‘돌겠네.’

이런 기세라면 우리가 올해 연말에 대상이라도 타는 게 아닌가 싶다.

머리가 한창 복잡해지는데,

“여기 반팔 티셔츠 사 왔다.”

도승이 형이 다가왔다.

“고마워요.”

난 형이 건네준 반팔 티셔츠를 확인했다.

하얀색 사다 달라니까 검은색을 사 왔다.

내 눈치를 읽은 걸까.

“하얀색 없어서 검은색 사 온 거야. 내 취향 반영 안 했어. 그냥 처입어라 좀.”

형이 변명을 한다.

“전 아무 말 안 했어요.”

“……그래.”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벗어 던졌다.

“얌마!”

내가 너무 훌러덩 옷을 벗어 던졌나 보다.

다만 여기 후미진 골목이고 보는 사람도 없으니 상관없겠다 싶었을 뿐이다.

형은 놀라서 양팔을 활짝 펼쳐 날 가렸다.

다만 그거 조금 펼친다고 가려질 리가 있겠나.

“뭘 가려요. 사람도 없는데.”

“넌 부끄럽다거나 그런 감정 안 느끼냐?”

“느끼죠. 근데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잖아요.”

난 재빨리 검은색 반팔 티셔츠로 환복한 후 입고 있던 옷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생각해 보니 눈앞의 도승이 형은 15번 회귀한 사람이다.

이 형한테 트리플 크라운 기준을 물어보면 되겠구나 싶었다.

“형, 혹시 형도 트리플 크라운 미션 떴어요?”

“트리플 크라운?”

“네.”

“당연히 떴었지. 그거…… 참 지랄 맞은 미션인데.”

“…….”

“암튼 그게 지금 떴어?”

“네.”

“……너무 빠른데?”

도승이 형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날 바라봤다.

보통 지금 뜨는 미션은 아닌 모양이다.

“난 대상까지 받은 후 보통 떴던 거 같은데, 이제 막 데뷔한 상태에서 뜨는 건 너무 어려운데.”

“그래요?”

대상 받은 후에 뜬다니.

대상보다는 트리플 크라운이 쉬운 거 아닌가?

한데 듣다 보니 이해가 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거 3주 연속 트리플 크라운도 아니고 3번 연속 트리플 크라운도 아니야.”

“그럼 뭔데요?”

“이게…… 매번 바뀌어. 이 시스템 망할 새끼가 어떻게든 미션 실패시키려고 내는 게 트리플 크라운이거든.”

“…….”

“3주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하면 3번 연속 트리플 크라운이었다고 하고, 3번 연속으로 트리플 크라운 하면 3주 연속이었다고 하는 미션이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네요.”

“맞아. 6번째랑 7번째 회귀에 둘 다 나왔던 미션인데 각각 3주 연속, 3번 연속 트리플 크라운 성공했었는데 두 번 다 미션 실패했거든.”

“……지랄 맞은 미션 맞네요.”

“결국 8번째에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해내니까 그제야 달성되더라.”

“결국 올킬이 답이네요.”

“맞아.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 그게 아니면 자꾸 꼬투리 잡힐 거야.”

이로써 좀 더 명료해졌다.

트리플 크라운 올킬이 아니고서야 시스템에게 꼬투리 잡히는 미션인 거다.

“뭐 설마 한미일 3개 차트 올킬이 트리플 크라운이겠냐.”

“…….”

만일 나에게 3개국 차트 올킬을 요구한 거라면 진심으로 통찰을 사용해 시스템 새끼를 죽이러 가야 할 거다.

“일단 가죠.”

“그래. 가자.”

형과 나는 모자와 마스크를 확인한 후 어플로 택시를 불렀다.

어쨌든 길고 요란한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 *

넥스트 웨이브 사옥은 아침부터 한바탕 난리가 난 상태였다.

아니, 난리가 아닌 축제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이게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전화해서 그렇게 기사 내려달라고 난리 칠 때는 안 내려주더니 지금은 알아서 다 내리고 있어요.”

“진짜 사람들 간사하다 간사해.”

“어휴, 속 시원하다 진짜.”

넥스트 웨이브 직원들 모두 이 사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싶어 발만 동동 구르던 중이었는데 제 발로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다만 이 와중에 평소와 똑같은 텐션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었다.

“회사 분위기가 활기차고 좋네요?”

“아,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너무 깍듯하게 그럴 필요 없어요. 그럼 일들 봐요.”

넥스트 웨이브의 대표 유원동이었다.

그는 출근하며 사옥 내부의 분위기를 한 차례 살피더니 조용히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유원동의 이러한 행동이 은근히 눈치를 주는 행동임을 임직원들도 모르지 않았다.

탕비실과 카페테리아에 모여 수다를 떨던 인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본인의 사무공간으로 이동했다.

시끌벅적하던 회사가 순식간에 차분해지고 평소의 업무 분위기로 돌아오는 데에는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유원동은 본인의 자리에 앉아 직원들이 그토록 즐거워하던 소식들을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게 이렇게 진행돼 버렸네…….”

소속 가수의 논란이 해결된 일이니 기뻐야 마땅한 일이었다.

한데 이 묘한 공허함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또 본인은 나설 것 없이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어 버렸다.

아마 본인이 나서서 이 일을 처리하고 싶단 생각이 은연중에 조금은 있었나 보다.

유원동은 스스로에게 한 차례 코웃음을 치며 몸을 뒤로 젖혔다.

본인 같은 늙은이가 이 젊고 생동감 넘치는 시장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그런 건 젊은 것들이나 해내는 거지.

넥스트 웨이브 대표로 부임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지만 유원동은 현재 자신의 위치가 어떤 위치인지 100프로 파악한 상태였다.

‘바지사장이야 바지사장.’

명색만 사장일 뿐 하는 일은 딱히 없는 직책이었다.

신사업이나 프로젝트 등은 실무자들 선에서 전부 이야기가 나오고.

매니지먼트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앨범과 방송활동의 경우 세이렌 멤버들이 알아서 만들어낸다.

즉 사장인 그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보면 된다.

더 나아가 본사 쪽에서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유원동은 언젠가 제일그룹 그룹사의 사장이 되는 것이 목표인 남자였다.

물론 지금도 제일그룹 그룹사의 대표이사인 것은 맞으나, 이런 한직이 아닌 주요 그룹사의 사장 말이다.

가령 넥스트 웨이브의 모회사인 JI ENM의 사장이라든가.

제일식품의 사장이라든가.

제일그룹이 본인의 이름을 달아둔 주요 그룹사들 말이다.

처음엔 넥스트 웨이브 사장으로의 발령이 그룹사 사장으로 가기 전의 마지막 테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주제 파악 하라는 건가.’

ENM 쪽에서 신임 임원과 사장의 케미가 대단한 걸 보니 ENM 사장으로 가기 전의 발판이 아닌 ENM의 뒷방 늙은이로 전락하기 위한 함정인 셈이었다.

이곳에서 부하직원들이 가져다주는 실적이나 받으면서 적당히 커리어나 쌓으라고 말이다.

그렇게 적당한 커리어 쌓고 돌아오면 전관예우 느낌으로 ENM 부사장 자리나 1, 2년 해먹다가 퇴직당할 게 분명했다.

나이 50이 넘어서도 유지되던 열정의 기름이 인생 첫 사장 직함 달고 난 지금에서야 빠르게 꺼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현실과 타협하여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 생각 중이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도달하지 못할 영역이기도 하고.

그가 그룹의 주요 계열사만 탐내지 않는다면 이 넥스트 웨이브 사장 자리는 꽤 오래 유지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즉 일은 별로 안 하면서 연봉은 수억 단위로 받아 가는 자리인 셈이다.

받아들이자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운명이었으나…….

“……재미없네. 참나.”

이 나이 먹고 일에 재미를 찾는 본인이 스스로도 우스웠다.

다만 한직으로 밀리고 나니 깨달았다.

그는 본사에서의 그 치열한 정치전이. 실적싸움이. 매출 압박이 너무도 그립다는 것을 말이다.

남이 듣는다면 경기 일으키고 놀랄 일이었다.

다만 그는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대충 몸을 일으키며 다시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느새부턴가 유원동의 하루 패턴은 출근을 한다는 것 외에는 히키코모리들과 다를 바 없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한참 인터넷에 집중하려는데,

똑똑.

비서가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이에요?”

누가 회사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싶어 스케줄 메일을 찾아봤지만 그가 놓친 미팅 일정은 없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비서를 바라보니,

“지금 봉태윤 씨가 본사 방문해서 잠깐 사장님과 면담하고 싶어 하는데, 들여보낼까요?”

“……음?”

유원동이 전혀 예상 못 했던 방향의 대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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